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214
그 때 천사가 웃는 표정으로 그의 뺨을 때렸다.
찰싹-
보던 관객들이 숨을 허업 들이킨다. 제법 매서운 일격이었다.
판도라의 얼굴에 붉은 자욱이 남았지만, 아픔을 알지 못하는 그는 그저 멍하게 천사를 바라본다.
[너는 고통을 모르지. 질투도, 병도, 죽음도 아무것도 몰라.] [그게 뭔가요?] [신이 선택한 아이이기 때문에 모르고 지낼 수 있는 수많은 불행들이지. 신은 인간을 사랑하여 행복만을 주셨지만, 네가 신의 뜻을 거스른다면 행복만큼의 불행을 주실 거다. 그러니 결코 그 항아리를 열어서는 안 돼.]다시 경고를 남기고 천사가 퇴장했다.
판도라는 항아리에게서 등을 돌린다. 하지만 호기심은 가려움만큼이나 참기 힘든 것.
N극이 S극을 향하듯이, 몸은 자꾸 그 쪽으로 돌아간다.
결국 항아리 위로 다시 손을 얹는 판도라.
그가 항아리를 밀봉한 종이의 끝을 쥐었을 때, 모든 관객들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아…안 돼…!’
182 빨리 같이 연기합시다
항아리 위의 손이 다시 떨어진다.
휴우-
관객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
판도라가 시작하는 독백이 반전의 시작이었다.
[신은 왜 나를 시험에 들게 하셨을까…?]그것은 흔히 알고 있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항아리를 냉큼 열어 인간에게 불행을 선사한, 참을성 없는 사고뭉치 판도라가 아니었다.
선한 감정, 악한 감정, 그 모든 감정들이 뒤섞여 있을 때, 그것을 의지로 구분하기 시작하면서 ‘이성’이 생긴다.
그렇게 태어난 이성을 바탕으로, 판도라는 이제 ‘사색’을 하고 있었다.
[내가 아무 생각없이 행복하기만을 바랬다면, 항아리를 보여주시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아니 아예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지 않았더라면…]하지만 그는 천사의 말을 곰곰이 씹어보다, 다른 방향으로 생각의 가지를 치기 시작한다.
[그런데 행복만큼의 불행을 주신다고? 그건 당연한 섭리가 아닐까?]천사가 던진 협박. 그것이 진짜 협박일지에 대한 의문.
[행복만이 주어진 지금이 오히려 이상한 거 아닐까?]당연해 보였던 것에 대한 의심.
[주어진 행복을 살고 있는 나는 과연 행복한가?]그리고, 스스로의 사유로 다다른 결론을 입에 담을 때, 그의 얼굴에 드리운 것은 짙은 ‘어둠’이었다.
그는 무엄한 생각을 하고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이것이 과연 무엄한 생각인가 하는 의문을 다시 제기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그 모습을 악마가 지켜보며 클클거리고 있다.
[좋아. 조금만 더. 호기심을 드높여. 그 항아리를 열어!]그리고 판도라는 결심한다.
[고통스럽더라도, 후회할지라도, 죽음이 나를 찾아오더라도, 나는 나의 알 권리를 ‘선택’하겠어.]그는 과감히 항아리를 열어젖힌다.
취이익- 하는 회색 연기가 솟아오른다. 그리고 우하하하하- 하는 웃음소리가 퍼진다.
한 쪽에서 악마가 의기양양하게 웃고 있고,
천사의 반응을 보기 위해 고개를 돌린 관객들이 섬찟, 얼어붙었다.
‘이런, 실패했군.’
찌푸린 천사의 표정.
그것은 악마라 해도 믿을 수 있을 만큼, 저열하고 악의에 찬 표정이었다.
*
‘천사가…아니었나?’
그 순간 그것이 모든 관객들의 공통된 의문이었을 것이다.
한 점 티끌 없이 밝게 웃던 천사, 그것도 캐스팅보트 내내 사람을 힐링시키는 따뜻한 웃음으로 유명했던 프리야가 지은 표정이기에 더욱 충격적이었다.
2장이 끝나고 3장의 조명이 들어오길 기다리며, 관객들은 예측할 수 없는 결말에 긴장에 휩싸였다.
특히 데렉은, 유명과 함께할 연기를 미뤄두며 꾹꾹 눌러 놓은 기대가, 뚜껑을 날려버리고 터져 나온 상태였다.
