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238
‘티를 내지 않고, 헤티를 그 날 학교에 가지 않게 하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그는 머리를 굴린 끝에, 환자로 ‘의태’하기로 결심한다.
여태 그는 인간의 표정과 동작, 말투를 의태해 왔었지만, 왠지 몸 상태까지도 의태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놀랍게도, 실제로 가능했다. 급성 폐렴. 그는 고열이 나고 오한이 나며 호흡곤란까지 오는 상태가 되는 것에 성공했다.
그가 아픈 것에 놀란 헤티는 학교에 가지 않았고,
그 날 음대는 폭발했다.
*
순식간에 폐렴에 걸린 몸상태를 구현하는 유명의 연기를 보며, 데렉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말로 ‘의태’가 가능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는 정말로 환자같이 보인다.
‘정말로 약점이 없나? 어디서 저런 말도 안 되는 놈이 나타난 거야?’
그래도 데렉은 좌절하지 않았다.
자기만큼 연기에 미친 놈이 또 없다는 걸 투덜대며 살아온 세월, 유명의 등장은 그에겐 엄청난 자극이자 기쁨이었다.
그와 함께라면···누가봐도 현실로 느낄만큼 리얼리티가 높은 연기도 가능하지 않을까.
‘드디어 내일···’
손꼽아 기다렸던 날을 단 하루 앞두고, 데렉은 크게 숨을 들이켰다.
내일은 테르카의 첫 촬영일이었다.
214 아비규환
[그만 들어가시죠…내일 촬영인데요…] [내가 알아서 해. 잔소리 그만하고 내일 제 시간에나 데리러 와.]데렉은 언제나처럼 염려를 쏟아놓는 매니저를 일축하고, 개인 연습실에서 새벽을 맞았다.
‘아스의 연기.’
완벽한 의태까지는 이해했다.
하지만 의태를 걷어냈을 때의, 그 압도적인 존재를 처음 보았을 때, 데렉은 충격과 환희에 몸을 떨었다.
‘저것이 연기로 가능한 영역이었다는 말인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던 분야.
그것의 또 다른 지평이 펼쳐진 것을 눈으로 확인한 욕심 많은 배우는, 그 날부터 연습실에 틀어박혔다. 유명의 연기를 눈에 넣으러 촬영장을 방문할 때를 빼고는, 거의 연습실을 나가지 않는 그였다.
연기에 관한 의욕이 한 번 발작하면, 식음도 수면도 잊고 연습에 몰두하다 몸을 상하는 것을 여러 번 봐 온 매니저는, 그를 만류하고자 애를 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데렉은 깊은 생각에 빠진다.
‘아븨칸의 인류는 약자를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 없다.’
테르카는 아스를 ‘회수’하기 위해 지구로 파견된다.
문제는 아스의 소재가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당연한 일이다. 그의 ‘의태’ 능력이라면, 지구인과 뒤섞여 한 치의 다름도 없이 살고 있을 테니까.
그는 아스를 찾을 방법을 생각하다, ‘아븨칸인’만이 들을 수 있는 음파로 메시지를 뿌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지구인들은 여러가지 이유로 환청을 듣는 사람이 너무 많아, 그 메시지에 반응하는 사람을 가려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테르카는 테러를 시작하지. 목적을 이룰 수만 있다면, 그는 인간이 죽어나가는 것 따위는 전혀 거리끼지 않으니.’
조금이라도 아븨칸인의 흔적이 보이는 장소는 가차없이 폭파한다.
폭파 전 아븨칸인만이 들을 수 있는 소리로 메시지를 남긴다.
그렇게 자행된 테러들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살아남은 사람들이,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아스는 두 번을 살아남았어.’
테러로 보고되거나 혹은 보고되지 않은 수백 번의 사고들.
거기에서 ‘우연히’ 살아남은 사람들이 후보가 된다.
그리고 테르카는 그들을 초청한다. 물론 허락받지 않은 초청이다.
거기서 처음으로 테르카와 아스가 대면하는 씬이 내일 데렉과 유명의 첫 촬영이다.
