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225
깜깜한 무대에 스트로브 조명이 깜빡- 깜빡한다.
하얗게 터지는 빛이 두 사람의 동작 동작을 끊어 사진처럼 보여준다. 두 사람은 격투 중이다. 숨가쁘게 이어지는 액션은 제대로 합을 맞춘 듯 긴박하다.
길리안이 휘두르는 칼을 간발의 차로 피한 마크는 거실 쪽으로 몸을 날린다. 날렵한 마크의 몸놀림과, 그 뒤를 쫓는 길리안의 악귀같은 얼굴.
쨍그랑-
의자 위에 널려있던 이불을 뭉쳐안아 칼을 방어하려던 마크는, 그 안에서 떨어지는 식칼을 본능적으로 집는다. 카강- 길리안이 내려꽂는 칼과 마크가 막아선 칼이 쇳소리를 내며 부딪힌다.
그리고 다시 불이 꺼진 채, 암흑 속에서 무언가가 구르고 깨지는 소리만 들렸다. 관객들은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상상만 하며 양 손을 부여잡는다.
다시 불이 켜졌을 때,
마크는 칼을 놓친 채 길리안의 밑에 깔려, 오른손으로 그가 칼을 든 왼쪽 손목을 부여잡고 부들부들 힘을 주고 있었다.
‘안 돼···!’
[이…이게 무슨 짓입니까!] [방문판매원은 개뿔, 너 도둑이지?] [그게 무슨!] [아까 안방 건드린 것도 그렇고, 지금 몸놀림도 일반인은 절대 아니야. 빈집털이하려다 사람이 있어서 당황했냐? 크큭. 근데 너 잘못 걸렸다, 불쌍한 새끼.]이해하지 못하는 듯한 마크의 겁에 질린 얼굴.
길리안은 킬킬 웃으며 그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바짝 갖다댄다.
[아까 그 연쇄살인범, 나다?] […!] [요즘 검문이 빡세져서 일을 못하고 있었는데…제 발로 걸어 들어올 줄이야. 하하.] [ㄴ…네? 목숨만 살려주십쇼···! 여기서 일은 모…못본 걸로…!]버둥거리는 남자를 더욱 거세게 찍어누르며, 길리안이 우물처럼 깊게 미소짓는다.
[사회가 이렇게 만든 게 아니고, 난 그냥 미친 또라이가 맞아. 어릴 때부터 이랬거든. 그래서 제어가 안 돼, 이해해 줘~]그가 떠는 마크의 팔을 밀어내며, 칼을 꾸욱 내리눌렀다.
긴장감이 극도로 고조되고, 관객들이 몸을 움츠린 그 때였다.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찰칵-
길리안이 놀라 고개를 훽 돌렸다.
그의 옆구리를 겨눈 것은, 마크의 왼손에 들려있는 손바닥만한 총.
[무…무슨!] [무슨은 무슨이야. 이 살인마 새끼야. 녹음 끝났다.]마크가 아주 산뜻하게, 즐거운 미소를 짓더니, 순식간에 깔린 몸을 빼서 일으켰다.
[안녕? 나 형사야. 마크 로웬 경위라고 해~]옆구리에 총을 겨누고 있다기엔 지나치게 발랄한 인사.
아까 덜덜 떨던 판매원은 누구냐는 듯이, 그는 여유롭게 길리안을 제압한 후 무릎 뒤를 빠악- 걷어차 꿇어앉혔다.
성격이 좋아 보이는 형사는 아니었다.
[…어떻게.] [이쪽 지역으로 바운더리를 좁혀놓고, 한집한집 방문수사하고 있었다, 임마.]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 보는 길리안.
마크는 싱글싱글 웃으며 친절하게 알려준다.
[니가 참 증거없이 뒷처리를 잘 하긴 했어. 그래서 범인에 대한 단서는 강박증, 인육수집 두 개 밖에 없었는데…첨엔 진짜 백수새낀 줄 알았더니 누가 문 열어주러 나오면서 신발 뒤축도 안 접고 단정하게 신고 나오냐?]그 말에 관객들은 비로소 신발을 바라보았고,
그가 트레이닝복과 어울리지 않는 반짝거리는 구두를 신고 있음을 인지한다.
