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215
참가자들에게서 비명이 터져 나온다.
붙든 떨어지든, 결과는 얼른 아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결과도 모른 채로 어떻게 마음 편하게 쉬겠는가.
[워워~ 다들 진정하시고…이 쪽 입장도 이해해 주셔야 합니다. 앞쪽에서 방송분량이 생각보다 많아지면서 2회가 추가 편성된 것까지는 좋은 일이죠. 제작진에게도 출연자에게도, 캐스팅보트의 수혜를 좀 더 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다만 녹화분과 생방 간의 갭 때문에 보안 문제가 발생했습니다.]아아-
참가자들은 그제서야 이유를 납득했다.
지금 발표를 해버리면, 3월 11일 현재부터 결선진입과제가 방송될 3월 27일(16회)까지 보름의 갭이 생겨 버리고, 결과가 스포될 가능성이 너무 높아져 버리는 것이다.
[2주간 여러분들은 집으로 돌아가셔도 되지만, 마냥 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이건 또 무슨 말일까.
[최종 12인에 대한 관심이 하늘을 찌르고 있는 상황입니다. 따라서 저희 제작진 쪽에서 참가자들마다 인터뷰나 간단한 방송 출연을 주선해 드릴 겁니다. 다만, 절대 개인적으로 다른 매체와 컨택하시면 안 됩니다!]그 말에 참여자들의 표정이 다시 밝아졌다.
2주간의 기다림은 갑갑하지만, 배우로서의 인지도를 높여줄 기회를 TW에서 직접 찾아준다는 것은 매우 고마운 일이다.
더불어 어떤 사람들은, 만약 자신이 탈락자일 경우 최종 12인으로서의 관심을 2주 더 누릴 수 있다는 걸 빠르게 계산해내기도 했다.
사람들이 슬슬 납득한 타이밍을 캐치하여, 제리가 다시 낚시대를 던진다.
[아참 한 가지 더, 생방은 총 3회 진행될 겁니다.] […?!!]17회~22회까지는 6회인데, 왜 생방은 3회란 말인가.
출연자들의 궁금함을 읽은 듯이 제리가 설명을 덧붙였다.
긴 생방은 필연적으로 루즈함을 불러일으킨다. 특히나 연기는 노래나 춤과는 달리, 생방을 하이 텐션으로 끌고 가기 쉽지 않다.
그래서 캐스팅보트 제작진은 생방의 회수를 과감하게 3번으로 줄이고, 그 사이에 낀 회수들에선 메이킹과 비하인드를 방송하기로 했다고 한다.
[18회 녹화방송에선 17회 생방송의 뒷 이야기와, 19회 생방송의 준비과정을 보여주게 되는 거죠. 언더스탠?]3회의 생방. 그것의 의미는···
[따라서, 2주 후에 발표될 결선진출자는, 6명입니다.]결선 진출자가 그만큼 줄어든다는 것.
허업…참가자들이 놀란 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여기 저기서 들렸다.
당근, 채찍, 다시 당근, 그리고…가장 아픈 채찍.
현기증날 것 같은 밀당 실력을 보여준 제리가 싱글싱글 웃었다.
*
‘하하…발칙하구나, 발칙해.’
4조의 연기가 끝난 극장의 한 켠에서, 연귀는 극장이 떠나갈 듯이 웃었다.
이렇게 통쾌할 수가 없었다.
‘분명 보고 있을 테지. 그리고 자신들을 노리고 만든 극인 줄 알고 부들부들 거리고 있을 게야. 어쩜 이렇게 맞춘 듯한 이야기를 써냈는지.’
판도라.
자신의 운명을 제 의지로 선택한 강한 인간.
결국엔 신이 되기를 꿈꾸는 인간.
그가 천사에게, ‘너는 다른 신을 만들지 않으려는 신의 이기심을 대변하는 악마가 아니냐’고 일갈하는 모습이…그렇게 통쾌할 수 없었다.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기에 급급하며, 자신들 외의 존재에게 지극히 배타적인 선계의 개자식들에게 보란 듯이 들어맞았달까.
‘분명 자신들에게 보낸 경고라고 생각하겠지. 혹시 유명이가 우화등선한다면 선계에 피바람이 불 거라고 덜덜 떨고 있을지도 몰라. 하핫!’
