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278
그럴만도 하다는 생각을 하며.
자신이 가 있으면, 인수당한 밍기뉴의 스탭들이 괜히 눈치를 볼까봐 촬영장에 거의 가보지 못했다. 그래서 유석은 가편집된 파일로 을 접했다.
처음 그것을 봤을 때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흥행하지 못할 지도 몰라요.”
“그건 무슨 말입니까?”
“열심히 찍었고, 생각보다 잘 빠지긴 했어요. 하지만 막상 뽑힌 그림을 보니 좀 어두워서…이런 내용이 대중적으로 어필하긴 어려울 것 같기도 하고···”
유명은 정말 최선을 다해 연기했고, 좋은 극을 만들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좋은 극이 곧 대중적으로 팔리는 극은 아니다.
그러다보니, 유석에게 괜스레 미안해진 것이다. 그의 ‘어머니’가 아무리 훼방을 놓더라도 흔들 수 없는 탄탄한 작품을 만드리라 결심했었는데···
그 얘기를 듣고 유석이 웃었다.
“이번 영화가 상당히 예술영화스러운 부분이 있기는 하죠. 하지만 걱정마요. 팔릴 테니까.”
“…그럴까요?”
“이 정도로 좋은 물건을 구해 놨으면, 파는 건 장사꾼 재량이죠. 이건 유명씨 연기력 하나만으로도 팔리고도 남을 작품입니다. 내가 보장해요.”
자신만만한 사업가의 얼굴.
유명은 믿음직한 대표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된다고 했으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엔딩 나누어서 찍었던데, 어쩔 생각이에요?”
“음…감독판에 실을까 하고요. 어느쪽을 본편으로 하고, 어느 쪽을 감독판에 실을지 고민 중이에요.”
그만큼, 새드엔딩과 해피엔딩이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잘 빠졌다.
그 말을 들은 유석이 다른 대안을 제시했다.
“둘 다 팔죠.”
“네?”
“옐로 라벨은 해피엔딩, 블루 라벨은 새드엔딩. ver1과 ver2로.”
“어…후반 10분을 빼고 앞 내용은 완전히 같은데…같은 내용을 두 번 팔아먹는 상술이라고 욕먹지 않을까요?”
“아뇨.”
유석이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둘 중에 하나라도 퀄리티가 떨어진다면 왜 이런 짓을 했냐고 욕할 수도 있겠지만, 제가 본 결과 둘 다 너무 좋아요. 오히려 감독판이 나온다면, 왜 이건 영화관에서 보여주지 않았냐는 원성이 쏟아질 겁니다.”
“으음···”
“걱정이 되면 이렇게 해요. 영화표에 일회성 코드를 부여하고, 그 코드를 입력하면 반대쪽 엔딩을 무료로 볼 수 있는 사이트를 구축해 볼게요. 하지만 예상컨대, 하나를 본 사람의 대부분은 다른 엔딩도 또 보러 올 겁니다. 이건 영화팬들을 위해서도 둘 다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게 옳아요.”
그리고 유석은, 팬의 눈빛에 사업가적인 눈빛을 보태 실었다.
“그리고 좋은 명분을 만들어 줄 겁니다.”
“명분이라면···?”
“이제 본격적으로 방해를 시작할 거거든요.”
유명은 유석이 하는 이야기를 금방 인지했다.
그의 어머니의 방해를 말하는 것이겠지.
정확한 방법은 모르겠지만, 저런 표정을 한 문유석이 실패하는 경우는 없었다.
*
“무대가 중요해.”
준호와 마주앉은 유명의 말이었다.
이번 공연은 환상 요소를 다분히 내포하고 있었으며, 특히 유명이 혼자 4인을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고려할 요소가 많았다.
“어느 정도를 원하는 거야?”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의 뮤지컬 무대 급으로. 이미 섭외는 해 뒀어.”
준호는 꿀꺽 침을 삼켰다.
