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231
카일러는 가지고 들어온 서류 중, 대본으로 보이는 종이 뭉치를 꺼냈다.
#Scene 1 (고등학교 복도)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소리를 뚫고, 카메라가 걸어간다.
렌즈는 이동하는 사람의 시야를 보여준다.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그에게 말을 붙인다.
-아스, 이따 농구 한 게임 어때?
[좋아!]-안녕 아스. 이번 주말에 내 생일파티가 있는데, 와 줄래?
[최대한 시간내 볼게.]붉어진 얼굴을 감추는 여학생. 옆의 친구가 그녀의 어깨를 마구 때린다. 카메라는 그걸 못본 척 다시 정면으로 방향을 돌린다. 만나는 사람마다 그에게 자석처럼 시선이 달라붙고, 아는 척을 하려고 한다. 교내의 인기인임이 한 컷으로도 드러난다.
드르륵-
문이 열리고, 창가의 뒷좌석에 주저앉은 듯 고정되는 프레임.
앞 자리의 학생1이 뒤를 돌아본다.
학생 1: 아스. 큰일났어. 이따 2교시에 화학 시험 공부를 하나도 못 했어.
아스: 하하, 네가 늘 그렇지. 진짜 엉망이야? 좀 찍어줘?
학생 1: 제발! 으악 역시 아스 네가 내 생명줄이다···
그들의 대화를 듣고, 여기저기서 학생들이 몰려온다.
학생 2: 아스, 나도!
아스: 그래. 다 모여봐. 책상 붙여서 앉아.
여러 명이 모여앉은 장면으로 jump. 모두 초롱초롱 아스를 쳐다보고 있다.
아스: 화학 쌤의 패턴은 늘 비슷해. 첫 번째 문장에 함정을 하나 파 두지만, 진짜 힌트는 두 번째 문장에 두지. 그리고 항상 기본 공식을 쓰시는데, 이번 시험 범위에서 나올법한 기본 공식은···
아스(Nar:나레이션): 학생들의 패턴은 늘 비슷하다. 시험 직전이 되어서야 조급하게 구는데, 이들에게 호의를 얻기 위한 기본 공식은, 시험에 도움을 줄 것. 방식은 너무 만만하게 구는 것보다는 조금 짓궂게 놀리면서 대하는 것이 매력적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아스: 됐지? 으이그, 미리미리 좀 해라, 이 인간들아.
학생1: 아스 넌 진짜 최고야. 다른 반에 내 친구도, 너랑 같은 반 됐어야 한다고 얼마나 아쉬워하는데.
아스(Nar): 보다시피, 사람들의 인정과 호의를 얻는 일은, 내게는 무척 쉽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시나리오의 도입부는, 아스 프리테터가 지극히 무감각한 인간이며,
그럼에도 대단한 정보 수집과 분석력을 가지고, 그 분석 결과에 충실히 의태(mimicry)함으로써, 사람들 사이에서 누구보다도 우월하고 매력적인 존재로 인식되는 점을 부각시킨다.
[그리고, 그는 헤티 램을 만나지.]에르히 데버가 연기할 배역, 헤티 램.
그녀는 누구보다 존재감이 약하고, 평범하기 그지 없는 인물.
하지만 아스에게는 누구보다도 그녀가 눈에 잘 들어온다.
그녀가 치는 피아노의 연주법부터, 그녀의 행동들 여러 가지가, 자신이 분석한 ‘인간의 패턴’에 매번 어긋나기 때문이다.
Unanalyzable(분석불가).
아스 프리데터가 헤티 램을 볼 때마다 느끼는 불합리함이, 둘의 관계를 지속시킨다.
[누가 봐도 눈에 띄지 않는 헤티와, 누구보다도 매력적인 아스. 이 둘이 곁에 있으면 존재감의 차이가 극명하게 차이날 거야. 딱 에르히가 적격이지 않아? 심지어 에르히는 예전에 피아노를 전공자 급으로 배웠었다고.] [말은 바로 해야지. 헤티 역에 에르히가 적격인 게 아니고, 에르히에 맞춰 만든 캐릭터가 헤티인 거잖아.] [그래서 재미없어?]재미가 있냐, 없냐. 언제나 결론은 그 곳으로 귀착된다.
데렉은 그 말에 끙-하면서 대답했다.
[뒤가 궁금하긴 하네. 그래서 아스 프리데터의 정체는 뭐야?]아직 나온 대본은 도입 단계인 초반 30분 뿐이다.