‘이 뒤는 도대체 어떻게…’
판도라가 스스로의 결정으로 항아리를 열었다 해도, 그것이 인류에게 증오, 시기, 분노, 질병, 죽음…인간을 불행하게 만드는 모든 것을 불러온 것은 변하지 않는다.
‘판도라의 선택’을 3장에서는 어떻게 관객에게 납득시킬 수 있을 것인가…
다시 들어온 조명 아래서, 판도라는 쓰러져 있다.
악마가 다가와서, 발로 툭툭 차서 그를 깨웠다.
[어이, 어이. 일어나라고.] [아, 내가 항아리를 열었고…그 후는…?]짜악-
경쾌한 소리. 악마가 판도라의 다른 쪽 뺨을 갈겼다.
처음에는 뺨을 맞고도 전혀 아픔을 느끼는 기색이 없던 판도라의 얼굴에, 아주 선명한 아픔과 놀람이 스민다.
그 놀람은, 모르던 것을 알게 된 자의 지적 충만감을 내포하고 있었다.
[이게 아픔…] [어때. 후회스럽나?] [아니, 아픔이란 건 이런 거였구나…]그 말에 악마는, 기특한 듯이 웃음지었다.
[너도 어지간하군.] [그러게 말이야.]악마가 돌아간 후, 그는 평범한 삶을 살아간다.
조명이 여러차례 색을 바꾼다.
무대의 끝에서 끝을 걸을 때마다 20대의 청년은 30대로, 40대로, 50대로 나이가 먹어 갔다.
‘맙소사…’
연두색의 싱그러운 불빛이 어두운 보라색으로 단계적으로 변해가는 동안, 그의 얼굴에 주름이 늘어나는 듯한 착시가 생길 정도의 연기였다.
그것은 기쁨, 슬픔, 좌절과 극복이 어우러진 평범한 인간의 삶.
그리고 곧 아스라질 듯한 희미한 불빛아래 기대 누운, 임종 직전의 나이 들고 병에 찌든 판도라에게, 천사가 찾아온다.
[거봐. 항아리를 열지 말았어야 해. 아니, 처음부터 악마에게 어둠의 감정들을 받지 말았어야지. 이제는 후회하지?]프리야를 일깨웠던, 바로 그 장면이 시작되었다.
*
[아니.]판도라의 입에서 튀어나온 단호한 부정.
그는 지치고 병들어 육체를 가누지 못하면서도 맑은 눈빛을 들어, 허공에 시선을 둔다.
무언가,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 헤매듯이.
[인간은 고통과 병이 있었기에,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진리를 추구하게 되었어.]희미하던 무대에 강렬한 빛이 한 줄기 내려온다.
[거짓을 말하는 능력은 수많은 위선을 불러 일으켰지만, 또한 그 위선은 약자를 보호하기도 했지.]구름 낀 하늘을 뚫고 새어 나오는 듯한 빛이 또 한 줄기.
[질투와 증오는 타인을 미워하는 마음임과 동시에, 나를 발전시키려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며,]점점 환해지는 무대.
[죽음이 있기에 끊임없이 존재의 본질을 사색하게 되었다.]천사의 얼굴은 반대로 거무죽죽하게 질려간다.
[그리고 호기심.다른 어느 생명체도 갖고 있지 않은 이 특성은, 인간을 신에게 한없이 가깝게 만들어.] [무엄하다! 신이라니! 감히 신을 논하다니!] [무엇이 무엄한가. 신이 되기를 바랄 수 있는 지적인 능력을 주고서, 바라지 말라는 것이 모순이 아닌가. 그대는 진정 천사인가. 혹시 또 다른 신을 만들지 않으려는 신의 이기심을 대변하는 악마가 아닌가.]
끼야야야악-
천사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달아난다.
그리고 뒤에서 그걸 구경하고 있던 악마가 웃음을 터뜨린다.
[대단하군. 신에게서 비롯된 존재가 신을 넘보고 있다니.]그의 표정이 자애롭게 바뀐다.
천사가 악마같은 표정을 지을 줄 알았듯이, 악마도 천사같은 표정을 지을 줄 알았다.
[훌륭하다.] [역시 당신이 천사였던 건가.] [아니, 지금 사라진 자가 신이듯이, 나도 신이다. 우리는 모든 신이 그러하듯이 선한 면도 악한 면도 가지고 있지.]인간이 그러하듯이, 선함과 악함이 공존하는 신.