세계 최고의 무대미술 감독들이 설계하는 명뮤지컬의 무대들은 엄청난 정교함을 자랑한다. 준호는 해외에 나가본 적이 없어서 자료 화면으로밖에 본 적이 없지만, 화면 속에서도 회전하고, 구조물이 변화하며 살아있는 듯 변화해나가는 무대 장치들은 스펙타클했다.
국내에선 아직 그 정도의 무대장치를 본 적이 없는데···
“이미 대본은 보냈어.”
“어…그래?!”
“응, 네가 연극대본으로 각색한 거 달라고 했었잖아. 그걸 웨스트엔드 쪽 무대감독인 짐 로버한테 보냈어. 그랬더니 이런 시안을 보내왔더라고.”
준호는 유명이 내민 파일속의 시안들을 한 장 한 장 넘겨보고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첫 번째 시안은, 거대한 스크린을 배경으로, 곳곳에 서 있는 작은 흰 색의 스크린들이 미묘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내면의 집이다.
“그림자를 프로젝터로 투영할 거야.”
초반 1개월은, 유명의 단독 공연이다. 그들이 생각한 방식은, 각 장의 주요 인물을 유명이 직접 연기하고, 나머지 인물은 그림자 환영으로 처리하는 방식이었다.
그림자의 대사는 녹음으로 처리해야 하니, 일반 배우라면 소화할 수 없는 방식이었지만 유명이라면 가능했다. 무무에서와 같이, 녹음된 대사 사이에 자신의 대사를 정확하게 끼워맞추는 방식으로.
준호도 그 방식에 동의했지만, 실제 시안은 처음 본다. 그림자가 등장하는 방식이 어설플지도 몰라 걱정했는데, 이 정도 퀄리티의 무대라면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두 번째 시안은, 실제 세계였다.
무채색에 가까운 내면의 집 공간에 대비되도록 강렬한 색감을 입고 있는 무대들은 각각 현성, 은성, 민성, 유성이 실제로 살아가는 세계를 반영했다.
그 중 유성이 공연에 오르는 무대는, 어느 세계보다도 강렬한 붉은빛을 띠고 있었다.
“무대 전환을 어떻게 해야하나 했는데…이런 방식이면 걱정할 건 없겠네. 그런데 돈이 너무 많이 들지 않아?”
“괜찮아. 대표님이 영화에서 벌면 된다고 하고싶은 거 다 하라고 하셨어.”
준호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 대표님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그리고 마지막 시안을 넘겼을 때, 그는 히야~~ 하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무의식 세계구나, 이건.”
“응, 잘 나왔지.”
무대 천장에서 내려온 거대한 진자가 흔들리고, 공중에 회색의 불규칙한 다각형들이 둥둥 떠 있다. 그리고 좌우의 기계식 세트에서 등장하는 복잡한 미로같은 지형들. 그야말로 균형이 부재하는 무의식 속의 세계.
“이대로만 되면 진짜 좋겠네.”
“무대셋업에 시간 걸릴 것 같아서 대관 기간도 길게 잡았으니까 괜찮을 거야. 짐 로버도 곧 입국할거고.”
자신이 큰 기대없이 보냈던 대본 하나로, 나날이 일이 커지고 있다.
너무 잘나가는 친구를 둔 덕일까.
무대 스케치를 빤히 응시하는 그를 보며, 유명이 한 가지 아이디어를 보탰다.
“그리고 실물 크기 밀랍 인형을 하나 제작하려고.”
“헉…그건 왜?”
“영화에서 가장 크게 느끼는 게, 똑같은 얼굴이 한 자리에 모여 있을 때의 이질감이잖아. 연극에서도 그런 느낌을 조금이라도 주고 싶어서.”
“밀랍 인형은 연기를 못하잖아? 어느 장면에 쓰게?”
유명이 싱긋 웃었다.
*
5명이 한 연습실에 모인 모습을 보고, 준호는 입을 벌렸다.
연습실이 자체발광하는 것 같다.
기럭지로도 분위기로도 압도하는 데렉.
까칠한 듯 귀족적인 분위기가 나는 미형의 서류신.
담백한 눈매에 깨끗한 피부, 배우의 아우라를 여실히 뿜어내고 있는 유명.
