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218
제리가 갸웃갸웃하며 다시 진행을 시작했다.
[자- 드디어 본과제가 시작됩니다. 이번 과제의 주제는···‘인외종’ 연기입니다!]오오오–
벌써 방송시간이 ⅓ 가량 지났고, 앞선 연기들로 흥에 들뜬 관객들이 아낌없이 호응했다.
[인외종의 종류는 총 세 가지. 뱀파이어, 늑대인간, 좀비입니다. 앙투안과 마르타, 프리야와 카이, 셀리나와 유명이 동일한 인외종을 연기해요. 네- 맞습니다. 아까 팀 그대로예요. 캐스팅보트 제작진들이 이렇게 사악합니다. 두 명씩 대 놓고 비교질을 하자는 거죠.]제리가 관중들을 향해 속삭이는 입모양으로 제작진을 험담하자, 스탭들이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린다.
[자, 처음 연기를 보여줄 배우는 앙투안인데요, 흠…워낙 미남 배우라 팬덤이 열광적인 걸로 아는데, 혹시 여기도 앙투안 팬 있나요? 그가 뱀파이어로 출연했던 전작이 있는 거 아시는 분?] [저요!! 요!!] [와, 저 분 목소리 크시네. 맞습니다. 전직 뱀파이어의 뱀파이어 연기가 얼마나 실감날 지, 여러분 기대되시나요?]네~~~~!!
[좋습니다. 앙투안, 준비됐죠? 시작할게요?]평소와 어울리지 않게 비장해 보이는 앙투안의 뱀파이어 연기가 시작되었다.
*
[이걸 누르면, 머리 쪽에 설치된 튜브가 터지면서 검고 붉은 잉크가 쭉 흘러내릴 거에요. 한 번밖에 쓸 수 없으니 실수로 누르면 큰일나요.] [네!]무대 뒤, 유명은 특수 장치를 몸에 설치하는 기사의 설명을 들으며, 이 곳이 할리우드인 것을 실감했다.
피와 진물로 뒤덮이는 좀비, 송곳니가 길어지는 뱀파이어, 달빛을 받으면 손톱과 털이 자라는 늑대인간.
과제 중간에 인간에서 인외종으로 변화하는 장면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정교한 분장은 불가능했지만…제작진에선 영화 분장팀을 동원해, 생각지 못했던 장치를 설치해 주었다.
너덜너덜하고 더러운 의상과 부스스한 머리, 오래 굶은 상태를 보여주기 위해 뺨에 그라데이션을 한껏 넣는 것도 잊지 않았다.
준비가 완료된 상태로 다시 무대 뒤에 스탠바이를 들어간다.
그리고 이제 막 시작된 앙투안의 연기를 지켜본다.
‘앙투안 모니에···’
유명도 를 본 적이 있다.
사교계에 명망이 드높은 치명적인 매력의 남자. 사실 그가 사람들을 홀리고 다니는 것은, ‘피를 얻어야 한다’는 자신의 생존 목적 때문.
사실 자신이 뱀파이어가 된 것이 어떤 실험의 일환인 것을 알고, 그 실험의 이면을 추적해가는 영화에서, 앙투안 모니에는 배우로서의 진가를 발휘했다.
‘역시 앙투안은…위고 씨가 필요해.’
몇 번 앙투안과 얘기를 나누었을 때, 그는 다시 위고와 작업할 생각은 없다며 손사래를 쳤었다. 그는 좋은 연출가이긴 하지만 자신과 무척 안 맞는다며.
하지만 유명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타고난 천성 탓인지… 항상 20% 정도를 세이브하는 경향이 있어. 그리고 위고 씨는 상대가 누구든 100%를 짜내는 연출이지.’
전력으로 덤비지 않고 조금의 여지를 남기는 성격이 그의 여유와 매력을 만들어내는지도 모르겠지만, 배우로서의 성장을 생각한다면 역시 해답은 위고다.
위고는 배우의 가능성을 남김없이 긁어낼 줄 안다.
물론 아무리 변태적인 방식으로 배우를 들볶는다고 해도, 100% 이상을 끌어낼 수는 없다. 하지만 앙투안 정도로 타고난 소재가 좋은 배우가 그의 손에 들어간다면, 분명 그는 더 성장할 것이다.
뱀파이어 프로젝트에서 그가 이미 한 단계 성장했던 것처럼.
‘어쨌거나…참 좋은 배우야.’
