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272
*
유명은 녹음이 짙은 가운대 캠퍼스에 들어섰다.
그가 먼저 들른 곳은 이재필 교수의 연구실이었다.
“신배우 왔어.”
“안녕하세요, 교수님.”
“촬영은 끝났어?”
“네. 그제 끝났습니다.”
“올해 학생들이 참 좋아. 신배우 덕분에 가운대 오디우스의 명성이 아주 파다해졌거든. 작년에는 전국 연기학과 중에 입학 커트라인이 탑을 찍었어. 경쟁률 인플레가 말도 아니었지.”
“하하···”
원래도 유명하던 오디우스는, 신유명이라는 세계적인 배우를 배출한 것으로 더욱 명성이 폭증했다.
“학생들은 알고 있나요? 오늘 제가 오는 거?”
“아니. 학교 뒤집힐 일 있어? 내가 강의하는 줄 알고 있는데, 신배우 들어가면 애들 표정 볼만하겠네. 가지.”
유명은 재필을 따라 걸어, 강당의 문 앞에 섰다.
숨을 살짝 골라쉰다.
꽤나 인정받는 배우가 되었지만, 연기에 대해 강연을 한 적은 거의 없었다. 유석의 요청으로 밸론토의 배우들에게 강연했던 것 정도. 유명을 초빙하길 원하던 곳이야 많았지만, 작품을 하기만도 바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디우스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어느날 갑자기 떨어진 타과의 배우지망생을 편견없이 맞아주었고, 서류신과 윤한성과 이선하, 그 외 유명의 많은 소중한 지인들을 만나게 해 준 곳.
그래서 유명이 어느 곳보다도 소속감을 느끼고 있는 오디우스의 후배들.
이제 막 연기의 세계에 접어든 꼬꼬마 후배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
덜컹-
문이 열렸다.
학생들은 재필의 뒤에, 모자와 마스크를 쓴 남자가 보이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구지?)
(오늘 특강있었나?)
(뭐야뭐야, 선배야?)
모자와 마스크로도 아우라를 가릴 수 없다.
한 발 한 발, 편안하게 걷는 걸음걸이마저도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주의를 끌어당긴다.
그가 강당의 앞쪽 단에 접근할 때까지, 학생들은 멍하니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강단 아래, 진행석에 붙은 마이크를 쥐고, 이재필이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은 무척 운이 좋군요. 오늘 오디우스 여름 워크샵에는 무척 특별한 강사 한 분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가 한쪽 책상 위에 모자를 벗어 내려놓자, 깨끗하고 길쭉한 눈매가 드러났다.
앞줄에 앉은 학생들의 팔에 소름이 쫘악 지나갔다.
‘설마···!!’
마스크를 벗는 순간, 이재필이 강사의 이름을 소개했고,
학생들이 미친듯이 소리지르기 시작했다.
“자랑스러운 오디우스의 선배, 01학번 신유명 배우를 소개합니다.”
우와아아악–!
으어어어!! 으악!!
괴상한 비명이 난무하는 가운데, 한 걸음 단상을 오른 유명이 싱긋 웃었다.
“반갑습니다, 후배님들. 배우 신유명입니다.”
자신들을 귀여운 듯 내려다보는 그의 눈빛에, 모두는 심장을 부여잡았다.
*
“교수님, 실례지만 교수님 흉내 한 번 내도 될까요?”
“흐음…좋습니다.”
학생들이 조금 진정된 후 유명은, 이재필에게 장난기어린 어투로 양해를 구했다. 재필이 눈썹을 움찔하더니 곧 고개를 끄덕였다. 괜한 농을 치려는 것 같지는 않았던 것이다.
‘뭐야?’
‘뭘 하시려는 거지?’
‘교수님 성대모사?’
그 때 유명의 표정이 휙- 바뀌었다.
자신들을 귀엽게 바라보던 멋진 선배의 얼굴이 한순간에 사라지고, 깐깐하고 지적인 표정이 덮어 씌워진다.
살짝 구부정한 어깨, 턱을 살짝 쓰다듬는 엄지와 검지는 학생들을 어떻게 요리할지 궁리하는 듯 하다. 그의 입이 열린다.
“좋아요. 이번 워크샵의 참석자들은 눈빛이 좋군요.”
