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261
전 국민이 기다리는 방송을 잊고있던 당사자가, 민망한 듯 작게 웃더니 다른 말을 꺼낸다.
[너 요즘 들어간 작품 있어?]“며칠 전에 끝났어요. 안 그대로 회사에서 오빠 환영회 할 때, 촬영 중이라 가 보지도 못하고…흐엉···”
[그러게. 나도 보고 싶네. 그럼 당분간은 휴식기야?]유명의 질문에, 그녀가 드디어 냄새를 맡았다.
이 사람, 용건이 있구나. 설마···!
“아직 부족한 게 많은데 휴식기가 어딨어요. 작품 찾으면서 계속 연습해야죠.”
[음…그런 생각이면 혹시 쉬는 동안 배역 하나 맡지 않을래?]“그거 혹시…오빠 작품···?”
[응. 지금 들어간 작품.]수연은 순간 튀어오르는 비명을 겨우 집어삼켰다.
유명의 작품이라니, 단역이나 엑스트라라고 해도 유명한 배우들이 줄지어 하겠다고 나설 자리다. 거기에 자신이 투입된다고?
아니, 배역이 없다고 해도 좋다. 유명의 연기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누구나 부러워 할 기회일 것이다.
“당연히 해야죠!”
[이번 영화가 거의 나 혼자 북치고 장구치는 영화라 비중이 크지 않아서 미안하긴 한데, 극의 내러티브상 중요한 축을 담당하는 인물이야. 나름 연기하기에 재밌는 캐릭터일 거야. 회사에는 내가 허락받고, 개런티는 서운하지 않게 쳐 줄게.]“무슨 그런 이야기를 하세요. 와…너무 좋아요 진짜.”
그녀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방금 전까지 다큐를 보며, 이 자신의 인생의 리즈시절이 될 거라 추억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런 기회가 올 줄은 몰랐다.
류신이 없는 것이 조금 아쉽지만···
[아참, 류신 형이랑 같이 작업하고 있어.]“네?? 들어왔어요?”
[응, 몰랐구나. 형 성격에, 네가 작품 중에 신경쓸까봐 연락 안 했나보네. 얼마 전에 완전히 귀국해서 우리 팀에 합류했어.]“류신 오빠도 출연해요?”
[그건 아닌데, 내가 하는 배역이 일인 다역이다 보니 연기를 받아줄 사람이 필요하거든. 그걸 류신 형이 해 주겠다고 해서. 대본 작업도 같이 좀 하고 있어.]“우와···”
꿈을 꾸는 것 같다.
유명과 류신과 자신이 다시 함께 작품을 하는 날은, 다시 오지않을 꿈처럼 느껴졌는데.
갑자기 그 꿈이 현실로 성큼 나타났다.
“저 지금 꿈꾸는 거 아니죠?”
[하하, 꼬집어 봐.]“배역의 이름은 뭐에요? 어떤 캐릭터인가요?”
[아직 대본이 완전히 안 나오긴 했는데…이름은 다인이야. 다중인격을 갖고 있는 여성으로, 주인공 신무성과 비슷하지만 해결 방식이 조금 다르지. 잠깐씩 등장해서 전개를 암시하거나 실마리를 던져주는 신비로운 캐릭터야.]“신비로운···”
[응, 네가 하면 잘 할 것 같아.]네가 하면 잘 할 것 같다.
담담하게 평한 그의 말에, 심장이 쿵쾅쿵쾅 뛴다.
벅찬 희열과 묵직하게 심장을 짓누르는 부담감.
잘 하고 싶다. 정말로 잘 하고 싶다.
“잘 할게요.”
[많이 컸네. 열심히 할게요가 아니라 잘 할게요라고도 할 줄 알고.]“…헤헷.”
[초고 보내주고, 수정되는대로 업데이트 해줄게. 일단 대사는 외우려고 하지 말고, 캐릭터 분석부터.]“넵!”
[크랭크인 전에 한 번 같이 보자.]“네, 감독님!”
유명이 작게 웃더니 전화를 끊었다. 수연은 팔을 한 번 꼬집어 보았다.
“아얏-”
아팠다.
*
다큐는 신유명이라는 배우를 새롭게 조명했다.
먼저 세계 최고의 배우라는 타이틀, 그 타이틀이 얼마만한 위력이 있는지를 모두에게 체감시켰다.