[사이코패스야? 그래서 헤티 램을 죽이나? 양(lamb)을 죽이는 포식자(predator)처럼?] [아니.]카일러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
[SF물?] [따지자면…그렇긴 하겠지만, 전개되는 사건 자체는 거의 지구에서 벌어질 거야. 마지막에 우주선 내부 씬이 들어갈 수 있긴 하겠다.] [흠…’의태’의 습성을 가진 외계인이라…스스로는 알고 있어?] [아니. 네 말대로, 자신이 싸이코패스인가 의심하는 정도이지. 관객들도 중반까진 그렇게 의심하게 만들 거야.] [그런데 여기 보면…나레이션이 자꾸 들어가잖아. 이건 왜 이런 식으로 처리한 거야?]카일러는 유명에게 했던 말을 꺼낸다.
[초반 30분을 주인공 시점 처리할 생각이야.] [뭐?] [아스의 심리상태를 관객의 시선에서 함께 몰입할 수 있도록 그렇게 처리하려고 했는데…사실 기획국장이 결사반대하고 있는 중이긴 해.] [……] [촬영은 감독 권한이라고 극구 우기고 있긴 한데, 영 안 먹히네. 30분간 주연 배우가 안 나오면 영화를 보다가 극장을 뛰쳐나갈 수도 있다고, 너무 위험하니 섞어서 가자고 계속 압박하는데…틀린 얘기도 아니긴 해서.]카일러가 씁쓸하게 웃자, 데렉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반응한다.
[당연하지. 나 같아도 그렇게 얘기하겠어. 우리가 독립 영화 찍자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SF 내용이 등장한다면 제작비도 어마어마할텐데, 아니. 이미 이 캐스팅만으로도 제작비는 역대급을 찍을걸? 그런 무리수를 굳이 둘 이유가 있어?] [음…주인공 시점을 꼭 쓰려는 데는 이유가 있긴 해.] [뭔데?]카일러는 배우들에게 후반부에 전개될 내용을 귀띔했다.
모두는…잠시 침묵했다.
[…획기적인 전개네. 그거라면 주인공 시점을 고집하는 이유도 이해가 가긴 해. 그 얘기 제작사에도 해 봤어?] [해 봤지. 그런데도 너무 모험적이라네. 초반부에 관객을 끌어들이기가 너무 어렵다고.]한참을 듣고만 있던 유명은, 어떤 생각을 떠올리고 슬쩍 끼어들었다.
[감독님. 저도 그 시점이 이 영화에 가장 적절한 것 같아요.] [고마워요. 저도 더 설득해 볼 예정입니다.] [굳이 그럴 필요없이 두 번 찍어서, 이 쪽이 맞다는 걸 증명하면 되지 않을까요?] [두 번요? 단순히 제작사를 설득하기 위해서 두 번 찍는 건 시간과 자원이 너무 낭비되될 것 같은데…] [두 번 찍고, 한 쪽의 그림은 미끼로 쓰면 어떨까요?] [미끼…?]유명은 자신이 생각하는 전략을 쭈욱 설명했다.
그리고 모두의 턱이 땅에 떨어졌다.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30분의 트레일러가 되는 거죠.]카일러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고개를 깊이 끄덕였다.
언제나 침착하고 평온하던 그의 얼굴이, 살짝 상기되어 있었다.
205 몰이해
크랭크인은 6월의 첫날로 확정되었다.
상당히 급박한 스케줄. 유석의 말에 의하면, TW에서 한참 몸이 달아 있어서 최대한 빨리 촬영을 시작하길 원하고 있다고 한다.
-영화사업부는 영화사업부대로 신유명이라는 라이징 스타와 데렉, 나탈리의 공동 출연이라는 이슈가 핫할 때 얼른 노를 젓고 싶을 거고, TV사업부는 그쪽대로 영화가 성공해야 캐스팅보트 시즌2를 노려볼 수 있을 테니까요.
유명의 일상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기획사의 연습실에서 제작사가 마련해 준 연습실로 연습 장소가 바뀐 것이나, 에르히가 함께 연습하고 카일러가 정기적으로 들러 디렉션을 주고 간다는 것 정도가 바뀐 점이었다.
그리고 첫 모임에서 유명이 제시한 아이디어 이후, 카일러의 질문이 부쩍 많아진 점도 차이였다.