‘아스가 의태를 하지 않을 때 뿜어내는, 인간을 움츠러들게 하는 포식자의 기운. 테르카는 그 분위기를 기본으로 탑재하고 있어야 해.’
데렉은 완전한 정적을 이룬 새벽 공기 속에서, 깊게 침잠했다.
자연재해.
자연 그 자체처럼 고요하고 아름답지만, 그것이 무심하게 눈을 뜰 때 인간은 한 줌 재처럼 맥없이 날아가는 거대한 존재감을 이미지하며.
*
새로운 세트가 오픈되었다.
나선으로 배열된 조명들과, 그 사이를 빼곡이 메우고 있는 기계들은 우주선 내부를 구현하고 있다. 이번 영화에서 유일하게 SF 느낌이 나는 세트다.
유명은 세트의 규모와 정교함에 눈이 휘둥그레해져서 기계벽을 조심스레 만져보았다.
뛰어난 미술감독은, 이 세트를 지구보다 훨씬 하이테크놀로지한 어떤 문명의 산물로 보이도록 조성해 놓았다. 본격적인 ‘헐리웃 영화’를 처음으로 찍는 유명의 입장에선 신기할 수 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좀 조악한 부분들은 VFX로 보정할 겁니다.] [어…조악…어디가···]지나가던 미술팀 스탭이 변명하듯 유명에게 한 마디를 던졌고, 유명은 어리둥절해 했지만 이미 그는 사라진 뒤였다.
‘어디가 조악한 건지 궁금한데…’
바쁜 스탭들 사이로 카일러가 유명에게 다가와 염려스럽게 묻는다.
[유명씨. 아무래도 대역을 쓰는 게…지금이라도 비슷한 체격으로 섭외하면···] [괜찮습니다, 감독님. 정말로요.]오늘 촬영에 수반될 격한 씬들이 걱정되는 모양인지, 카일러가 자꾸 염려스런 표정을 지었지만, 유명은 걱정 말라며 산뜻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리고 분장을 마친 데렉이 걸어온다.
머리를 올백으로 넘기고 금속성의 펄을 섞어 분장을 한 모습은 꽤나 그로테스크했지만, 주변의 시선을 당연하다는 듯이 받으며 똑바로 걸어오는 그는, 정말 지구인이 아닌 것처럼 포스가 넘쳤다.
[멋지네.] [내가 이렇게 멋진 배우란 걸 너만 모르거든.] [나도 알거든. 특히 오늘은 더 멋져.]웬일로 카일러가 데렉의 멘트를 받아치지 않고 긍정해 준다. 데렉이 움찔하더니 얘가 무슨 꿍꿍이로 이러나-하는 눈빛으로 카일러를 쳐다본다.
유명이 쿡쿡 웃었다. 저 두 사람에겐 어떤 과거가 있기에 저런 사이가 형성된 것일까.
어쨌든 이 촬영장은, 배우들도 스탭들도 무척 마음에 든다. 아주 좋다.
[자, 이제 가 보실까요?] [그러죠.] [네-]씬 61.
아스의 납치.
[잠든 아스, 크로마키부터 따겠습니다.]유명은 잠옷을 입은 채로 침대 위에 눕는다.
미국에서 ‘외계인 납치’의 클리셰와 같은, 잠잘 때 창문으로 눈부신 빛이 새어 들어와, 그 빛에 닿은 사람들을 우주선으로 소환하는 씬이다.
유명은 초록색 천으로 덮인 침대 위에 눕는다. 화면에서 아스의 몸은 둥둥 떠서 창문 밖으로 이동할 것이다.
납치되는 것은 아스 뿐만이 아니다. 테르카의 ‘테러’에서 살아남아, ‘의심인물’로 추정되는 십여 명의 사람들이 함께 소환된다.
아직 그 중 누가 ‘진짜 아스’인지를 테르카는 모르고 있는 상황.
유명은 단역 배우들을 돌아보았다.
오늘 함께 테르카의 시험에 들게 된 ‘아스 후보’들이다.
‘실감나는 연기가 중요해서, 단역이지만 상당히 공들여 뽑았다고 들었어. 꽤 눈에 익은 배우들도 있네.’
