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270
결국 그녀가 생각한 것은 배급을 건드는 방법이었다.
태원 시네마는 전체 영화관의 30%를 점유하고 있다.
태원에서만 를 받지 않아도 박스오피스 성적이 1위를 찍기는 힘드리라, 그걸 빌미로 여론을 호도하는 방법을 쓰려고 했는데, 문도석은 그걸 해내지 못했다.
“…어떻게 그래요. 미국 쪽 배급사와의 관계도 있는데. 나 아직 시네마로 발령난지 얼마 안 돼서 눈치도 보인다구요…”
“너는 왜 네 힘을 쓸 줄을 몰라! 어휴…내가 저 모자란 걸 낳아서.”
어떻게 그러냐니, 이 말은 이 상황의 위험성을 궤뚫어보지 못한 도석의 어리광에 가깝다. 설사 팍스와 당분간 관계가 틀어진다고 해도, 어떻게든 걸지 말았어야 했다.
파이의 크기가 줄더라도, 일단 파이를 내 것으로 하는 것이 우선이니까.
“다음 작은 절대 안 돼.”
“…그것도 화제작이라 안 걸기는 힘든데…”
“이건 유석이 회사에서 아예 제작과 투자를 한 거잖니. 한 군데 더 걸리는만큼 그 회사로 돈이 들어가, 이 녀석아! 그러다가 회사가 훌쩍 커지기라도 하면, 네 걸 탐내지 않을 것 같아?”
“유석이가 그렇게 분수를 모르는 애가 아닌데…”
“멍청한 놈.”
진종희가 가슴을 쾅쾅 쳤다.
이럴 때 보면, 유석의 절반만 똑똑했으면 싶다.
“걔가 칼을 갈고 있다니까. 지금 하는 사업으로만 만족할 줄 알아? 곧 네 자리를 차지하려 들 거다. 설사 유석이가 그럴 마음이 없다고 해도, 네 할아버지가 눈여겨 보기 시작하면 어떡할래?!”
“…그건 안 되죠.”
“똑바로 해. 알겠어? 배급사 어디로 선정하는지 똑똑이 확인하고.”
“…네.”
“다 네 것 지켜주려고 하는 거야. 도대체 왜 그걸 모르니.”
“아, 알았다니까요.”
도석이 입을 부루퉁 내밀었다.
*
그 시간, 유석은 성북동의 대저택 앞에 서 있었다.
딩동-
벨을 누르자, 가정부의 것으로 추정되는 차분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누구세요?”
“회장님을 뵈러 왔습니다.”
“약속이 되어 있으신가요?”
“…아닙니다만, 손자입니다.”
그는 아주 어릴 때 한 번 얼굴을 본 것 밖에 없는 회장의 집 앞에서, 자신이 그의 손자라고 주장하며 대면을 요청했다.
미리 약속을 잡을 수 없었다.
회장의 개인 연락처는 없었고, 누군가를 통해 대면을 청하는 순간 진종희에게 탄로날 것이 자명했으니까.
“약속이 되어 있지 않은 분은 회장님을 뵐 수 없습니다.”
“손자로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드리는 부탁이라고 전해 주십시오. 제 이름은 문유석입니다.”
지잉-
잠시 후, 대문이 열렸다. 유석은 망설임없이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넓은 정원을 지나 열려 있는 대문 안으로 들어가자, 자세가 꼿꼿하기 그지 없는 노인이 거실 소파의 상석에 앉아 있었다.
“네가 유석이라고?”
“네, 회장님.”
손자임을 주장해 집 안으로 들어오고서도 자신을 부를 땐 ‘회장님’이라고 칭하는 그를, 회장은 재단하듯이 뜯어보았다.
“무슨 일이냐?”
“제가 윤성 엔터테인먼트를 가지려고 합니다.”
노인이 기가 찬 표정을 지었다.
다짜고짜 쳐들어와서 한다는 말이, 자신의 몫을 달라고 조르는 것이었다는 말인가.
그것도 태원의 계열사도 아닌, 윤성의 것을…?
“네가 엔터 쪽으로 자그마한 사업을 한다는 얘기는 들었지. 거기 만족하지 못하고, 대형 엔터 회사를 탐낸다? 그게 손자로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다는 부탁이냐?”
꾸짖는 듯한 노인의 말에, 유석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손자로서 청한 부탁은 직접 뵙게 해주신 걸로 끝났습니다. 이건 사업가로서의 제안입니다.”
“제안?”
“태원이 윤성주식의 38%를 보유하고 있죠. 그에 비해 주가는 지지부진하고 배당수익도 거의 없어서 골치지 않습니까.”
노인이 흠칫했다.
며느리는 아들을 압박해서, 오래 전부터 윤성 엔터에 투자금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유석의 지적대로 투자금의 수익은 현저히 낮았다.