[2회 촬영이라면, 유명씨가 들어간 씬을 먼저 찍고, 그 동선 그대로 카메라가 따라가면서 찍는 게 좋겠네요.] [네. 나레이션은 후시로 넣으실 거죠? 세컨 샷에서는 제가 프레임 밖에서 대사를 쳐드릴까요?] [그게 좋겠네요. 꼭 유명씨가 아니어도 되지만 헤티의 감정을 잡으려면 아스의 목소리가 좋을 테니까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제 생각엔 핸드 헬드(*카메라를 손에 들고 촬영하는 기법. 현장감을 주기 위해 사용한다)는 조금 난잡할 것 같고, 스테디캠(*카메라를 촬영자의 몸에 고정시키는 촬영방법)을 쓰는 게 좋겠어요. 실제 인간의 시야하면 많이 흔들리겠지만, 아스는 외계인이니까 적당히 깨끗한 무브먼트가 어울릴 것 같군요.] [그건 동의하는데…건의할 게 있는데요.]카일러가 대본에 두고 있던 시선을 들어 올렸다.
[움직일 때의 흔들림 말고, 아스가 일부러 취하는 모션들은 카메라 워킹에 반영해 주시면 어떨까요?] [어떤 모션요?] [고개를 갸웃하거나, 살짝 끄덕이는 것. 그런 소소한 동작들요.] [흠…alter A와 alter B의 일치감을 위해선가요?]alter(alternative 대안) A가 아스가 화면에 등장하는 샷.
alter B가 아스의 시선으로 전개되는 샷으로 통칭되고 있다.
물론 그들이 생각하는 메인 샷은 alter B이다. 제작사의 생각은 다르겠지만.
[그런 부분도 있긴 해요. 예리한 팬들이라면 매의 눈으로 그런 유사점을 밝혀 낼테고, 그건 그거대로 화제가 될 테니까요.]유명은 려말선초의 개봉 이후 화제가 되었던 에 대해 카일러에게 설명해 주었고, 카일러는 무척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그 정도까지···굉장히 인상적인 에피소드네요.]카일러는 유명이 말한 이야기를 노트에 적었다.
[어쨌든, 그게 주요한 이유는 아니구요. 진짜는 ‘몰입감’이죠.] [몰입감…흐음···그런 무브먼트들이 몰입에 도움이 될까요?] [직전의 대사에 힌트를 주려고요.] […?] [목소리에 갸우뚱한 느낌을 섞어 힌트를 준 직후에 카메라가 살짝 갸웃하면, 관객들이 자신의 시선으로 보는 느낌을 더 받게 될 거에요. 물론 과하지 않을 정도의 틸팅(*기울임)이어야겠죠.] […예를 들면요?]유명은 자신의 대본을 카일러 쪽으로 내밀었다.
[여기 파란색으로 표시된 부분들요. 적용하신다면 촬영 감독님과 적절한 움직임 정도를 의논하셔야 할 테니까 카피해 가시겠어요?]전달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이미 빈틈이 없을 정도로 이런 저런 메모들이 가득한 대본.
특히 파란 색 펜으로는 여러 곳의 포인트가 체크되어 있고, 각 포인트마다 아스의 움직임, 그 움직임이 표현하는 생각이나 감정들이 자세히 적혀 있었다.
‘벌써 이렇게 준비했다고?’
그 때 처음으로, 카일러는 유명이 그저 천재가 아님을 깨달았다.
*
-하하, 우연히 겹쳤을 뿐입니다. 이미 예전부터 준비하고 캐스팅까지 마쳐놓은 프로젝트에요. 설마 상영까지 겹치진 않겠죠. 카일러 감독님은 대본도 아직 안 나왔을 텐데, 저희는 바로 촬영을 시작해서 빠르게 진행해 연말이나 내년 연초에는 올릴 계획인걸요.
데렉은 티비에서 흘러 나오는 조지의 목소리를 들으며, 어이없이 웃었다.
[웃기시네. 준비된 프로젝트? 나한테 2주 전에 캐스팅 제안을 하셨던 분이.] [데렉에게…제안이 왔었다구요?]데렉은 연습실에 불쑥 나타나더니, 고급도시락을 내밀었다. 잘 하는 곳에서 직접 사온 거라는 생색과 함께.
휴게실으로 이동해 도시락을 열고 티비를 켰는데, 조지에 관한 연예 뉴스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 현재의 상황이었다.
