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273
상대역의 연기를 얼마나 집중해서 관찰했는지, 표정 하나 손짓 하나도 허투른 부분이 없는, 완벽한 윤한성의 정몽주.
그 연기를 마친 후 완전히 홀려있는 관객들에게, 유명이 인사하며 부연한다.
“아까 얘기했듯이 좋은 연기를 ‘관찰’하는 것도, 배우로서 많은 공부가 되죠. 윤한성 선배님의 정몽주는, 말 그대로 최고였습니다.”
오디우스의 꼬꼬마들은 기적을 관람한 표정으로, 마구 박수를 쳤다.
신유명, 윤한성, 이선하, 서류신…
오디우스를 거쳐간 수많은 선배들은, 이토록 오디우스의 이름에 자부심을 더해주고 있다.
그것은 곧 자신들의 이름이었다.
‘나도 언젠가는···!’
‘배우는 입장이 아니라, 후배들에게 가르치는 입장이 되어서 이 자리에···’
‘저렇게 멋진 배우가 되어서.’
모두의 가슴에 자부심과 각오가 서렸다.
이들 중 누군가는, 다시 이 자리에 돌아오게 될 것이다.
마치 유명처럼.
259 연기콘서트 -IF-
[니사~!] [유명~!!]입을 다물면 웬만해선 말을 붙이기 힘들 정도로 차가운 인상의 니사 펄스. 하지만 방긋 웃을 때의 그녀는 눈꼬리가 쭈욱 쳐져서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같은 표정이 된다.
물론 그녀가 이렇게 웃어주는 대상이 흔하지는 않았다.
[비행시간이 길어서 고생했죠?] [나 비행체질이라, 비행기 타고 나면 피로가 풀려요. 지금도 피부 좋아진 거 봐.] [와…어떻게 그렇죠?] [유명씨 보러 와서 더 그런가 봐.]니사는 흐뭇한 표정으로 유명을 바라본다.
의 후반 작업을 마치고 한 달 여의 휴가를 가진 후, 그녀는 한국에 왔다. 그녀는 를 보고 유명의 팬이 되었고, 를 작업하며 이 배우의 천재성에 매일같이 경탄했다.
VFX(*Visual Effects) 작업을 하다보면 배우들에게 욕 나오는 순간들이 많다. 크로마키촬영 때는 없는 사물이나 대상을 상정하고 연기해야 하는데, 시선의 위치조차 고정하지 못해서 편집할 때 애를 먹였다.
그런데 지난 영화의 초반 촬영 때, 존 클로드 감독은 자신에게 자꾸 문자를 보내서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했다.
-니사, 이번엔 ‘본업’에만 충실할 수 있을 거야. 축하해!
당시 다른 영화의 후반 작업과 겹치기 작업 중이라, 촬영장에 가 보지 못하고 있던 니사는, 존에게 설명을 똑바로 하라고 짜증을 냈다.
물론 존 클로드 급의 감독에게 짜증을 낼 수 있는 것도 니사 펄스 정도 되니까 가능한 일이었지만.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에요?
-그런 게 있어. 하하.
그리고 나중에 촬영된 파일들을 보고, 니사는 기가 막혔다.
무슨 배우가 감독이나 카메라맨이라도 된 것처럼, 편집을 고려해서 정확한 위치에 몸을 갖다두고, 정확한 타이밍에 대사를 친단 말인가.
니사는 존이 했던 말 그대로 ‘본업’에만 충실할 수 있었다.
얼마나 화려한 그래픽을 제작하고, 어떤 다이내믹한 효과로 관객들을 가슴 부풀게 할 것인지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녀가 유명을 예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그는 언제나 매너있고 상냥하기까지 했으니까.
