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262
하지만 유명은 위고의 첫 번째 시험을 완벽히 통과했다.
‘그렇다고, 무조건 따르겠다는 건 아니지. 계속 두고 봅시다.’
위고가 씨익-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
유명은 얼마 전 새 번호를 하나 만들었다.
예전 번호로는 각종 인터뷰 요청에서부터 개인적인 청탁, 유명의 인기를 이용하려는 정치권의 연락들이 줄줄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기존의 전화는 매니저 호철이 관리 중이고, 가족 및 매우 밀접한 지인들에게만 새 전화번호를 알려 주었다.
RRR-
그렇기에 이 번호를 알아낸 것만으로도 상대가 심상치 않은 인물임을 알 수 있었다.
[신유명씨, 우리 한 번 만나죠.]“누구신지요?”
[나, 문유석 엄마되는 사람이에요.]그렇게 이 만남이 이루어졌다.
아이보리색 투피스 원피스를 입은 중년 여인의 첫 인상은, 고상하고 우아했다.
최고급으로 맞춘 것이 분명한 옷을 입고, 누군가가 만져준 것이 분명한 화장과 머리를 한 여자는, 표정마저 인위적으로 정돈되어 있었다.
“국내외에서 매우 활약 중이더군요. 팬이에요.”
“감사합니다.”
“내가 신유명씨가 참 마음에 들어서, 직접 케어하고 싶은데 말이죠.”
“…잘 못 알아듣겠습니다만.”
“말을 돌려서 하는 걸 싫어해요. 미사여구로 포장한다고 넘어갈 사람도 아닌 것 같고 성공을 미끼로 유혹하기엔 이미 성공한 사람이니, 협박을 한 번 해보죠.”
뱀같이 차가운 눈빛과 달리, 목소리는 차분하고 부드럽다.
나긋한 어조.
협박을 한 번 해보자는 얘기를, 그녀는 아주 편안하게 얘기한다. 타인의 목숨을 쥐고 흔드는 것이 일상인 사람처럼.
“해 보시죠, 어디 한 번.”
유명은 입 가에 미소를 살짝 띠고, 등받이 깊숙이 몸을 묻었다.
유명의 반응에 그녀는 의외라는 눈빛을 하며 말을 이었다.
“미국에서 하는 활동은, 그래 솔직히, 내 손이 안 미치는 일이죠. 하지만 한국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요. 이 나라는 재벌의 눈에 나고서는 살아남기 힘든 나라거든.”
“…저도 그럴까요?”
“정상에 섰던 많은 스타들이 그렇게 사라져 갔죠. 유명씨쯤 되면 쉽진 않겠지만, 내가 정말 하고자하면 못할 일은 없어요. 그리고 난 그렇게 할 생각이고.”
좋은 얘기가 나올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유석의 입에서 들은 그녀는, 칭찬받고 사랑받고 싶은 본능을 이용해, 어린아이를 교묘하게 컨트롤했던 사람.
따로 연락해 왔을 때 거절하지 않았던 것은,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직접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직접 본 그녀는 보통이 아니었다.
유명이 수락하면 문유석만을 뭉개고, 거절하면 둘을 함께 짓밟겠다는 의지.
대놓고 ‘협박’ 운운하는 것도, 자신의 권력과 그것을 활용할 방법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사람의 자신감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왜 이렇게까지? 문유석이 절대 성장하면 안 되는 이유가 있는 것일까.
조금 더 바닥을 들여다보자.
유명은 몸을 앞으로 당기며, 표정에 ‘숨길 수 없는 야망’을 옅게 깔았다.
“받아들인다면 저에게 무슨 이득이 있습니까?”
“흐음…생각보다 말이 통하는 분이네?”
그녀가 야릇하게 웃었다.
“돈이야 꽤 벌었겠지만, 말하자면 유명씨는 ‘벼락스타’잖아요? 아직 보증서가 없는 상태랄까. 하지만 태원과 윤성이 뒤에 서면, 노는 물의 ‘급’이 달라질 거에요.”