배우가 연기로 늘릴 수 있는 존재감의 한계는 1년에 1. 그조차 꽉 채운 1을 모두 얻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운 일이지만, 신유명은 해내어 가고 있다.
그리고 그의 연기에 대한 열의와 진심이라면…정말로 수십 년 후 쯤엔 우화등선하는 게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선계에 오른 후, 선계의 실수로 15년간 개고생을 했던 당사자로서 직접 고발한다면, 선계의 상층부가 그야말로 쓸려 나갈지도 모르는 일이다.
더 이상 문제삼지 않겠다고 계약은 했지만, 그건 인간으로서의 계약. 그가 선인이 된다면 묶이지 않게 되니까.
‘물론 내가 끼어들지 않을 때의 일이지만···’
신유명은 자신에게 7년간 몸을 쓰게 해달라고 말했고, 지금 벌써 5년째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나를 재미있게 해보라’는 그의 요구를, 신유명은 충실하게 들어주고 있다.
천년이 넘은 귀생鬼生 중 이렇게 흥미진진한 나날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판도라. 신을 넘보는 무엄한 인간.
거기서 ‘인간’을 ‘귀’로 치환하면, 그것은 어쩌면 자신일지도 몰랐다.
아니, 자신은…신이 될 수 있었지만, 귀로 남을 것을 선택했다.
어쨌든 자신의 길을 스스로 정한 후, 신에게도 구애받지 않고 그 길을 걷는다는 점에서, 연귀는 판도라에 크게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건…신유명의 연기라서 가능했겠지.’
연귀는 연기를 무척 좋아하지만, 그의 기준에서 대부분의 인간의 연기는 조잡해 보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신유명의 연기는…연귀가 꽤나 인정할 정도로 자연스럽고 깊이가 있었다. 이번에는 그가 쏟아내고 있는 연기의 기운이 아닌, 판도라라는 캐릭터에 집중했을 정도로.
‘더 자라라. 나를 더 즐겁게 해 줘. 너의 연기는 인간으로서는 정점을 찍었을 지 몰라도, 여전히 성장할 부분이 많이 있으니.’
미호는 자신이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인, ‘기대’를 하고 있음을 깨닫고 움찔했다.
천 년이 넘게 살아왔지만, 최근 몇 년간 그는 많이 변해가고 있었다.
*
보그Vogue.
세계에서 가장 영향있는 패션잡지 중 하나인 이 곳의 사무실은, 밤에도 불야성처럼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그 중 휴게실에는 유독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사람들은 한 쪽 면에 걸려 있는 대형 티비를 숨 죽인 채 주시하고 있다.
-모두 반갑습니다. 앤디 랜서입니다.
캐스팅보트의 오늘의 방송 주제는 스턴트 연기였다.
커다란 카메라를 든 비쩍 마른 남자의 등장에 누군가가 탄성을 터뜨렸다.
[앤디 랜서야. 스포츠 전문 포토그래퍼로 수위를 다투는 사람인데 어떻게 섭외했지?]그러나 그의 말에 대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미 캐스팅보트는 데렉, 나탈리, 에바, 조지의 섭외로 최고의 섭외력을 증명했기 때문에.
-좋아요, 신유명씨. 그 상태로 균형을 유지하면서 달리다가 점프!
요즘 이 종잡을 수 없기로 유명한 패션 전문가들이 하나같이 빠져 있는 ‘핫 아이콘’이 화면에 등장했다.
트렌드에 민감하며, 무척 변덕스럽고, 그러면서도 변하지 않는 어떤 가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이 화제의 ‘뉴페이스’의 존재는 참을 수 없이 자극적인 것이었다.
[아아…멋져. 나도 그를 찍어 보고 싶어···] [도대체 어떻게…저렇게 모델 같지? 배우도 신체를 보여주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그는 정말 모델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신체를 멋지게 보여주는 방법을 마스터하고 있는 것 같아···]미션 임파서블의 Bgm 하에 몸을 날리며 액션 연기를 펼치는 유명.
그 모습을 보며 그들의 탄식은 짙어져 갔다.
캐스팅보트가 기획되고 있을 단계에서, 보그지에 들어왔던 섭외.
오디션 프로의 특정 과제의 우승팀 상품으로 화보를 콜라보하자는 제의가 들어왔다는 소식에 다들 코웃음을 쳤다. 우승자도 아니고, 겨우 특정 과제의 우승팀이라니.
