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248
존 클로드는 오랜만에 영화제에 참석했다.
칸 측에선 무척 반가워하며 심사위원 자리를 제안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칸에 가려는 이유는 오직, 관심가는 영화 한 편 때문이었기 때문이다.
‘Mimicry….’
존 클로드는 의 트레일러를 본 후 충격에 빠졌다.
‘무슨 저런 연기가···’
처음보는 연기의 재목.
티비를 잘 보지 않는 그는, ‘아스’의 연기를 본 후에야 유명이 등장했다는 티비쇼의 클립들을 모두 찾아보았고, 그가 희대의 천재라는 것을 확신했다.
어떻게 저런 명확한 증거들을 두고 아직까지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의 기준에선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였다.
‘그리고…도대체 어떤 스토리인 걸까?’
그는 트레일러를 수십 번 돌려보았다.
주인공이 어떤 인간이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뒤의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 것인지…이렇게 예측하기 힘든 영화는 처음이었다.
무려 30분의 트레일러를 보고서도 말이다.
‘드디어 오늘···’
그는 고대하는 심정으로 뤼미에르 극장에 들어섰고, 곧 영화가 시작되었다.
*
첫 장면,
깜빡-
화면의 위아래가 아물어지듯 빛을 차단했다가 다시 받아들인다.
복도를 걸어가듯 화면이 살짝 살짝 흔들리고, 주변의 풍경이 뒤로 지나쳐 간다.
‘이것이···주인공의 시야인가.’
처음 그가 느낀 것은 색감의 차이였다.
트레일러에서 화면의 색감은 과거를 회상하듯 살짝 난색을 띠고 있었는데, 지금은 쨍하면서 조금 차가운 색감으로 바뀌어 있었다.
‘색감이 바뀌었다는 건…아스의 시야에선 세상이 차갑게 보인다는 뜻인가.’
전문가의 눈에는 사소한 것 하나까지 정보로 변환되어 들어온다.
클로드는 아스의 시야가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듯, 주인공이 되어 세상을 둘러 보았다.
저 앞 쪽에서 곱슬머리 남학생 하나가 자신을 보고 손을 번쩍 치켜든다.
그와 동시에, 무감각한 목소리 하나가 빠르게 중얼거렸다.
(프랭크 티모이. 같이 농구하자는 제안.)
음···?
그 목소리의 명령을 따르듯이, 곱슬머리 남학생이 큰 목소리로 물어온다.
[아스, 이따 농구 한 게임 어때?] [좋아!]‘뭐지, 예지능력인가?’
계속 이야기가 진행되며, 그것은 ‘예지’보다는 ‘통찰’에 가깝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아스의 ‘생각’은 누군가를 볼 때마다 짧게짧게 나레이션으로 삽입되었는데, 그의 통찰은 상대의 행동이나 반응을 대부분 정확히 예측해냈다. 간혹 틀릴 경우는, ‘새로운 데이터 입력’이라는 나레이션이 뒤따랐다.
그 기묘하게 감정없는 톤의 목소리와 실제 입 밖으로 발설되는 호감가는 목소리는, 묘한 대조를 이루어 섬뜩한 느낌을 자아냈다.
‘이런 뜻이었구나…아스의 속마음이 공개된다는 게···’
계속 지켜본다. 왠지 숨이 가빴다.
카메라 화면이 어느 한 곳을 흔들림없이 비추고 있을 때마다, 아스가 골똘히 관찰하는 것이 느껴져 잠시 숨을 멈추고 마음을 졸이게 된다.
이 평온한 광경에 이런 긴장감은, 무엇에서 오는 것일까.
영화가 시작되고 10여분 후, 그는 운동장에서 헤티의 음악소리를 감지한다.
[저 소리…안 들려?]갸웃-
아스의 목소리에 살짝 의아함이 섞일 때, 카메라가 아주 약간 기울었다.
존이 당황한 것은, 순간 자신의 머리도 갸웃 넘어갔다는 부분이었다.
정말로 아스의 몸에 갇혀, 그의 시야로 바깥세상을 바라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러면서, 그의 머리 속엔 수십 번을 반복 재생했던 트레일러 영상이 선명히 떠올랐다.
저 멀리 음악실을 바라보는 지금의 시야와, 당시 트레일러에서 그가 짓고 있던 의아한 표정이 마치 결합이라도 한 듯 퍼즐을 달칵 맞춘다.