그의 송곳니가 길어지며 뱀파이어가 되어가는 과정, 그 변한 얼굴에 스민 슬픔과 권태, 밤의 귀족의 우아함을 보며 유명은 내심 감탄했다.
‘캐스팅보트에서 참 좋은 배우를 많이 만났어.’
{5년 10년 후 거물이 될 배우들이 꽤 많이 모였징.}
‘원생에도 캐스팅보트가 이 정도였나? 관계자가 돼버린 상태라 객관적으로 비교할 순 없지만, 이 정도로 실력있는 배우들이 많이 나오고, 어마어마하게 화제가 되었던 것 같지는 않은데···’
{너 때문이당.}
‘…?’
{네가 예상 밖의 실력을 보여줘서, 참가자들도 심사위원들도 많은 영향을 받앋징···이미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원생과 같은 세계라고 볼 수는 없당.}
그 말에 유명의 얼굴에 어떤 깨달음이 스쳤다.
{쟤들도 아마…원생보다 더 거물이 되겠징. 네 영향으로.}
그저 열심히 살았을 뿐이지만,
자신은 이미 세상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
도미니코 블란테는 커다란 포테이토칩을 집어 먹으며 티비를 시청하고 있었다.
원래 금요일 밤은 그와 그의 존경할 만한 친구들이 만든, 이 있는 날이지만, 오늘 회원들은 모임을 온라인 채팅으로 대신하는 것에 한 명도 빠짐없이 찬성했다.
생방은 라이브로 봐야 한다는 아주 엄밀한 논리 때문이었다.
[domi] 오늘 드디어 밝혀지겠군. Y의 연기가 후보정으로 다듬어진 거였는지, 날 것의 그대로인지. [b.qao] 만약 오늘 별로인 건 ‘컨디션 때문’ 콜록콜록! 이 따위 대응을 한다면 TW를 폭파해 버리겠어. [est] 나는 사실 그를 조금 지지해. 물론 나는 LOA의 회원으로서 편집을 이용한 매체의 날조에 염증을 느끼는 사람이지만, 만약 그들이 히어로 메이킹을 하려고 했다면 굳이 동양인을 선택했을까? [blanc] 우리는 이미 그가 모국에서 출연했던 작품들을 보고 토론을 마쳤고, 그가 좋은 배우라는 의견은 합리적이라고 결론을 내렸잖아? 하지만 좋은 것이라고 해서, 작위적으로 과잉선전하는 것이 정당화되지는 않아. [domi] 일단 보자고. 우린 항상 근거에 기반해 결론을 도출하니까. 증거를 보고 다시 논쟁해도 충분해.도미(*도미니코)는 이 모임의 수장인 만큼, 회원들의 분쟁을 점잖게 중재했다.
이 모임의 주제는 다양했지만, 특히 그들의 매니악한 성향이 가장 잘 반영되는 것은 ‘영화’였다. 그들은 특정 영화의 메시지를, 사회적 의미를, 배우의 연기를, 그리고 기타 모든 것을 씹고 뜯고 즐기며 희열을 느꼈다.
첫 번 째 정적은, Y의 첫 연기가 등장했을 때 찾아왔다.
평균 타자수 8백 타를 자랑하는, 그래서 늘 눈보다 손이 빨라 내용을 좇기 힘든 채팅방인데, 갑자기 렉이라도 걸린 듯이 아무도 내용을 치지 않았다.
퍼억-
들고 있던 포테이토칩이 쏟아진 줄도 모르고, 그는 빨려들어갈 듯이 화면을 주시했다.
Y의 연기가 끝난 후에야, 한 줄, 두 줄 채팅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est] 맙소사. 일단 우리의 가설 중 그의 연기가 편집빨이라는 가설은 완전히 기각되었군. 하지만, 새로운 합리적 의심이 제기됐어. 저게 즉흥 연기라고? [b.qao] 설마 저거…좀비야? 아포칼립스의 마지막 남은 가족의 마지막 모습? 오, 마이 갓. 어떻게 엄마와 아들 즉흥극에서 저런 내용이 나오는 거지? [blanc] …일단 내가 건 5달러는 털렸군. 최소한 블러핑 카드(*뻥카)는 아니야.도미니코는 어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 이야기는…뭔가가 있어. 단순히 즉흥극이라고 할 수 없는 무언가가···’
맹목성을 혐오하고, 끊임없이 합리성을 추구하는 자신의 자랑스러운 성향이…오늘 무너질 것 같은 예감.
그 예감이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 되어 돌아온 것은 고작 몇 십 분 후였다.
