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208
어느 순간,
대앵-하는 소리가 들릴 것 같은 깨달음이 왔다.
그에게 이미 끝난 과제는 없다.
이 과제 뿐 아니라 모든 과제를, 그는 계속 생각해보고 발전시키고 있었을 것이다. 아마 이미 지나간 작품의 배역들도 기회가 되는대로 연구하고 발전시키고 있겠지.
진실로 연기를 좋아하고 연기에 자신의 인생을 걸었기에, 그에게 모든 연기는 ‘현재’의 과제가 아닌 ‘인생’의 과제였다.
‘그런 사람 앞에서 연기를 얕보는 모습을 보였으니···’
효준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지금까지도 진심으로 반성한 게 아니었다. 자신이 잘못된 것을 깨닫긴 했으나, 정확히 무엇을 잘못한지는 몰랐다.
자신이 진실로 깨달았었다면,
무대를 내려오면서, 유명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 아닌, 자신의 연기가 어떠했는지를 되새겼어야 했다.
‘부럽다.’
부끄러운 동시에, 부러웠다.
인생을 걸고 저토록 몰두할만한 일을 가진 사람.
그는 주변의 인정과 애정을 갈구하지 않을 것이다.
가장 가치를 둔 것, 한 가지에만 집중하며, 자신이 어떠했는지의 평가는 오직 스스로 내리기에.
‘나도…저렇게 살 수 있을까···?’
*
졸업자 발표 시간이 다가왔다.
각 클래스를 담당한 심사위원들이 차례로 3명씩의 합격자를 호출한다.
그리고 마지막은 데렉의 클래스.
[저희 클래스에서 진급하실 분은···신유명, 앙투안 모니에…그리고,]두 사람은 당연한 선택이었지만, 마지막 합격자는…
[도효준입니다. 축하합니다.]효준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당연히 카이가 올라갈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카이는 분명 입학 시점과 비교해 가장 많이 발전한 참가자에요. 하지만 빠른 속도로 발전했다고 해도 현재의 연기 실력만 봤을 땐, 아직 효준에게 못 미쳐요.]유명도 고개를 끄덕였다.
카이는 분명 몇 년 안에 정상에 오를만한 배우가 되겠지만, 이제 막 첫걸음을 뗀 상태다.
그리고 그와 비교되는 효준은 이미 몇 년간 연기 수업을 받아온 데다, 엄청난 재능의 소유자.
[오늘의 연기는 철저한 조연의 연기였지만, 그 디테일에 있어서는 상당한 내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연기를 대하는 자세도 조금 바뀐 것 같은데, 그 자세가 앞으로도 유지되길 바랍니다. 축하해요.]칭찬과 합격소식에도 고개를 살짝 숙이고 표정변화가 없던 효준은,
합격 감상을 말해야 할 자리에서, 폭탄 선언을 한다.
[죄송하지만, 저는 결선에 올라갈 자격이 없으므로 합격을 고사하려고 합니다.] [네??]제리가 버럭 소리지르고, 합격자들이 놀라 웅성거린다.
효준이 허리를 깊이 숙인 후 말한다.
[여기 계신 분들은 경력이 길고 짧음을 떠나, 연기를 진심으로 사랑하시는 분들입니다. 그런데 저는 프로그램 초반부터 줄곧 연기를 진지하게 대하지 않고, 쉽게 생각했습니다.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그의 진지한 사과에, 갑자기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아니 효준씨, 그래도 결선을 포기하는 건…다시 생각해 봐요. 뭘 잘못했으면 지금이라도 잘 하면 되지. 데렉이 뭐라고 애를 기죽여놨길래 그렇게 통통 튀던 애가 이렇게 됐어···] [아니 그 정도로 뭐라고 하지는 않았는데…흠흠. 효준씨.] [네.] [긴가민가 했는데 정말 변했네. 본인이 잘 생각하고 그게 맞다고 판단한 거라면 말릴 생각은 없어요. 하지만 앞으로 계속 배우의 길을 갈 생각인가요?] [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다시 생각해 봐야 해요. 배우가 한 번 잃은 이미지를 복구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괜찮겠어요?]액션 스쿨 과정에서 데렉은 효준을 자주 비판했고, 그 모습은 티비에 가감없이 방영될 것이다.
