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25
1학년 때는 평범했다는 소문이 상상이 잘 가지 않는 사람.
‘조…조금만 볼까?’
과제 을 연기했을 때, 천인만변하던 배우의 얼굴을 선호는 잊지 못한다. 선배들, 특히 호랑이 조연출의 넋이 나간 표정도.
자신도 그런 감탄을 받아보길 몰래 꿈꿔왔지만, 현실은 늘 쿠사리먹는 막내일 뿐이다.
그런 연기자의 대본은 어떨까···?
‘지저분하다…’
닳을대로 닳은 대본.
그가 공백과 뒷면을 가득 메운 깨알같은 글씨들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을 때,
끼익-
문이 열렸고,
고개를 든 선호는 얼음처럼 고정되었다.
*
“아, 저 선배님. 누구건지 확인하고 돌려드리려고. 선배님 대본이네요, 하하하.”
“…”
무심한 눈빛이 그를 내려다본다.
‘난 네가 한 일을 알고 있다’ 라고 추궁하는 표정.
“그..저..죄..죄송합니다! 너무 궁금해서 좀 읽어봤어요오···”
“어? 그럴수도 있지. 뭘 그렇게 당황해.”
별로 신경쓰지 않는 듯한 말투.
평소엔 조금 어려운 사람이라는 느낌이었는데, 말투는 의외로 서글서글하다.
그가 대본을 집어들고 나가려고 할 때, 선호는 눈을 딱 감고 외쳤다.
“선배님! 혹시 저 좀 도와주실 수 있으세요?”
“응?”
“저 지금 배역이랑 정말 안맞는 거 같아요. 그만둬야하나하는 생각까지 하고 있는데… ”
유명이 선호를 내려다보았다. 요즘 매일같이 지적당하는 후배.
유명은 평소에도 그를 상당히 눈여겨보고 있었다. 사실 그라기보다는,
그의 배역.
‘저 배역에겐 빚이 있지.’
남사장 부하2. 지난 생에서 유명이 맡았던 배역이다.
그 때는 정말 초짜였기에 열심히는 했지만 제대로 연기하지는 못했다.
저 녀석이라도 배역을 살려주면 좋겠다-라는 마음이 있었다.
유명은 시계를 보았다.
“집 어디야?”
“네? 아 저 하숙하는데요.”
“그럼 좀 늦게 들어가도 되지? 나랑 영화보러 갈래?”
“네??”
잠시 후 학교 두 사람은 학교 주변의 영화관에 도착했다.
유명이 끊은 티켓은,
03년 4월 개봉하여 한국 영화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영화, 이었다.
────────────────────────────────────
────────────────────────────────────
1%에서 시작해
“선호야. ‘연쇄살인마’라고 하면 뭐가 떠올라?”
“어, 넵? 어…글쎄요. 찢어진 눈에 서린 광기, 턱까지 내려오는 다크서클, 음 또…눈을 덮는 부스스한 머리? 뭐 그런 느낌 아닐까요?”
선호는 갑작스런 질문에 대답을 버벅였다.
“그렇지?”
그 한 마디를 마지막으로 유명은 입을 닫았고, 곧 영화가 시작되었다. 이라는 범죄실화를 재구성했다는 이 영화는 선호도 무척 기대하던 작품이었다.
132분의 러닝 타임은 순식간에 삭제되었다.
주연 배우의 클로즈업으로 끝나는 엔딩을 마지막으로 크레딧이 올라가자, 선호는 꽉 쥔 주먹을 겨우 풀었다.
“후아···”
“재밌었어?”
“네! 완전요. 연출도 배우들 연기도 와···”
“범인이 누군 거 같아?”
“어, 글쎄요…박해일? 증거는 못찾았지만, 뭔가 트릭이 있지 않을까요?”
“뭐, 범인의 실제 정체는 논외로 하고, 만약 박해일이 범인이 맞다면 위화감이 있을 거 같아?”
“아니요? 역시 그놈이었구나 할 거 같은데…아···”
선호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영화 직전에 유명이 던진 질문.