“급이라…”
“재벌 2세들, 한국을 움직이는 큰 손들, 그런 사람들의 이너 서클에 들어갈 수 있죠. 족보없는 서자 출신은 결코 줄 수 없는 메리트랄까.”
보증서. 족보.
그녀는 사람을 마치 동물처럼 족보유무로 분류했다.
이런 사람들은 전혀 말이 통하지 않는다. 자신의 기준 밖, 자신의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것은 모두 허상으로 치부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니 실력으로 이미 자신을 증명한 사람에게, ‘족보’를 줄 수 있다는 헛소리를 하는 거겠지. 자신이 그런 것처럼, 누구나 그것을 무조건적으로 탐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유석이 어릴때부터 이런 여자에게 무시받고 차별받으며 살아왔을 생각을 하니, 피가 끓어오르는 기분이었다.
“지금 뭘 잘못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
“그 쪽은 모르겠지만, 저는 개가 아니고 인간이라서요.”
“…지금 뭐라고 했나요.”
홱 바뀐 유명의 자세에서 경멸을 읽고, 그녀가 믿기지 않는 듯 눈을 치떴다.
감히 자신에게 건방진 소리를 하다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보증서라면 제가 발급해드리는 게 맞지 않을까요? 이 쪽은 세계에서 통하는 보증서인데.”
“…후회할 거에요.”
“저도 연기를 ‘취미로만’ 하게 해주실 건가요?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사업은 ‘취미로만’ 해라.
자신이 무수히 유석에게 내뱉었던 말이 유명의 입에서 떨어지자, 그녀의 정돈된 표정이 무너졌다.
그녀는 모멸감어린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섰고, 유명은 앉은 채로 그녀를 배웅했다.
탁-
그녀가 나가고 난 뒤에야, 유명의 표정이 씁쓸하게 바뀌었다.
‘대표님 어린 시절이…참 각박했겠구나. 이번 작품을 꼭 성공시켜야해.’
언제나 방법은 한 가지.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것 뿐이었다.
*
4월 말, 영화가 크랭크인했다.
“영화 대봐악 나게 해주쎄요오!”
위고가 이상한 발음으로 소원을 빌며 돼지머리에 넙죽 절을 하자, 와르르 웃음이 터졌다.
감독 대역은 프랑스인이며, 촬영 감독과 VFX팀, 무대미술팀장은 헐리우드에서 섭외된 인물들.
유독 외국인 비율이 높은 이번 스탭진들에게 이국적인 추억을 만들어주기 위해, 일부러 만든 고사 자리였다.
“섭외된 인물들 진짜 대박이다, 그치?”
“촬영이나 무대미술은 감각이 크게 좌우한다 쳐도, VFX(*Visual Effect, CG)는 최신 기술로 먹고 사는 파트인데, 저쪽 팀은 진짜 노났네.”
“그러게. 니사 펄스네 팀에서 일했다고 이력서에 쓰면, 해외에도 프리패스로 취업될 거 같은데?”
제작사 의 직원들은 헐리우드 영화를 방불케 하는 쟁쟁한 인물들을 보고 작은 목소리로 소근거리고 있었다.
외부의 이런저런 구설수에도 불구하고, 스탭들의 단결력은 강했다. 신유명이라는 전설적인 인물의 실물을 매일같이 보고 있었으며, 영입되어 오는 인물들마다 실력있기로 유명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고사 끝. 바로 첫 촬영 가겠습니다아~]“바로 첫 촬영 진행하겠습니다.”
촬영장에는 여러 명의 통역이 상주했다. 주요 스탭진들끼리는 대부분 영어가 통했지만, 나머지 스탭들 중엔 영어로 의사소통이 안 되는 사람이 더 많았다. 위고의 말을 전하는 통역의 음성을 듣고, 스탭들은 바쁘게 촬영 준비를 시작했다.