손을 떼고 싶어도 당장은 불가능한 것이, 너무 주식보유비중이 커서 태원이 손을 떼는 순간 주가는 폭락할 상황이었다.
“제가 윤성을 경영하게 되면, 일단 수익성을 높여 드릴 수 있습니다.”
“네 놈의 뭘 믿고.”
“제가 미국에서 인수한 회사의 경영실태보고서입니다. 확인해 보시죠.”
노인은 그 서류를 넘겨 보고 깜짝 놀랐다.
서류의 숫자에 조작이 없다면, ‘밸론토’라는 이름의 회사는 단기간에 눈이부실 만큼 경영상태가 개선되어 있었다.
‘저 놈…’
차남이 밖에서 낳았다는 아이. 공부 성적도 그저 그랬고, 학업을 마친 후에도 한량 노릇이나 한다고 들어 관심두지 않았는데, 이런 능력이 있었단 말인가.
저만한 배포와 능력을 가진 핏줄을 자신이 까맣게 몰랐다고?
누군가 그의 눈을 가렸던 것이 분명했다. 노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리고?”
“태원의 돈으로 슬금슬금 윤성의 세력을 불리는 며느리가 맘에 안 드시지 않습니까?”
“…!”
“제가 윤성을 먹는다면, 자꾸 선을 넘는 며느리에 대한 경고 정도는 되지 않겠습니까.”
“…또 있느냐.”
“아무리 소원한 손자라고 한들, 며느리보다는 제 피가 회장님과 가깝죠. 결국 태원이 윤성을 먹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그렇다고 그룹에 소속될 마음은 없습니다만.”
자신의 능력을 내세우고,
회장과 며느리 사이를 이간질하더니,
마지막으로 핏줄에 호소한다.
타고난 모사꾼.
회장은 반쯤 넘어간 상태였지만, 괜히 유석을 힐난해 보았다.
“결국 네놈이 원하는 건, 태원의 윤성엔터 지분에 대한 의결권이냐? 능력도 없으면서 번드르르한 혀를 놀리는 놈들은 흔하지. 세상은 네 생각처럼 만만치 않다.”
“아니요. 회장님은 저 쪽 편만 들지 않으시면 됩니다.”
“…?”
“나머지 62%의 절반 이상, 제가 모아오겠습니다. 저쪽 편만 들지 말아 주십시오. 그럼 제가 윤성 엔터를 가져가겠습니다.”
…요놈 보게?
회장이 유석을 보는 눈빛에, 드디어 강한 흥미가 섞이기 시작했다.
*
[요즘 괜찮아요?] [왜요? 제 연기에 뭔가 문제라도…] [아니. 연기는 너무 좋습니다. 너무 좋은데, 유명씨가 힘들지 않을까 해서.]위고가 조금 걱정스러운 눈으로 유명을 바라봤다.
크랭크인 후 3개월이 다 되어간다.
촬영은 순조롭다. 아니, 대본의 난이도를 생각하면 순조로운 정도가 아니라, 경이로운 속도였다.
촬영 후반으로 접어들어 갈수록 유명의 스트레스가 걱정되었다.
매일매일, 날이 선 듯한 연기를 끝내고 나면, 그는 분명 집에서도 연습을 거듭할 것이다. 스스로의 트라우마를 건드는 내용들인데 잠은 제대로 자고 있을까.
하지만 확실한 것은, 피곤해 보이는 듯한 안색도 카메라가 돌아가는 순간만은 생기 넘친다는 것이다. 마치, 자신이 초래한 파국에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연기를 하는 순간만은 아이처럼 즐거워하는 유성처럼.
[솔직히 말하자면, 힘든 건 사실입니다.]유명이 솔직하게 털어놓자, 위고가 움찔했다.
[힘들 걸 각오하고 시작한 시나리오이고, 힘든 게 마땅한 내용이죠. 어차피 거쳐야 했고, 해낼 생각이니 괜찮습니다.] [흐음…] [그리고 힘든만큼 즐거워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위고는 철없이 사는 것을 예술가의 미덕으로 생각했다.
거기에서 영감이 나온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자신의 조금(?) 어린애같은 성격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하지만 마치 연기라는 진리를 좇는 구도자같이 어른스러운 유명의 모습을 볼 때면 간혹, 저렇게 사는 것이 멋있다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꿈도 꾸지 말자. 저렇게 살면 나는 단명할 듯.’
사람마다 스타일이 다른 법.
그가 옹골차게 자신의 마음을 외면하고, 촬영 개시를 선언했다.
[Scene 80, 촬영 시작합니다!] [다들 스탠바이-]유성은 처음으로 ‘자신만의 옷’을 입었다.
현성, 은성, 민성의 옷이 아닌, 온전히 자신에게 속한 옷을 입고 그가 찾아간 곳은 극단이었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오디션을 보고 싶은데요.”