초보 모델도 아닌 초보 배우들을 데리고 찍어야 하는 데다, 그런 기획이라면 브랜드 협찬을 받기도 어려울 각이였다.
그래서 모두들 누가 맡겠냐는 편집장의 시선을 외면했었지.
하지만 이제 완전히 판도가 바뀌었다.
캐스팅보트는 지금 미국을 달구는 가장 핫한 이슈로 떠올랐으며, 얼마 전에는 편집장이 캐스팅보트 화보 페이지를 늘리고 표지까지 배정하겠다고 공언했다.
편집장의 명을 거부하지 못하고 그 기획을 맡은 헤롯을 두고, 다들 ‘호구 아니냐’고 쑥덕거렸는데, 이제는 그녀가 이제는 부러워서 미칠 지경이다.
[헤롯…촬영은 어디서 해?] [메인 스튜디오.]보그의 가장 중요한 기획들이 촬영되는 메인 스튜디오.
역시 그 곳을 배정받았구나…
[브랜드는? 협찬 요청이 줄을 잇겠다, 그치?] [응. 샤넬, 프라다, 구찌…알만한 곳에서는 다 들어왔어. 재밌는 게 뭔지 알아? 다들 ‘그’가 자기네 브랜드의 이미지와 찰떡인 거 같대. 샤넬과 프라다와 구찌의 브랜드 이미지가 그렇게 비슷한 걸 처음 알았네, 하하.] [우와…그래서 어디랑 하기로 했어?] [다 거절했어. 캐스팅 보트 쪽에서 브랜드를 안 끼웠으면 하더라고. 상업성이 보이면 방송 이미지가 깎일 수도 있다고.]원래라면 말도 안 되는 요청이었다.
보그는 어디까지나 패션지다. 화보를 찍을 때는, 특정 브랜드나 혹은 여러 브랜드의 조합으로 코디네이션을 하고, 촬영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즉, 처음엔 보그 쪽에 부탁 조이던 캐스팅보트가, 이제는 완전히 갑으로 전환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헐…그럼 어떻게 해?] [괜찮아. 브랜드가 아닌 디자이너가 붙기로 했으니까. 패리스가 노 페이라도 자신이 꼭 맡고 싶다고 연락해 왔거든.] [패리스라면…설마 패리스 팰리스?]패리스 팰리스, 통칭 P. Palace.
이름이 입에 착착 달라붙는 이 디자이너는, 이삼 년 전부터 뉴욕 패션계에서 가장 핫한 인물 중 하나다. 그가 노 페이로 자원봉사를 한다고 하자 질문하던 동료의 입이 딱 벌어졌다.
[와…대박···촬영일이 언제지?] [3일 후.] [메인 스튜디오라고? 나 그날 내근인데 구경 좀 가도 될까?]헤롯이 친절한 얼굴에 난감함을 더해 사무적으로 웃는다.
[아…미안. 진행 중인 프로그램이라, 보는 눈을 최소화하라는 지시가 있어서.]평소답지 않은 헤롯의 표정에 동료가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다.
원래는 ‘착하다(호구다)’고 회사에 소문날 만큼 거절을 잘 하지 못하던 헤롯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요즘 빠져있는 네임드갓닷컴에서 자동차 광고의 박주원 대리를 보고, ‘거절할 것은 제대로 거절하는 직장인의 미소’를 연습하는 중이었다.
헤롯이 가볍게 미소를 띠고 일어섰다.
[그럼, 준비가 바빠서 나는 이만.]동료가 어어-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
촬영 이틀 전, 보그 오피스의 회의실에 4명의 관계자가 모였다.
[수잔 레이콕입니다.] [안녕하세요, 기획을 총괄하는 헤롯 라이머입니다.] [포토그래퍼 알리입니다.] [와우, 저는 패리스 팰리스입니다. 편하게 P라고 부르셔도 돼요.]패리스는 살짝 조증 상태로 보였다.
원래 성격이 쾌활한 건지, 이번 촬영이 그만큼 신나는 건지…
수잔이 준비한 얘기를 꺼낸다.