[나는 그저 존재의 가능성은 그 존재에게 맡겨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대가 그대의 길을 택할 수 있게 도왔을 뿐이야.] [그러한가…]그가 점점 가빠오는 숨을 토해낸다.
[그래도 후회하지 않아? 너는 아프고, 이제 곧 죽게 된다. 그 때 항아리만 열지 않았어도 영생을 살 수 있었을 텐데.] [후회하지 않는다. 배부른 짐승보다는 배고픈 신을 택하겠어. 내가 추구한 진리가 축적되어 전승된다면, 내 자손은 언젠가 신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판도라는, 봉인이 벗겨진 항아리에 손을 넣어, 마지막 남은 한 가지를 꺼내어 보인다.
[이런, 그런 ‘희망’이 남았는가.]신이 그의 눈을 쓸어내린다.
[평생에 걸친 전투로 지쳤겠구나. 그대, 쉬어라.]마지막 숨을 내쉬는 판도라의 얼굴에 기쁨이 떠오른다.
진혼곡이 흐르며, 밝혀졌던 빛들이 하나 하나 꺼진다.
그리고 판도라가 완전히 숨을 놓고도, 진혼곡이 마무리될 때까지, 관객들은 숨을 죽인 채로 그의 죽음을 바라보고 있었다.
*
착-
착-
착-
입구에 놓인 각 팀의 투표함에 표들이 쌓인다.
단연 압도적인 양의 칩이 쌓이고 있는 것은 4조의 투표함이었다.
[편집으로 살린 줄 알았는데, TV가 반에 반도 못 담던 거였네…] [와아…소름. 인터넷에 ‘유명’의 팬사이트가 따로 있다고 하지 않았어? 오늘 당장 가입이다!]상기된 표정으로 걸어 나오는 팬들의 반응을 들으며, 소진은 통곡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있었다.
‘너무 기쁘면 눈물이 난다더니 정말이었구나…’
연예학개론, 려말선초, 피터팬.
그의 작품들을 보아오며 언제나 이 이상의 연기는 있을 수 없을 거라 전율했지만, 그는 늘 그 이상의 연기를 보여주어 왔다.
그리고 이번 의 연기는…
‘그 이후로 감히 누구도 다른 판도라에 도전할 수 없을 듯한 연기…’
피터팬으로부터 고작 9개월 남짓 지났나… 그녀의 배우는 또 한 번 한계를 뛰어넘어 있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누군가 대단한 선생님이 있는 걸까…아니, 그같이 대단한 배우를 가르칠 스승이 인간 세계에 있을 리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올바른 추론을 하고 있는 소진이었다.
‘그나저나 입이 근질근질하네…’
너무 좋았기에, 참는 것이 더 괴로웠다.
소진은 결과가 방송되는 날까지 이 무대를 보았던 것을 비밀로 하기로 했다. 다른 회원들이 자신이 보고 온 것을 안다면, 묻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를 쓸 것이다. 자신도 말을 못해 주는 것이 미안할 테고.
찰칵-
대신 소진은 사진을 찍고, 주변의 반응들에 귀를 기울였다.
방송만 나가고 나면, 이 현장 분위기를 다시 자세히 풀어서 떡밥화시킬 생각이었다.
“소진씨, 이리와 봐요.”
“어어…여기 분위기 취재해 둬야 하는데…”
“지금 안 따라오면 후회할 걸?”
유석이 소진을 잡아 끌었고, 그녀는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실장님-”
그러나 극장 옆 쪽으로 돌아 들어간 곳에는…눈에 번쩍 뜨이는 공간이 있었고,
[4 대기실]‘설마…’
열린 문 속에는 소진이 꿈에 그리던 사람이 자리해 있었다.
“어? 회장님이 어떻게 미국에…”
“배우님!!!”
소진이 새된 비명을 질렀다.
*
[휴우…이제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심사를 위한 세팅이 끝났다.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들이 심사위원석에 자리해 있었다.
에바, 조지, 나탈리, 데렉.
에바는 우울한 얼굴이었다.
[저…어떡하죠?] [왜요, 에바!] [위고씨…팬이 돼 버렸어요. 갑자기 신유명씨 연기를 저 이상으로 끌어낼 극을 어떻게 쓸 지 깜깜해졌는데…어떡하죠?]그 말에 위고의 턱이 으쓱 들리고, 유명이 흠칫한다.
