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21
유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델료라 생각하면 싸지만, 현재 최저시급이 2275원이니 한 나절 알바비라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금액이다. 전에 옷 사느라 용돈을 탈탈 털기도 했고.
촬영장은 강서구에 있는 한 스튜디오였다.
디자이너와 사진작가는 미리 와서 배경과 의상 세팅을 하고 있었다.
키가 자그마한 여자가 그들을 보고 반색을 한다.
“걔야?”
유명의 앞으로 쪼르르 달려와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샅샅이 훑는다. 잡아먹을 듯이 집요한 시선.
“바지는 32에 허리만 살짝 잡으면 되겠고, 다리가 기네. 밸런스가 좋아. 키 몇이에요? 178?”
“177.6요.”
“오케이. 유명씨 오늘 하루 작업 잘 해봅시다. 전 디자이너 안즈라고 해요.”
한 손을 휙 내밀어 악수를 청한다.
쾌활한 여자다. 일에 대한 에너지가 느껴진다.
“여자모델은?”
“거의 다 왔대. 매니저한테 연락왔어.”
“매니저? 초보모델한테 매니저가 벌써 붙었어?”
“모델 아니고 초보 연기자야. 브랜드 컨셉이 공주풍의 옷이라 마스크 예쁜 애가 필요해서.”
“그래? 예쁜데 페이가 싸?”
“외모가 정말 좋은데 숫기가 없어서 뜨질 않는다네. 얼굴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픽은 했는데 걱정이야.”
거기까지 얘기하던 중에 스튜디오의 문이 열렸다.
환한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듯한 착각.
맙소사-
거기에 나타난 사람을 보고 유명은 깜짝 놀랐다.
회귀 직전 촬영하던 드라마 의 여주.
대한민국의 손꼽히는 톱여배우 중 하나인 설수연이 한참 앳된 얼굴으로 그 곳에 서 있었다.
*
‘와···얼굴 진짜.’
새하얀 피부. 수려한 이마.
섬세한 눈썹 밑에 깊게 새겨진 아몬드형의 커다란 눈.
갸름한 턱선과 함께 옆라인을 고혹적으로 만드는 날렵한 콧날.
훗날 한국의 올리비아 핫세라고 불리는 그녀의 어린 시절 미모는, 수많은 배우들의 실물을 보아온 유명에게도 숨이 막힐 정도였다.
“아…안녕하세요···”
머뭇머뭇.
인사하는 태도만 봐도 숫기없는 게 보인다.
유명이 가진 미래의 정보와 충돌하는 점이 의아했다.
‘상당히 도도하고 주관이 또렷한 성격이라고 들었는데.’
수연의 매니저는 잠깐 안즈와 얘기를 나눈 후 사라졌고, 안즈는 수연을 사람들 쪽으로 데리고 왔다.
“자기소개들 합시다~ 난 올해 런칭을 앞둔 디자이너스 브랜드 의 디자이너 안즈에요.”
“난 사촌동생 등쌀에 바쁜 스케줄을 미루고 촬영을 와주신 유명 사진작가 강민교.”
안즈의 머리에 손을 턱 얹으며 장난스럽게 인사한 민교는, 곧 복부에 팔꿈치 어택을 받고 기침을 쿨럭쿨럭 토했다.
“안녕하세요. 가운대 다니고 있는 스물세 살 신유명입니다.”
“그게 끝? 에이전시나 하는 일이나 그런 건 없어요?”
“그냥 대학생입니다.”
그 말에 민교는 안즈를 노려보았다.
안즈는 어색하게 웃으며 메인모델은 얘고 걔는 그냥 촬영소품같은 거라고 변명했다.
“아 저…저는 설수연이에요. 가온 에이전시 소속이고 연기자…지망생입니다..”
민교는 양 엄지와 검지를 붙여 수연을 프레임에 넣어보고 휘파람을 휘익- 불었다.
“얘는 찍을 맛 나겠네. 시간 별로 없으니 얼른 준비합시다.”
“네!”
*
후우-
민교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1시간째 삽질만 하고 있다.
처음 볼 땐 아무리 숫기가 없어도 어떻게 저런 마스크가 안 뜰 수 있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 녀석, 숫제 카메라를 마주보지 못한다.
‘오히려···’
일반 대학생이라는 저 친구가 나았다.
