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256
“너무 혼자 호강하는 거 아니냐? 주인도 안 쓰는 수영장을.”
“주인이 잘 안쓰니까 내가 써 줘야지. 뭐든 안 쓰면 닳는 법이다~”
“어이고, 말이나 못하면.”
박유선은 순호를 구박하며 냉장고에서 오렌지 쥬스 한 병을 꺼냈고, 반순호는 ‘지도 잘 누리고 있으면서’하고 투덜대며 쇼파의 좀 더 끝으로 다가앉았다.
반대쪽에 앉아 유선이 묻는다.
“충분히 땄지?”
“응. 과분할 정도로. 생생한 영화 촬영 현장이 없는 건 조금 아쉽지만, 촬영장 비하인드 영상은 홍보부장이 충분히 구해줬고, 광고 찍을 때도 좋은 장면이 많이 나왔어. 유명씨 소개로 감독님들 인터뷰도 따고, 피비 테일러까지 만났으니 뭐.”
“컨셉은? 정했어?”
자료만큼 중요한 것이 컨셉이다. 적어도 반순호의 다큐에서는 그랬다.
그는 일관된 컨셉 하에 화면을 기깔나게 배치하기로 이름난 피디다.
지난 번 다큐 에서도, act + or = 연기하는 사람, 이라는 컨셉으로 좋은 평가를 얻었고.
“응. 이번 컨셉은, act, or이야.”
“지난 번이랑 같은 거 아냐?”
“달라 달라. 좀 더 말끔하게 나오면 알려줄게.”
그가 휘휘 손을 젓는다.
헐렁해 보여도 일할 때만은 깐깐한 인간이니 어련히 잘 하겠지, 라고 생각하며 박유선은 다른 걸 묻는다.
“그나저나 신유명 씨, 한국 들어가기로 했다며?”
“응. 그렇다던데.”
“기획사에선 그걸 알고 우릴 부른 거야? 유명씨 귀국 전에 양념치려고?”
“그런 것 같진 않아. 유명씨 혼자 결정한 거고 아직 문 대표는 모르는 것 같던데? 사실 굳이 그럴 이유가 없는 위치잖아.”
“그건 그렇지.”
그들은 유명이 헐리우드에서 어느 정도의 스타가 되었는지를 체감했다.
사실 한국에 다시 들어온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그래도, 유명씨 귀국하고 화제가 식지 않게 최대한 맞춰서 다큐 릴리즈시키려고. 우리한테도 그게 좋고, 유명씨에게도 조금이라도 도움될 테니까.”
“흐음···광고 나오기 전에 먼저 방영하긴 어렵잖아.”
“어차피 편집에 그 정도는 걸릴 거야. 네 말대로 광고 릴리즈와 맞춰서 온 시키면 좋겠다.”
“그건 괜찮은 방향이네. 잘 만질 자신은 있지?”
“나 반순호다? 그나저나 반응이 기대되네. 신유명씨 대단한 건 다 알겠지만, 진짜 어떤 위상인지를 제대로 보여주고 싶어.”
헐리우드에서 최고의 대접을 받고 있다, 라고 말해도 국내에선 그게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를 것이다.
왜 그렇게 자국 사람에게는 박한 잣대를 대는지, ‘그래봐야 헐리우드에선 반짝 몇 작품 띄운 외국인 배우 취급이겠지’라며, 깎아내리는 사람도 본 적이 있다.
신유명이 진짜 최고 중의 최고 대우를 받고 있고, 그럼에도 한국에 ‘돌아와준’ 것이라는 걸 순호는 똑똑히 보여주고 싶었다.
박영선이 순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남은 오렌지쥬스를 꿀꺽 삼켰다.
*
“호철아. 대표님 어디 계셔?”
“오늘은 밸론토에 계실 거라던데요?”
“내가 찾아봬도 되겠냐고 여쭤봐 줄래?”
광고 촬영이 끝난 다음 날, 유명은 유석을 찾아갔다.
밸론토 인수 후 고작 반 년이 지났는데도, 처음 왔을 때의 분위기와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로비에는 사람들이 꽤 북적거렸다.
유석은 외부에서 온 사람들이 프로필을 살펴보고, 이미지가 맞는지 즉석에서 인터뷰하거나 카메라테스팅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따로 오디션을 볼 시간이나 공간이 부족한 소규모 제작자들이 밸론토의 편리한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2,3층에 자리한 크고 작은 연습실들에선 다양한 레슨이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미리 신청할 경우 견학도 할 수 있었다. 영화관계자들은 물론이고, 배우가 되고 싶은 지망생들도 다수 참관을 온다고 했다.