셀럽들이 앞다투어 등장해 유명의 대단함에 대해서 간증했다.
이번 공동광고에 참여한 광고주들 측과의 인터뷰에선, 그를 섭외하기가 얼마나 어려웠고 어떻게 이 실험적인 광고가 이루어졌는지, 영화같은 이야기들이 펼쳐졌다.
-진짜 최고 중의 최고인가 보네요ㅠㅠ
-알고 있었는데도 온몸에 소름이 쫙쫙 돋았어요. 1시간 내내 숨도 못 쉬고 봤습니다.
-여러분, 신유명 팬클럽 가입하세요! 저도 가입했네요.
└이 분 오늘 집에 인터넷 까신 듯…하이텔이에요 나우누리에요?
그리고 그 화려함의 offstage에 있는 신유명이라는 인간의 모습을 조명했다.
하나의 배역이 되기 위해서, 그가 어느 정도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지를 보여주었다.
다큐에서, 유명이 이런 말을 했다고 했다.
‘무대 위에서의 멋진 모습을 만들기 위해, 배우는 무대 뒤에서 90%의 멋지지 않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아니, 아니었다.
더 좋은 연기를 하기 위해 무대 뒤에서 뒹굴고 부딪히는 ‘멋지지 않은 시간’이, 무대 위에서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멋져 보였다.
마치 이번 광고에서, 구겨진 정장과 흠집난 시계를 찬 채 아이를 향해 다정하게 웃는 모습이, 저택에서의 완벽한 모습보다 훨씬 멋졌던 것처럼.
-정말 감동받았습니다. 다큐멘터리 , 그 이름이 너무나 어울리는 배우였습니다.
-어느 분야이든 진짜 최고들은 저런 노력을 하고 있겠죠. 저도 지금 공부하러 갑니다.
-다큐멘터리 내용도 컨셉도 너무 좋았습니다. 사랑합니다, 배우님.
반순호는 KBK 방송국장실에 불려갔다.
정규 편성된 예능을 빼고 다큐를 방영하는, 말도 안 되는 일을 해냈다. 심지어 예능국에서도 그것을 적극 찬성했다. 다들 신유명의 팬이었기 때문이다.
다큐의 전후 광고 슬롯이 초유의 가격으로 완판되었다. 시청률 또한 기존 방영되던 예능보다 훌쩍 뛰어, 동시간 압도적인 1위를 찍었다. 방송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을만한 일이었다.
“수고했어, 반피디.”
“네, 저 수고 많았습니다, 국장님.”
순호가 빙긋이 웃으며 생색을 내자, 국장은 껄껄 웃으며 순호의 등을 두드렸다.
사실 이번 방송은 다큐 1부에서 맺어진 반순호와 신유명의 인연으로 성사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순호가 큰소리를 칠 만도 했다.
“어떻게 저렇게 다큐를 잘 만들었나, 껄껄.”
“제가 잘 하기도 하지만, 소재가 워낙 좋아서요. 갖다대면 다 그림이니 누가 찍어도 잘 만들었을 겁니다.”
“그런가?”
“하지만 누구나 촬영을 허락받진 못했겠죠?”
“하하하- 그럼 그럼. 올해 연봉협상 기대해도 될 걸세.”
“감사합니다!”
그렇게 돌아온 신유명에 대한 화제성이 정점을 찍을 무렵, 충무로에는 모종의 파장이 일기 시작했다.
*
충무로의 한 커피숍.
“형, 혹시 그거 들었어요? 제작사 인수한 곳이 굿 엔터라던데요?”
“언제적 얘기를. 그거보다 요즘 실력있는 애들 살살 빼가는 데가 거기라는 얘긴 들었어?”
남자 둘이 나누고 있는 것은, 요즘 영화인 둘만 모여도 무조건 거론될 정도로 장내에 파다한 소문이었다.
바로 옆 테이블에서도 세 명의 여자가 같은 주제로 대화 중이었다.
“굿엔터가 신유명 차기작을 직접 제작할 생각으로 인수한 거라면서?”
“대박. 다들 거기 들어가려고 난리겠네.”
“글쎄…밍기뉴는 너무 규모가 작지 않나? 왜 그런 데를 인수했지. 감독은 누구래?”
“신유명이 감독이랑 배우를 같이 맡는다는 얘기가 있더라고.”