[내가 여기 조연 롤을 맡은 걸 몰랐을 때였죠. 캐스팅보트 때 교환한 연락처로 꼭 함께 하고 싶다고 여러 번 읍소가 오길래, 시커먼 속셈이 빤히 보여서 거절했더니 오웬을 물었네.] [시커먼…속셈요? 조지 감독님이요?]유명이 의아한 듯 물었다.
캐스팅보트의 심사위원으로 수 개월간 얼굴을 익혔던 조지는 언제나 너털웃음을 짓는 무골호인같은 느낌의 감독이었다.
참가자들 사이에서도 조지에 대한 평판은 무척 좋았다. 헐리웃의 이름난 감독이면서도, 무명 배우들에게도 차별없이 친절하다고.
그런데 데렉의 이야기를 들어보면…그게 아니었던 걸까?
[그 인간, 카일러한테 열등감이 있거든.] […열등감요?] [둘이 라이벌이니 어쩌니 하는 거, 다 조지가 의도한 거인거, 모르죠?] […?] [6년 전, 카일러가 한참 고생하다가 겨우 첫 작품 찍고 개봉할 시기에, 한창 잘 나가던 조지의 신작과 같은 날짜에 매치됐어요. 조지는 그 때 주연이 리처드 콜맨이었고, 카일러는 마일리 필론이었지.]당시 리처드 콜맨은 가장 주가 높은 배우 중 하나였고, 조지 또한 커리어의 정점을 찍고 있었다. 반면 마일리 필론은 출연작이 몇 개 되지 않고 주연경험도 없던 신인배우였으며, 카일러도 그 때까지 이름없던 신예 감독.
하지만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카일러의 는 박스오피스 1위를 찍었다.
[대단했죠. 마일리 필론은 그 작품 하나로 헐리우드에서 손꼽히는 여배우로 급부상했으니까.] [그 작품은…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조지 하우슬리는 이상하게 카일러를 이기는 데 집착하더군요. 신작 동향을 염탐하기도 하고, 캐스팅 내정된 배우를 빼 가기도 하고, 결정적으로 꼭 같은 시기에 맞춰서 개봉을 해요.] [그런 일이···]허허-하고 웃으며 자신의 어깨를 두드리던 조지의 넉넉한 웃음이 떠오른다.
사람을 꽤 많이 봐 온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인간의 수렁은 알 수가 없다.
[조지 감독님도 충분히 능력 있으신데 왜 굳이···] [그러게 말입니다. 능력이 없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는 점이 재밌죠. 인간은 참 다양해, 그죠? 캐스팅보트에서 좋은 배우가 카일러한테 못 가게 하려고 했다는 초반의 멘트, 다들 농담인 줄 알고 웃고 넘겼잖아요? 그거 진심일걸요.]조금 소름이 돋는다.
[사실 카일러한텐 말 안했지만, 캐스팅보트에 출연한 이유 중에 그것도 있어요. 나나 나탈리 정도 되니까 조지가 손을 못 썼지, 만만한 인간들이었다면 어떻게든 수작을 부려서 유명씨 떨구려고 했을걸? 그런다고 떨궈졌을 것 같지는 않지만.] [카일러 감독님이 불이익 겪으실까봐 심사위원 맡으신 건가요?] [그 친구 영화 찍어보고 싶어서가 제일 크긴 하고.]데렉이 씨익 웃어 보였다.
[그럼 데렉에게 제안했다는 건…] [나와 카일러가 친구인 걸 알면서도, 유명-카일러와 같은 시기에 붙어보고 싶지 않냐고 꼬시더라니까. 인간의 욕망을 어찌나 잘 캐치하는지 순간 혹할 뻔 했죠. 결국 비슷한 놈을 꼬셨네.] [오웬 위트필드…요?]유명이 좋아하던 배우.
데렉이 데려간 모임에서 그의 옆에 앉아서 친절하게 말을 붙이던 매력적인 배우.
그 또한 조지와 비슷한 인간…?
[비슷하다는 건 취소. 오웬은 그 정도로 치졸하진 않은데, 연기하기 재밌을 작품보다는 잘 팔릴 것 같은 작품을 고르는 녀석이라··· 작품 욕심보다 흥행 욕심이 크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는 뜻입니다.] [흠…그런가요···] [어쨌든 그 둘이 붙었다면, 만만한 상대는 아닐 겁니다. 오웬이야 워낙 대중적인 지지를 많이 받는 배우고, 조지도 안목이 꽤 있는 감독이니까. 하기야 그러니까 카일러를 의식하는 거지.아마 이 쪽을 이를 갈고 물어뜯으려고 할 거예요.]