배우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다양한 종류의 세미나도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유명도 한두 번 요청을 받아 세미나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물론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활기찬 밸론토의 분위기를 느끼며, 유명은 유석의 사무실이 자리한 층으로 향했다.
“어서 와요. 광고 촬영 잘 끝났다면서요?”
“네, 별 탈 없이 끝냈습니다.”
“별 탈 없이 정도가 아니던데? 그 박진희씨가, 회사에서 표정관리 못하고 팬심에 싱글벙글이던데요.”
“하하···”
“어쩐 일이에요? 당분간은 쉬기로 해놓고, 설마 또 바로 작품 들어가겠다는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겠죠.”
“그건 아닌데…저 한국으로 돌아갈까 해서요.”
깜빡이 없이 훅 치고 들어온 유명의 말에, 유석이 잠시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는 유명의 눈을 바라본다.
조용하고 의지가 확고한 눈동자. 그냥 내린 결론은 아닌 거 같다.
“흐음…한국에. 휴가를 말하는 건 아닌 거죠?”
“네.”
“아예? 완전히 헐리우드를 떠난다는 얘긴가요?”
유명이 생각에 잠겼다.
만약 미호가 이 몸에 들어온다면? 굳이 한국을 고집할 것 같진 않다.
미호라면 지금 자신이 이룬 것보다 훨씬 더, 세상을 놀라게 할 수 있을 테니까.
“꼭 그런 건 아닙니다만, 다음 작품은 한국에서 하고 싶어요.”
그 말에 이번엔 유석이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나쁠 것 같진 않네요. 한국에도 기다리는 팬이 많고, 유명씨도 가족들과 시간을 좀 보내는 게 좋을 테고. 안 그래도 몇 개월 쉴테니, 한국에 가 있으면 어떨까 물어보려고 했어요.”
“…감사합니다.”
언제나 유명을 배려하고 뜻을 지지해주는 유석이지만, 이번에는 좀 난감해하지 않을까 싶었다.
기획사가 한참 크는 중이고, 유명은 명실공히 Agency W의 간판스타이니까.
하지만 유석은 별 상관없다는 듯이 쉽게 동의했다. 하기야 매번 쉬라고 잔소리인 이상한 대표이니···
“혹시 또 정한 건가요, 다음 작품?”
“음…아직 완전히 만들어진 대본은 아니고, 제가 같이 쓸까 하는데요.”
“유명씨가요?”
그 말에 유석의 가슴이 다시 한 번 뛴다.
유명이 연기 뿐 아니라 작품을 만드는 쪽에도 재능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피터팬이 그랬고, 캐스팅보트에서도 심사위원들이 연출의 시각으로도 작품을 볼 줄 안다고 극찬했었지.
유명이 쓰고, 연기하는 새 작품이라···
“같이, 라면…누가 또 있는 겁니까?”
“우준호라고 학교 친구인데, 제가 처음 했던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대본을 각색했던 극작가예요. 지금은 극단 혜성에 소속되어 있어요.”
“…그럼 다음 작품은 연극입니까?”
유명이 그 질문에 상상치 못한 대답을 한다.
“네, 연극-”
“…!”
“그리고 영화. 같은 작품을 영화와 연극으로 동시에 만들어 보고 싶어요.”
영화와 연극을 동시에?!
유석의 표정이 펄쩍 뛴다. 놀란 눈썹이 유명에게 설명을 요구하고 있다.
유명은 장난기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재밌겠죠···?”
“아니 어떻게···”
“연출도 제가 할 생각인데, 투자하실래요?”
유석은 지금 소속사 배우에게 투자 제의를 받았다.
그의 예민한 촉이 강력히 곤두섰다.
‘이건 사야돼···!’
238 전체 그림을 봐 줄 사람
결단을 내린 유명은 행동이 빨랐다.
준호에게 연락해 대략의 이야기를 마친 후, 최대한 빠른 날짜를 잡았다.
돌아갈 날은, 2월의 마지막 날로 정해졌다.
귀국 전 날,
미국에서 만난 많은 친구들이, 유명의 집에 모여 환송회를 열었다.
데렉 맥커디, 나탈리 카센, 에바 도브란스키, 육미영, 카이 누넨, 프리야 록하트, 마일리 필론…
화려한 면면들이 집을 한가득 채웠다.
