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285
유성은 은성을 간단히 제압해서, 내면의 집으로 돌아간다.
‘역시 류신 선배. 의도한 그대로 따라오네.’
이후 두 사람의 연기는, 애드립이라는 것을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합이 딱딱 들어맞고 격정적이었다.
발악하는 은성은 내면의 집에 유폐되어, 제 2의 현성이 되어간다.
“신유성!”
“신유서어어엉···!”
“…신유성···”
냉담한 압제자가 되어버린 신유명과 나즉하게 흐느끼며 죽어가는 서류신의 모습은 그 날 공연의 절정을 이루었다.
‘그렇게…즐거워?’
그것을 보고 있던 연귀의 마음이 두근두근 떨리기 시작했다.
‘함께하는 연기라는 것은…그렇게 즐거운 것이냐. 그렇게, 황홀할 정도로.’
인간의 격을 넘은 연기를 펼치는 신유명과, 그에 죽을힘을 다해 상응하는 서류신의 모습. 그 두 사람이 내뿜는 저릴 정도의 에너지에 연귀는 취한 듯이 어지러웠다.
우와아아아아-!!
공연이 끝나고, 다섯 명의 배우는 손에 손을 잡고 커튼콜에 응했다.
모든 에너지를 쏟아낸 배우들의 후회없이 깨끗한 표정은, 무척 아름다웠다.
*
“백화점 매출이…시네마 때문에 줄고 있다고요? 그 무슨 황당한···!”
문도석이 말까지 버벅대며 분노했다.
회장의 손주 앞이라 대놓고 탓은 하지 못하지만, 불만이 버글버글한 얼굴로 태원시네마의 사장이 말을 이었다.
“황당하다고만 볼 수는 없습니다. 사실 백화점과 시네마는 공생사업이니까요. 지난 두 달간 시네마 매출이 확 떨어진 건 사실이지 않습니까.”
첫 달에는 수라도를 펑펑 밀어주었지만, 수라도가 폭망하면서 결국 스크린 수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 대책으로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밀어 넣었지만, 이미 인터넷에서는 태원시네마 불매 여론들이 터져나오고 있었고, 그것은 매출에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하지만 백화점 매출까지 우리 탓을 하는 것은…좀 너무한 거 아니야?’
그런 생각을 하며 이맛살을 찌푸리고 있을 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RRR-
[문명석]도석의 사촌형이었다.
275 업만큼의 값
[도석아.]“아이고, 형님. 어쩐 일이세요!”
사장 앞에선 불퉁하던 문도석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비굴해진다.
태원 회장에겐 두 명의 아들이 있다. 그 중 큰 집의 장남이 문명석이다. 즉, 그는 높은 확률로 차기 태원을 이어받을 존재인 것이다.
도석이 휘휘 손을 내젓자, 그보다 한참 나이가 많은 사장이 황급히 사장실을 비워주고 나갔다.
태원시네마의 사장이라고 한들 그는 월급쟁이에 CEO에 불과하고, 문도석은 태원 오너가의 핏줄이다. 태원 그룹에서 입지가 그리 크지 않은 태원시네마의 입장에서, 갑자기 전무로 발령난 오너가의 핏줄은 사장도 눈치를 보게 만드는 존재였다.
그러니 사장도 작금의 사단을 막지 못한 것이다.
[너 시네마가서 뭐 하고 있냐. 왜 자꾸 쓸데없는 잡음이 들려? 태원백화점 앞에서 시네마 의혹 해명하라고 1인 시위한다는 얘기는 들었어? 전략실에서 이번 달 백화점 매출 하락한 원인이 태원시네마 이미지 저하라고 분석한 건 알고나 있냐? 인격살인 쪽 영화사랑은 무슨 척을 진 거야?]다다다다-
예리하고 칼칼한 말투가 사정없이 그를 몰아친다.
문명석은 태원그룹에서도 핵심 계열사 중 하나인 태원유통의 사장이었다. 집안에서의 입지가 도석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탄탄하다.
태원유통의 브랜치 중 하나가 태원백화점이며, 태원백화점 시네마사업부가 점점 커져서 갈라진 분지가 태원시네마였다. 즉, 태원유통의 입장에서 태원시네마는, 일종의 분가시킨 자식과 다름없다는 말이다.
집안에서의 입지든, 회사간의 입지든, 도석은 명석에게 철저히 약자의 입장이었다.
도석이 한껏 쭈글쭈글해져서 변명한다.
“그게 아니고요, 형님. 그 영화사에서 말도 안 되는 요구를-”
[유석이야?]문도석은 예리하게 정곡을 찔러오는 명석의 질문에, 깜짝 놀라 펄쩍 뛰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형님!”
[유석이 미국으로 내쫓은 것도 모자라서, 어떻게든 한국에서 자리 못 잡게 하려고 수 쓰다가 역으로 얻어맞은 거 같은데?]“형님!!”