장난기어린 동안의 외모에 톡톡 튀는 느낌을 가진 도효준.
그리고 너무 예뻐서 연기가 묻힌다는 평을 듣는 설수연까지.
‘미쳤네 진짜··· 이 캐스팅으로 내 작품을 연기한다니···’
준호는 바싹바싹 마르는 입을 다시 한 번 생수로 축였다.
[죄송하지만, 이번 캐스팅은 오디션 없이 제가 임의로 선정하겠습니다.]영화에서 주연 배우이자 감독이었던 것처럼, 연극에선 주연 배우이자 연출이 된 유명이, 캐스팅을 자신이 정하겠다고 선포했다.
그 이유는 모두 알고 있었다. 이것은 ‘유명 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
어느 역이 누구에게 맞는지도 그가 결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미 생각해 왔나 보지?] [네.]모두들 유명의 입술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과연 어떤 캐스팅을 준비해왔을 것인가.
[먼저 다인 역.]유일한 조연이자, 사건의 분기점이 되는 중요한 역할.
유명은 그 역할에 의외의 인물을 캐스팅했다.
[데렉이 맡아주세요.]그 말에 놀란 것은 데렉보다 수연이었다. 당연히 다인은 자신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던 그녀가 깜짝 놀라 유명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데렉이 조금 심술궂은 말투로 답했다.
[그럴 줄 알았지. 언어 때문인가?] [그 문제도 없지 않지만, 워낙 다인이 중요한 역할이라서 그래요. 데렉이 해주면 영화와는 또 분위기가 달라질 거 같아서.] [위로하지마, 젠장. 한국어를 배워야 하나.]다섯 중에 넷이 한국인이며, 관객들도 대부분이 한국인일 무대였다. 데렉이 유명의 인격 중 하나를 맡으려면 내면의 집에서 일어나는 모든 대화를 영어로 진행해야 한다.
반면 다인은 설정을 바꾸면 얼마든지 데렉이 맡을 수 있었다. 다인이 등장하는 순간만 자막 처리를 하면 되기 때문이다.
[일단 알았어. 대신 다들 나만 못하면 각오하라고.]그의 으름장에 수연의 동공이 흔들렸다.
[다음은 은성 역입니다.]이번 극에서 유성만큼이나 중요한 역할.
모두가 집중한 가운데, 유명은 한 사람을 호명했다.
266 가장 무서운 사람
[류신 형.]서류신은 움찔했다.
유명이 을 함께 연기해보자고 했을 때, 류신은 캐스팅이 어떻게 돌아갈지를 미리 궁리해 보았었다. 유성과 대척점에 서는 인격이자 유성을 제외하면 가장 중요한 인격이 은성이니만큼, 그 역할은 데렉이 맡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유명은 확고한 눈빛으로, 모두에게 말한다.
[이 캐스팅을 가장 먼저 결정했어요. 은성 역을 가장 잘 해낼 수 있는 건 류신 형이라고 생각합니다.]누구보다 인정하는 라이벌.
아니 혼자 라이벌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뿐, 누가 봐도 자신의 수준을 훌쩍 넘어선 최고의 배우가, 은성 역을 가장 잘 해낼 수 있는 건 자신이라고 얘기한다.
지난 수 개월 간 함께 맞춰왔던 합 때문일까.
[그건 인정. 신은성 역은 서류신 거지. 저 나머지 꼬맹이들이 문제지.]데렉도 고개를 끄덕였다. 가편집 테입을 구경한 그는, 유명이 선택했던 말도 안 되는 촬영 방식과, 그것에 기어코 따라붙은 류신에게 감탄했다.
유명의 인정에, 데렉 맥커디의 인정까지 받은 류신의 목이 슬쩍 붉어졌다.
남은 배역인 현성과 민성.
처음에는 당연히 현성을 수연에게, 민성을 효준에게 맡기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카이 누넨의 말이 떠올랐다.
왜 하필 ‘왕’을 골랐냐는 질문에, 그게 자신이 제일 못할 것 같은 배역이라서 골랐다던 카이의 말.