[형…그냥 여기 있으면 안 돼요?] [갔다 또 올건데, 뭘 영영 헤어지는 것처럼 서운해 해.]카이가 큰 눈에 눈물을 그렁거리다가 결국 섭섭함을 토로하자, 유명이 웃으며 카이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프리야는 요즘 뭐해요?] [저도 요즘 촬영 하나 들어갔어요. 영화에요, 헤헷.] [무슨 역할?] [어…팜므 파탈스러운 여성 캐릭턴데···] [프리야, 네가 팜므파탈?!] [내가 뭐! 내가 뭐!]프리야는 감정 표현이 많이 늘었다.
동년배 친구라 그런지, 늘 착하기만 하던 카이가 프리야를 짓궂게 놀리자, 이제 그녀는 버럭 소리치며 카이를 잡으러 다닌다.
무척 보기가 좋았다.
그리고 데렉은 무척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한 쪽에서 와인을 마시고 있다.
그 옆에 나탈리가 앉아 있었는데, 그녀가 말을 거는 족족 틱틱대는 것이 눈에 보였다.
유명이 그들의 옆으로 다가갔다.
[데렉.] [한국에 푸우가 꿀단지라도 숨겨 놨어요? 여기서도 찍을 게 많은데 왜 꼭 거기까지 가겠다고···] [거기가 제 뿌리잖아요. 이번 작품은 스스로를 좀 더 파고들 필요가 있어서요.] [지금보다 더? 도대체 뭘 하려는 겁니까?]데렉이 조금 흥미를 보이자, 유명은 그에게 커다란 떡밥을 던져준다.
[내용은 영화 나오면 보시고…제법 재밌는 걸 할 예정이에요.] [뭘요?] [영화와 연극을 동시에 만들어 보려고요.] […!]데렉이 등받이에서 몸을 일으켜 세운다.
데렉의 질문에, 유명이 난처한 듯 말한다.
[1인극이 될 거라서요.] [아예? 여주도 조연도 없이?] [네. 단역과 엑스트라는 있겠지만, 메인스토리의 진행은 철저히 주인공에게 몰아서 갈 생각입니다.] [또 어떤 괴물같은 걸 만들려고···]다들 공감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유명은 쑥쓰럽게 웃었다.
2년 2개월.
헤아려 보면 미국에 온 지 고작 그 정도의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참 오래도록 만난 사람들 같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쌓이는 시간이라는 것은, 꼭 물리적인 시간에 비례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날 밤, 그들의 웃음소리도 아주 오래도록 이어졌다.
*
2008년 3월 1일, 토요일.
엄청난 인파가 인천 공항을 뒤덮었다. 유명의 입국 소식이 알려진 것이다.
“유명아아…허어엉···”
“유명님 실물 드디어 알현하나요, 하악.”
“버텨요! 밀리면 안 돼!!”
정소진을 필두로, 갓네임드는 당당히 가장 좋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VIP 전용 게이트를 통과한다고 해도 한 번은 지나갈 수 밖에 없는 자리!
팬클럽 뿐이겠는가.
대한민국의 기자란 기자는 모두 모인듯 했고, 카메라란 카메라도 모두 출동한 듯 했다.
팬클럽이 아닌 일반 팬들, 혹시 연이 닿을까 해서 나와본 업계 관계자들까지, 공항이 미어 터질 것같이 붐비는 가운데, 드디어 유명이 걸어 나왔다.
차차차차차찰-칵!
우와아——!
자지러지는 듯한 비명소리, 박수소리, 환호소리와 셔터 소리가 한 데 섞였다.
유명은 조금 민망한 듯이 살짝 목 뒤에 손을 가져갔다가, 그대로 모자를 벗고 고개를 살짝 숙였다.
“으아아악!!”
“신유명!!”
“유명아 사랑해!!”
일차로 환호가 한 번 쓸고 지나가자, 다음은 질문 세례였다.
“신유명씨! 휴가차 방문하신 겁니까?”
“한국 팬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한국에서의 일정은 어떻게 되십니까? 언제 돌아가실 계획인가요?”
“혹시 차기작 계획이 어떻게 되십니까?”
귀가 멍할 정도로 질문 소리가 크게 터져나왔다. 생업이 걸린 기자들의 목소리는, 팬들의 환호에 버금갈 정도로 박력이 있었다.
옆에서 호철이 빨리 빠져나갈 것을 종용했지만, 유명은 눈물을 그렁거리며 해바라기처럼 서 있는 팬들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그들만 들을 수 있도록 나지막하게 말했다.