단역을 연기하기엔 꽤 인지도가 있는 배우들도 보인다. 아마 저들은 ‘데렉 맥커디가 조연을 맡은 영화’라는 것에서, 자존심을 꺾고 단역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
참 여러 가지로 데렉은 도움이 된다.
[씬 62 들어갑니다-]납치당한 십여 명의 인물들과 아스.
그들이 우주선 세트의 한 가운데에 선다.
씬 62의 촬영이 시작되었다.
*
[여…여기가 어딘가요?] [뭐야, 갑자기 이게 무슨 상황이에요?!]소환됨과 동시에 잠에서 깬 사람들의 표정이 공포로 물든다. 어떤 사람들은 꿈인지 확인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꼬집어 보기도 한다.
혼란에 빠진 사람들의 웅성임.
아스는 잠시 그들을 날카롭게 관찰하더니, ‘의태’하기 시작했다.
두려움 따위의 인간적인 감정이 존재하지 않는 그는, 이 상황이 그에게만 들리는 ‘목소리’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에 빠르게 도달했다.
그리고 다른 인간들과 비슷하게 행동하면서 추이를 관찰하는 것이 안전할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혼란에 빠진 사람들의 앞에, ‘그’가 나타났다.
저벅- 저벅-
한 점 빛으로 소실되는 복도 너머에서 드러난 테르카의 모습을 보고, 유명은 피부가 저릿저릿해졌다.
꽉 다문 입매, 감정이 깃들지 않은 눈빛,
걸어오는 발자국마다 흔적이 남을 듯이 진하게 퍼지는 기류.
가까이 다가올수록 그는, 질릴 정도로 이글거리는 존재감으로 겁에 질린 사람들을 찍어 누른다. 무자비 그 자체인 아븨칸인의 모습이었다.
‘역시, 데렉 맥커디···감정을 절제하고도 존재감을 뿜어내기는 정말 쉽지 않은데.’
격렬한 분노, 무너질 듯한 슬픔.
그런 감정 상태를 표출하며 이목을 끌기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지금 그는 그 어떤 감정 표현 없이도, 모두의 눈이 그에게 붙박힐 정도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최고의 배우라는 찬사가 아깝지 않다-고 생각하며, 유명은 그에 맞는 최선의 연기를 하기 시작했다.
‘저 위험한 생물’이 자신에게 주목하지 않도록, 이 인간들 사이에서 누구보다도 평범해 보이게 의태하는 것. 그것이 자신이 해야 할 연기.
그는 존재감을 더욱 더 내리누르며, 몸을 덜덜 떨기 시작한다.
그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은, 자신의 모습을 보고 떨림을 멈추지 못하던 ‘헤티 램’의 카피였다.
[너희들이 이 곳에 온 이유는, ‘아븨칸인’으로 의심받고 있기 때문이다.]그의 음성이 우렁-하고 흘러 넘친다.
그 목소리에 실린 힘으로, 의미가 귀가 아닌 뇌로 직접 들어오듯이 각인된다.
사람들이 그 목소리에 더욱 더 자지러지게 떨기 시작했고, 아스는 주변을 부지런히 관찰하며 자신의 상태를 그들에게 맞추었다.
[이 곳에 아븨칸인이 있다면 그는 자신이 지구인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말하라. 나는 너를 찾아 해칠 목적이 아니며, 밝히는 것은 너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도움? 글쎄···
자신을 찾기 위해 그 수많은 지구인들을 죽였다고? 손속이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상대는 자신보다 압도적인 강자. 그 속을 모른 채 자신을 드러내기에는 너무 위험성이 크다고 판단한 아스는 부지런히 자신의 정체를 숨겼고,
아무도 자신이 지구인이 아닌 것 같다고 나서지 않자, 테르카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으며 말한다.
[말하지 않는다면, 몸으로 말하게 하면 되겠지.]*
거대한 수조에 물이 채워진다.
생명체에게 가장 무서운 것, 죽음의 공포.
지금 테르카가 하려고 하는 것은, ‘후보자’들을 한계까지 죽음으로 몰아붙여, 실체를 스스로 드러내게 하는 방법이다.