[겨우…그걸로?] [가끔은 지극히 사소한 일부가 전체를 대변하는 법이지.]길리안이 껄렁한 백수로 위장한, 강박적으로 치밀한 연쇄살인범이었듯이,
마크의 공손함과 절박함도 위장이었다.
그는 여유롭게 길리안에게 수갑을 채우며 말한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미란다 원칙을 고지하는 소리와 함께 서서히 조명이 암전된다.
두 배우.
최고라고 말할 수 있는 두 배우가, 핑퐁처럼 긴장감을 주고 받으며 무대를 휘어잡을 때, 관객들은 마치 밀고 밀리는 거대한 두 맹수의 싸움 한 가운데서 그들을 올려다보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가히, 최고라고 할 만한 무대였다.
그리고 수 개월간 고조에 고조를 거듭하며 미국을 뒤흔들어 온 의 마지막 방점을 찍는 무대이기도 했다.
*
우와아아아아아!!!
얼음처럼 긴장하고 있던 몸이 땡- 하고 풀린 듯,
조금 시간이 지나서야 관객들은 어마어마한 함성을 토해냈다.
무대 뒤에서 데렉은 아직 흥분이 가시지 않은 듯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유명에게 한 마디를 건넨다.
[와…이거 죽겠네. 찌릿찌릿하네요.] [수고하셨습니다!] [나랑 할 땐 이렇게 양보없이 연기하면서, 아까는 도대체 왜···]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제리가 그들을 호출한다.
[자- 오늘 최고의 무대를 보여 준 네 명의 배우를 한 자리에 모셔 보겠습니다. 유명 신, 마르타 가르시아, 나탈리 카센, 데렉 맥커디, 나와주세요!]네 명의 배우가 무대에 등장하자, 흥분한 관객들은 다시 한 번 목이 상할 정도로 비명에 가까운 환호성을 내지른다.
[어마어마하네요. 정말 무대 위의 공기가 무겁게 느껴질 정도의 무대들이었어요. 이 역전의 용사들을 데리고 묻고 싶은 말이 차암~ 많지만, 방송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관계로 빠르게 진행하겠습니다. 먼저 첫 공연이었던, 심사위원 점수를 한 번 볼까요?]조지 96, 카일러 97.
[캬아- 처음부터 무척 높은 점수가 나왔습니다. 다음, 나탈리와 유명의 점수는요?]조지 98, 카일러 100.
[카일러가 여기서 100점을 주는군요! 그렇게 좋았나요?] [네. 특히-] [아니아니, 카일러 지금 얘기하면 안 돼요.] [??] [아직 최종회가 남았어요. 심사위원의 자세한 심사평은 22회 시청률을 위해 남겨 둬야죠.]우우우–
객석에서 제리에게 가벼운 야유를 터트렸다.
[데렉과 마르타의 , 점수 주세요~!]조지 99, 카일러 99.
이번에는 동점.
[자…마지막입니다. 지금까지도 가슴이 쫄깃한 연기였어요. 피날레를 장식한 데렉과 유명의 , 그 결과는?]다들 여기서, 조지와 카일러 모두 100점을 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카일러가 여기서···
조지 100, 카일러 99.
1점을 빼 버렸다.
그 때 예리한 사람이라면, 유명이 아닌 데렉의 표정을 관찰했을 것이다. 실제로 지금 데렉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와 . 신유명은 동일하게 등장했으니, 차이점은 나탈리와 데렉이다.
그런데 카일러는 에 100점, 에 99점을 주었다.
1점의 차이가 물론 대본의 차이나 유명의 배역 해석 차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카일러가 나탈리보다 나를 낮게 평가했다.’
데렉은 이렇게 받아들였고, 따져 물을 것이 많은 사람처럼 부글부글한 표정을 겨우 내리눌렀다.
