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26
“사장님 허락없이 그건 좀.”
연습실.
부하 3인방이 나쁜 짓을 꾸미는 장면을 돌리고 있다.
박한상은 오늘따라 묘한 불쾌감을 느낀다. 주선호의 연기가 자꾸 튀는 느낌을 받는 것.
방금 전의 대사, 원래는 소심한 느낌이었는데 오늘은 자신을 견제하는 느낌이 든다. 아까도 자꾸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느낌이 들더니.
‘뭔가 고쳐 오려고 애는 썼는데 방향을 잘못 잡았네.’
스물스물 올라오는 불쾌감을 누르고, 장면 연습이 끝나면 선배답게 한 마디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연출부의 생각은 달랐다.
“선호 오늘 연기 좋은데?”
“그지?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선호야, 뭔가 바꿨지?”
“네. 여태 좀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뭘?”
“양아치, 깡패 그런 선입견에 빠져서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살리지 못했어요. 부하라고 다 똑같은 부하면 3명이나 있을 필요가 없을텐데요.”
“오올···”
준한이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어제까지 헤매고 죽상이던 녀석이, 뭔가 잡고나니 눈동자에 생기가 넘친다.
첫 연기 첫 배우는 이래서 가르치는 맛이 있다. 갑자기 탈피를 한다니까.
“방금 부하1을 보는 표정이 썩었던데, 이유가 있었어?”
“네. 부하2는 나름대로의 윤리 의식은 있습니다. 그래서 타고난 쓰레기인 부하1은 경멸한다는 설정입니다.”
타고난 쓰레기의 얼굴이 구겨졌다.
“호오. 설정의 근거는?”
“2막 2장, 6장, 7장. 부하들 등장 장면을 보면 부하2는 항상 한 발 물러서 있습니다. 거친 말을 많이 쓰지 않고, 비도덕적인 일에는 몸을 사리는 편입니다. 이 때까지는 그래서 캐릭터가 분명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오히려 확실한 캐릭터를 의미할 수도 있겠더라고요.”
“와아. 선호 정말 많이 컸네. 다 혼자 깨우친거야?”
준한의 물음에 선호가 우물쭈물했다. 어제밤 유명의 당부가 있었다.
-누가 도와줬냐고 물어보면 혼자 했다고 해.
무의식 중에 어느 방향으로 돌아갔던 고개를 정면으로 돌리고 선호는 작게 말했다.
“네. 혼자…”
하지만 철주는 그 찰나의 시선을 봐버렸다.
그는 그 쪽을 향해 못마땅한 시선을 던졌다. ‘또’ 신유명이었다.
*
“우와, 연출! 방금 기획장한테서 온 문자 봤어?”
“아니? 뭐?”
[가위바위보 이겼음! 오디우스가 월화수, 우리가 목금토!]오랜만에 철주의 미간이 펴졌다.
5월 마지막주 축제주간에 창천이 뒤쪽 공연을 하게 되었다는 기쁜 소식이었다.
“다행이네. 수요일 밤부터 목요일 낮까지 무대 세팅하려면 빡세겠지만 그래도 뒤쪽 공연이 백배낫지.”
“당연하지. 이제 포스터랑 티켓 인쇄 들어가도 되겠다.”
잠시간의 세레모니가 끝난 후 그들은 다시 진지하게 회의에 들어갔다.
오늘 연출부 회의에서 수정한 대본이 최종 대본이 된다.
이 과정에서 연기가 안되는 배우들은 분량이 확확 줄어들기 때문에 다들 상당히 두려워하며 결과를 기다리는 회의기도 하다.
“3막 2장에서 김철수 처리하라는 남사장 명령에 부하1이 반발하잖아. 그거 부하2가 하는 게 맞지 않을까?”
“한상이 대사를 선호한테 주자고?”
“어차피 원대본에는 없던 내용이잖아. 추가된 대사를 그나마 한상이 연기가 나아서 몰아준 건데, 오늘 보니 선호도 많이 나아졌어. 캐릭터랑도 그쪽이 맞고.”
“글쎄, 난 잘 모르겠는데.”
“원래 부하2가 좀 다른 타입의 양아치이긴 했잖아. 그래서 선호를 캐스팅한 거고. 영 글렀나 싶었더니 거기까지 혼자 파악해온 거도 가상하고.”
그 말에 철주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거 혼자 해온거 아냐.”
“어?”
“신유명이 거들었더만. 혼자 짰나 물어봤을 때 고개 돌아가는 거 못봤어?”
“그랬나? 그렇다쳐도 그게 왜? 캐릭터 짜는 거 선배들이 도와주는 거야 흔한 일인데.”
“걔는 선배가 아니잖아.”
철주의 애매모호한 말에 준한이 의문을 표했다.