[저희가 보내드린 작품 내용과 스틸 컷을 참조해서 의상 준비하고 촬영 계획 세우셨을 텐데요. 아무래도 실제 작품을 보시는 게 좀 더 컨셉잡기 편하실 것 같아서···] [??] [ 공연의 녹화 파일을 준비했습니다.]그 말에 패리스가 왁- 하고 비명을 질렀고, 해롯도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수잔이 usb를 하나 꺼내서 회의실의 노트북에 연결했다.
[파일은 드릴 수 없으니, 지금 잘 봐 두세요~]그리고 재생이 끝난 순간,
패리스는 동공이 확장된 상태로, 옆의 아무 종이를 끌어다 미친 듯이 스케치를 시작했다.
184 나 같은 배우
보그 촬영일.
유명은 푸른 색의 하늘거리는 소재의 남방에, 걸을 때마다 물결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통이 넓은 쉬폰 소재의 흰 바지를 입은 채로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판도라의 의상이라기에는…느낌이 좀 다른데…’
유명이 그걸 입은 모습을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보고 있던 패리스는, 유명이 입고 나오는 의상을 보고 박수를 짝짝 치며 좋아했다.
[포세이돈 같아요. 정말 잘 어울리네요.] […?] [다음은 이거! 이거도 갈아입고 나와봐요!!]이번에는 회색의, 붕대를 둘둘 둘러놓은 듯한 기묘한 느낌을 주는 의상.
어느 쪽에 목이 들어가고 어느 쪽에 손이 들어가는지 알 수 없어 한참을 헤매다가 겨우 입고 나온 유명을 보고, 패리스는 쌍엄지를 치켜세우며 신나했다.
[와…이런 이미지도 잘 어울리네…!] [저, 디자이너 선생님. 이거…판도라 의상 맞습니까?]다섯 벌의 의상을 갈아입은 시점에서, 유명이 처음으로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자 패리스가 해맑게 고개를 가로젓는다.
[아닌데요?] [네? 그럼 이건…] [선물이에요!] [……] [캐스팅 보트 볼 때마다, 유명씨를 보고 내 영감이 미친듯이 날뛰었어요. 역시, 내 감각은 살아있어. 어쩜 다 잘 어울리잖아.]그가 순수하게 감탄에 취해 유명을 감상한다.
옆에 있는 보그 직원들은 ‘P.Palace의 맞춤 디자인을, 그것도 저렇게 여러 벌…저게 다 얼마짜리야…!’라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지만, 유명은 난감할 뿐이었다.
대체 이런 옷을 어디에 입고 다니란 말인가…
위고와는 다른 의미로 피곤한 타입인데, 위고한테처럼 잘라 거절할 수도 없다. 지금 그의 눈동자에는 순수한 열정과 호의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으므로.
촬영에 매니저 역할로 따라온 유석이, 난감해하는 유명을 보고 자꾸 놀렸다.
“내일 인터뷰할 때, 그 ‘붕대’ 입고 갑시다. 하하.”
“…실장님.”
“이런 오뜨꾸뛰르(*작품성이 가미된 패션의 형태) 의상을 이만큼 소화하다니, 진짜 대단한 겁니다.”
“저걸 어디에 입고 다닙니까…”
“으음, 집 앞 편의점 갈 때?”
다행히 한국어라 저 업된 디자이너는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
첫 번째 판도라의 의상은 그저 새하얀 천이었다. 다음 의상에는 작고 투명한 크리스탈이 여기저기 촘촘히 박혀 있었다.
첫 번째 의상을 기본으로 해서, 조금씩 변형되어 가는 의상들이, 하얀 백지 상태였던 판도라가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줄 것이었다.
[빛이 반사되는 각도까지 테스트해 가며 단 거예요.]패리스가 의기양양한 얼굴로 설명한다.
이틀 전 를 관람한 이후, 그는 편집자 헤롯에게 덧씌워지는 감정들을 ‘빛’으로 표현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색조명이 떨어졌을 때 크리스탈에 난반사되어 뿌려지는 느낌을 주기 위해, 그는 이틀간 밤을 꼴딱 새며 의상에 크리스탈을 꿰맸다.
편집자, 헤롯이 모델들을 모두 소집했다.