[어릴 때부터 유석이가 똑똑하긴 했지. 동생 구박 좀 작작 하지, 해도 그렇게 멍청하게 티를 내면서 하냐.]“……”
문도석의 주먹이 부르르 떨린다.
문명석은 영민하면서도 음험한 인간이었다. 따지자면 동생 유석과 결이 비슷한 인간.
분명 여태까지 자신들이 문유석을 견제하는 것을 못 본 척 해 왔다. 그게 자신에게도 이익이 되니까. 그런데 이제 와서, 전혀 몰랐다는듯이 자신들만을 비난하다니.
[하여간, 유통 쪽에 피해끼치는 일 없도록 수습해. 더 문제 생기면 그룹 감사실에서 조사 들어갈 수도 있다. 그럼 나도 못 막아줘.]언제 막아주기라도 했다는 듯이, 명석이 싸늘하게 경고하고 전화를 끊었다.
도석은 끝까지 전화기 앞에서 허리를 숙이다가, 완전히 끊어진 것을 확인하고서야 전화기를 집어던졌다.
콰앙-
액정에 쩌억- 금이 갔다.
*
RRR-
RRR-
[부재중전화 7통]문유석은 안락의자에 앉아, 끊임없이 울리는 전화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발신자는 문도석.
드디어 발등에 불이 떨어진 모양이다.
‘쓸데없이 꼬리와 대화할 필요는 없지.’
이대로 전화를 받아 도석의 굴욕적인 항복멘트를 듣는 것도 재미있겠지만, 그보다는 기다리고 있는 것이 있다.
모든 것이 예상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오늘 만나기로 한, 다른 인물의 연락까지도.
강남의 한 조용한 바.
유석은 가림막이 쳐진 안쪽 자리로 안내되었다. 그 곳에 앉아있는 것은,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하는 유석의 사촌, 문명석이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 잘 있었어? 요즘 활약이 굉장하던데.”
“제가 아니라 저희 배우가 활약하는 거죠.”
“그거나 그거나.”
명석이 자신의 쪽에 놓인 빈 크리스탈 글라스에 술을 기울인다. 유석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
몇 년 전 명석이 유석을 불렀을 때는 훨씬 분위기가 고압적이었다. 그 때 그는 ‘신유명을 태원의 이미지 모델로 쓰는 것’을 의논하겠다는 핑계로 그를 불러, 자신의 칼이 되어 작은집을 쳐내기를 종용했었다.
그때와는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다. 훨씬 더 친근한 태도.
핏줄이라 한들, 서로가 처한 입장과 입지에 따라 이렇게 태도가 달라진다.
“그때 거절할 땐 숙모에게 치여서 도망가는구나 했었는데…이렇게 성공해서 돌아올 줄이야.”
“과찬이십니다. 제가 아니라 제 배우가 성공한 겁니다.”
“그거나 그거나라니까.”
유석은 꿈에도 모를 것이다.
원생의 그가 명석의 손을 잡은 것이 바로 이맘때였다. 역사는 변형된 방식으로라도 구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변형이란, 문유석이 가진 입지의 변형이었다. 지금 그들의 관계는 더 이상 갑을 관계라고 할 순 없다.
“태원시네마가 욕을 먹으면서, 태원유통의 실적에도 악영향이 미치고 있어.”
“그건 제 쪽이 아니라 태원시네마에 책임을 물으셔야 할 것 같군요. 저희는 태원에도 작품을 넣고 싶었습니다. 보이콧을 당해서 어쩔 수 없었을 뿐이죠.”
“정말? 내가 보기엔 네가 짠 그림같은데?”
유석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빙긋 웃었다.
“어쨌든 죄송합니다. 형님을 난처하게 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 정도로 난처할 건 없어. 그냥 네 의도가 궁금했을 뿐이야. 목적이 뭐냐? 태원시네마라도 갖기를 원하는 거야? 너도 우리 집안 핏줄이니 그 정도 가질 자격은 있지.”
“아뇨. 태원과 엮일 생각은 없습니다.”
“흐음…다른 생각이 있구나?”
명석은 유석을 지그시 바라본다.
문도석은 전혀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 깜이 되지 않았지만, 문유석은 다르다.
그는 할아버지가 유석을 눈여겨보기 시작한다면,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만큼 성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작은어머니가 유석을 견제하는 것을 못본 척 했다.
그러면서도 어쨌건 태원의 핏줄이란 사실과, 그가 가진 능력이 아깝다는 생각에 몇 번 손을 내밀기도 했었다.
자신의 밑으로 들어오라고. 그럼 자신이란 우산 아래서만은 마음껏 날게 해주겠다고.
하지만 유석은 그것을 거절하고, 미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태원도 어찌할 수 없는 미국에서의 입지를 구축하고, 다시 한국에 들어왔다. 심지어 그의 배우는 국내외 여론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최고의 셀럽.