아무리 지금 반성한 모습을 보였다 해도, 한 번 떨어진 평판은 오르기 쉽지 않다.
그나마 결선에 진출하는 것이, 이미지를 복구할 기회를 조금이라도 더 얻을 수 있는 길이다.
[네, 그건 제가 감당할 몫인 것 같습니다.]효준은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다.
결국 그는 결선 진출에서 제외되었고, 그 자리는 카이가 채우게 되었다.
그 모습을 유명은 알 수 없는 얼굴로 지켜보고 있었다.
*
RRR-
이상한 숫자가 마구 찍힌 전화기, 국제 전화였다.
유명은 그 전화를 망설임없이 받았다.
[유명씨.]“오랜만이에요, 형. 프랑스는 새벽일텐데 안 주무셨어요?”
[막 자려던 참에 문자를 봤네. 방송 잘 보고 있어요.]“아, 그게 프랑스에도 나가나요?”
[하하, 아니요. 한국 사이트만 들어가도 캐스팅보트 소식으로 도배니까.]나직한 웃음소리.
새벽까지 연습하고 잠자리에 들기 직전의 녹초가 된 배우의 목소리다. 그는 여전히 연기에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붓고 있나보다.
[그래서, 그건 무슨 소리에요? 사람을 한 명 받아줄 수 있냐는 건.]“무척 재능있는 친군데, 연기에 대한 자세가 좋지 않았어요. 이제야 뭔가 좀 깨달은 것 같은데, 제가 같이 봐줄 수 없는 상황이라…부탁할 사람이 형밖에 안 떠올라서요.]
무언가를 깨달은 인간은 금방이라도 변화할 것 같지만, 한없이 현실에 안주하려는 몸은 쉽게 변하지 않는 법이다.
더구나, 방송을 본 수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자신을 비난한다면···
아무리 새마음으로 진지하게 임해도 아무도 그 진지함을 인정해 주지 않는다면, 재능이 사그러들고 폐인이 되는 것도 한순간일지도 모른다.
그럴 때 믿고 따라갈 수 있는 사람, 자신이 변할 수 있음을 믿어주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존재한다면, 사람은 변할 수 있다.
자신이 지금 그럴 상황이 되지 않기에, 유명은 믿을 수 있는 단 한 사람을 떠올렸다.
누구보다 엄하고 든든하게 효준을 이끌어줄 수 있는 사람. 연기에 대한 실력과 애정이 자신만큼 절절하기에, 효준이 결코 얕보지 못할 사람.
서류신.
그에게 효준을 부탁했다.
유명은 효준이 어떤 사람이며,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자세히 설명한다.
“짐을 떠맡겨서 죄송합니다. 곤란하시면 거절하셔도 돼요.”
[딱히 곤란할 건 없어요. 후배들 봐주는 건 늘 해오던 거라. 굴려도 되죠?]굴려도 되죠?
라는 말에 오디우스에서 악명 높았던 서류신의 연습이 떠오른다.
도효준의 명복을 빈다.
[그럼요.] [보내요. 안 그래도 스트레스 풀게이지였는데 잘 됐네요. 내가 구르는 만큼 굴려야지.] [형에게 허락 받았으니 위고 씨에게도 연락드려서 단원 한 명 받아달라고 부탁드리겠습니다.] [내가 얘기할테니까 그냥 보내요. 어차피 재능있는 배우라면 환장하는 인간이니까, 쌍수들고 좋아할 겁니다.] [하하, 위고씨는 여전한가 봐요?] [웃을 때가 아닐텐데···] […?] [흠…아직 모르는가보군요. 곧 알게 될 거예요. 난 이만 자야겠어요.] [네. 감사합니다. 담에 또 연락할게요.]전화를 끊은 유명은 고개를 갸웃했다.
류신의 말 끝에 뭔가 웃음이 배어났는데…뭘까.
그 의미를 알게 된 것은, 바로 다음날이었다.