(말이 되지 않는다. 이렇게 전형성이 전혀 없는 음악이 아름다운 것도, 그런데도 다들 존재감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희미한 것도. 누가 이런 소리를 내는 거지?)
처음으로 호기심이라는 ‘감정’이 살짝 드리운, 그의 나레이션.
그것은 그 때의 표정과 기막히게 들어맞아서, 존의 팔뚝에는 살짝 소름이 돋았다.
‘개봉 후에 트레일러와 본영상을 맞춰서 다시 봐야겠어…’
그런 계산을 할 수 있었던 건 잠시였다.
곧 그는 아무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영화에 몰입했으니까.
*
처음으로 시점샷이 뱅글 돌아가 아스를 비췄을 때, 그는 20대 초반의, 고등학생 때보다 훨씬 성숙하고 멋진 남자가 되어 있었다. 그는 그 모습으로 헤티를 데리러 간다.
헤티는 레슨 중이고, 음대 교수는 헤티에게 무척 앙칼지게 쏘아 붙인다.
[헤티 램. 내가 그 습관 고치라고 했지?] [그건 습관이 아니라, 제 나름대로의 해석-] [토달지 마! 제대로 소리라도 내고서 해석 타령을 해야지. 소리에 맥아리는 하나도 없어 가지고…쯧쯧.]교수가 레슨실을 나가버리고, 잠시 입술을 꼭 깨물곤 다시 연습하려는 헤티.
그 때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리며, 한 여학생이 방 안으로 고개를 쏙 들이민다.
[헤티. 남친이 데리러 왔어.] [아…고마워.] [도대체 어떻게 저런 남친을 꼬신 거야?]흐응…하며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는 동기 너머로 아스의 형체가 보인다.
그녀의 얼굴이 환해진다.
그들이 연애하고, 함께 살기 시작한 지 벌써 3년여가 지난 시점이었다.
그들은 집으로 함께 걸어가고, 아스가 걱정스런 눈빛으로 묻는다.
[괜찮아?] [딩동- 그 표정 무척 적절했어.] [하하···] [요즘은…기록 강박은 좀 나았어?] […아니.]‘기록…강박?’
그것이 첫 번째 힌트였다.
그리고 장면은, 회상 씬으로 이동한다.
‘뭐…뭐야…’
이어지는 장면들은 아스의 ‘의태’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씬.
경마장, 공사판, 보육원.
어느 곳에 가더라도, 그 곳에 가장 적절하게 ‘의태’하여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리는 아스.
그 모습에 존 클로드는 첫 번째로 입을 벌렸다.
그도 그럴 것이, 각 장소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도저히 한 명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개성과 제스처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각각 다른 작품의 인물이라고 해도, 저렇게 다르게 연기하진 못할 것 같은데···’
하지만 놀라는 것은 이제 시작이었다.
[그래. 이게 나야.] [……] [사람들은 어떤 모습이 자신인지를 어떻게 알지? 나는 한 번도 그것을 알고 있었던 적이 없어. 어떤 모습이면 이상하지 않은지, 그걸 늘 계산하면서 행동했지.] […언제부터···] [내가 기억이 있었던 순간부터.]그의 수상한 행동을 파악한 헤티는 설명을 요구하고, 아스는 자신의 모든 감정이 흉내에 지나지 않았음을 실토한다.
그럼에도, 그를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아스라는 존재를 끌어안는 헤티.
‘정말 사이코패스 설정이었나···?’
트레일러를 보고서 다들 입을 모았던 ‘아스 프리데터 사이코패스설’ 그것에 무게가 점차 실려가던 영화의 중반에, 드디어 사건이 터진다.
콰앙–
중간중간 비추던 테러 뉴스.
존은 그것이 아스가 저지른 일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었다.
영화에 ‘필요 없는’ 사건이란 없다. 이만큼 잘 짜인 영화라면 더욱 그렇다.
테러 얘기가 여러 번 나올 때부터, 영화에 조예가 있는 관객이라면 누구나 ‘테러가 누구의 소행일까’를 의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3분 이내에 이 곳은 폭파될 것이다.
‘뭐??’
아스에게만 들려온 수상한 목소리.
‘환청···?’
아니, 아니었다.
아스는 재빨리 헤티를 끌고 그 장소를 빠져나왔고, 폭파는 실제로 일어났다.
