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28
이런 목소리를 가진 일반인을 만난다면 그것만으로도 배우로 키워보고 싶을만큼 톤이 좋은 목소리이다.
그리고 그 부드러움을 반전시키는 ‘음성 캐릭터’.
일반 관객에게 저사람의 목소리가 어떤지 물어본다면?
아마 ‘매우 야비해보이는 기분나쁜 목소리’ 라고 평할 것이다.
어조, 말투, 대화의 버릇들이 본래의 부드러움을 덮을 정도로 소위 ‘쌈마이’스럽게 잘 가다듬어져 있었다. 지금도 곽기자에게 최대한 낮추는 말투를 쓰고 있는데도 악역이란 것이 여실히 느껴진다.
마지막이 바로 처음부터 시선을 뗄 수 없었던 이유, 표정이었다.
웃을때도 상냥할때도 본성이 감춰지지 않는, 실감나게 비열한 표정.
다만 아쉬운 것은, 무표정일 때도 비열한 인상인 것을 보니 저 배우는 원래 저렇게 생긴 모양이다.
‘맞춤 캐스팅이긴 한데, 인상이 저래서야 앞으로도 악역 말고는 어렵겠네, 쩝.’
그럼에도 탐이 났다.
무려 자신에게 ‘와, 저 놈’ 혹은 ‘저 새끼’가 아닌, ‘와, 저 배우’라는 감탄을 일으킨 배우이다.
‘오늘 명함 가져왔던가…?’
공연이 이어졌다.
이신은, 남사장이 세 번째 나타났을 때쯤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했다.
김철수가 선한 주인공, 곽기자가 현대 사회의 씁쓸한 단면을 대변하는 기회주의적 조연이라면, 남사장은 사회의 어둠을 상징하는 악역 비중단역이다.
악역의 임팩트는 있지만, 주조연이 아니기에 등장 장면은 한정되어 있다.
그런데 그 한정된 장면마다,
스윽-
관객들의 시선이 준조연에 집약된다.
그것을 네 번째 확인한 이신은 소름이 돋은 양팔을 손바닥으로 감쌌다.
남다른 눈, 경험치만렙의 분석력으로 ‘남사장’의 가치를 가장 먼저 알아본 것은 그일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가장 정확한 것은 감각으로 배우를 받아들이는 관객이다. 그 관객이 무의식 중에, 한 배우에게 시선을 편애하고 있는 것이다.
3막, 주연과 1:1로 붙는 신에서 그가 완연히 악의를 드러내자 한 관객이 숨을 흡 들이켰다.
주연이 더 정면에서 많은 대사를 치고 있는데도, 자꾸 그에게만 시선이 달라붙는다.
시선을 훔친다.
그야말로, ‘신스틸러’ 였다.
*
무대인사.
거대한 박수세례가 쏟아지고, 커튼콜이 시작되었다.
이신은 조마조마하게 ‘그 배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철수역에 구원영~”
음향이 떨어지고,
“곽기자역에 강석호~”
조명이 떨어졌다.
“남사장역에 신유명~”
드디어 기다리던 배우가 등장했을 때,
‘어?’
이신은 눈을 몇 번 껌벅이더니 종내엔 눈을 비볐다.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는 남학생의 얼굴이 한치의 일그러짐 없이 선하다.
‘무표정마저 비열해서 당연히 원래 인상인 줄 알았는데,
미친…그게 만든 표정이었다고?!’
객석에 불이 켜지기도 전에, 이신은 밖으로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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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표정의 표정
‘저 자식이 결국···’
객석 제일 뒷자리에서 공연을 관람 중이던 철주는 유명이 등장할 때마다 표정을 우그러뜨렸다.
준한의 반대로 분량조절을 하지못한 이후, 수 차례 밸런스를 강조하며 눈치를 주어왔건만, 작정이라도 한 듯 무대를 휘젓는 유명.
남은 두 번의 공연동안은 반드시 자제시켜야겠다-고 생각하며, 철주는 공연이 끝나자마자 객석을 빠져나왔다.
짝짝짝-
문틈으로 새어나오는 박수소리
관객도 꽤나 들었고, 배우나 스탭들의 치명적인 실수도 없었다. 이정도면 역대급아닌가-하고 생각하며 철주는 뿌듯한 웃음을 지었다.
그 때였다.
쾅-
아직 객석에 불이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객석 문을 열어젖히는 사람.
“이신 선배님!”
그는 함박웃음을 머금고 선배에게 허리를 숙였다.
“어, 어? 그래 철주구나. 공연 잘봤다.”
선배는 평소답지 않게 흥분한 눈치였다. 공연이 그렇게 좋았나- 어깨가 조금 올라가려고 하는 걸 자제하며 철주는 최대한 겸손한 스탠스를 취했다.
“어 참 철주야. 나 뭐 하나 물어보자.”
“네 뭐든지 물어보세요 선배님.”
‘드디어 스카웃인가?’