오늘의 첫 촬영은, 무대미술팀이 지난 수 주간 작업해 둔 .
기본 구조는 40평대 아파트와 비슷하다.
아무리 의식 속에 있다고 하더라도, 아니 의식 속에 있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이 떠올리는 ‘집’과 유사할 거라는 준호의 발상이었다.
방 네 개, 거실 하나, 부엌과 화장실도 있지만 쓰임새는 없다.
네 개의 방은 각각의 인격이 하나씩 차지한다.
현관 문 밖을 나가는 것이, 곧 ‘몸을 차지하는’ 신호. 각각의 인격들은 배정된 시간에 맞추어 출근하듯이 문을 나서고, 퇴근하듯이 집으로 돌아온다.
“조명 라인 삐져나왔어! 거기도 빨리 붙여!”
“네!!”
마치 모델하우스같이 지어진 아파트 형태의 스튜디오 전체에 녹색 천이 꼼꼼히 붙어 있다.
벽면과 바닥에도, 안에 들어있는 가구에도, 모두 다 녹색 처리가 되어 있는 것이다.
미술팀에선 어떤 공간이든 녹색이기만 하다면 합성에는 문제가 없다고 했지만, 유명은 배경이 될 구조와 똑같은 구조를 만들 것을 지시했다.
‘결국 그게 시간을 아끼는 길이 될 거에요.’
미술감독은 유명의 의도를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그의 뜻을 따랐다.
촬영은 ‘현성’이 먼저이다.
교수답게, 몸에 딱 맞는 수트와 안경을 착용한 유명이 위고에게 다가온다.
[오~ 잘 어울리네요, 구웃!] [감사합니다.] [그럼 한 번 들어가볼까요? 대사마다 매번 끊기는 번거로우니, 2초? 3초 정도 텀을 주고 다음 대사로 넘어가면 되겠죠?]현성-은성-현성-민성-현성-은성-민성-현성.
대사가 이런 순서로 이어진다면, 현성의 대사를 조금씩 텀을 주고 쭈욱 하라는 뜻이다.
순서대로 하자면 현성 다음에 은성이 되겠지만, 그러면 분장과 의상을 모두 바꾸어야 하는데, 한 대사마다 세팅을 다시 할 수 없는 노릇이니까.
하지만 유명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 그럼 분장을 매번 바꿔가면서 한 대사 한 대사를 따려고요? 그렇게 해선 촬영에만 몇 년 걸릴 겁니다.] [그냥 끊지말고 쭈욱 찍어 주세요. 대사 텀을 계산해서 연기하겠습니다.] [ㅁ…뭐라고요?]위고가 당황한 듯 살짝 말을 버벅였다.
[말도 안 돼요. 그렇게 타이밍을 맞출 수는-] [가능하도록 연습했습니다. 단번에 될 거라고 보장은 못하겠지만, 아마 곧 맞춰질 거에요.] [아무리 유명씨라도 그건…]유명이 담담하게 위고에게 말했다.
[논쟁보다 검증이 빠르겠네요. 테스트 촬영 해보시겠어요?]246 똑같은 얼굴의 세 사람
현관 문이 열리고, 현성이 들어온다.
거실에 앉아 있던 두 남자가 그를 쳐다본다.
똑같은 얼굴의 세 사람.
이 곳을 현성의 실제 집이라고 생각했던 관객들은 순간 당혹할 것이다. 일란성 쌍둥이인가?
그리고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이 곳이 의식 속의 공간임을 알게 되겠지.
아직 그 화면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세 인물 중, 첫 번째 인물의 연기가 지금 시작된다.
“다녀왔어.”
집 안에 들어서며, 남자가 인사를 던진다.
조금 지친 듯 안경을 벗으며, 쇼파 쪽으로 시선을 슬쩍 던진다.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들어오며 2초 47의 공백.
“덕분에. 세미나에서 먹었어. 오늘 시간 교대해줘서 고마워.”