“아. 저희는 작은 극단이라 따로 오디션은 없고, 제가 보고 괜찮으면 바로 받습니다. 뭐 준비해 온 게 있습니까?”
“혹시 여기 대본…이라는 게 있나요?”
이상한 질문을 하는 입단 희망자.
얘는 뭐지, 하는 눈빛으로 단장이 굴러다니던 대본 하나를 건네자, 그가 그것을 읽기 시작한다. 한 장, 한 장이 넘어갈 때마다 침이 넘어가 그의 목젖이 울렁인다. 눈빛은 점점 깊은 욕망에 젖어든다.
지독하게 광적인 스토커의 눈빛이 그와 같을까.
대본을 꿀꺽 삼켜도 이상하지 않을 듯한 그의 갈급한 표정에, 보는 사람들이 입이 말라 침을 삼켰다.
‘드러냈군.’
그 광경을 보던 류신이 생각했다.
유성이란 존재의 욕망을 진작부터 느낀 것은, 자신과 수연 정도였으리라.
나머지 사람들은 유성이 뭔가 ‘다르다’고 생각하긴 했겠지만, 그 욕망의 실체는 지금 처음 보는 것이다.
고개가 점점 대본에 가까워진다. 눈알이 들러붙을 듯이 대본에 밀착해 있다.
마지막 한 장이 탁- 덮히고, 그는 처음으로 갈증을 채운 듯이 눈을 감고 고개를 든다.
중얼중얼- 움직이는 입술은 대사를 복기하고 있으리라.
“연기…해도 될까요?”
“아, 준비되셨어요? 해보시죠.”
“…네.”
허락을 구하는 듯 살짝 떨리는 목소리는, 단장의 오케이가 떨어지자마자 배역의 목소리로 변한다.
내용은, 삶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미.
처음부터 행복감에 물들어 시작한 대사는, 끝에 가서 마치 웅변처럼 격정적으로 울려퍼진다.
아아- 이것이 살아있다는 것이다-!
그 때 그의 얼굴 어느 한 부분 남김없이 차지한, 강렬한 환희.
‘너에게…연기는 그런 것인가. 너무 행복해서, 죄를 짓는 것처럼 느껴지는.”
유성은 드디어 자신의 욕망의 실체를 마주했다.
이제 저 어린아이는, ‘안 돼’라는 말을 들어도, 손을 뻗는 것을 멈추지 못할 것이다.
*
현성이 발악했다.
“이거 풀어 줘! 풀어달라고 이 자식아!!”
“……”
유성은 현성을 힐끗 보며, 뜨끔한 표정을 애써 지웠다.
현성에게 좀 미안하기는 하지만, 지금은 자신에게 너무 중요한 시기다.
처음으로 연기라는 것을 접했다. 세상에는 볼 대본이 너무 많고, 연기해 볼 캐릭터도 많다. 이 때까지 이 몸을 많이 써 왔으니, 한동안은 자신에게 양보해 줘도 되지 않을까?
(장면 사이, 극단에서 홀린듯이 연기 연습을 하는 유성의 모습)
“풀어 줘어어!!”
현성의 저 소리, 신경에 거슬린다.
차라리 이 집에 돌아오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잠을 아예 안 잘 수는 없다.
기다리면 곧 풀어줄 건데, 그는 너무 예민하게 굴고 있다. 좀 조용히 있을 수 없나?
읍- 읍읍-
시끄럽다고 생각했을 뿐인데, 현성의 입이 새하얀 마스크로 막혔다.
그는 입이 막힌 채, 얼굴이 시뻘게져서 흰 철창을 흔든다.
조금 안 됐지만, 아까보다 조용하긴 하다.
(장면 사이, 극단 오디션에서 다음 공연의 배역을 따내 기뻐하는 유성의 모습)
“풀어주…세요. 동등한 권리를 요구하지 않을게요. 잠시만…하루 중 한 시간만이라도…숨이 막혀.”
현성은 퀭하게 말라있다.
왜? 정신체가 식사를 하는 것도 아닌데, 그는 왜 저렇게 말라가는 것일까.
“…미안해. 지금은 첫 공연 준비로 너무 바쁘거든. 첫 배역을 따서 연습을 많이해야 해. 그것만 지나면 진짜 풀어줄게.”
“…웃기지마.”
애원하던 현성의 눈이 시퍼렇게 날이 선다.
“너는 결국 네 욕심만 중요한 거잖아! 첫 공연 때문이라고? 그 다음에는 중요한 오디션이라서! 처음으로 주인공 배역을 맡아서! 요즘 안 풀리는 걸 연습해야 해서!!”
“아니야. 정말, 정말로 이번 공연만 끝나면…”
“이기주의자. 살인자. 모두 너 때문에 망가졌어. 꺼져버려.”