*
24명 중 12명이 퇴소했다.
액션스쿨 도중 탈락자는 드문드문 나갔기에 덜했는데, 한꺼번에 절반이 나가니 숙소가 휑해진 느낌이었다.
페이스도 이번 스테이지에서 탈락했고, 효준은···
짐을 싸는 자신의 앞으로 다가온 유명에게, 사람이 달라진 듯 어색하고 진지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형의 연기를 보고 깨달은 바가 많았어요. 그동안 실례가 많았습니다.”
“이제 뭐 할 거에요?”
“글쎄요. 유석 형한테 다시 도와달라기도 염치없고, 어디 극단같은 데 지원해 볼까 싶어요. 배역을 깊이 이해하는 법부터 다시 연습하려구요.”
유명이 제안한다.
“프랑스로 가 볼래요?”
“프랑스요…?”
“서류신 배우 알죠? 제 선배인데 지금 프랑스 파리의 극단에 있어요. 제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연기에 진지한 사람입니다. 연기를 대하는 자세와 방법을 익히기엔 누구보다 훌륭한 스승일 거예요.”
“…정말 감사한데, 이런 배려를 받을 자격이 되는지 모르겠어서···”
효준이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렇게 눈 앞을 얼쩡거릴 때는 자신을 무시하던 사람은, 자신이 마음을 달리 먹자 금세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언젠가 ‘연기에 진지하게 임하는 중이다’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때가 되면, 꼭 함께 연기해보고 싶을 정도로 그의 연기는 멋졌지만,
그 때도 자신을 받아줄거라 생각하지 못했는데.
“그렇게 고마워 할 것까진 없어요. 가서 엄청나게 구르다 보면 금세 내 욕할걸요.”
“…설마요…”
“숨이 턱에 차는데도 구르고 또 굴러봐요. 괴롭히려고 여기 보냈구나 생각이 절로 들 걸요, 하하.”
그렇게 효준은 프랑스로 떠났다.
그리고 남은 12명에게 다음 과제가 부여된다.
[이번 미션은, 결선진입과제! 생방송 이전에 마지막으로 진행되는 단체미션입니다.]다시 단체미션이라는 말에, 참가자들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어우, 표정 풀어요. 이번에는 참가자들끼리의 팀미션이 아니라구요. 3명씩 4조로 묶여서 진행되는 이번 미션에는, 팀마다 연출가가 붙게 됩니다.]연출가라는 말에, 사람들은 조지를 쳐다본다.
[맞아요. 조지도 그 중 한명이고, 또다른 세 명이 지금 뒤에서 대기하고 있죠! 자…여러분들을 쥐고 흔들 연출가들을 만나기 전에, 팀배정을 먼저 하겠습니다.]유명과 함께 한 팀이 된 2명의 참가자는 모두 여성이었다.
시드 배우인 스페인의 마르타 가르시아와 예선부터 올라온 프리야 록하트.
그 둘을 함께 마주보며 유명은 묘한 표정을 짓는다.
‘하필…이렇게 배정되다니.’
프리야 록하트는 원생에서 캐스팅보트 우승자였다.
그리고 마르타 가르시아는 최종 3인에 포함되어, 가장 실력있는 후보로 거론되었지만 결국 탈락한 참가자.
하지만 그 이후 행보는 극과 극이었다.
프리야는 카일리 언쇼의 차기작에 주연 배우로 작품을 찍지만 흥행하지 못한 후, 배우로서 별다른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마르타는 이후에 점점 명성을 떨치며, 나중에는 카일리 언쇼와도 다시 작품을 찍게 된다. 그 영화는 작품성을 인정받고 흥행에도 상당한 성공을 거둔다.
‘흠···’
3명씩 4개조로 나누어 앉은 가운데, 연출가가 공개되었다.
앙투안과 카이의 조에는 조지가, 그리고 다른 두 조에는 상당한 실력과 명성을 인정받는 두 명의 연출가가 배정된 후,
마지막으로 유명의 조를 담당할 연출가가 공개되었다.