제리는 신나게 마지막을 향해 달렸다.
[관객 투표와…시청자 투표 집계도 모두 끝났습니다.카일러 언쇼 감독의 차기작 주연이 걸려있는, 의 최종 우승자, 수 개월간 우리를 울리고 웃겨 왔던 이 ‘기존에 없었던 리얼리티 오디션’의 마지막 주인공은···!]
하아-
유명은 쥐죽은 듯 조용해진 객석의 존재감을 들이쉬었다.
유석이 쥐어 준 세 가지 선택 중, 를 선택했던 날이 떠오른다.
스타가 되고 싶다는 욕심은 아니었다.
하지만, 단기간 내에 좋은 배역을 만나고, 좋은 동료를 만나며, 더 큰 세상을 느껴 보고 싶다는 갈망은, 그를 이 거대한 무대까지 인도해 왔다.
‘최선을 다 했어.’
스스로를 인정한 자만이 얻을 수 있는 뿌듯한 충만감이 차오른다.
[…신유명씨입니다! 관객 투표, 시청자 투표 모두 90% 이상의 압도적인 지지로, 캐스팅 보트의 우승자가 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와아아아아아–
모든 공간이 함성으로 빈 곳 없이 메워진다.
세상이 슬로우모션으로 보인다.
자신보다 더 신난 얼굴의 관객들이 천천히 손을 맞부딪힌다. 옆에 선 나탈리와 데렉, 마르타가 그를 안으러 달려온다. 그를 찍고 있는 카메라 너머로, 환호하는 시청자들이 느껴진다.
2007년 4월 13일.
유명은 캐스팅보트에서 우승했다.
197 너무 당연한 거니까요
[‘유명’ 신드롬. 전미가 반해버린 동양인 배우, 캐스팅보트 우승을 거머쥐다.] [최근 수년 간 가장 핫한 배우의 등장, 카일러 언쇼 차기작에 관심 급증!] [생방이라고 믿을 수 없는 퀄리티의 4색 무대, 연기 오디션 리얼리티의 한계를 넘다.]마지막 생방 다음 날,
액터스 하우스에는 처음으로 티비가 들어오고 신문이 배달되었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특성상, 최대한 외부 정보가 차단되어 있었던 것이 해금된 것이었다.
주변인들과의 통화나 문자로 바깥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고는 하지만, 전해듣는 정보는 한정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생방 이후 최대치까지 고조된 열기가 언론의 난리법석으로 고스란히 치환된 오늘 아침의 분위기는, 꽤나 생경한 느낌이었다.
부스럭- 부스럭-
유명은 짐을 싸고 있었다.
오늘은 최종 2인이었던 유명과 마르타의 퇴소일이다.
데렉과 나탈리가 붙어 있으면서 함께 파이널 스테이지 준비를 할 때는 깨닫지 못했는데, 마지막 남은 두 사람이 별 말 없이 짐을 싸고 있으니 몹시 휑하게 느껴진다.
{재밌었냥?}
‘아아…무척. 네 말 뜻을 알 것 같았어.’
{무슨 말?}
‘4팀의 공연, 고급 코스요리를 먹는 것 같다고 했잖아.
나탈리와 데렉, 정말 좋은 배우들과 연달아서 연기를 해 보니 정말로 그런 느낌이 들더라고. 완전히 종류가 다른 성찬을 이어서 맛보는 것 같은.’
{캬컁. 뭐가 더 맛있었냥?}
‘글쎄···’
유명이 확답을 않으며 애매하게 웃었다.
‘좀 아쉬워. 어떤 동료들을 만나든 각기 개성이 있는 멋진 배우들이겠지만, 그들 정도로 연기에 대한 열정이 강하고 무대 위에서 팽팽하게 맞설 수 있는 배우들이 흔하진 않겠지.’
그만큼 하고서도, 아직도 아쉬움이 남은 유명의 연기욕심에, 미호가 킥킥 웃었다.