“어? 그건 좀 무리수 아냐? 연기 잘 하던 배우가 직접 감독하겠다고 욕심냈다가 말아먹는 흔한 클리셰···”
“그래도 신유명은 연출 감각 있다는 말이 워낙 많았잖아. 그리고 주요 스탭들은 헐리우드에서 데려올 거라는 말도 있던데.”
“영화 업계가 초토화되거나, 굿엔터가 초토화되거나, 둘 중에 하나겠네.”
영화계의 중론은 둘로 나뉘었다.
전자는 헐리우드 자본과 인력이 들어오는 것이 한국 영화계를 크게 발전시킬 것이라고 생각하는 쪽이었다. 우리 나라 영화판의 만성적인 열악한 제작 환경과 스탭 대우가 개선되리라 꿈꾸고, 신유명과 그의 드림팀 옆에 붙어 있기만 해도 한 단계 스킬업이 되리라 기대했다.
그런 꿈을 갖고 의 문을 두드리는 젊은 영화인들이 폭증했다.
그리고 후자는, 기존의 역학관계가 흔들리는 것을 우려하는 쪽이었다.
신유명에 대한 존경심이나 호의와는 별개로, 제 밥그릇이 걸린 문제에는 다들 예민했다. 그들은 이 영화가 잘 되면 헐리우드가 한국 영화시장을 집어삼킬 것이라며 두려워했고, 그래서 에 들어가는 것은 한국 영화판에 대한 배신이라는 이야기를 공공연히 퍼뜨리기도 했다.
그 와중에 이상한 소문이 한 가지 더 돌았다.
후자 쪽의 배후에, 누군가가 있다는 소문.
“그 쪽으로 얼굴 디미는 인간들은 블랙리스트에 올라서 영화판에서 나가리 될 거래.”
“이 쪽 바닥 큰 손에게 단단히 찍혔다던데. 대기업이라는 말도 있고”
그 소문이 단순한 소문이 아니라는 것을, 유명은 최루한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RRR-
“엇, 촬영감독님! 잘 계셨어요?”
[오오, 유명씨! 잘 있었어? 형이라고 불러 이제. 그래야 어디가서 그 신유명이랑 형동생 한다고 자랑 좀 하지.]발레리나 하이의 촬영감독이었던 남자는, 특유의 허허-하는 웃음과 함께 인사를 건넸다.
근황 토크를 잠시 나눈 후, 루한은 바로 본론에 접어들었다.
[들은 얘기가 좀 있는데, 유명씨도 알고 있나 해서.]“무슨 얘기요?”
[혹시 윤성 엔터랑 뭐 안 좋을만한 일 있어?]윤성 엔터테인먼트.
대기업 계열사로, 영화쪽 투자와 배급을 하는 큰 회사이다. 드라마 쪽에도 투자하고 있으며, 자회사인 TW 매니지먼트는 국내의 3대 연예기획사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이제 들어왔는데, 안 좋을 일이 뭐가 있겠어요.”
[그러게. 그런 소문이 돌아도 내가 유명씨를 아니까 헛소문이겠거니 했는데, 후배 한 놈이 그러더라고. 밍기뉴에 관심 가지고 알아보다가, 그 쪽으로 넘어가면 뒤가 안 좋을 거라는 협박 비스무레한 걸 들었다고.]“…누구한테요?”
[윤성 쪽 관계자래. 사실 비슷한 소문은 많이 들었는데, 이번엔 진짜 믿을만한 놈한테 들은 거라서.]“흐음···”
윤성이라···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 지금도 섭외된 사람들이 꽤 많고, 사실 주요 스탭은 이미 정해진 상태라 별 리스크는 없거든요.”
[그래, 그래도 조심해. 유명씨야 워낙 대스타니 별 일은 없을거라고 생각하지만, 한국에서 대기업 영향력은 무시 못하거든.]“네. 일부러 연락주셔서 감사합니다. 유념하고 있을게요.”
[그래. 나중에 도한이랑 한 번 보자구.]전화가 끊어진 후, 유명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윤성 엔터라는 곳과 자신은 인연이 없다.
‘혹시…대표님 쪽 문젠가.’
캐스팅보트 1화가 나간 직후, 트루먼쇼 연기를 보고선 유석이 해주었던 얘기.