[자, 다음으로…신유명 참가자의 ‘좀비’ 연기를 보시겠습니다.]좀비 연기.
그의 메인 과제가 ‘좀비’라고 했다. 그리고 조금 전 즉흥 연기 과제에서 그는 ‘좀비가 되고 난 직후’의 아들 역을 연기했지.
‘설마···아까 그게…프리퀄?!’
도미니코의 몸이 점점 앞으로 기울어지며,
아까 소파에 떨어졌던 포테이토 조각이 파삭- 짓뭉개졌다.
188 미친놈이 또 있네요
CRD의 드라마 제작자, 니키(*니콜라스)는 좀비 연기라는 말에 머리를 갸웃했다.
좀비.
부두교에서 유래되었으며, 주술에 의해 움직이는 시체를 의미하지만, 현재는 많은 영화 드라마 등에서 아포칼립스(*세상의 종말)를 구성하는 ‘괴물’로 등장하고 있다.
주술은 흔히 바이러스로 대체되며, 특정 국가를 전복시키기 위한 생화학 무기로 설명되기도 한다.
‘좀비가…주인공?’
좀비물의 공포심은, 내가 아는 사람이 괴물이 된다는 것에서 온다.
친구, 가족, 연인. 사랑하는 사람들이 괴물로 변하고, 사랑하던 모습 그대로인 그들을 죽여아 한다는, 혹은 그들에게 먹힐 수 있다는 비극.
그렇기에 좀비가 주인공인 극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들은 주인공을 몰아붙이고, 심리적 압박감을 활성화하는 ‘환경’으로서 기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다가…마지막에 좀비로 변하는 걸 보여주고 끝내려나?’
와아아아아—
젊은 동양인 참가자가 무대 위에 선다.
땀과 피로 범벅되어 있는 모습에 너덜너덜한 차림새다. 분장의 힘은 대단해서, 아까보다 몇 키로 이상 빠진 홀쭉한 모습으로 보였다.
연기의 천재로 칭송받고 있는, 이 라이징 스타가 홀로 무대에 섰을 때 니키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아까 1차 과제 때보다도 객석의 함성은 큰데도, 분위기는 더 고즈넉해진 느낌.
아직 연기를 시작하기도 전부터 촘촘한 긴장감이 객석을 지그시 눌렀고, 곧 환성이 잠잠해졌다.
[시작하겠습니다.]그 말을 신호로 불이 꺼졌다.
그리고 암전된 무대에서, 섬찟한 소리가 들려왔다.
크롸아아–
한쪽 끝에서 무대 중앙을 향해, 짙은 보라빛의 조명이 한 가닥 쏘아진다.
눈을 일부러 뒤집었는지, 검은 자가 거의 보이지 않는 눈.
사지가 이상한 모양으로 뒤틀린 관절.
관절구축이 일어나, 제대로 굽히지 못하고 몸뚱이를 뒤흔들며 걸어오는 괴물.
조명의 도움이라고 해도 꽤나 섬찟하다. 하지만 워낙 영화에서 편집의 도움을 받은 끔찍한 좀비들을 많이 본 사람들이기에, 그것 자체가 어마어마한 감흥일 정도는 아니었다.
그냥 ‘오…그럴싸하네. 진짜 좀비같아’하고 살짝 감탄할 정도.
하지만 좀비가 갑자기, 속도를 내고,
다다다다다-
무대 앞쪽으로 점점 가까워지다 펄쩍 뛰어 등을 휙 돌리더니, 크릇- 하는 소리를 내며 무언가를 덥석 물어뜯었을 때는 앞줄에 앉은 사람들의 간담이 서늘해졌다.
‘변형 좀비인가···?’
(*원래 좀비는 관절이 굳어있어 뛰지 못한다는 설정이나, 여러 영화에선 신체 능력이 뛰어난 변형 좀비를 내놓기도 한다)
초대석 중에서도 가장 앞 줄에 앉았던 니키는, 그 모습을 코앞에서 보며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기대했던 것을 훌쩍 뛰어넘는 현장감이다.
그리고…무언가를 미친듯이 물어뜯던 좀비가 객석으로 휙- 고개를 돌린다.
움찔-
더러웠지만 멀쩡했던 얼굴이 아니다.
뭔가 장치가 있었는지, 온 얼굴에 붉은 피가 푹 적셔진 모습을 보고 앞줄의 여성들이 작게 꺅- 비명을 지른다.
아니, 피 때문이 아니라…표정.
멍하게 입을 벌린, 표정없는 모습인데도, 거기에 떠오른 것은 분명···
‘만족감.’