투명한 와이어가 배우들의 등 쪽, 잘 보이지 않는 부위에 고정된다. 의료진과 비상구조 요원들이 지척에서 대기 중인 위험한 촬영이다.
이 파트는 시나리오 상에서 아주 중요한 파트이다.
아스가 외계인인 것이 처음으로 드러나며, 하지만 외계인이라는 것을 필사적으로 숨기는 파트.
팽팽한 긴장감이 끊어져선 안 되기에, 이번 단역은 그 위험성을 미리 고지하고 동의한 배우만을 뽑았고, 사전에 여러 번의 안전 교육이 진행되었다.
카일러가 유명에게 다가와, 다시 한 번 운을 띄운다.
[유명씨가 혹시 몸이라도 상하면 큰일인데요. 혹시 몰라서 유명씨와 비슷한 체격의 스턴트 배우를 대기시켜 뒀는데 지금이라도-] [감독님, 정말 괜찮습니다. 중요한 씬이잖아요. 진짜 중요한 씬이라 CG 안 쓰고 수중 촬영을 하기로 한 건데, 주연 배우가 빠지면 의미가 없죠.] [유명씨는 워낙 연기를 잘 하니까, 표정 연기를 잘 해서 따다 붙이면-] [붙여서는 직접 하는 것만한 그림이 절대 안 나올 거에요. 걱정마세요. 안전장치도 있고 안전요원들도 저렇게나 배치되어 있는데요.] [하아…] [사실 그렇게 엄청 위험한 것도 아니잖아요. 잘못돼 봐야 물 먹고 실신하는 정도지 죽을 위험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카일러가 한숨을 쉰다.
[알겠습니다. 한계까지 가기 전에 꼭 멈추세요. 너무 욕심내지 말고.] [네-]피비 테일러는 그 모습을 맹렬히 기록한다.
‘사실 지금 당장 쓸 수 있을만한 기사가 없다 뿐이지, 후일을 생각하면 소스가 넘쳐나긴 해.’
지금 이 촬영장에 발을 들인 기자는 자신 혼자 뿐,
가 제대로 뜨기만 한다면, 촬영장 비하인드 스토리만 다뤄도 꽤나 쏠쏠히 기사를 제조할 수 있으리라.
그건 자신이 전문으로 하던 스캔들 류의 기사는 아니겠지만, 어찌 보면 다른 분야에 진출할 기회가 될 지도 몰랐다.
‘그런데…진짜 미친놈들 아냐?’
피비는 오늘 데렉과 유명의 투샷을 보고 흥분으로 몸을 움찔거렸다.
유명이 연기한 ‘아스의 본모습’을 목격했을 때, 어떻게 저런 연기가 가능한지 이해하지 못했던 그녀는, 오늘 데렉의 ‘테르카’를 보고 그걸 재현하는 배우가 또 있음에 어이를 상실한 상태였다.
‘진짜 배우’라는 종자들은, 원래 저런 것일까.
저 둘이 앞으로 베일을 벗고 부딪힐 장면은 어떻게 뽑힐 것인가.
가슴이 두근두근 뛴다.
[자, 준비하시고 슛 들어가겠습니다-] [레디- 슛-]아븨칸인들이 ‘아스 후보’들을 발로 밀어 수조에 처넣는다.
순식간에 아스를 포함한 열 명의 사람들이 물 속에 잠겨 허우적대기 시작한다.
[사- 살려- 나…난 수영을 못-] [으아아- 어푸- 으- 어푸어푸-] [왜 이래!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순식간에 비명과 신음으로 가득찬 우주선 내부.
수영을 할 줄 아는 이들은 물장구를 치며 이러지 말라고 비명을 지르고, 그마저도 불가능한 인간들은 물을 먹으며 발악하듯 몸을 허우적댄다.
아비규환.
촬영중이고 안전장치가 되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물이 턱에 차오른 인간들은 공포심에 눈 앞이 마비되는 법이다.
배우들의 얼굴에는 연기가 아닌 진짜 공포가 들어찼고, 쳐다보기 상당히 몸서리쳐지는 장면이 부지런히 화면에 담기고 있었다.