‘큰일났네. 에바는 위고 씨가 띄워주면 하늘 끝까지 떠오르는 걸 모르니까…’
그리고 조지는…
[흠흠. 제 작품이 끼어 있어서 객관적으로 평하기가 쉽지 않군요. 는 저희 조만큼, 아니 저희 조보다 쪼오끔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다른 두 작은 좋았지만 제 것보단 못한…어흠…]나탈리는…
[후…저 지금 좀 충격을 받아서 말이 잘 안 나오네요. 전반적으로 수준 높은 공연이었지만…는 정말 압도적이었어요. 판도라는 항아리를 열기를 ‘선택’했다는 명제도 훌륭했지만, 그 주제를 살려낸 건 누가 뭐라해도 배우들이었죠. 선과 악, 그것이 복합된 인간적인 감정…오늘 저는 한 배우가 도달할 수 있는 연기의 정점을 본 것 같네요.]아주 솔직하게 조목조목 감탄했고,
데렉은…
[……] [데렉?] [신유명씨. 빨리 같이 연기합시다.]유명이 그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클래스에서 함께 연기할 것을 고대했지만, 기회를 주지 않았던 것은 데렉이었다.
[못 참겠네, 진짜. 좀만 기다려요, 준비하고 있는 게 있으니까.]결국 데렉은 자신의 입으로 스포일러를 해 버린다.
제리가 그를 황급히 막아 나섰다.
[흠흠, 그럼 관객 투표 결과부터 발표하겠습니다. 투표 1위는…!]두두두두둠– 효과음이 깔린다.
[4조, 위고 씨가 연출한 입니다! 축하합니다! 에이…그런데 이번 발표는 너무 긴장감 없었다, 그죠?]전혀 쌓이지 않는 긴장감에 제리가 너스레를 떨었고, 그나마 웃음이라도 터졌다.
[그리고 대망의 결선 진출자 발표…!]이번에야말로, 모두가 바짝 긴장했지만,
[에 앞서, 생방송으로 진행될 결선 시스템을 먼저 알려드리겠습니다~!]제리가 탁- 하고 흐름을 끊었다.
능숙한 밀당이었다.
183 Vogue 관계자 회의
(몇 명이나 탈락할까?)
(글쎄. 2명 떨어지고 탑 텐? 아님 한 자리 수로 탑 나인 체제로 가려나?)
결선 시스템의 발표를 앞두고 참가자들이 숙덕거렸다.
일반적인 오디션 프로그램은, 후반 절반 정도에 생방 경연 시스템을 취한다.
시청자들에게 생방의 쫄깃함과 더불어, 자신이 이 오디션의 결과에 직접 참가한다는 성취감을 부여하는 형태.
액터스 하우스에서 배우들이 몇 명만 모여도 나누었던 화제 중 하나가, 도대체 생방을 어떻게 진행할 거냐는 것이었다. 캐스팅보트는 주 2회의 방송시스템을 취하고 있다. 한 주 2번의 생방송…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어떤 참가자들은 11회에서 아직도 액션스쿨 중반에 머물러 있는 것을 보고, 생방이 없는 게 아닌가 의심하기도 했다. 하지만 방금 제리는 ‘생방으로 진행될 결선’이라고 분명히 말했다.
[여러분, 먼저 전할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 [캐스팅보트의 방영이 2회 연장되었습니다~~!]오오- 하는 소리와 함께 참가자들이 술렁였다.
총 2개월 반, 20회 방송 예정이었던 캐스팅보트의 촬영회차가 2회 추가되었다는 것은 현재 캐스팅보트의 인기를 반증했다.
특히나, 같은 분량을 촬영했다 해도 방송회수가 증가하면 나탈리와 데렉같은 거물들에게 어마어마한 추가 출연료를 줘야 할 거란 점을 고려한다면 말이다.
[그리고, 생방 오디션은 17회차인 3월 30일부터 진행될 겁니다! 따라서 생방 1주 전까지 여러 분들은 꿀 같은 휴가를 얻게 됩니다.]그 말에 다시 한번 웅성거림이 커진다.
오늘은 3월 11일 일요일. 생방 1주일 전까지 쉴 수 있다면 2주간의 휴가다.
벌써 두 달 째 이어진 촬영으로 지친 참가자들에게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여기서 떨어지면 2주가 아니라 쭈욱~ 쉬게 될테지만.
‘그래서 합격자가 누구냐고?!’
모두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제리가 청천벽력같은 얘기를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