그가 재벌가의 일원이라는 말.
아마도 그것과 관련이 있을 것 같았다.
‘대표님껜 얘기하지 않아야겠다.’
유석의 성격상, 자신에게 과도하게 미안해할 지도 모르니까.
유명은 어떤 상황인지 궁금하긴 했지만, 걱정은 되지 않았다. 자신이 아예 네임밸류가 없을 때라면 모를까, 지금이라면 소리소문없이 작품이 묻힐 가능성은 없다.
결국 작품의 퀄리티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것이 가장 핵심이다.
대본 작업은 마무리되었고, 내일은 위고가 입국한다.
이제 새로운 작품이 시작될 때이다.
*
[오, 유명씨, 류신. 둘이 같이 있는 그림 오랜만에 보네요.] [위고씨, 오신다고 수고 많으셨어요.] [이 작품 끝나고 나서, 요 멤버 그대로 내 작품 하나 하면 딱 좋을텐데.] [하하···]오자마자 성큼 자기 욕심부터 쏟아낸 위고가, 류신의 어깨를 툭툭 건들며 시비를 건다.
[브라이즈를 버리고 홀랑 달려갔겠다? 그렇게 신유명씨가 좋습니까?] [좋아서가 아니라 배울 게 있어서 온 겁니다. 좋아서 온 건 위고씨 같은데요?] […들켰나?]위고가 히죽 웃더니 트렁크를 류신에게 떠넘기고 휘적휘적 걸어간다.
류신이 참을 인을 새기며, 그것을 받아들고 걸었다.
[대본 봤습니다.] [어떠셨어요?] [대략 상상은 가는데, 그래서 더 상상이 안 가는군요. 뭐, 판도라때 보니 쪼면 쪼는대로 해내는 타입이라 무척 기대가 됩니다.] [제 기대치만큼 쪼아주시면 감사하죠.]유명이 전혀 밀리지 않고 웃으며 받아치자, 위고가 재미없다는 표정을 했다.
[아…신유명씨는 안 귀엽네요. 어떻게 그런 걸 요구할 수 있냐고 경악하는 표정을 보고 싶다~] [그 표정이 나오도록 분발해 주세요.] […아오.]그 때 유명은, 류신의 입가가 슬쩍 올라가는 것을 눈치챘다.
늘 자신을 괴롭히던 인물이 괴로워하니 속이 시원한 모양이었다.
[준비는 다 됐죠?] [네. 제 디렉팅을 공유해드리려고 콘티로 준비해 뒀습니다.] [바로 시작하죠.] [피곤하실텐데 하루 쉬시고 내일 보셔도-] [아니, 그 대본을 보고 내가 상상한 것과 유명씨의 그림이 일치하는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군요. 바로 시작합시다.] […저야 좋습니다.]위고의 포지션은 드라마투르그.
유명이 디렉팅 방향을 전달하고, 그는 화면에 그것을 충실히 구현하는 ‘감독의 눈’ 역할을 할 것이다.
뇌와 눈이 서로 다른 것을 보지 않게, 유명은 지속적으로 위고에게 감독의 시야를 공유해야 했다.
그들의 첫 회의가 시작되었다.
245 테스트 촬영
#Scene 1(오후 6시, 세미나)
한 남자가 강단에서 유려한 발표를 진행하고 있다.
현성: 해리성 정체감 장애에서 ‘주된 인격’을 파악하는 일은 중요합니다. ‘지배적 인격’은 의식을 통제하고, 다른 인격들에게 시간을 배당하기도 하죠. 실제로 프랑스에서 발견된 한 사례에서는, 지배적 인격이 훌륭하게 다른 인격들을 컨트롤해, 30년 이상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살아온 케이스가 있기도 했습니다. 치료 중에 진짜 인격이 숨을 경우, 치료가 상당히 어려워질 수 있으며…
자로 딱 잰 듯한 수트와 은테안경, 지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남자.
장내의 모든 사람들은 그의 발표에 빨려들 듯이 집중하고 있다. 발표 후 박수갈채 소리.
연단에서 내려온 남자에게 의장이 다가와 말을 건다.
의장: 이번에도 반응 좋은데? 신교수는 젊은 사람이 논문도 잘 쓰고, 강연도 참 잘한단 말이야. 한국 기초 심리학계의 미래가 신교수한테 달렸어.