그렇다. 아직 배울 것이 많은 수연과 효준에겐, 좀 더 어려운 과제가 필요하다.
[효준이 현성, 수연이 민성.] [네??] […?]아직 제대로 대본을 보지 못한 효준은 그저 고개를 갸웃했고, 수연 혼자 비명을 질렀다.
가만있어도 색기를 폴폴 날리는 퇴폐와 격정의 화신을 자신이 연기해야 한다고?
[재밌겠네. 나만 재미없는 배역을 맡은 대신 요구할 게 있는데.]데렉이 말한 ‘재미없는 배역’이라는 것은, 다인이라는 배역이 매력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내면의 집에 포함되지 않은 독립된 캐릭터라서, 자신에게 새로운 도전이 필요한 배역은 아니라는 뜻.
유명이 그 말 뜻을 이해하고 데렉을 지그시 쳐다보자, 그가 나머지 배우들에게 말한다.
[유명은 바쁠 거야. 그에게 개인연습시간을 만들어 주려면 너희가 굴러야 돼. 내가 굴려서 나만큼 만들어주지.] [정말요?] [히익-]기꺼워하는 류신과 숨을 들이쉬는 효준, 그리고 수연은 반응도 하지 못하고 있다.
유명이 그의 제안을 반갑게 받아들인다.
[정식으로 드라마투르그 권한을 부여할게요. 잘 됐네요. 안 그래도 위고씨는 편집해야 해서 누가 봐줄 사람이 있을까 고민했는데.]그렇게 주요 배역의 캐스팅이 끝났고,
이 가을, 다섯 명의 인원들은 함께 지독하게 구르고 구를 예정이었다.
*
뜻밖의 인물이 한국을 찾았다.
[안녕하세요, 유명씨.] [발롱 씨! 잘 계셨어요?]발롱 파루지에. 오랫동안 유명을 눈여겨 보았으며, 결국 칸에 데려간 장본인.
위고와 절친했으니 위고를 보러 휴가를 낸 것인 줄 알았건만, 그는 을 보고 싶다고 간청했다.
[음…그런데 발롱 씨, 좋게 봐 주신다고 해도 인격살인은 칸에 갈 순 없어요.] […왜입니까?!] [12월에 개봉 예정이거든요.] [뭐…일단 보고요. 보고 얘기하면 어떻겠습니까.]못 보여줄 건 없었다. 워낙 인연이 깊은 사람인데다, 위고와도 가까운 친구였으니. 유명은 고개를 끄덕이고 그를 편집실로 데려갔다.
따로 세팅한 편집실엔 위고와 니사, 니사의 팀원들이 함께 작업을 하고 있었다.
[발롱!] [위고! 잘 있었나?] [부탁한 것들은 다 가져왔겠지? 내 치즈! 캐비어!]보자마자 먹을 걸 가져왔냐고 칭얼대는 위고를 보며, 발롱은 못말린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위고 씨, 발롱 씨에게 가편집본 좀 보여주세요.] [오, 오랜만에 이 친구의 놀라 자빠지는 모습을 볼 수 있겠군. 나도 같이 들어가야지.]그들이 가편집본을 보러 들어간 후, 유명은 니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작업은 어때요, 니사?] [안 그래도 부르려고 했어요. 이거 좀 봐 봐요.]그녀가 작업하고 있는 컴퓨터 쪽으로 손짓하더니, 마야(*헐리우드에서 cg를 만드는 표준 툴) 프로그램을 통해 유명에게 보여준 것은 무의식 세계의 배경이다.
[와···]유명은 보자마자 입을 떡 벌렸다.
기본적인 이미지와 스케치는 공유했었지만, 실제로 보니 정말 자신이 상상한 세계가 화면으로 튀어나온 듯이 펼쳐져 있다. 신기할 정도다.
[어때요?]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제가 상상하던 그림과 비슷한데요?] [재밌는 게 말야, 유명씨 연기를 보면서 딱 이런 그림이 떠올랐어요. 눈에 선하다고 해야 하나?]니사가 정말 신기한 듯이 말했다.