데렉이 넌지시 겁을 주자, 유명은 생긋 웃으며 답한다.
[뭐, 만만한 상대가 아니기는 ‘우리’도 마찬가지지 않나요?]그 말에 데렉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와 자신을 ‘우리’로 묶는 헐리우드의 신성의 패기가 썩 마음에 드는 듯 했다.
*
딸깍-
유명은 설레는 마음으로 이메일을 클릭했다.
Mimicry_final.doc
Mimicry(의태)의 완성 대본.
카일러 왈, 배우들의 연기에 따라 충분히 바뀔 수 있는 대본이라고는 하지만, 어쨌든 이것이 이 영화의 본체이고, 시작점이 될 것이다.
위잉위잉-
금세 프린터기에서 따끈한 종이들이 인쇄되어 나온다.
‘뒤는 어떻게 전개되어 있을까?’
이미 시작된 하나의 이야기의 끝을 보는 것은, 언제나 가슴설렌 일이다.
유명은 미리 보았던 1막을 신중히 다시 한 번 읽고,
아스: 너…피아노 치는 법이 굉장히 독특하구나?
헤티: (몸이 의지를 벗어나 떨린다) 안녕? 어…나 왜 이러지···
아스: 괜찮아? 어디 아픈 건 아니고? 난 아스 프리데터라고 해.
헤티: 알아. 우리 학교에서 너를 모르는 사람도 있을까.
2막으로 넘어간다.
헤티: 만든 표정 집어치우고 진짜를 보여줘.
아스의 미소가 걷히고 무표정이 드러난다. 주변을 압도하는 분위기에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떠는 헤티.
아스: 나 이제…나가라고 할 거야?
헤티: …아니. 나는 너를 사랑하니까. 하지만 설명을 원해.
ㅡ
아스: 누나 그런데 정신과 의사니 한 번 물어보자. 그녀는 어떻게…그럴 수 있는 거지?
인정받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데도, 포기하지 않고 매일 조금이라도 나아지면 된다며 피아노를 쳐. 이런 나를 보고서도 사랑하니까 받아들일 거라고 말해. 나는 사람들을 분석하면서 이해해 왔지만, 항상 그녀는 표본에서 떨어진 값을 가져. 어떻게 그게 가능해?
ㅡ
아스: (혼잣말) 내 근처에 있으면 안돼…그녀가…위험해.
ㅡ
헤티: 너는 원래 나를 사랑한 적이 없잖아.
그리고 3막.
아스의 독백.
「그녀는 처음에는 표본 오차일 뿐이었다. 툭- 하고 튀어나와 있어서 눈에 쉽게 들어오는 조금 이상한 값. 하지만, 그 ‘다름’이 많은 손해를 감수한다는 것을, 스스로의 편안함에 귀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을, 올곧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부터, 그 전에는 내게 없었던 어떤 감상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가 변하지 않기를 바랬고, 그걸 위해선 내가 희생해도 좋다고 생각했다.」
유명의 눈에서 투명한 무언가가 툭- 떨어졌다.
그 눈물은 좋은 작품에 대한 반응보다는, 조금 더 깊은 곳에서 우러나왔다.
‘미호···’
카일러에게는 자신의 본질이 정말로 눈에 보였던 것일까.
그래, 자신의 본질에 관해 이야기한다면, 어떻게 미호가 빠질 수 있겠는가.
1막만 보았을 때는 설마설마했었다.
하지만 완결고를 받아보고 나니 확실해졌다. 아스와 헤티의 관계는, 미호와 자신의 관계를 대변하고 있음을.
선계의 횡포를, 미호가 몸을 던져 막아주었던 날 밤,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희생을 말했다.
자신이 잃은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치부하고, 유명의 이득을 위해서 필요한 도움을 자처하기까지 했다.
아스에게 인간이 헤티로 인해 의미를 갖게 된 것처럼,
미호도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점점 달라져 왔다.
흥미가 관심으로, 관심이 응원으로. 언젠가부터 미호는 유명에게 가족이자 벗, 그리고 최고의 스승이 되어 있는 것이다.
‘미호도 이런…마음이었을까?’
대본에 있는 대사 한 줄 한 줄을 다시 음미해 나간다.
카일러가 자신에게서, 과거의 자신과 미호를 함께 느껴 이런 대본을 쓴 것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