2인용 쇼파의 한 쪽에 앉아있는 것이 분명한 누군가를 향해, 그가 감사의 인사를 건넨다.
물론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그가 쇼파쪽으로 걸어가 2인용 쇼파의 나머지 한 쪽에 앉는 동안, 5초 23의 공백이 유지된다.
“응. 2시간 후에 나가면 돼.”
쇼파 옆 자리의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답하던 그가, 건너편 1인용 쇼파 쪽으로 고개를 휙- 돌린다.
깜짝-
다들 자신도 모르게 1인용 쇼파를 쳐다 보았다.
뭔가 시비가 걸린 것처럼 현성이 싸늘한 얼굴로 그 쪽을 노려보았고, 잠시 후 다시 옆자리로 눈을 돌린다. 조금 풀어진 얼굴.
9초 79의 시간 후에, 현성이 다시 입을 연다.
“그 놈은?”
1초 83.
“지금 처리하자니까.”
4초 53.
“어리긴. 몸집은 우리와 똑같잖아.”
21초 73.
그 동안 현성의 표정은 몇 차례 바뀌었다. 쇼파 옆자리에 시선을 두며 우려섞인 표정을 짓기도 하고, 건너편을 보며 예리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무엇을 기준으로 연기를 하는 걸까.
다들 유명이 주장한 촬영 방식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숨을 멈추고 그의 연기를 지켜보고 있다.
위고는 촬영장과 모니터와 초시계를 번갈아 들여다보며 미간에 주름을 가득잡았다.
자신도 무모한 것을 요구하기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운 감독이지만, 이런 것을 상상해 본 적은 없었다.
만약 이것이 가능하다면, 그야말로 연기의 신이 아닐까.
“컷-”
연기하던 배우가 직접 컷을 불렀다.
그리고 그는 바로 다음 지시를 내렸다.
[원래라면 의상 분장 체인지해야 하지만, 테스트 촬영이니 바로 take 2로 가겠습니다. 은성 파트 갈게요.] […좋습니다.]위고는 아직도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
유명은 2인용 쇼파의 한 쪽에 앉았다.아까 현성이 자주 쳐다보던 바로 그 자리다.
카메라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그는 현관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그리고 살가운 웃음을 짓는다.
“현성아! 밥은 먹었어?”
배낭여행 중, 미호의 을 보았을 때, 유명은 숨이 탁 막혔었다.
‘말도 안 돼.’
이 연기법을 위해서는 극도의 멀티태스킹이 필요하다.
한 쪽 머리로는 현재의 인물에 몰입하면서도, 한 쪽 머리로는 반대쪽 인물이 되어 대사의 타이밍을 정확하게 계산해내야 한다.
아니 대사 타이밍 뿐일까.
서로 마주보는 시선의 각도, 상대의 동선 변화에 따라 이동해야 할 시선의 위치, 적절히 배치해야 할 목소리의 음량, 고려해야 할 것이 수십 수백가지가 넘었다.
몰입은 감정의 영역이고, 계산은 이성의 영역이었기에, 함께 구동하기가 더욱 어려웠다.
‘하지만 미호는 이능을 사용하지 않고 연기했다고 했지. 그럼 나도 할 수 있다는 얘기야.’
그렇게 자신과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대본 회의를 하지 않는 시간에, 유명은 온종일 연습에 목을 매었다.
언제나 최선을 다해서 연습했다고 생각했지만, 이번에는 절박함이 달랐다. 이것은 좀 더 잘하느냐 못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해낼 수 있느냐 없느냐로 나뉘는 문제였으니까.
‘이걸 해내지 못하면, 시간 내에 작품을 만들지 못해.’
유명이 잡은 최대한의 촬영 시한은 4개월.
그 안에 촬영이 끝나야만, 연극 연습과 영화 편집을 동시에 준비해서 12월에 개봉과 개연을 할 수 있다.