유명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이 공간의 이미지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어떻게 주변 배경이 보일 것처럼 상상력을 자극하는 걸까. 그게 아니었으면 훨씬 시간이 더 오래 걸렸을 것이다.
[작업 기한이 너무 빠듯하죠? 미안해요.] [별로 그렇지도 않아요. 본격적으로 CG가 들어가는 건 무의식 세계 정도고, 내면의 방은 고정 배경인데다, 미리 구조를 상정하고 연기해서 별로 할 일도 없어요. 유명씨 연기가 워낙 딱딱 들어맞는 것도 그렇고.]크로마키 스튜디오를 제작할 때, 유명은 일부러 이미지에 맞춰 스튜디오를 제작한 후, 그린스크린을 씌웠다. 덕분에 동선들이 정확히 자리잡아, 편집의 수고를 크게 덜어주었다.
[와…그런데 그 배우는 누구에요? 유명씨 상대역?] [류신 형요? 잘 하죠?] [유명씨 잘 하는 거야 너무 잘 알고 있었지만, 그 배우는 어떻게 그걸 따라가지? 내가 존한테 얘기했더니, 존도 무척 관심을 보이더라구요.] [진짜 잘 하고 열심히 하는 배우에요.]의외의 루트로, 존 클로드가 서류신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것 같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방 안에서 가편집본을 모두 관람한 발롱이 비틀거리며 걸어나왔다.
[저게…뭡니까?] […?] [저거, 어떻게 찍은 거에요? 나 지금 꿈을 꾸고 있는건가···] [하하, 내가 그랬지? 놀라 자빠질 거라고.]위고가 얄밉게 놀리는 것을 받아치지조차 못하고, 그가 유명에게 다가와 두 손을 모았다.
[칸···] [죄송합니다, 발롱 씨. 12월 개봉 예정이라서요.] [아니 그래도···] [연극과 동시 개연할 생각인데, 지금 구성원들을 내년 5월까지 붙들어 둘 수가 없어요.]그가 결국 시무룩하게 어깨를 늘어뜨렸고, 유명은 겨우 통한 핑계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물론 그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
연습이 시작되었다.
[꼬맹이들, 정신 똑바로 차리고. 발성 다시!] [아- ] [아– ]유명은 아직까지 이 쪽 연습에 거의 참석하지 못했다. 1인극 연습과 영화, 연극의 연출 업무들로 정신없이 바빠, 어느 정도 기본 연습이 끝난 후에 합류하기로 했다.
자동적으로 데렉이 진행하게 된 연습의 강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수연은 If 콘서트의 아리자데 연습을 하면서 데렉의 스타일을 웬만큼 알았다고 생각했지만, 본 연습에 들어가자 그는 그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배우들을 압박했다.
소심한 수연은 그가 혼낼 때마다 심장이 발발 떨렸다.
[도효준, 정신 똑바로 안 차려?] [넵! 다시 하겠습니다!]6년만에 보는 도효준은 무척 변해 있었다.
피터팬을 계기로 배드 엔터에 입사했을 당시, 수연은 연기 연습에서 효준을 처음 만났다. 그 때의 그는 늘 연습을 땡땡이치길 일삼는 데다, 거만하고 재수없는 녀석이었다.
연기 수업에서 수연보다 과제를 빨리 해내고 잔뜩 으스대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그런 그가 캐스팅보트에서 된통 혼이 나고, 사퇴했다.
당시 데렉에게 혼나던 모습과, 마지막에 잔뜩 기가 죽어 고개를 숙이던 모습을 보고 안 됐다고도 생각했지만, 사람은 그리 쉽게 변하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웬걸,
[하나- 둘- 하나- 둘-]그는 의외로 데렉의 지도에 불평 한 번 없이, 땀 흘리며 연습장을 구르고 있다.
데렉이 무섭게 을러대도, 힘주어 대답하고 빠르게 시정한다. 멘탈이 강한 모양이다.
원래도 재능이 넘치던 사람이 연습에도 열심히니, 연기도 하루가 다르게 늘어갔다.
수연은 어느날 슬쩍, 효준에게 말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