유성은 온갖 비난을 쏟아붓는 현성을 피해, 문 밖으로 달아났다.
잠이 부족해 다크서클이 잔뜩 내려앉은 신체에서 깨어나, 그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내가…정말 문제인가? 나는 그냥 연기를 하고 싶을 뿐인데.’
하루를 보내고 다시 유성이 내면의 집으로 복귀했을 때, 현성은 창살을 붙잡은 채, 잔해처럼 쪼그라들어 있었다.
…!
유성의 표정이 드디어, 심각하게 변했다.
256 연기를 위해 노력하는만큼
가득 쌓여있는 공과금 고지서는, 장마다 연체 경고가 박혀있다.
식탁 위엔 빈 인스턴트 용기들이 가득 쌓여있고, 한쪽에는 산더미같은 대본이 쌓여있다.
그것을 처음으로 찬찬히 들여다본다.
‘정말 내가 문제인가···’
그는 민성의 클럽을, 현성의 학교를 찾아간다. 비어있는 그들의 자리.
그리고 은성이 전담했던 엄마와 누나를 찾아가 멀리서 지켜본다. 멀리서 보아도 그들의 얼굴엔 웃음기가 없다. 은성을 보기만 해도 입이 벌어지던 엄마의 미소는 말라붙었다.
‘이대로는 안 돼.’
유성은 무언가를 결심한 듯,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신체가 잠이 들자 유성이 빨려들어온 곳은,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내면의 집.
이제는 그 혼자 독차지하게 된 집이다.
이제 잔해조차 사라져 텅 비어버린 현성의 방.
오래 전부터 비어있어 냉기가 감도는 민성의 방을 훑어본 후,
유성이 도착한 곳은 은성의 방.
그의 눈빛이 방 한 쪽의 벽면에 닿자, 벽면이 부채처럼 촤르르 접혀 길을 틔운다.
쿵-
콰앙- 퍼엉-
혼잡하기 그지없던 무의식 공간은, 유성이 발을 딛자 얌전히 길을 틔웠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깨달은 강렬한 욕망 앞에, 무의식은 기뻐하며 머리를 조아렸다. 쉽게 은성을 배신하고, 유성에게 은성이 숨은 곳을 알린다.
[오케이, 류신 투입 준비.] [저는 준비됐습니다.] [유명씨 분장만 체인지하고 바로 들어가죠. 다들 잠시 휴식!]이 장면만은 은성을 먼저 연기하고, 유성을 연기하는 순서가 옳다.
감정선 자체가 은성이 먼저고, 유성이 그것에 반응해야 했다.
그래서 유명은 번거롭지만, 유성에서 은성으로 한 번 분장을 바꿨다.
‘드디어 이 장면이 되었구나.’
눈을 감고 분장스탭에게 얼굴을 맡긴 채, 유명은 그런 생각을 했다.
준호의 시나리오를 처음 받고 그 날 밤에 꾸었던 꿈. 유명은 그 꿈 속에서 은성이었다.
다치고 쓸린 채로 유성을 피해 뛰고 또 뛰었지만, 유성은 자신을 쉽게 발견했다.
그 앞에서 은성은, 절감한다.
자신은 도망치고 있으면서도 잡히고 싶었고, 살기 위해 발버둥치면서도 살해당하길 꿈꾸었다는 것을.
‘은성의 마음.’
그 날 꾼 꿈을 얘기하자, 미호는 ‘너를 연기하고 싶나 보네’라고 말했다.
그렇다.
평생 자신을 지배해 온 강렬한 충동과, 다른 욕망들과의 갈등. 이것을 연기하는 것은 유명에게 마지막 숙제같은 것이었다.
오늘 유명이 연기하려는 것은, 그 중에서도 마지막 남은 욕망들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파트.
다시 카메라 앞에 선 유명의 등을, 류신이 가볍게 두드렸다.
“드디어 여기까지 왔네요. 화이팅.”
“네. 형도요!”
다시 촬영이 시작되었다.
*
은성은 톱니바퀴들 사이의 한 공간에 몸을 구겨넣고 쉬고 있었다.
이 공간은 너무 위험하다. 몸이 그대로 썰릴 뻔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의 옷은 너덜너덜하고 곳곳에서 피가 비쳐 나오고 있었다.
스윽-
그 공간 앞으로 긴 그림자가 드리운다. 은성은 헙- 하고 입을 막지만 이미 늦었다.
유성의 역을 대신 연기 중인 서류신이, 자신을 내려다본다.
“여기 있었구나, 은성아.”
유명이 미리 녹음해 준 타이밍을 복사한듯이, 류신은 적절한 타이밍에 대사를 읊었다. 조금 슬픈듯이 절박해 보이는 표정. 자신의 몰입을 돕는 아주 좋은 표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