[촬영은 어땠어요? 메리가 ‘그’ 촬영방식 말해줘서, 나 어이가 없었는데.] [잘 끝났어요. 이제 니사가 마술을 부릴 일만 남았죠.]메리는, 편집에 차질이 없는 크로마키 배경을 깔기 위해, 니사가 미리 보내두었던 그녀의 팀원 이름이었다. 그녀는 니사와 연락할 때마다 ‘Oh my god, unbelievable!’만 반복했다.
‘도대체 어땠기에···’
그녀가 빨리 가편집본을 보고 싶다고 조르자, 유명은 바로 로 향했다.
니사 펄스의 얼굴을 알아본 스탭들이 놀란 표정으로 인사를 한다. 편집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영화인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얼굴이었다.
편집실.
유명은 최승태 편집실에서 넘어온 가편집본을 연결해 재생했다.
그녀는 한 마디도 없이 집중하기 시작했다.
유명은 살짝 긴장했다. 지금의 그녀는 유명에게 호감을 가진 지인이 아닌, VFX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몸값을 자랑하는 프로이니까.
[가편집 감독이 실력이 있나 보네요. 원본 있어요?]그녀는 초반 10분 정도를 보고, 장면을 스킵하며 몇 군데를 확인한 후, 원본을 찾는다.
유명은 말없이 원본 파일들을 연결해 주었다. 그녀가 파일의 개수가 그리 많지 않은 걸 보고 마우스를 쥔 손을 멈칫한다.
[이게 다예요?] [네.] [촬영방식도 말이 안 되는데…심지어 NG컷도 거의 없다고?]그녀가 중얼거리며 익숙하게 맥을 만져서 아비드(*편집 프로그램)를 켠다. 그리고 여러 개의 파일들을 얹어보기를 반복하더니, 헛웃음을 짓는다.
[가편집 감독의 실력보다는, 파일 자체가 거의 건들 게 없었네. 와…이런 게 진짜 가능하다고요? 유명씨 사람 맞아요?]그제서야 유명이 살짝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통과인가 보다.
[크게 할 것도 없네. 메인 편집은 누가 잡아요?] [가편집 하신 분이 한국에서 이름난 편집감독이라, 많이 건들 건 없더라구요. 니사가 효과들을 작업하고 나면 위고씨가 메인 편집을 보고, 제가 검토하기로 했어요.] [흐음···]니사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유명을 내쫓는다.
[이제 나가요.] [네?] [난 이제 목을 빼고 기다렸던 영화를 볼 거예요. 유명씨 연기라면 보다가 울 게 뻔하고, 난 질질 짜는 거 보여주기 싫거든. 일정 파악되면 연락할게요.]그녀의 시원시원한 말에 유명은 웃으며 출입키를 그녀의 목에 걸어주었다.
[잘 부탁해요, 니사.]*
“얼굴이 많이 편해졌네요.”
“그런가요?”
“엔딩을 둘로 나누기로 한 그 날 이후부터, 유명씨 얼굴이 달라지더군요.”
서류신에겐 숨길 수 없다.
유명은 그런 생각을 하며 작게 웃었다.
촬영 내내 유명은 심적으로 많이 몰려 있었다. 그렇지만 그 날, 스스로도 몰랐던 자신을 발견하게 되면서, 유명의 마음은 훨씬 평온해졌다.
‘할 수 있는 일들을 하자. 최선을 다해서.’
유성은 초반부에 나머지 세 사람에게 악인으로 그려진다. 그만큼 유명은 자신의 일상을 모두 차지하려는 ‘연기라는 욕망’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 그것을 가져가겠다고 한다면 내어줄 것인가?
아니, 결사적으로 저항할 것이다. 그 마음이야말로 유명에게 무한한 행복을 주는, 그의 모든 것이므로.
그러니까 받아들이고,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
포기할 수 없는 것은, 포기하지 않을 방법을 생각해 보자.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진 것이다.
“형도 제겐, 해피엔딩의 상징이에요.”
유명이 열심히 지켜온 것 중 가장 큰 부분은 가족과의 관계이다.