인간의 표정이 아닌, 야생짐승이 먹이를 구했을 때의 만족감어린 표정이 선뜩하다.
본능적으로 몸을 물리려고 하지만, 의자 등받이에 몸이 턱 걸린다.
음향으로 비명이 발산된다. 하지만 살려달라는 비명이 전혀 들리지 않는 듯이, 인간의 모습을 한 괴물은 입안에 있는 무언가를 질겅질겅 씹는다.
꿀꺽-
그 입에 가득 맺힌 피와, 무언가가 목구멍을 넘어가는 모습이 선명하게 눈에 찍혔다.
‘저 연기는 대체··· 아니, 그런데 처음부터 좀비가 되어 버리면…인간에서 좀비로 넘어가는 모습은 어떻게···?’
니키의 의문이 제대로 된 문장으로 자리잡기도 전에,
그의 얼굴에,
다시, 이성이 돌아왔다.
*
[아아아아악!!! 으어어…이..이게 뭐···.으아아아아!!]남자의 눈빛이 맑아졌다, 다시 공포감이 어린다.
그는 자신의 입을 가득 채우고 있던 것을 손에 마구 뱉는다.
그 손에 떨어진 내용물을 보고 우뚝 멈춰선 눈동자는 잠시 후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하고, 그 떨림이 손으로, 온 몸으로 옮아간다.
[으으···.내가…또…또!! 안돼애애!!]니키의 손에 땀이 차기 시작한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저 남자는, 좀비에서 다시 인간으로 돌아온 모양이다. 그리고 자신이 코 앞의 인간을 죽이고, 먹었음을 깨닫는다.
그 좌절과 절대적 공포.
‘또…라는 건…예전에도 있었던 일이라는 뜻···’
그는 이제 아이처럼 넋을 잃고 울고 있다.
아아, 떠오른다.
폐허가 된 도시의 한 가운데, 방금 제 손에 죽어 고기덩이가 된 인간을 옆에 두고, 자신이 괴물이 된 것을 받아들이지 못해 세상을 잃은 듯이 무너진 인간의 모습이…선명하게 머리 속에 그려진다.
사람이 사람을 해치는 괴물이 된 비극이 아닌,
내가 사람을 해치는 괴물이 된…비극.
그래서 부두교의 신자들은, 좀비를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좀비가 되는 것을 무서워했다고 했던가.
영원히 안식없이, 모든 인간성을 잃어버린 괴물이 된다는 지극한 공포가 지금 무대 위에서 소름끼치게 재현되고 있다.
[죽어야 해. 총이 있어야 죽을 수 있어.]그는 넋이 나간 눈빛으로 독백을 중얼거린다.
왠지 자신만은 좀비와 인간을 왔다갔다하는 이상한 몸이 되었다는 고백, 인간으로 돌아와 인간을 해친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수도 없이 자살 시도를 해왔다는 것, 그러나 어설프게 다치면 그 순간 좀비 상태로 넘어가 버려 죽지 못했다는 것을 말한다.
한 방에 뇌가 으스러지거나 머리가 날아가는 방법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선 총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미 살아 있는 사람들이 거의 남지 않았을 정도로 한참 진행된 아포칼립스. 총알이 남아 있는 총이 있을 리 없다.
[변신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어. 다시 변하기 전에···!]라고 말하는 순간, 펑- 하고 수류탄 소리가 들린다. 붉은 조명이 어지러이 빛을 밝히다 사라진 아래, 그는 몸을 웅크리고 있다. 다친 것일까.
그리고,
드득-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이상한 형태로 꺾이기 시작한다.
드득- 드득-
[아…안돼…싫어…싫···으르-]기긱 기긱 움직인 몸이 돌아가다, 종내에는 얼굴 근육이 휙 뒤틀린다.
크롸아아—-!
다시 천천히 좀비로 변하는 모습은,
그가 죽어도 ‘그게’ 되기 싫다는 것을 공감한 관객에게, 무섭다기보다는 슬프고 처참하게 보였다.
‘좀비…좀비물을 드라마로 만든다면??’
그 연기를 보며 격렬하게 아드레날린이 펌핑된 니키의 뇌 속에, 그런 영감이 스쳐 지나간다.
아직 미드 ‘워킹데드’도, 영드 ‘데드셋’도 나오지 않은, 2007년이었다.
*
-생존자입니까!!
다시 사람으로 돌아와, 모든 희망을 잃은 눈빛으로 널부러져 있던 그의 몸 위로, 생존자를 찾는 음향이 쏟아진다.