콰아앙–
그 소리를 들으며 그는 재빨리 자신의 예측을 폐기해야 했다.
‘테러가 아스를 노리고 벌어진 건가? 아니면 헤티를? 세계 곳곳에서 테러가 자행중이라고 하지 않았나?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존은, 그리고 관객들은 점점 혼란에 빠지고 있었다.
*
이번에는 음대를 향한 테러 예고.
가까스로 헤티를 지켜낸 아스와, 실제로 벌어진 테러.
폭파 씬은 워크브로더스의 역량을 갈아넣은 화면답게, 기가 질릴 정도로 장대했다. 실제 크기의 1/4정도의 미니세트를 만들고, 실제로 폭파시킨 결과물이었다.
헤티를 그렇게 괴롭히던 음대 교수며, 무시하던 동기들이 모조리 죽었다.
하지만 헤티는, 주변인들의 죽음에 세상을 잃은 듯이 오열했다.
테러 조사관들이 그런 그녀와 그녀의 연인, 아스의 주변을 맴돌지만, 그들이 테러에 관계되었다는 정황은 발견하지 못한다.
그리고 아스는, 납치당했다.
‘…외계인?!’
SF인지 몰랐던 영화에서 갑자기 우주선과 외계인이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하게 될까?
조금만 화면이 엉성해도, 연기가 부족해도, 피식- 웃음이 터지기 십상이리라.
하지만 영상 전체를 짓누르듯이 등장한 테르카의 포스는…관객을 그대로 상황에 몰입시켰다.
‘이런 식의 반전이…그래서 제목이 Mimicry-의태였구나…!’
이어지는 심문.
물고문에 가까운 행위에서, 배우들이 목을 부여잡고 괴로워하는 실감나는 장면들에 몸서리치던 관객들은, 물에 빠진 상태에서도 타이밍 좋게 테르카를 관찰해 가며, 괴로운 표정을 ‘연기’하는 듯한 유명의 ‘연기’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설마 저건 CG겠지? 저 배우가 물에 빠진 채로 저 연기를 해낸 건 아닐 거 아냐. 그런데 저렇게 CG를 정교하게 붙일 수가 있나?’
겨우 시험을 통과해 내고 집으로 돌아온 아스.
그는 헤티를 지키기 위해 당분간 멀리해야겠다고 결심하고, 극단적인 방식으로 이별을 고한다.
하지만···
[아스! 아스 프리데터!!] [얼굴이라도 보고 얘기하자, 응?] [어차피 너는 나를 사랑한 적이 없잖아.]헤티의 말에, 처음으로 충격을 받은 아스.
밝혀지는 진실과,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아스.]진실 앞에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강인하고 올곧은 헤티 램.
그 때 관객들은, ‘뭔가 밋밋하다’고 생각했던 이 여주인공의 진짜 가치를 깨닫는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보고, 아스에게 감정이 싹트는 순간.
‘아아···’
가장 능숙하던 남자의, 서툴고 미묘한 첫 감정.
아스의 눈물이 딱 한 방울만 떨어졌을 때, 객석은 소리없는 탄성으로 가득 메워졌다.
이즈음이 되어서는, 다들 정신없이 화면만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
다시 한 번 납치가 이루어진다.
이번엔 아스와 헤티, 둘이 함께.
테르카의 입으로, ‘아스의 파견’에 감춰진 진실이 밝혀지고, 아스의 마지막 도박이 시작된다.
[결국 맞췄군, 테르카.]존 클로드는, ‘의태’가 아븨칸인의 습성이라는 것과, ‘눈’이 의태한 모든 정보를 기록하는 기관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손톱이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꽉 움켜 쥐었다.
‘시선…시선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테마였구나. 그래서 초반 30분을 그렇게 배치했고, 아스가 헤티를 바라보는 시선을 스틸(*정지) 상태로 자주 강조한 것도 그런 이유로···!’
흡입기로 아스의 한 쪽 눈이 뽑혔을 땐, 다들 자신의 눈이 뽑히는 것처럼 인상을 찌푸렸고,
그것으로 지구의 정보가 낱낱이 밝혀질 것을 자신의 일처럼 염려했다.
하지만···관객들이 염려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헤티, 있잖아. 지난 번의 납치에서 기억이 조금 돌아온 후, 나는 바로 분리에 착수했어.] [분리···?]이어지는 그의 설명.