“신유명은 00이고, 주선호는 02이고. 선배 맞는데?”
“아니, 걔도 연기 처음 하잖아. 같은 초연 동기 가르칠 군번은 아니지.”
‘하아 이 새끼가 또···’
준한이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꽉 막힌 데가 있는 놈이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신유명과 관련된 일에는 날이 바짝 서는 느낌이다.
둘이 무슨 일이 있는 것도 아닌 것 같고,
그렇다면 이러는 이유는···
시기, 경계.
대부분의 공연에서 주연을 독차지 해온 철주는, 자신의 전성기를 훌쩍 뛰어넘을 것 같은 차세대 주연감을 본능적으로 적대하는 게 분명하다.
눈치빠른 준한은 그것을 읽었다.
‘본인은 알지도 인정하지도 않겠지만···’
준한은 화를 지그시 누르고 철주를 설득했다.
“니 입으로 선호 연기 좋아졌다고 했잖아. 유명이가 도와줬다쳐도 니 말대로 처음 연기하는 초짜인데 초연 동기끼리 의논한거겠지. 그렇게 열심히 하는 거 기특한 일 아니야?”
“…”
“네가 연출이잖아. 사소한 거 신경쓰지 말고 극 전체를 봐. 캐릭터 개연성을 봤을 때 그 장면에 선호가 더 어울리는 건 너도 알잖아.”
과연 엄마(조연출)였다.
아빠(연출)라는 이름을 두른 큰 아들을 살살 꼬드겨 의견 관철에 성공했다.
주선호의 대사가 4줄 늘었다.
문제는 다음이었다.
“남사장 비중을 줄여야겠어.”
“뭐? 왜?”
“김철수가 남사장이랑 붙으면 자꾸 죽어. 내가 튀는 거 자제하라고 여러 번 디렉팅했는데 안 고치네. 이건 극 흐름에 마이너스인 거 너도 인정하지?”
준한이 머리를 짚었다.
“걔는 본인 배역 충분히 잘하고 있어.”
“주연에게 맞추는 것도 연기자의 역량이지. 혼자 튀는 게 잘하는 거야?”
“이 극에서 주연 김철수와 사상적으로 가장 대치되는 게 남사장이야. 남사장이 제대로 악역으로 표현돼야 주제가 더 살아나. 붙여놨을 때 주연이 죽어 보인다면 남사장 캐릭터를 죽이는 것보다 주연 캐릭터를 더 살리는 게 맞지 않아?”
“3주 남았잖아. 그게 되겠냐.”
“와…최철주 너 진짜 왜이러냐. 나 너한테 실망하려고 한다.”
“뭐? 지금 뭐라고 했냐.”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너 나한테 연출부 같이하자 그러면서 뭐라고 했냐. 얄궂은 전통들 신경쓰지 말고 최고의 작품 만들어보자 안그랬어? 도대체 신유명한테 왜 그러는데?”
“전체 밸런스를 보는 거 뿐이야. 내가 틀린 말 했어?”
“무난한 공연을 만들려면 틀린 말은 아니지. 근데 쟤 잘하잖아. 다른 애들이 못 따라가고 있으면 잘하는 애 칭찬해서 다같이 끌어올려야지. 왜 잘하는 애를 끌어내려서 밸런스를 맞추려고 해? 좋은 공연보다 욕안먹는 무난한 공연이 최종목표였어?”
철주는 이를 지그시 물었다.
준한은 웬만하면 연출 뜻에 맞춰주는 조연출이었다. 아니, 그런 척이라도 해놓고 나중에 결과를 슬쩍 바꿔놓는 처세가 타입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준한이 이렇게 강경한 것은 처음이다.
그는 조금 표정을 누그러뜨렸다.
“그럼, 해보고 안되면 니가 책임지고 밸런스 맞추게 해라.”
“…알았다.”
어느 쪽도 양보아닌 양보로, 그 날의 회의는 종결됐다.
그리고,
3주가 흘러, 축제가 시작되었다.
가운대 봄축제 연극공연 at betty hall
5/26~28 [햄릿] by 연영과 연극회
5/29~31 [출세몽] by 중앙 연극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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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스틸러
by 오디우스
-대성황-
공신력있는 연영과 타이틀에 검증된 주연 배우.
대부분의 회차가 만석을 기록했다는 말에 철주의 입술이 비틀어졌다.
남자다운 외모, 큰 키, 빠지지 않는 연기력.
창천에서 어렵지만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닌’ 2학년 2학기 주연이 바로 최철주, 자신이었다.
창천에서야 대단한 기대주 취급을 받았지만, 그의 마음 한 구석에는 채워지지 않는 열등감이 있었다.
최고와 겨루어 최고가 된 것이 아니라는 불안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