4개월 내에 촬영을 끝내야만…타임아웃되는 2월 말까지, 맥시멈 2달 정도 연극 공연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대사 하나하나마다 조각조각 잘라 붙여서는, 시한 내에 절대 촬영을 완료할 수 없다.
피를 토하는 시간들이 이어졌다.
때와는 달랐다. 당시엔 녹음된 음악과 대사가 정해진 시간에 흘러 나왔고, 스스로의 대사만을 빈 시간 속에 타이밍맞게 끼워넣으면 되었다. 그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이번에는 비교가 불가능할 만큼 어렵다.
반대쪽 인물의 감정까지 느껴가며 타이밍을 조절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닝…그렇게 미련하게 하지 말고, 좀 더-}
‘이번엔 내가 해 볼게, 미호야.’
새벽 4시까지 눈에 핏발이 선 채로 연습하다 보면, 자다 깬 미호가 뭔가 도와주려고 여러 번 입을 달싹였다.
자신도 미호의 도움이 정말로 간절했다. 하지만 이번만은, 스스로의 힘으로 해내고 싶었다. 괜한 고집일수도 있겠지만, 이건 자신의 이야기니까. 이번만은 온전히 내 힘으로.
그렇게 오늘이 왔다.
“괜찮아. 필요한 일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해. 지금 몸은 자고 있어?”
pause.
“아직 안 깨어났어.”
pause.
“안 돼. 좀 더 지켜보자. 아직 어린애잖아.”
pause.
“그래도…아직 아무것도 모르니까 아이와 같잖아. 알고 보면 좋은 아이일 수도 있잖아.”
pause.
두 번째의 연기가 끝났을 때, 위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이라는 신호였다.
*
준호는 유명의 연기를 보며, 아득해진 정신을 붙잡았다.
이제야 알겠다. 자신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연기를 요구했던 것인지.
물론 유명이 자처하여 더 심한 고생길을 가고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애초에 자체가 연기하기 너무 힘든 설정이었다.
촬영장의 공기가 오독오독 피부에 와닿았다.
이 곳에 존재한 모든 이들의 신경을 통째로 끌어다 쓰는 것처럼, 유명은 칼날 위를 걷는 듯한 연기를 하고 있었다.
3번의 테이크가 끝나고 유명이 살짝 숨을 가다듬자, 준호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류신에게 더듬더듬 물었다.
“제가…엄청 무리한 걸 요구한 거죠?”
“…그렇긴 한데, 그걸 해 오는 놈이 미친놈이죠.”
흔들리지 않게 목소리를 붙잡으면서도, 류신도 손에 든 대본을 와락 구긴채 살짝 몸을 떨고 있었다.
유명이 처음에 이런 방식으로 촬영하겠다고 얘기했을 때, 준호는 정확한 의미를 몰랐지만 류신은 대번에 알아 들었다. 그래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고, 그러면서도 유명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예상했다.
하지만 실제로 드러난 광경은 훨씬 더 류신의 피를 바짝바짝 말렸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위고의 옆으로 걸어갔다. 정말로 화면이 들어맞는지가 궁금했다.
[…지금 그게 전부 계산해서 한 연기라는 거죠? 방금 찍은 세 테이크를 한 화면에 옮겨붙이면, 편집이 필요없이 한 장면이 만들어질 거라는?]위고는 알면서도 물었다.
방금 자신이 무엇을 본 것인지를 생각하면 오싹했다.
대충 타이밍을 계산해서 대사를 던졌겠지만, 실제로 맞춰보면 어긋날 것이다. 머리 속으로는 분명 그렇게 생각했지만, 수십년을 쌓아온 연출의 감각은 다른 말을 하고 있다.
‘말이 안 되는데, 진짜 아귀가 들어맞을 것 같잖아···!’
그가 머리를 도리도리 흔드는데, 유명이 한 마디를 덧붙였다.
[죄송합니다. 아직 완전히 숙련이 안 돼서 한 번 타이밍이 살짝 어긋났어요.] […한 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