아븨칸인조차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보통 인간의 정보와 ‘너’의 정보를 양 눈에 나누었다는 말.
그리고…건네준 것은, 헤티의 정보.
‘다른 사람의 정보가 아니라 헤티의 정보? 어째서?’
그는 다시는 볼 수 없을 헤티를, 남은 한 쪽 눈에 하염없이 담는다. 그리고···
[잠시만 여기 있어. 나 물 한 잔만 마시고 올게.]무언가 불길한 예감은 현실로 일어났다.
부엌에 도착한 그는, 과도를 단단히 쥐고 단숨에 남은 한 눈에 틀어박는다.
‘으윽···!’
아븨칸인이라 해도, 피는 붉은 것일까.
그 피의 색깔마저 의태한 것일까.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내지른 동작, 끝까지 감기지 않은 눈꺼풀과 거기에 꽂혀있는 시퍼런 칼날. 그 옆으로 방울져 고인 새빨간 피가 주륵 흘러내린다.
빙글-
이를 악문채로, 그가 한 바퀴 칼을 비틀자, 자신이 쥐어짜인 마냥 관객들이 몸을 움찔거렸다.
[아스!!!] [쉬잇…괜찮아 헤티.] [괘…괜찮기는 이게…이게 무슨…흐어…흐어어어…병원, 병원에 가야···] [괜찮아, 쉬잇…나 잠시만···]고통스러운 표정의 아스가 숨을 몰아쉬자, 관객들은 눈물을 그렁거리기 시작한다.
밖에 나가면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가 터질 것이라는 것도 잊은 듯이, 양 눈을 내어준 아스를 보고 눈물을 마구 쏟았다.
[나 이제 장님이 되어 버렸는데, 이런 나라도 사랑해 줄 거야···?]그건, 처음으로 감정을 배운 존재의, 날카롭기 그지없는 첫사랑이었다.
초반, 강한 인상을 남겼던 풍뎅이와 강아지의 장면.
자비심이 없는, 그렇기에 동물이 두려워하는 아스의 본질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그 장면은 이 장면과 매치된다.
두 눈이 먼 채로, 헤티의 집에 멍하니 앉아있던 아스.
그를 볼 때마다 숨기 바쁘던 헤티의 강아지가, 의자 뒤에서 나와 살그머니 다가오더니, 그의 손등을 처음으로 핥는다.
할짝-
아스가 손을 더듬어, 작은 강아지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그리고, 마지막.
완전히 깜깜해진 아스의 시야로 들려오는, 그의 마지막 독백으로 영화가 끝이 난다.
[의태는 약한 생명체들의 생존 방식이다.하지만 아븨칸인은 우주에서 가장 강한 포식자인데도 의태한다. 가장 강해 보이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가장 약한 것일까.
내 옆의 여자가 가장 약해 보이지만, 가장 강한 것처럼…]
‘아아-’
존 클로드는 탄식을 터뜨렸다.
처음부터 끝까지 예술이었다.
기발한 시도, 과감한 반전, 치밀하게 설계된 미쟝센들, 깊이있는 메세지.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기적적인 연기.
그 모든 것이 혼연일체가 된 ‘작품’은 관객의 시선을 완벽히 휘어잡을만한 대중성까지 갖추고 있었다.
‘어떻게…이런 작품이···’
그는 양쪽으로 충격을 받았다.
한 때 정점을 찍었던 배우로서, 믿을 수 없는 레벨의 연기를 본 것에 대한 경외와,
현재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감독으로서, 예술성과 대중성을 완벽히 갖춘 ‘작품’을 본 것에 대한 감동.
그는 타이틀롤에 올라가는 주연 배우의 이름을 뚫어져라 눈에 담았다.
‘신유명···’
검게 변한 화면을 멍하니 올려다보고 있던 관객들이 하나 둘 일어난다.
그리고 박수가 시작된다.
짝짝짝짝짝짝짝짝—
칸 영화제에서 기립 박수는 일종의 관례이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감독, 배우, 스탭을 향한 존경과 격려의 표시로, 모든 영화가 끝난 후 행해지는 전통.
하지만, 같은 기립 박수라고 해도 그 온도는 다른 법.
짝짝짝짝짝짝짝짝—
사람들이 눈물을 그렁이며 끝없는 박수세례를 이어가는 장면을, 카메라가 위잉 돌며 담고 있었다.
의 첫 상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