[어렵게 모신 마지막 연출가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화감독이자 연극연출이며, 연기론에 있어서도 탁월한 이론들을 선보인 전문가입니다. 멀리 유럽에서 날아오신 이 분을 소개합니다.]설마…류신의 웃음이···
[위고 비아드 감독입니다!]이거였구나.
유명은 헛웃음을 지었다.
175 아니, 그럼 재미없지
[유명씨, 잘 있었어요? 워후, 요즘 엄청 잘 나가던데?] [네…안녕하세요 감독님. 류신 형은 잘 있죠?] [그럼요~ 내가 잠시 자리 비우는 것도 서운한지 가지 말라고 가지 말라고오 아주-] [……] [흠흠, 그나저나 아까 조지 표정 봤어요? 조지가 이 조 엄청 탐냈는데, 나는 이 조 아니면 지금이라도 프랑스로 돌아가겠다고 했지. 결국 내가 쟁취했어요, 하핫.]성격은 여전하시고.
[마르타와 프리야도 반가워요. 같이 잘 해 봅시다.] [네-] [잘 부탁드려요, 감독님.] [그런데 둘은…느낌이 굉장히 극과 극이군요.]위고가 보석을 감정하듯이 둘의 분위기를 뜯어본다.
마르타와 프리야는 5만 명 이상의 캐스팅보트 전체 지원자 중에서도 수위에 들 만한 미녀들로, 이미 두꺼운 팬층이 형성되어 있다.
그런데 둘의 이미지가 몹시 달랐다.
한국식으로 말하면…고양이상 미녀와 강아지상 미녀랄까.
마르타는 갈색으로 그을린 피부에, 살짝 치켜 올라간 매혹적인 청록색 눈동자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평소 움직임도 살짝 느릿하여, 햇볕을 쬐고 있는 고양이의 나른함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프리야는, 새하얀 피부에 얼굴에 디폴트로 장착된 상냥한 미소. 아직 어린데도 왠지 ‘자애롭다’는 느낌을 주는, 묘하게 청아한 미소를 언제나 짓고 있다.
키도 체구도 비슷한데, 인상이 정반대인 두 사람이 함께 서 있으니 느낌이 묘하다.
대충 인사를 나누고 나자, 수잔이 다가와 다음 스테이지에 대한 설명을 덧붙인다.
[결선진입과제는 극장형 스튜디오에서 진짜 관객을 초대하여 이루어지게 돼요. 준비기간은 2주에 채 못 미치는 12일. 무대, 음향, 의상 등도 약식으로나마 준비해야 하니 꽤나 빠듯한 나날이 될 거예요.]아직 생방은 아니지만, 처음으로 진짜 관객을 초대하여 이루어지게 되는,
공연의 성격을 띠는 무대.
[제가 이 팀을 담당해서 제작 관련 컨트롤을 하게 되었으니, 감독님도 배우들도 공연에 필요한 건 제게 요청해 주시면 됩니다.] [오케이. 수잔이 우리팀 조연출 역할이군요. 잘 부탁해요.] [네! 공연 시간은 15분~20분정도로 맞춰 주시면 됩니다. 감독님, 혹시 그 정도 길이의 3인극 떠오르는 게 있으실까요?]위고는 뒤로 몇 걸음 물러서더니, 양 손의 엄지와 검지로 네모난 프레임을 만들어 세 명을 한 화면에 넣어 보았다.
[흠…요즘 미국에서 제일 핫한 남자와 두 미녀를 한 조에 넣는다면, 보통은 로맨스물을 떠올리겠지만…]그는 얄밉게 웃으며 손가락을 휘휘 젓는다.
[나는 그렇게 뻔한 선택은 하지 않습니다.] [로맨스는 탈락이군요. 개인적으로 아쉽지만…그럼 어떤 걸 하실 건가요?] [이 세 명을 모아놓고 보니 딱 떠오르는 그림이 있네요. 음, 좋아. 거기서 그게 더해지고, 거기서 딱 반전되고, 뚠~뚜둔~ 천사와 악마와 인간. 오케이~ 그림 좋다.]늘 생글생글 하얗게 웃고 있는 프리야.