[자 지금부터 독사진들, 커플 샷, 트리플샷…여러 가지 조합과 컨셉으로 촬영을 진행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별책부록으로 브로마이드가 따라갈 건데 이건, 두 번을 찍어서 합성하려고 해요.] [어떻게요?] [유명씨 표정이 덧칠해져 가는 장면들이 굉장히 인상적이어서요. 먼저 정면에서 몸을 돌리면서 양쪽 측면을 보일 때까지의 몸의 이동을 연사로 찍을 거에요.]이렇게 폭이 긴 브로마이드에 표정의 변화를 배치하겠다는 계획은 몹시 멋지게 들렸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한 가지 있다.
[그런데 왜 두 번인가요?] [몸을 회전시키는 것을 먼저 촬영하고, 거기에 합성할 유명씨의 표정 변화를 촬영해야죠.] [?? 회전하면서 표정이 함께 변하는 게 더 편하지 않나요?]헤롯이 당황했다.
[어…그건 힘들지 않을까요? 몸을 천천히 돌리면서 그 복잡한 감정 변화를 이어서 표현하는 건 불가능할 것 같은데요. 표정변화는 하나씩 끊어서 촬영하는 게…] [할 수 있습니다.] [무리 안 하셔도…] [해 볼게요.]내내 예의바르고 차분했던 청년의 낯에 의지와 욕심이 깃드는 풍경을 보며, 헤롯이 이끌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
[천사와 악마- 서로 마주 보고, 천사는 악의에 가득 찬 표정, 악마는 그걸 비웃는 듯 오만한 표정으로, 좋아요!]확실히 디자이너가 만든 옷은 다르달까,
한 송이 꽃이 핀 듯한 형태의 연노란 드레스에 뿌려진 반짝이는 골드 글리터는 프리야의 선한 인상을 더욱 반짝거리게 만들었고, 새까만 깃을 세운 제복같은 느낌의 의상은, 올백으로 깨끗이 넘긴 헤어와 더불어 마르타의 날카로운 인상을 더욱 강조했다.
휘유~
카메라맨이 낮게 휘파람을 불었다.
인상이 완전히 반대인 두 여성을 붙여놓은 그림도 그림이었지만, 아마추어를 데려다놓은 것 같지 않게, 화보 촬영에 적응을 잘 하고 있었다.
별로 입을 댈 것이 없다는 칭찬이 여러 번 터지자, 그들은 엊그제 유명이 해 주었던 조언을 떠올렸다.
-기본적으로는 연기와 같아요. 다만 연기는 항상 ‘동영상’을 보여주지만, 화보 촬영은 ‘캡처’를 기본으로 한다는 점만 달라요. 좋은 표정을 잡은 상태에서 잠시 정지, 다시 움직임과 표정을 바꾸고 정지, 그걸 리드미컬하게 하는 거죠.
-우와- 그런 건 어떻게 알아요? 화보 촬영도 해 봤어요?
-네. 100달러짜리 아르바이트를 한 번.
그의 이상한 답변에 그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100달러짜리 모델이라니, 그런 것도 있나?
그는 여기 출연하기 전부터도 모국에서는 슈퍼스타였던 거 같은데, 한국은 그렇게 물가가 싼 나라인가- 라고 생각했다.
[자, 악마와 판도라 갑니다.]유명이 등장하자, 카메라맨은 더욱 신이 난다.
‘진짜 모델출신이 아니라고?’
완벽하게 셔터의 타이밍을 파악하는 pause(*정지)는 모델에 못지 않는데, 오싹할 정도로 시선을 빨아들이는 얼굴 표현은 완연히 배우이다.
악마의 유혹하는 듯한 포즈와, 그 손길에 닿을 듯 말 듯 무감정한 표정을 지은 판도라.
‘완전한 무표정’이 주는 신비로운 느낌에, 촬영장이 약속이라도 한 듯 조용해진다.
원래 조명에 불길한 푸른 빛이 살짝 섞인다. 그것이 판도라의 옷에 달린 크리스탈에 쪼개어져 악마와 판도라의 얼굴에 부분부분 드리우는 장면을 보고, 패리스가 바르르 몸을 떨었다.
[이번엔 셋이 같이.]그 뒤로도 많은 컨셉의 촬영이 이어졌다.
가운데 서서 밀랍같이 깨끗한 얼굴로 서 있는 판도라와, 양쪽에서 그의 팔을 한 쪽씩 당기는 천사와 악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