그리고 피비는,
데굴-
물에 빠져 허우적대며 비명을 지르는 사이에도, 눈을 굴려 주변의 상황을 잽싸게 살피는 아스의 모습에 전율했다.
분명 숨이 턱에 차오를 텐데도 그 순간 그의 표정은,
완벽히 ‘이성적으로’ 보였다.
215 내가 도와줬다, 왜!
카일러는 손에 땀을 쥐었다.
유명의 저 표정-
그는 물에 빠진 후 한 박자 늦게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앞의 마디를 따라가는 도돌이표처럼, 주변의 동태를 확인하고 따라가듯이.
그것은 외계인들에게는 들키지 않지만 화면에는 잡힐만큼의 미묘한 간격이라서, 아스가 의태 중이라는 메시지를 분명히 전달해 주었다.
‘본능적으로 눈 앞이 깜깜해질 상황에서도, 타이밍을 귀신같이 맞추는 연기…’
아스는 숨이 막히는 듯 목을 잡고 허우적대다, 잠시 테르카의 시선이 다른 사람에게 머물 때를 맞춰 잽싸게 주변을 살핀다. 코와 입에서 부글부글 올라가는 물방울 사이로 비치는 어울리지 않게 이성적인 표정이, 화면에 극도의 긴장감을 부여한다.
‘확실히, 따다 붙이는 걸로 저 그림은 절대 안 나오지.’
유명이 고집을 부린 것도 이해가 간다.
물 속에서 저만큼의 연기가 나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테르카와 그의 부하는 허우적대는 인간들을 건조하게 바라보며 대사를 친다.
[대장님, 그런데 이 실험으로 아븨칸인을 구분해낼 수 있는 것은 확실합니까?] [아븨칸인은 의태가 가능하니까, 물에서 숨을 못 쉬어서 죽을 것 같으면 물고기의 호흡기관에라도 의태하겠지. 죽기 직전에 모습을 바꾼다면 그게 아븨칸인이라는 증거다.] [하지만, 인간의 모습을 고집하면 어찌됩니까?] [그럼…죽겠지. 하지만 죽을 때까지 미련하게 버티겠느냐.] [그래도 만에 하나 버틴다면, 우리는 수확이 없어지는 것 아닙니까.]그 말에 테르카는 침음하다가, 명령을 수정한다.
[그럼 만에 하나를 대비하여, 죽이진 않는다.]그들은 수조 속의 아스가 그 말을 들은 것까지는 모르고 있었다.
아스는 계획대로 충분히 버틴 후 호흡곤란으로 기절한 인간을 의태하고, 결국 들키지 않은 채 수조에서 건져진다.
[컷-! 배우분들 다 괜찮습니까?!]카일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느끼며, 유명은 눈을 감았다.
마지막에는 물을 많이 먹었는지 가슴이 거친 숨을 뿜으며 오르내렸다.
‘이상해, 기분이.’
물 속에서도 시야가 선명한 기분이 들었다.
연기였지만 연기가 아닌 것처럼, 정말 아스라는 존재가 된 듯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계산했다.
그리고, 가장 절체절명의 순간에, 유명의 머리에 떠오른 것은 그 무엇도 아닌,
‘헤티라니···’
‘사랑하니까 괜찮아’라고 말하던 그녀의 표정이 떠오른다.
아직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차오르는 숨처럼 턱까지 차올랐다.
옆에 앉아 그의 상태를 체크하는 의료진에게 몸을 맡긴 채, 유명은 무의식적으로 에르히를 찾았다.
*
피비 테일러가 광견병에 걸려 피아를 인식 못하고 물어뜯기 시작했다는 소문의 발단은, 그녀의 SNS에서 비롯되었다.
페이스북, 트위터의 선풍적인 인기로 1인 미디어가 태동하던 시기였다.
네임드 파파라치면서, 날카롭고 선정적인 필치로 인기가 높은 피비 테일러의 SNS는 꽤 많은 팔로워를 거느리고 있었다.
그녀가 최근 인기있는 가십거리에 대해 르포 취재를 선언하자, 인터넷은 금세 이 소식으로 달구어졌다.
-요즘 이 주제가 핫하니 대놓고 숟가락 올리시는데, 보기 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