학생들은 멍하니 입을 벌렸다.
이재필이다.
아니, 물론 체구도 생김새도 목소리도 달랐다. 머리 속으로는 당연히 그가 신유명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그의 동작, 억양, 학생들을 난도질 할 듯한 냉철한 말투까지, 누구나 그것이 이재필이라는 것을 단숨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이번 워크샵의 결과는 학점에 반영하겠습니다.”
순간 학생들은 어깨를 흠칫 떨었다. 학점에 반영한다는 말에 본능적으로 반응한 것이다.
머리가 거짓임을 알고 있음에도 가슴이 반응할 정도로, 그 연기에는 감쪽같은 부분이 있었다.
짝-
유명이 두 손을 들어 한 번 손뼉을 쳤다. 그 순간 표정이 다시 한 번 바뀐다.
이번에는 누구일까.
“이 교수는 너무 깐깐한 경향이 있어. 오디우스 멤버 쯤 되면, 학점으로 협박하지 않아도 워크샵에 최선을 다한다고.”
풉-
자신을 따라하는 연기를 보고 조금 얼굴이 붉어져 생수를 들이키던 재필은, 이번엔 윤한성을 연기하는 유명의 모습을 보고, 머금은 물을 뿜어냈다.
조금밖에 남아있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와···”
“윤한성 선배님 맞지?”
“미쳤다. 눈썹 살짝 내리는 표정만 봐도 바로 알겠다.”
엊그제 한성의 워크샵이 있었으므로, 학생들은 윤한성의 실물을 알고 있었다. 고학번 중에는 오디우스 모임에서 몇 번 그를 봤던 사람들도 있었고.
유명은 한성의 몇 가지 특징을 정확하게 따내서, 그를 한 번밖에 보지 못한 학생들도 단박에 윤한성을 연기한 것임을 인지하게 만들었다.
학생들의 표정이 경악과 경외로 바뀐 후, 유명은 다시 본래의 얼굴로 돌아왔다.
그들의 표정은, 아까 유명을 처음 인지했을 때보다도 초롱초롱해져 있었다.
대스타를 직접 보았다는 것보다, ‘나도 저렇게 연기하고 싶다’는 자극을 받았을 때, 더욱 흥분하는 꼬꼬마 배우들이었다.
“재미있나요?”
“네!!!”
“교수님, 실례했습니다. 한성형에겐 미리 허락 받았어요.”
“괜찮습니다, 흠흠.”
유명은 본격적인 강연을 시작했다.
“처음 교수님께 오디우스 특별강연 요청을 들었을 때부터, 무엇을 주제로 삼을까 많이 고민했어요.”
두 번 걷기를 시켜볼까.
리액션을 제대로 하는 법을 알려줄까.
혹은 이번 영화에서 시도했던, 여러 배역을 각각 연기하고, 그것이 마술같이 하나로 이어지는 기법을 보여준다면? 학생들은 눈을 의심하며 환호하겠지.
하지만 아직 그들에게는 이르다.
자칫하면 기초부터 차근차근 쌓아나가기 보다는, 단박에 눈을 혹하게 하는 연기적인 기술에만 집착할 수도 있다.
그래서 오늘 유명이 얘기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그리고 오늘 제가 여러분과 함께 해보기로 결정한 것은, 배우에게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능력, ‘관찰’입니다.”
이것이었다.
258 일상적인 관찰과 연기 관찰
‘진짜…장난 아니다. 가운대 오기를 백 번 잘했어.’
가운대 연영과 2학년, 김한나는 미친듯이 뛰는 심장을 내리누르고 있었다.
그녀는 재작년 대입 원서를 쓸 때, S대 안전권인 성적에도 불구하고 가운대를 고집했다.
담임 선생님이 몇 번이나 집으로 찾아왔다. 지방의 고등학교 입장에선, S대에 한 명 더 보내는 것이 학교의 위상을 가르는 일이었으니까. 부모님들도 일단 S대에 들어가고, 연기는 꼭 하고싶으면 다른 루트를 찾으면 안 되냐고 말렸지만···
-S대엔 연영과가 없잖아요. 그리고 가운대는 신유명을 배출한 대학이라니까요!