그 다음은 깊이 마음을 나누는 지인들. 그 중 가장 대표적일 사람이 윤한성과 서류신이 아닐까.
한성과의 관계는 처음부터 따뜻했다. 첫 만남, ‘감정극대화’에서 딸을 상실했던 한성의 지극한 슬픔을 보았기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초반부터 좋은 선후배 관계였고, 유명이 한성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도록 도와주는 과정에서 좋은 형동생이 되었다. 한성의 딸 하은이는 그에게 친조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류신은 다르다.
그와는 처음부터 라이벌로 시작했다. 그는 자신에게 말조차 놓지 않았다. 그 정도로 자존심이 고고하고 쉽게 곁을 주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배우로서 그들은 누구보다도 서로를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오랜 시간과 다양한 작품을 거쳐, 이제 그들은 단둘이 만나도 어색하지 않은 관계가 되었다, 이보다 멀고도 가까운 관계는 없을 것이다.
“별 얘기를 다···”
류신이 시선을 돌린다.
저 냉담한 무표정이 쑥쓰러움을 의미하는 것을, 이제는 안다.
“형, 다음 주말이랑 다다음 주말에 혹시 바쁘세요?”
“…별 일은 없는데요.”
“혹시 제 콘서트에 까메오 출연 안 하실래요?”
유명이 제안에, 류신이 시선을 다시 휙 가져왔다.
*
신유명 연기콘서트 1st. in 부산.
“어떡해…나 기절하면 깨워줘야 돼.”
“너도.”
“후욱 후욱···숨이 안 쉬어져…”
관객들이 떠들썩하게 들어와 자리를 차곡차곡 채워갔다.
1인 1매씩만 배정되었기 때문에 대부분은 모르는 사이었지만, 당첨자 모임에서 미리 만나 얼굴을 익힌 사람들은 10년 지기라도 되는양 즐겁게 떠들었다.
그리고 자리를 모두 채운 팬들의 구성은, 예전 팬미팅 때와는 달랐다.
여성, 남성, 노인, 대학생, 다양한 성별과 연령의 사람들.
이미 신유명은 특정 계층이 아닌,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지지받는 배우가 된 것이다.
공연 30분 전, 무대 뒤 편.
무대를 지휘하는 사람은 콘서트 무대감독이다.
이런 형식의 공연이 처음이기 때문에, 유명은 연극 무대감독보다는 콘서트 무대감독이 적절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업계에 일 잘 하기로 소문난 프로를 고용했다.
과연, 그녀가 없었으면 큰일날 뻔 했다.
“신유명 배우님. 무대 하나가 끝날 때마다, 여기 주연씨만 따라 가세요.”
지목당한 스탭은 검은 티셔츠에 형광색 별을 덕지덕지 붙이고 있다.
어두운 곳에서도 형광빛을 보면 그를 알아볼 수 있도록.
“의상 교체만 하면 되는 경우엔 이 분이 대기하고 있다가 바로 갈아입혀 줄 거고, 분장이 필요한 경우엔 필요한 곳으로 데려다 줄 거에요.”
“알겠습니다.”
“주연이 너는 곡마다, 아니 무대마다 변경사항들 잘 숙지하고 있지?”
“네, 여기 시트 가지고 있습니다.”
“외웠어? 내가 외라고 했잖아.”
“앗, 넵. 외웠습니다. 시트는 비상용으로 챙겼습니다.”
“헷갈리게 대답하지 마. 오케이. 진행 순서대로 주연이는 관련 스탭들 다시 한 번 체크하고. 어두우면 잘 안 보일 수 있으니까 시트 보지말고, 외워서 해 봐. 민경이가 봐 주고.”
“네, 무대감독님.”
“그거 끝나고 나면 민경이는 까메오들 챙겨. 동선 꼬이면 큰일 나니까 두 번 체크해.”
그녀의 날카로운 확인에 스탭들이 군기가 바짝 들어서 대답한다.