{그래서 허망한 표정이냥.}
‘…4코스가 아닌 2코스만 맛본 것도 아쉬워. 마르타와도 한 번 더 함께 연기해 보고 싶었는데…’
유명은 짐싸기를 마무리지은 후, 마르타에게 다가갔다.
마르타 가르시아. 투명하리만큼 맑은 그녀는, 아직은 만개하지 않았지만 언젠가 감정을 직접적으로 관객의 마음에 꽂아 넣는 대단한 배우가 될 것이다. 유명은 2개월 이상 그녀를 봐 오며, 원생의 마르타 가르시아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그녀의 잠재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르타, 뭐 도와줄 거 없어요?] [아…다 했어요.] [그래요. 그동안 고생했어요.] [나도 신유명씨랑도 연기하고 싶었는데, 데렉이랑 나탈리가 부러웠어요. 우린 또 언제 같이 하죠?]뜬금없이 툭- 튀어 나오는 특유의 솔직한 화법.
그녀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나 보다.
[나도 아쉬웠어요.] [우승 축하한다는 말은 하지 않을게요.]마르타의 의미심장한 한 마디.
마지막까지 올라왔는데 우승에서 밀린 것이 역시 아쉬웠던 걸까···?
[그건 너무 당연한 거니까요. 그동안 고마웠어요.]아니, 그녀에겐 유명의 우승이 축하가 필요없을 정도로 당연했나 보다.
둘은 짐을 끌고 나와 문 앞에 선다.
퇴소하는 장면까지 찍고 있던 스탭들은, 두 사람에게 길을 비켜주며 박수를 쳐 준다.
괜히 민망해져 얼굴을 살짝 숙이며 인사한 후, 유명은 문을 열었다.
와아아아아–
스탭들의 박수를 몇십 배로 불린듯한 박수와 환호.
아침인데도 바깥에는 수많은 인파가 기다리고 있다. 카메라를 든 기자들의 모습도 보이고, 피켓을 든 팬들의 모습도 보인다.
유명은 그들을 향해 환하게 웃음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
윤한성-이선하 부부에게 기쁜 소식이 찾아왔다.
“임신입니다. 축하드려요~!”
의사가 활짝 웃으며 건넨 말에, 한성은 자신도 모르게 눈시울을 붉혔다.
결혼을 준비하며, 그들은 오랫동안 아이를 가질 지 말 지를 의논했다. .
아니 의논이라기 보다는, 선하가 한성을 설득한 것이었다.
-보은이가 태어날 때까지만 해도…아플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어. 한 번 더 내 아이가 아프다면, 살아갈 자신이 없을 것 같아. 나는 너만 있어도 괜찮은데.
-아이를 안 좋아해서 가지기 싫다는 거면 충분히 납득하고 의논할 수 있어. 하지만 당신은 그게 아니잖아.
-……
-길가다가 고만고만한 어린아이들만 봐도 눈빛이 아련해져서는 한참 동안 시선을 못 떼잖아. 좋아하고 키우고 싶은데, 그저 겁이 나는 거잖아. 세상에 잘못될까봐 두려워서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는다면,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되겠어.
-…하지만…
-당신이 걱정하는 일이 일어날 확률은 매우 낮겠지만, 만에 하나 그런 일이 생긴다고 해도, 나는 당신을 버리지 않을게.
-…!
-좋은 날이든 힘든 날이든 내가 선택한 사람과 끝까지 함께 할게. 나를 믿고 함께 가 주면 안 될까?
그렇게 그들은 임신을 준비하기 시작했지만, 둘 다 나이가 적은 편이 아니라 걱정이 많았었는데, 용케도 아기 천사가 제대로 찾아와 주었다.
아마도 그건, 그들이 최근 무척 행복한 상태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와…어떻게 오늘 딱 오냐.”
“그치? 지금 딱 캐스팅보트 할 시간이잖아. 유명이…잘 하고 있겠지?”
“당연하지. 누구 후배인데.”
“내 후배도 되거든?”
그들은 킬킬 웃으며 집으로 들어왔다.