일단 옷 태가 좋고, 취하는 포즈가 묘하게 시선을 잡아끄는 느낌이 있다.
마스크도 평범해 보였었는데 렌즈를 통해 잡히는 표정이 풍부하다.
얼굴을 못 넣는 게 아쉬울 정도로.
그리고 신기한 것이,
‘본인 얼굴이 안 걸릴 위치를 기가 막히게 선정한단 말이야···’
안즈가 저 친구는 얼굴이 안 나오게 해달라고 요청했을 때, 그는 초보자 데리고 와서 말이 되는 걸 요구하라고 짜증을 냈었다.
그런데 보라. 능숙한 모델들 마냥, 카메라의 위치와 각도, 상대배우와의 신장 차이를 감안해 얼굴이 나오지 않아도 무리없을 포즈를 만들어 내는 게 아닌가.
그에 반해,
휴우-
시선을 옮긴 민교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배우 지망생이라는 친구는 어색한 포즈와 자신없는 표정 그 자체.
한시간 동안 천 컷 넘게 찍었는데도 건질만한 게 없다.
민교는 점점 짜증이 났다.
그는 프로고 상대에게도 프로이기를 요구하는 사람이다. 사촌 안즈의 부탁만 아니었어도 진작 보이콧했을 촬영이다.
“수연씨 정신 안차려?”
결국 날카로운 질타가 입에서 튀어나갔다.
“10분 쉽시다. 수연씨 이미지 좀 잡아봐. 이런 식이면 오늘 촬영은 공치는거야!”
그는 크게 한숨을 쉬고 안즈를 끌고 나갔다.
.
.
.
또르르-
눈물 방울이 굴러 떨어진다.
저렇게 우는 얼굴조차, 드라마의 한 장면 같다.
유명이 휴지를 뽑아다주자, 그에게 고개를 꾸벅하고 몸을 내외하듯 돌려 눈물을 닦아낸다. 어지간히 숫기가 없다.
유명은 마음이 좋지 않았다. 같은 배우로서도 팬심을 가질만큼 미래의 설수연은 대단한 배우였기 때문이다.
그는 수연이 나온 영화, 드라마를 모두 보았다.
연기에 욕심있는 배우가 아우라마저 갖췄을 때의 그 빛나는 모습.
‘오죽하면 인터뷰까지 찾아 봤었는데 말야···’
그 때였다.
한 가지 기억이 번뜩 떠올랐다.
인터뷰에서 수연이 했던 말.
‘혹시 그거라면···!’
유명이 밖으로 달렸다.
*
-2014년 CINE24 990호-
기도한 감독의 흥행작 의 여주인공 설수연과의 인터뷰 中.
[수연씨의 폭넓은 연기 베리에이션을 보고 인생 경험이 풍부할거라 추측하는 팬들이 많아요. 실제로는 어떤가요?] [제가 콜라를 처음 마신게 몇 살 때인 줄 아세요?] [몇 살 때였을까요?] [스물두 살때요(웃음).] [어머, 어째서요?] [어머니가 엄하셨어요. 인스턴트, 탄산, 만화영화, 그런 애들이 좋아할 만한 건 모조리 금지였어요. 방과후에 친구와 놀다오는 것조차 상상할 수 없었으니까요.] […엄청 곱게 자라셨네요.] [남는 시간 동안 많은 상상을 하며 보냈죠. 연기자가 되니 그 상상들이 현실이 되더라구요. 그게 즐거워서 어쩔 줄 모르고 몰입했던 것 같아요.] [그렇군요. 이번 영화를 연출하셨던 기도한 감독님도 수연씨는 몰입이 굉장히 빠르고 깊다고 칭찬하시더라구요.] [감사하네요. 콜라하니 생각나는데 재밌는 얘기 하나 해드릴까요? 저는 콜라를 마시면 취해요(웃음).] [정말인가요?] [실제로 취한다기보다는 긴장된 마음이 풀리는 게 아닐까 싶어요. 제겐 일탈의 상징이랄까요.]*
유명은 콜라 한 캔을 사 와서 수연에게 건넸다
“마셔요.”
수연의 눈빛이 흔들렸다.
인터뷰대로라면 21세 현재의 그녀는 콜라를 한 번도 마셔본 적이 없을 것이다. 캔을 받아드는 손에 살짝 망설임이 묻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