(현성의 얼굴에 잠깐 스치는 만족스런 미소)
현성: 과찬의 말씀입니다, 의장님.
의장: 케이스 스터디는 안 하나? 방금 전 발표를 듣고 나니까, 우리 대학 쪽에 오는 내담자(*상담을 위해 방문하는 사람)가 하나 떠오르는데 한 번 보내볼까?
현성: 어떤 내담자인가요?
현성의 눈에 깃드는 욕심. 클로즈업한 눈동자 속으로 빨려들듯이 black 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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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류신, 준호, 위고가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다.
세 명의 앞에는 한글로 된 대본이, 위고의 앞에는 영어로 번역된 대본이 놓인 채로, 유명은 디렉팅의 방향을 이야기하고 있다.
[영화의 중반 정도까지, 주로 이 이 인물의 시선으로 스토리가 전개됩니다.] [그런 것 같더군요. 새로 나타난 ‘유성’이라는 인격이 묘하게 불편하게 느껴져요.] [네. 관객의 시선을 기존 인격의 시선과 일치시켰죠. 그래서 의도적으로 침입자의 느낌이 들게 했습니다. 뭐 사실 침입자가 맞기도 하구요.]화면의 시선을 누구에게 일치시키는가.
영화에서 이것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얼핏 객관적이어 보이는 사각형의 프레임은, 의도적으로 정보를 잘라내고 분류하여 보여주는 ‘주관적 틀’로서 기능한다.
프레임을 ‘유성’이란 인격의 탄생에 맞추었다면, 관객들은 유성을 응원하여 다른 인격들이 빨리 죽기를 바라게 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기존 인격들에 대한 정보를 먼저 제공한다. 단순히 다중인격을 가진 인간의 내부에서 인격들이 통합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살인’이라는 충격을 주기 위해서 먼저 각 인격이 각각의 인간이라는 것을 납득시키는 것이다.
[현성이 심리학 교수인 것은, 스스로를 치료하기 위한 의도가 있었나요?] [네. 하지만 그것뿐만은 아닙니다. 인격들 중에 가장 지적이고 사회적 성공을 갈망하는 인격인만큼, 교수라는 직함은 그에게 자아 실현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하루에 쓸 수 있는 시간이 8시간, 수면을 제외하면 6시간으로 제한되어 있는만큼, 내면의 집에서 머무는 시간동안 사색하는 것으로도 일정한 성취를 이룰 수 있는 학문을 택한 것이죠. 그게 심리학입니다.] [오, 그건 일리있는 포인트군요.]위고가 재미있다는 듯 눈을 빛낸다.
[그래서 현성은 스스로를 어떻게 분석했죠?] [일반적인 해리성 정체감 장애로는 해석되지 않는 특이케이스입니다.] [흠…하기야, 이렇게 인격끼리의 인지가 명확하고, 동등한 파워 밸런스를 가지는 경우를 해리성 정체감 장애로 보기는 어렵죠.] [그렇습니다. 사실 우리가 하고싶은 이야기는 정신질환에 대한 것은 아니잖아요?]유명이 위고에게 디렉팅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를 주지시킨다.
[결국 메세지는 모든 인간에게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다양한 욕망들간의 갈등이니까요. 그래서 톤이 중요합니다.] [톤이라면…] [정신질환자로 보여서는 안 돼요. 세 인격 모두 매우 정상적인 각각의 인간으로 그려내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네 번째 인격인 유성도 마찬가지죠.] [유성은 초반에는 좀 사이코패스같은 느낌 아닌가요?] [서스펜스를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일 뿐입니다. 초반부에서 후반부로 갈수록 시선을 서서히 옮겨야죠. 어느새 유성마저도 이해하고 있도록.]위고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이해하지 못해서 질문한 것은 아니다. 유명이 대본의 어디에서 어디까지를 계획하고 썼고, 얼마나 정교한 연출적 시야를 가지고 있는지를 확인한 것이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정리되어 있는 듯 거침없이 흘러나오는 유명의 생각은, 위고가 대본을 보며 받았던 느낌에 전혀 모자람이 없었다.
‘오케이. 일단은 인정.’
위고 또한 연출적 재능이나 욕심으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운 인간.
유명의 제안을 승낙하긴 했지만, 그의 능력이 기대 이하인데도 거기에 맞출 생각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