너무 빨리 고개를 끄덕이지 말자고 다짐하며 철주는 공손하게 이신을 응시했다.
손에 땀이 쥐어졌다.
“남사장 역할 했던 배우, 무슨 과 몇 학번이니? 연기 경력은? 연기는 진지하게 하는 거래? 그 정도 연기가 취미일 리가 없는데, 프로지망 맞지?’
그의 표정이 굳었다.
이신은 철주의 표정변화를 인지할 정신도 없이 질문을 쏟아냈고, 하나의 질문이 더해질 때마다 철주의 마음은 시커멓게 우그러든다.
“경영 00입니다. 첫 연기고 진로 얘기는…따로 한 적 없는 거 보면 그냥 취미 아닐까요. 제법 하죠?”
“첫 연기라고? 와…그럼 어디 기획사 소속되어 있거나 그런 건 아니란 거지?
제법? 제법 정도가 아니지. 철주 너도 참…그런 애는 주연을 시켰어야-”
“…”
아차-한 이신이 철주의 눈치를 보았다. 눈에 띄게 어색한 상대의 표정. 실수했다.
연출이면 그 배우에게 영향력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아참. 창천이지. 그래, 첫 연기에 그 정도 배역이라도 준 거 보니 철주 네가 역시 보는 눈이 있구나. 그 친구 좀 보고싶은데 나올 수 있으려나? 입단 권유하려는데 혹시 망설이면 잘 좀 얘기해줘. 철주 너만 믿는다!”
“아 네, 선배님 전 급한 일이 있어서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그래그래. 어서 가봐.”
철주는 더 이상 평정을 유지하기 힘들어 자리를 황급히 피했다.
빗겨 이신이 무대 뒤편으로 달려갔다.
*
“안녕 유명아. 나 창천OB인 90학번 백이신이라고 한다. 반갑다!”
이신은 기다리는 동안 겨우 냉정을 조금 되찾고, 차분하게 인사할 수 있었다.
‘이 선배가 왜···’
유명도 백이신을 알고 있다. 지난 생에선 선배들과의 술자리에서 같은 자리에 앉은 적도 있었다. 물론 백이신은 다음 날에 바로 자신을 까먹었을테지만.
예리한 눈썰미에 조금 어려운 성격이었다고 기억한다. 그런데, 이 사람 좋은 미소에 자연스럽게 이름을 부르는 싹싹한 동네형은 누구지.
“안녕하세요 선배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공연 잘 봤다. 너 상당히 재능이 있어 보이더라. 연기 쪽으로 진로를 생각하고 있니? 혹시 줄라이라고 들어봤어?”
상당히 재능이 있다-
이신은 단어를 골라가며 너무 조급해보이지 않게 말하려 했지만, 욕심은 감출 수 없이 문장 사이에 질척하게 달라붙는다.
“네, 그럼요. 연기지망생 중에 줄라이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리가요. 좋은 극단이죠.”
“아, 혹시 관심있니? 오디션 한 번 받아볼래?”
결국 몇 마디 지나지 않아 이신의 본심이 튀어나와 버렸다.
유명은 조금 곤란해졌다.
줄라이, 서류신이 간판으로 있던 극단. 좋은 곳이다. 대학로 탑쓰리 규모의 극단이며, 정기공연만으로도 자생이 가능한 몇 안 되는 극단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 생에서 유명은 특정 극단에 소속될 마음이 없었다.
15년을 한 극단에 매여 있었던 지난 생에서, 이미 시스템 내에서 배워야 할 것들은 모두 배웠다.
좀더 자유롭게, 연극이든 영화든 가리지 않고 하고 싶은 작품을 골라 마음껏 연기하는 것이 유명이 원하는 바였다.
“선배님. 잘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 극단에 소속될 마음이 없습니다.”
“왜? 연기에 대해서 기본을 잘 쌓으려면 역시 극단에 소속되는 게···”
“심사숙고해서 정한 결론입니다. 만약 나중에라도 극단에 마음이 생긴다면 꼭 선배님부터 찾겠습니다.”
구구절절한 설명이 없는 단호한 거절.
꽤나 담백한 성격인 모양이다.
거절한다 해도 어떻게든 꼬셔서 줄라이로 끌고 갈 셈이던 이신의 말문이 막혔다.
23살 애송이의 ‘심사숙고’라는 말이 왜 이렇게 무겁게 느껴지는 걸까.
‘지금 억지로 밀어붙이면 뒤에 붙은 약속도 무효가 될 수 있겠다.’
이신은 감이 좋은 사람이었다.
어차피 연기를 그만둘 놈은 그만두고, 영화판으로 떠날 놈은 떠난다.
연극판으로 올 경우 자신에게 먼저 기회를 주겠다는 것만 해도 큰 가능성이지 않은가. 무대는 스크린과는 다른 중독적인 매력이 있는 법이니.
“그래. 여기 명함. 약속 잊지말아줘. 그런데···”
이신이 주위를 살핀 후, 창천 사람들이 없는 걸 확인하고 말을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