유명을 보고 연기의 꿈을 키운 그녀는, 완강히 자신의 결심을 관철했다. 그리고 오늘 그 보상을 톡톡히 받고 있었다.
‘실물 쩐다···’
그녀의 눈빛이 몽롱해져 갔다. 주변 학생들의 모습도 별반 다를 바는 없었다. 연기 지망생들에게 ‘신유명’이라는 이름은, 이미 신앙과도 같았으니까.
유명은 이라는 단어를 칠판에 적어두고, 다음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어느 일이든 프로가 되려면, ‘경험’이 가장 중요하죠. 우리 배우들의 경우 가장 도움이 되는 ‘경험’은 역시 배역을 맡는 것이겠지만, 아직 여러분에게 그 기회는 자주 생기지 않죠. 부족한 ‘경험’을 보충해 주는 배우의 커다란 자산이 ‘관찰’입니다.”
귀에 쏙쏙 들어오는 전달력 있는 목소리.
유명은 돌아서서 관찰이라는 단어의 아래에 두 가지를 더 적는다.
“이 두 가지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유명의 질문에, 그의 눈에 들고싶은 학생들이 번쩍번쩍 손을 들었다. 그 중 한명을 지목하자, 학생이 벌떡 일어나 크게 대답한다.
“일상적인 언어와 연기적인 언어의 차이입니다.”
“아주 정확한 대답이에요.”
흐뭇한 칭찬에, 키가 190에 육박하는 남학생의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사람들은 일상 생활에서 수많은 감정 표현을 하지만, 그 표현들을 정제하지 않고 그대로 흉내낼 경우 연기로는 적합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짓는 표정인 경우도 많고, 주관적인 표정이라 남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요. 그래서 감정 표현에는 객관화가 필요합니다. 제가 세 가지 표정을 보여줄건데, 어떤 표정인지 맞춰 볼까요?”
유명이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가, 스윽- 떼어내자 그 곳에 자리한 것은 초췌해 보이는 한 얼굴. 협근이 패이고 하순하체근이 힘없이 처져있는 것만으로도, 뭔가 피로해 보이는 얼굴으로 변했다.
다시 바뀐 표정은 졸음을 억지로 참는지, 눈둘레근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데, 억지로 전두근을 끌어올려 눈을 뜨려고 하는 모습. 그 익숙한 표정에 몇 학생들이 풉- 하고 작게 웃는다.
그리고 마지막 표정. 안면근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지만, 눈빛이 멍하니 초점이 없다.
“뭐가 떠오르나요?”
“퇴근길 지하철요!! 뻗기 직전!”
“수면제 교수님 강의요. 다들 표정이 저래요!”
여기저기서 터지는 대답에 다들 꺄르르 웃음이 터진다. 20대 초반의 싱그러운 발랄함이다.
유명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한 가지 표정을 보여준다.
스윽-
깊게 패인 주름, 세상이 무거운 듯이 처진 어깨, 늘어진 눈썹.
눈빛이 한숨을 담은 것처럼 무겁다.
앞의 표정들이 어딘가 명확하지 않은 일상의 표정이었다면, 이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감정을 그릴듯이 표현하는 배우의 얼굴.
바뀐 분위기에, 학생들은 웃음을 싹 거두고 집중해 그 표정을 바라본다.
유명이 온 몸으로 표출하고 있던 분위기를 거둔 후, 말한다.
“피로. 방금 제가 표현한 감정입니다.”
이만큼 명확한 전달법이 있을까.
앞이 일상적인 표정들이라면, 뒤는 직관적으로 관객에게 인물의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연기적인 표현.
그는 그저 평소 주변을 잘 관찰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후배님들은 앞으로 많은 관찰을 해야 해요. 지나가는 분들의 표정 하나하나가 나의 연기적 자산이 되어줄 겁니다. 다만, 관찰로 끝나선 안 돼요. 그 관찰을 재료로, 어떤 표정을 어떻게 표현할 때 가장 효과적인지를 생각하고 훈련해서, 스스로의 것으로 소화해야 합니다.
그럴 때 좋은 교재가 될 수 있는 것이 ‘연기 관찰’입니다. 다른 배우가 어떻게 감정을 표현하는지, 그 소화 방식을 배우는 거죠. 즉, 여러분은 열심히 재료를 모으고, 요리법도 배워야 한다는 뜻입니다.”