“늘 기다려주고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빠!!”
“유명 오빠, 사랑해요, 허어엉···”
“저 미믹크리 영화관에서 스무번 봤어요. 아스 너무 좋아요···”
유명은 그들이 귀엽다는 듯 작게 웃더니, 기자들 쪽을 돌아보고 입을 열었다.
“음…미국에 돌아갈 예정은 확실치 않습니다만···”
그리 크지 않은 그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분주하던 주변이 순간적으로 조용해졌다.
“다음 작품은 한국에서 할 예정입니다.”
그 말에, 등 뒤의 팬들 쪽에서 먼저 비명이 터졌다.
“꺄아아악–”
“어떡해…한국에서 찍는대. 나 잘못 들은 거 아니지?!!”
“아, 눈물날 거 같아. 신유명! 내 배우가 내 빛이다!! 신유며어엉!!”
한 발 뒤늦게, 기자들이 득달같이 질문하기 시작했다.
“신유명씨! 자세히 얘기 좀 부탁드립니다! 이미 결정한 작품이 있는 건가요?!”
“영화입니까 드라마입니까! 그것만 좀 얘기해 주세요!”
“기획사와 이미 협의가 된 부분인가요? 정말 확정입니까?!”
유명은 더 자세한 얘기는 하지 않고, 살짝 고개를 숙인 채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마지막 뒷모습까지,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계속해서 플래시가 터졌다.
*
“신유명!!”
2년 2개월만에 만나는 동생의 눈시울이 붉었다.
칸 영화제 직후에 유명의 부모님은 한 번 미국에 다녀가셨지만, 지연은 학교 출근 때문에 오지 못했다. 방학 때 한 번 부르려고 했는데, 유명이 계속 촬영이 있어 시기가 애매해 결국 오지 못했다.
“그 호화찬란한 집에 내가 가보기도 전에 귀국하면 어떡해…허엉…”
여전했다.
보고 싶었다는 말은 절대 안 하고, 다른 핑계를 대며 눈물이 그렁한 것에 대한 민망함을 감추는 것이 신지연답다.
늘 장난꾸러기같던 동생은 그 사이에 부쩍 아가씨 티가 났다. 역시 사회의 짬밥이라는 것이 무시할 바가 못 되는 모양이다.
{지연앙–!}
미호가 신나서 지연의 주위를 맴돌았다.
듣지도 못하는 그녀의 이름을 불러가며 신이 난 모습이 무척 귀여웠다.
예전에도 지연의 생기가 따뜻하고 강하다며 옆에 있길 좋아하더니, 다시 만나니 무척 반가운 모양이다.
“공항에선 어떻게 빠져나왔어?”
“어…대표님이 공항이 엉망이라 못 빠져나갈 거라고 헬기 준비해 주셨어.”
“헬기? 헤엘기이이?”
지연이 놀랐는지 딸꾹- 사레가 들린다.
유명은 미국에서 돈을 많이 벌었다. 한국에서 벌었던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미믹크리에서 나온 러닝 개런티가 어마어마한 비중을 차지했고, 미싱차일드의 계약도 역대급의 조건이었다. 들어오기 직전 찍었던 광고도, 박진희에게 모델료를 전해 듣고 기함했었다. 5개 광고주가 모델료를 나누어 냈다고 했었지.
별로 돈을 쓸 일이 없는 유명은 차곡차곡 저금하는 한 편, 집에도 상당한 액수를 보내드렸다.
그런데도 가족들은 변함이 없다. 어머니 아버지는 하던 장사를 계속 하시고 있고, 지연이도 열심히 학교에 출근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소소한 디테일에 매번 깜짝깜짝 놀란다. 귀엽게도.
딩동-
벨이 울린다.
장사를 일찍 접고 들어오신다던 부모님인가 하며 인터폰을 바라본 유명이 깜짝 놀란다.
“유명아!”
“유명아–!”
한성과 선하이다.
같은 아파트 옆 동에 사는 그들이, 유명이 돌아왔다는 얘기를 듣고 방문한 것이다.
유명은 인터폰 너머의 한성의 얼굴을 보고 조금 울컥했다.
너무 바쁜 나머지 꾹꾹 눌러놓았던 그리움이 삐죽 고개를 내민다.
얼마나 모두가 보고 싶었는지, 자신도 이제야 깨달았다.
문이 열리자, 들어온 것은 두 명이 아니었다.
“맙소사…얘가 하은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