가수 콘서트를 진행할 땐 지금보다 훨씬 날이 서 있다고 한다. 곡마다 의상이나 소품 교체를 해야하고, 아이돌의 경우, 멤버 수가 열 명 이상이 되기도 하니까.
이 정도면 아주 차분한 분위기에서 진행되는 거라고 하는데, 유명은 그 모습이 꽤나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그녀가 다시 유명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높은 톤으로 스탭들에게 명령하던 것과는 달리, 친절한 프로의 미소를 띠고.
“배우님은 걱정하지 말고, 연기에만 전념하세요. 뒤는 저희가 책임질게요. 어수선해 보이지만 다 베테랑들이라, 보조 잘 해드릴 겁니다.”
“네, 잘 부탁드립니다.”
“얘들아, 배우님이 잘 부탁하신단다-!”
“걱정 마세요!” “신유명 화이팅!” “팬입니다아-!”
스탭들이 떠들썩하게 박수를 보내자, 유명의 입에 웃음꽃이 피어난다.
그가 좋아하는 현장의 파이팅 넘치는 분위기다.
“공연 5분 전, 스탠바이!”
“스탠바이–!”
지금 밖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유명을 기다리고 있다.
팬심을 가득 충전한 채로.
*
“안녕하세요. 갓네임드 회장, 정소진입니다.”
“회장님–!” “우와아- 예뻐요!!” “갓네임드 만세!”
소진은 위로 올려묶은 포니테일에 까만 바지정장을 입고 있었다.
갓네임드의 공식 행사인만큼, 회장이 오프닝을 맡았다.
워낙 어릴 때부터 팬클럽 간부를 맡아가며 다양한 행사를 집행해 온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소진의 진행은 능숙했다. 콘서트 무대감독조차도 일반인인데 프로 못지않다며 감탄했으니, 말 다했다.
“우리는 갓네임드입니다.”
소진이 서두를 열자, 관중석이 조용해진다.
“2004년 12월, 1회 방영일에 갓네임드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4년 9개월 간 우리는 한 배우의 성장에 울고 웃었으며, 그가 보여주는 멋지고 다양한 풍경들에 행복해 했습니다.”
관객들에게 매번 좀 더 멋지고 다양한 풍경을 보여주는 것.
다큐멘터리 1회에 나왔던 유명의 말을 빌린 표현에, 팬들은 아련한 표정으로 지난 세월을 곱씹는다.
진짜 팬은 자신의 스타와 함께 늙어간다고 했던가.
물론 그들이 유명과 함께해온 시간이 그런 말을 할 정도로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정말로 그러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가 보여주는 때로 화려하고, 때로 소박하며, 언제나 가슴떨리게 멋진 풍경들을 함께 관람하며, 신유명이라는 배우의 일생을 응원하는 팬으로 주욱 함께하고 싶었다.
무대 양 편에 설치된 커다란 전광판에, 유명과 갓네임드의 지난 세월이 흘러간다.
동영상 편집에 조예있는 팬들이 공들여 만든 영상은 가히 프로의 작품같았다.
발레리나 하이.
연예학개론.
려말선초.
피터팬.
크루드 광고.
캐스팅 보트의 하이라이트.
미믹크리.
미싱 차일드.
명품 연합 광고.
어필 투 더 소드.
어느 하나 버릴 것 없는 작품들이 하나하나 지나갔고, 그 사이에 유명의 인터뷰나 다큐에 출연한 부분, 팬미팅 장면들도 함께 삽입되어 재생되었다.
그 영상을 팬들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보고 있었다.
저 영상 속의 연기를 오늘 실물로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엉덩이를 들썩이며.
“고맙습니다, 신유명 배우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이렇게 행복하게 해주셔서요. 그리고 고맙습니다, 회원님들. 내 스타를 한결같이 응원하는 멋진 팬클럽으로 만들겠다는 제 다짐은, 여러분이 아니었다면 지켜지지 못했을 겁니다.”