긴장했던 공기는, 재치있는 비유에 살짝 풀린다.
“물론 너무 남의 요리법만 따라하다간, 내 레시피는 만들 수 없어요.”
재필은 유명의 강의에 감탄하는 한편, 속으로 슬쩍 투덜거렸다.
‘나는 강의할 때 매번 샘플 사진이나 영상을 찾아야 하는데, 신배우는 편하겠네. 그냥 본인이 연기해서 보여주면 되니까…’
물론, 배우라고 다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
한나의 벌어진 입에서 침이 흐를랑말랑 하다가 안으로 꿀꺽 넘어갔다.
‘흐억, 추태를 보일 뻔 했네. 아, 근데 진짜 연기 미쳤다···’
“거기, 단발머리 후배님.”
“네, 넵!!!”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유명이 갑자기 그녀를 지목했다.
한나는 깜짝 놀라, 벌떡 일어서서 큰 소리로 대답했다.
평소 똑똑하고 새침하던 그녀의 새로운 모습에, 오디우스 단원들이 슬쩍 웃었다. 하기야 자신들도 저 대배우가 자신을 직접 지목한다면, 저렇게 바짝 어는 수밖에 도리가 없으리라.
“지금부터 ‘관찰’과 ‘표현’을 실습해 보려고 해요. 방법을 시연하고 싶은데, 후배님이 좀 도와주겠어요? 제일 열심히 보고 있길래.”
“아…네엡.”
그녀는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단상 위로 올라갔다. 유명과 가까이 서니 심장이 쾅쾅 뛰어, 바깥으로 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방금 전까지 제 모습을 봤을 텐데, 간단한 부분이라도 좋으니 포착한 게 있으면 한 번 연기해 볼 수 있겠어요?”
주문을 받고 곰곰이 생각하는 그녀.
순식간에 그녀는 유명의 팬의 얼굴에서, 진지한 배우지망생의 얼굴이 된다.
그녀는 유명의 평소 모습을 지금 처음 보는 것이 아니었다. ‘갓네임드’로서 유명의 메이킹 영상이나 인터뷰 영상들을 수백 수천 번을 재생해 보았었다. 즉, 이 강당 안에서 한나만큼 유명의 영상을 많이 본 사람은 없으리라.
그녀는 떠올렸다.
조금 수줍은 미소를 머금고 있지만, 언제나 등이 곧고 어깨가 반듯한, 스스로에게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배우의 모습을.
스윽-
한나의 바뀐 자세와 표정.
아직 서툴기는 하지만, 확실히 유명의 특징이 드러나 있었다.
학생들이 오- 하며 감탄했다.
‘와···교수님이 올해 학생들이 다 괜찮다고 하시더니.’
유명조차 감탄했을 정도로, 한나의 ‘관찰’과 ‘표현’은 상당했다.
유명이 박수를 치자, 곧 강당이 박수소리로 가득 찼다.
“오올~~김한나~!”
“멋있다! 잘한다!”
한나를 들여보낸 후, 유명이 주문했다.
“2인 1조가 되어서, 서로를 번갈아 카피해 보겠습니다. 내가 매일 보는 사람들을 얼마나 공들여 관찰해 왔는지를 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거에요. 관찰당하는 입장에 섰을 때도, 상대가 나를 어떻게 표현하는지를 유심히 봐 두세요. 나의 특징적인 표정이나 태도를 알게 되는 것은, 배우로서 ‘스스로를 파악’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될 겁니다.”
유명의 설명을 듣고 보니, 굉장히 좋은 훈련같았다.
그들은 짝을 지어 연습을 시작했고, 그 사이를 유명이 돌아다니며 적절한 시범을 보여주거나 조언을 해 주었다.
그렇게 의미있는 연습이 이루어진 후, 강연의 끝 무렵.
“뭐 질문할 거 있으신 분?”
한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네, 후배님?”
“저…가 제 인생작인데, 한 번만 실제로 연기하는 모습 보여주시면 안 될까요?”
아까 교재 역할을 훌륭히 해냈던 후배의 요청.
모두들 실제로 그 이방원의 연기를 눈 앞에서 볼 수 있을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유명의 답변을 기다린다.