평소 별로 표정이 없는 편이며, 웃지 않을 때 날카롭고 차가운 인상을 주는 마르타.
천사와 악마라…
수잔도 공감하는 표정을 지으며 위고의 말에 추임새를 더한다.
[오…아름다운 천사 프리야에 매혹적인 악마 마르타라, 잘 어울리겠네요. 무대 위에서 극적인 느낌이 잘 살 것 같아요.]위고가 으음? 하며 고개를 흔든다.
[아니, 그럼 재미없지.] […?] [프리야는 악마, 마르타가 천사가 될 겁니다.]위고가 선언했다.
*
시간이 빠듯한 관계로 당일부터 연습에 돌입했다.
배우들은 기초 훈련을 하고 있고, 위고는 구슬땀을 흘리는 배우들의 한쪽 곁에서 집필 중이다.
왼 팔을 책상 위에 올리고 머리를 거기에 파묻다시피 한 상태로 오른손으로 마구 악필을 휘갈긴다.
[뚠~ 뚜둔~]대본을 쓸 때 뭔가 입으로 흥얼거리는 것이 습관인 모양, 가끔 눈을 감고 허공에 손가락을 짚더니,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고 다시 종이에 갈겨 쓰는 그의 모습은 조금 미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마르타가 그를 부른다.
[위고씨.] [음?] [시끄러워서 집중이 안 돼요.]함께 연습해 보는 것은 처음이지만, 몇 주간 같은 숙소에서 생활하면서 참가자들의 캐릭터는 대략 파악이 되었다.
마르타는 필터링이 없는 성격이었다.
그녀의 말을 처음 들으면 발끈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따지다 보면 그녀에게 전혀 악의가 없었음을 깨닫고 제 풀에 식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냥 그런 사람이었다. 표정에도, 말투에도, 현재의 생각이나 감정이 여과없이 투명하게 비추어지는.
[마르타…창작은 영감에서 오는 일인데, 저렇게 영감을 받으신다면 어쩔 수 없잖아.]프리야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마르타를 말린다.
그녀는 마르타와 정반대의 성격.
예의바르고 상냥하기 그지 없다. 이 극한의 오디션 상황에서도 그녀가 얼굴을 붉히는 것을 본 적이 없기에, 모두들 입을 모아 ‘프리야는 착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함께 지낸 시간동안 유명은 프리야보다 마르타가 더 편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거리낄 게 없는 사람은 마르타의 솔직함이 부담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의 솔직함은 배우로서 엄청난 무기기도 하다.
마르타 가르시아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배우.
기쁨은 기쁨으로, 슬픔은 슬픔으로, 그녀의 감정은 감정 그대로를 사람이라는 틀에 부어 놓은 듯이 원형을 보존하며 관객에게 가 닿는다.
유명은 그녀와 함께 연기하게 된 것이 무척 기대되었다.
과연 그녀는 , 미래에 등장할 그 영화에서 보여주었던 신들린 연기력을 이미 가지고 있을 것인가.
탁-
위고가 필기하던 펜을 소리나게 내려놓고 이 쪽을 바라본다.
[아니 마르타. 눈으로 보진 않아도 감각으로 느끼고 있었어요. 연습에서 분출되는 여러분의 에너지를 느끼면서 대본을 조정하는 겁니다.] [그래요? 그런 거면 할 수 없죠. 괴상한 소리 계속 내셔도 돼요.]역시나 납득할 만한 이유를 대니, 마르타는 별 말 없이 긍정한다.
프리야는 마르타가 덧붙인 말에 다시 당황하여 위고 쪽을 쳐다보았지만, 위고는 아무 내상이 없는 듯 낙서가 가득한 종이를 펄럭펄럭 흔든다.
[어차피 끝났어요. 예전에 생각해 둔 모티브가 있었는데, 세 명의 느낌을 넣어서 다시 구상했어요. 볼만한 연극이 될 겁니다, 하하.]위고의 뿌듯하게 자랑하더니, 유명의 눈치를 슬쩍 본다.
[유명씨가…좀 고생하겠지만…]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그가 짓궂은 미소를 슬쩍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