집에 들어와서 티비를 딱 켠 순간,
[속보입니다! 미국을 휩쓸고 있는 연기 오디션 프로그램 에서, 한국의 자랑스러운 배우 신유명 씨가 우승을 차지했다는 속보가 들어왔습니다. 신유명씨는 결선에서 데렉 맥커디, 나탈리 카센과 두 번의 무대를 선보이며 열연을 펼쳤고, 90% 이상의 현장관객표와 시청자 득표를 획득해, 압도적인 지지로 최종 우승을 거머쥐었다는 아주 기쁜 소식입니다! LA의 TW방송국 앞에 나가 있는 김지혜 리포터 연결해 보겠습니다!]토요일 오후 2시 50분.
연예계 통신이 아닌, SBK의 정식 뉴스에서 속보가 흘러나왔다.
그것도 모자라, 근엄한 표정을 유지해야 할 앵커의 입술꼬리가 비죽비죽 올라가려고 하고, 목소리는 두세 톤 올라가 있었다.
“다른 채널, 다른 채널도 돌려봐봐!”
선하가 급하게 소리치자 한성은 몸을 날려 리모콘을 잡아채서 채널을 돌렸다.
SBK 뿐만이 아니었다.
지상파는 물론 유선 방송에서까지,
그것이 뉴스이든, 급작스레 삽입된 속보 화면이든, 속보 자막이든 간에, 모든 곳에서 유명의 우승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그 정도로 전국민이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며, 목말라하고 있던 뉴스였다.
우왓-
선하와 한성은 순간 얼싸안고 펄쩍펄쩍 뛰다가, 아직 조심해야 할 시기임을 깨닫고 겨우 멈추었다.
“너무 잘 됐다, 진짜.”
“어휴, 저 중에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유명이 깎아내리려고 안달이던 방송들도 있을텐데. 얄미워 죽겠어.”
“유명이네 기획사 실장이 알아서 잘 응징할거야. 보통 수완가가 아니더라고.”
한성이 연예계에 무성한 문유석의 소문을 떠올리며, 빙긋 웃었다.
“그런데 우리 아기가 유명이의 우승을 부른 걸까? 아니면 유명이가 우리 아기를 데려와 준 걸까?”
“호호, 그러게. 어떻게 딱 오늘…그치?”
“우리…아기 태명으로, ‘기적’이 어때?”
“기적?”
“나한테는…저 녀석 만난 것도, 같이 영화 찍으면서 슬럼프를 극복한 것도, 그래서 마음 잡고 당신 만나게 된 것도, 저 녀석이 훌쩍 미국에 가더니 저렇게 떡하니 우승한 것도, 그 결실을 이룬 날에 하필 우리 사랑의 결실이 와준 것도…다 기적같거든···”
다시 슬쩍 눈에 차오르는 물기를 소매로 스윽 비비며, 한성이 환하게 웃었다.
“고마워, 선하야. 다시 이렇게 행복할 날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
“또 선배한테 선하라 그런다.”
선하도 그렁해진 눈을 감추려는 듯 괜히 한성을 구박하며, 그를 끌어안았다.
한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아이가, 그녀의 품 안에서 함께 웃었다.
*
하루를 쉬고 일요일.
최종회를 위한 녹화가 있어 TW 방송국으로 가야 하는 유명은, 유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나타난 사람은 뜻밖의 인물이었다.
“형!”
“어? 호철아, 네가 어떻게···”
“실장님께 얘기 못들으셨구나. 저 이 쪽으로 발령났어요. 우승 진짜 축하드려요!”
엊그제 유석은 유명을 데려온 후, 푹 쉬라며 그를 내버려두고 계속 집을 비웠다.
집에 있을 때도 내내 통화를 하는 것 같았다. 무척 바빠 보이더니, 미국 기획사를 제대로 궤도에 올리는 중인 모양이다.
“현지인 한 명 더 뽑아서, 저랑 두 명이서 형 마크시킬 생각인가 봐요.”
“뭘 두 명씩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