그는 벌떡 일어나서 무대 바깥 쪽에 시선을 고정한다. 누군가 달려와 그 앞에 섰음을 시선의 이동만으로도 유추할 수 있다.
-아니 어떻게 이런 곳에서···!
[어디…서 오셨습니까.]-저희는 남쪽의 생존자 구역을 지키는 군인입니다. LA는 완전히 초토화 되었는 줄 알았는데 유일한 생존자시군요. 저희와 함께 가시죠.
[유일한…생존자…내 어머니는 역시 돌아가셨구나···]잊지 않고 집어넣은 한 마디 애드립으로, 프리퀄의 내용과 훌륭하게 연결시켰다. 눈치가 느린 관객들은 지금에야 1차 과제와의 상관성을 깨닫고 눈을 흡뜬다.
[그거…총입니까.]-네. 여기 여분의 총이 있으니 무장하고 저와 함께 헬기로 가시죠. 저희는 좀비에게 물리고도 완전히 좀비화가 되지 않은 ‘면역 개체’를 찾고 있습니다. 그것만이 인류의 희망-
탕–
대사 음향이 완료되기도 전에, 새로운 음향이 터진다.
총소리.
남자는 총을 쥔 손 모양을 턱에 대고,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겨 버린다.
[아니…왜!!]털썩 쓰러진 남자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른다.
자신이 인류의 희망인 것을 몰랐을까,
아니 혹은 아는데도, 인간으로 죽겠다는 소망이 그만큼 컸던 것일까.
그 모습을 보고 니콜라스 판다스는 오싹했다.
‘우연일까···?’
판도라는 ‘인간답게’ 살기를 선택한 최초의 인간.
지금의 남자는 ‘인간답게’ 죽기를 선택한 최후의 인간이었다.
그렇다면 이것이 결국 신유명이라는 배우의 인생을 관통하는 테마가 아닐까. 인간으로서 타협없이 삶을 개척하고, 죽음까지도 의지의 영역에 둠으로써 완성시키는, 선택과 책임이라는 것이…
‘내가 무슨 생각을···’
그는 설마- 하고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휘휘 저었다.
그리고 내년 티비 시리즈에 저 배우를 어떻게 꼬시지, 라는 생각을 하며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
도미니코는 얼굴이 닿을 듯이 바짝 붙었던 티비에서 겨우 떨어졌다.
그리고 마른 입술에 침을 발랐다.
‘논리와 역설? 개나 주라지.’
방금 그의 연기는 논리와 이성으로 설명되지 않았다.
‘기’ ‘에너지’ ‘영감’같은 도미가 질색하는 단어들을 끌어들여야 겨우 설명이 될까 말까였다.
그는 황급히 유명의 프로필을 찾아 보았다.
‘맙소사…스물 여섯(*만 나이)이라니···’
그의 연기에는 세상에 편견이 덜한 10대같은 번뜩이는 아이디어도 있었고, 20대의 에너지도, 30대의 능숙함도, 40대 이후의 모든 것을 아우르는 원숙함도 있었다.
그렇게 모든 재능을 가진 배우는, 심지어 스물 여섯에 명성도 갖기 시작했다.
캐스팅보트라는 오디션 서바이벌은 물론 현재, 미국에서 대단한 화제다.
하지만 서바이벌 출신의 연예인들이 늘 그렇듯, 이후에도 그 화제성을 유지하기는 힘들 거라는 평도 많았다. 자신도 불과 어제까지 그렇게 생각했고.
하지만, 이 생방을 보고 도미는…처음으로 (예전이라면 입에 담지도 않았을 만큼 혐오하는 단어인) ‘예감’이라는 것이 들기 시작했다.
‘이 배우는…세계 최고라고 불릴만한 배우가 된다.’
오싹-
그 문장을 한 번 구성해내자, 곧 당연한 말처럼 느껴졌다.
가설은 검증이 필요하지만, 이것은 이미 가설이 아닌 확신이었다.
[domi] 친구들. 할 말이 있어. [b.qao] 얘기해, 의장. 그런데 혹시 저 연기가 녹화본을 슬쩍 끼워넣은 거 아닐까? 온갖 편집 기법을 끌어박아서 말이지. [blanc] 콰오. 억측은 하지 말자고. 일단 지금 이것이 사실이라는 가정하에 새로운 논리의 정립이 필요해. 그런데 도미, 무슨 말? [domi] 나는, 신유명의 팬클럽에 가입하겠다.그 말에 오랫동안 정적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