연쇄살인마의 프로토타입에 대한 물음의 의미를.
“선호야. 맞지 않는 배역이라는 건 없어. 소화하지 못하는 배역이 있을 뿐이야.”
“…”
생각에 잠긴 선호를 뒤로 하고 유명이 밖으로 걸어나갔다.
영화 막타임이 끝난 새벽 1시. 5월의 새벽공기가 청량했다.
유명은 근처 편의점에서 맥주 두 병을 계산하고 문 앞에 놓인 테이블에 앉았다. 선호가 우물쭈물 따라앉는다.
“남사장 부하2, 이름이 뭐야?”
“이철승이라고 지었어요.”
“이철승은 왜 남사장 밑에 들어왔지?”
“배운 거도 없고 먹고 살 길이 그런 일 밖에 없어서···”
“그 일 하기 전에는 무슨 일을 했지?”
“…”
“배우지 못한 이유는?”
“…”
“남사장에 대한 생각은?”
“아, 그건…겉만 번지르르해서 속이 시커먼 쌍놈···”
선호는 유명이 남사장인 점을 상기하고 슬며시 눈치를 보았다.
유명은 아랑곳않고 질문을 이었다.
“본인은 쌍놈 아니야? 철승이 남사장을 속으로 비난하는 이유는? 도덕관념이 남아있을까? 부하1과의 관계는? 김철수를 속으로는 어떻게 생각하지?”
차분하게 쏟아지는 질문들이 따끔따끔했다.
-배역에 임하는 배우는 그 배역의 인생을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이해해야 한다.
선배들이 흔히 하던 말이었다.
자신은 그 말대로 과거를 만들어보았다고 생각했다. 단역치고 과할 정도로 스토리가 있는 인물이라고. 하지만 유명의 질문은 너무나 세세했다.
괜한 트집이라기엔, 그 낡아 너덜너덜해진 대본을 보지 않았나.
“1%에서 시작해.”
“네…?”
“이 배역과 나의 닮은 점 1%. 잘 모르겠지만 이거 하나만은 나랑 비슷하다는 부분, 없어?.”
선호가 곰곰히 생각했다.
“어…사실 마음이 약한 거 같아요.”
“어떤 부분이?”
“여기, 부하1과 부하3, 김철수를 린치한다. 부하2 뒤에서 망을 본다. 이부분요. 사실 철승은 김철수를 연민하는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 말리지는 못해도 직접 때리고 싶진 않아서 망을 보는 걸 자처했던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오, 설득력있네. 짧은 지문으로 그런 해석을 해내다니 대단해.”
선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첫 칭찬. 그것도 존경하는 선배의 칭찬은 어린 배우의 마음을 무척 들뜨게 만들었다.
“좋아. 거기서 이 배역이 조금 공감이 되었다면, 점점 지평을 넓히는 거야. 공감하는 부분을 토대로 상상을 얹어서. 또 뭐가 있을까?”
“키가 작고 체구가 작은 데 컴플렉스가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그게 인정욕구와 깡다구로 승화된?”
“그래. 그리고?”
.
.
배역 분석은 오래도록 계속되었다.
거의 동이 트고서야 그들의 이야기가 마무리되었고, 밤샘에도 불구하고 선호의 얼굴은 반짝이고 있었다.
“그래. 그게 너의 이철승이야. 무리해서 어깨뽕을 넣거나 목소리를 굵게 낼 필요는 없어. ‘설득력있는 옷’을 입으면 돼. 알겠지?”
“네 선배님!”
선호는 존경심가득한 눈으로 유명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살인의 추억은 처음보신 게 아닌가봐요?”
“한 스무 번쯤 봤나···?”
선호가 말도 안된다는 표정으로 웃음을 터뜨렸고, 유명은 손을 내저으며 돌아섰다.
뒤에서 오도도 뛰어가는 발소리가 가벼웠다.
*
“저 놈은 사장님 오더에 왜 이렇게 군말이 많아.”
“우리가 한 번 밟아놓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