늘 정확하고 공정한, 그래서 몇몇 별난 팬들도 그녀의 눈치를 봐서 함부로 나대지 못한다는 카리스마 회장은, 회원들 앞에서 처음으로 살짝 목소리가 젖었다.
그런 그녀를, 무대 뒤에서 대기 중이던 유명이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저렇게 말씀하시지만, 이렇게 좋은 팬문화가 만들어진 건 역시 회장님 덕분이야.’
누구도 그것을 부인하지는 못할 것이다.
“오늘 콘서트의 이름은 IF입니다. 왜 IF인지에 대해서, 팬카페에도 한참 추측이 떠돌았으니 다들 짐작하셨을 겁니다. 신유명 배우님이 연기했던 여러 배역들, 그 배역들의 스토리가 이런 식으로 바뀌었다면 어땠을지, 만약의 이야기들을 오늘 실제로 만나실 수 있습니다.”
오오~~
객석에서 기대감이 소리가 되어 흘러나왔다.
유명의 연기를 직접 본다는 것도 설레는데, 거기다 새로운 이야기까지 볼 수 있다니···!
“이 IF 스토리에서 원작과 변경된 부분에 대해선, 각 작품의 작가님들께 허락을 받았으니,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의사항을 알려드립니다. 이 자리는 콘서트의 형식을 가지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연극 무대입니다. 공연 중 촬영이나 돌발적인 함성, 박수는 연기하는 배우의 집중을 흐트러뜨릴 수 있으니, 박수는 한 무대의 시작 전이나 종료 후에, 촬영은 모든 무대가 끝난 후에만 해주시기 바랍니다.”
“네~~!!”
“그럼 첫 번째 무대를 시작하겠습니다. 첫 번째는, 모두들 기대하실 IF Story-”
소진은 입가에 번지는 웃음을 겨우 참았다.
진행 스크립트에서 이 내용을 보고, 그녀도 얼마나 기대해 왔던가.
다들 이걸 들으면 자지러질 것이다.
“하나와 보형의 러브스토리. 지금 시작합니다.”
꺄아아아악–
비명같은 함성이 터졌다.
260 보고 싶으셨어요?
유명의 입지가 높아지고, 보다 훨씬 유명한 작품들을 많이 찍었음에도, ‘보형이’는 아직도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카페에는 보형이가 하나와 맺어졌다면-에 관해서 쓰여진 팬픽도 여러 개 있었다. 그만큼 다들 한 번쯤은 상상해 보았던 IF story인 것이다.
조명이 스르르 꺼진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다들 잊지 못했던 음성이 들려온다.
“안 해요.”
관객들은 회장이 준 주의를 떠올리며, 터지는 비명을 겨우 참았다.
이미 골수 팬들은 이 대사가 어디에 등장한 것인지를 정확하게 떠올리고 있었다.
최종화 직전화인 15화. 하나에게 고백하지 않냐고 실장이 묻자, 목마른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던 보형의 애처로운 표정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보형아…’
소진은 한 손을 입에 물고 눈물을 그렁인다.
몇 년만에 보는 보형이인가.
불이 켜지고, 무대 위에는 핀 조명을 받고 있는 보형. 다들 입 밖으로 환성을 내지 않으려고 애쓰며, 보형의 다음 대사에 귀를 기울인다.
음향으로, 보형을 보좌하는 실장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눈이 너무 좋아서요.”
벌써 4년 넘게 지난
당시 파릇한 스물넷이던 유명은 이제 스물아홉의 청년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변함없이, 사랑스러운 보형이다. 그는 바닥에 주저앉아 무릎을 안더니, 팬들의 눈높이에서 다음 대사를 읊는다.
“결과가 너무 뻔하게 보이는데요. 잠시 속시원한 대가 치고 리스크가 너무 참혹하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