유명은 잠시 고민하더니, 수락도 거절도 아닌 제 3의 답변을 내놓았다.
“음…오늘의 강연 주제에 적당한 방식으로, 이 요청에 응해 볼까요.”
‘관찰’에 어울리는 방식.
유명이 연기하기 시작한 것은 이방원이 아닌, 정몽주였다.
*
정몽주를 다른 사람 앞에서 연기해보는 것은 두 번째였다.
한 번은 데렉의 과제였던, ‘두 번 걷기’에서 정몽주로서 걸었던 것.
그리고 지금.
하지만 대본을 받으면 다른 배역들도 연습해 버리는 유명의 습관 때문에, 혼자 정몽주를 연기해 본 적은 꽤 많았다. 유명은 다양한 해석으로 다양한 정몽주를 만들어냈지만, 그럴 때마다 느끼는 것은, 윤한성의 정몽주가 정말 훌륭했다는 것이다.
‘역시 한성 형은, 정말 좋은 배우야.’
대국의 서신을 품 안에 거머쥐고 굶주림도 공포도 극복한 채, 명의 황제 앞에 한 줌 비굴함 없던 청년 시절의 정몽주.
그리고 세월이 흘러 정치가이자 외교관으로서 지극히 우아하고 세련된 태도, 하지만 그 내면에는 사그라들지 않는 굳은 신념을 가진 말년의 정몽주를, 한성은 거의 완벽하게 표현해 냈다.
오늘 유명이 연기하려는 것은, 스스로 해석한 정몽주가 아니다.
의 정몽주는 누가 뭐래도 윤한성의 것.
‘관찰’이라는 주제에 맞게, 유명은 한성의 정몽주를 완벽히 카피하여 후배들 앞에 선보인다.
최고의 신, 다담.
적진의 심장에 들어온, 당대 최고의 정치가의 최후의 한 수가 눈 앞에 펼쳐졌다.
“아니라고는 못하겠군. 송헌대감이라면 좀더 미적거리셨으리라 생각했는데, 자네라는 변수를 과소평가했어. 그 판단력에 감탄했다네.”
유명의 첫 대사에, 학생들보다 이재필이 더욱 긴장했다.
‘한성이다···!’
그와 대학시절을 함께 보낸 한성.
당시 오디우스에서 언제나 주역을 거머쥐었던 동기들의 호프는, 역시나 연예계에서도 승승장구했다.
그런 그의 연기 스타일이 어느날 바뀌었다.
재필은 03년 오디우스 워크샵이 끝나고, 자신을 찾아왔던 한성의 표정을 잊지 못한다.
-고맙다, 이 교수.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뭘 잘못 생각했다는 걸, 그 친구가 가르쳐 줬어.
-가르쳐 줘? 윤 배우를? 누가?
감도 잡지 못하고 있던 재필에게, 한성이 전달한 이야기는 놀라웠다.
‘메소드 연기론’에서 이재필이 발견한 타과 학생.
기막힌 연기에 감탄해 한성에게 동영상을 보여주었고, 그것을 본 한성이 ‘그에게 조언할 것이 있다’고 하길래, 재필이 그를 오디우스 워크샵에 추천했었다.
한성은 그 학생이 이미 자신보다 뛰어난 배우라고 얘기하는 것이다.
-설마···
-내가 한 수 배웠어. 지금 갇힌 틀을 깨지 못하면 앞으로도 계속 자기복제식의 연기만 하게 될 거라더군.
-말도 안 돼. 그런 건방진 얘기를 했다고?
-물론 정중하게 말했어. 하지만 결국 그 뜻이었지. 얼마나 찔리던지.
한성의 말을 듣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신유명은 재필의 고정관념을 깨부수듯, 매번 기적같은 연기를 선보여 왔다.
그리고 저 에서, 신유명과 함께 한 윤한성은 그야말로 비약적으로 발전했었지.
당시 재필은 유명보다 한성에게 더 감탄했었다. 이미 40이 가까운 배우가 단시간에 저렇게 새로운 경지로 넘어가다니.
정몽주와 이방원의 한 치도 밀리지 않는 투샷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그리고 지금 무대 위엔, 한성의 연기를 복사해내는 유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