드디어 그는 포섭의 대상이 아닌, 협상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태원 그룹에 욕심이 없다는 것은 진심으로 보인다.
“내가 뭐 도와줄 건 없어?”
“형님 손까지 필요한 일은 없습니다만···”
“나도 멍청한 도석이보다는 네 쪽이 사업파트너로 마음에 든다. 형이 성의를 좀 보이고 싶은데.”
이번에는 유석이 명석을 바라본다.
그는 이름 그대로 명석한 인간이다. 친척으로서의 애정은 받은 적은 없지만, 기업가로서는 인정할만한 뛰어난 사업가.
자신을 방해하지만 않는다면 굳이 척을 질 이유는 없다. 저 정도로 자세를 낮춰온다면 조금 여지를 주는 것도 괜찮지.
“방해만 하지 않아도 도와주시는 걸로 알겠습니다. 기껏 쥐를 몰아넣은 곳에 도망갈 쥐구멍이 불쑥 생기는 일만 없었으면 좋겠군요.”
“그건 나도 바라는 바야.”
오너 일가라고 흐지부지 파묻지 말고, 책임자가 책임을 지게 해달라는 말.
작은집의 손발을 묶는 것은 명석도 오랫동안 원하던 일이다.
챙-
유석이 잔을 들어 그의 잔에 가볍게 맞부딪쳤다.
공동의 이해가 일치했다.
*
띠링~
네이트온 메신저가 깜빡거렸다.
그룹채팅을 호출한 사람은 하린이었고, 유명과 육미영이 함께 초대되어 있었다.
차하린: 와, 대박··· 방금 속보 난 거 보셨어요?
육미영: 우왓. 하린이랑 유명씨 오랜만. 그런데 거긴 밤 11시 아니야? 나는 밤 새고 아침인데.
육미영은 현재 뉴욕에 있었다.
그녀는 의 공동집필자로 이름을 알린 후, 많은 곳에서 러브콜을 받았다. 특히 미싱차일드 촬영 도중 마일리 필론과 빠르게 친해져, 지금은 그녀를 위한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는데, 역시 4차원끼리는 통하는 게 있었던 것이리라.
유명은 당일 공연을 끝내고 돌아와, 다음 날 보강하고 싶은 부분을 체크 중이었다. 그런데 네이트온으로 하린이 말을 건 것이다.
신유명: 작가님 안녕하세요. 하린이도 안녕. 나 좀 전에 집에 들어왔는데. 왜, 무슨 일 있어?
차하린: 오빠, 난리났어요! 지금 인터넷에 이거 퍼지기 시작했는데, 내일이면 발칵 뒤집힐 것 같아요. 와, 이규성 진작부터 별로라곤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완전 쓰레기···
유명은 하린이 보내준 링크를 클릭했다.
이라고 되어있는 게시판에 올려진 글에는, 이미 수천 개의 댓글이 달려있었다.
제목: 이규성의 망언 폭로. (녹음파일 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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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성 매니저입니다. 아니, 매니저였습니다.
몇년 간 개돼지처럼 일하다, 이건 아닌 것 같아서 어제 사표 던졌습니다.
머리 툭툭 치고, 욕설하고, 온갖 비인격적인 대우까지는 참았는데, 진짜 이건 아닌 것 같아서요.
수라도 망한 거 다들 아실겁니다.
그래서 이규성 기분이 요즘 더 안 좋았습니다. 신유명은 연예학개론 때부터 건방졌다느니, 인격살인이 뭐라고 다들 미쳐돌아 있냐느니, 별의별 막말을 다 해대는 것까진 넘겼는데…엊그제 술을 진탕 먹더니 이런 말을 했습니다.
‘태원도 가오가 있지, 대기업에서 한 번 밀어주기로 한 걸 이따위로 흐지부지 만드냐. 나만 엿된 거 아니냐.’
이규성 말로는 원래 인격살인과 안 붙으려고 개봉일을 뒤로 밀었었는데, 태원에서 수라도 무조건 밀어준다며, 인격살인이랑 제대로 붙자고 꼬셨다는 모양입니다.
그러면서 대기업에 한 번 찍혔으니, 신유명도 오래는 못갈 거라고 악담을 하더군요.
저도 한 때 배우지망생이었습니다. 결국 꿈을 못 이루고 매니저 일을 하고 있긴 하지만, 신유명을 보면 가슴이 떨립니다. 저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연기인 줄 알거든요.
그 정도 배우를, 세계적으로 국위선양중인 명배우를, 대기업에서 일부러 매장시키려고 하다니, 사실이라면 끔찍한 일입니다.
못 믿으실 분들을 위해, 녹음해 둔 파일 일부를 게재합니다.
그 외 평소에 지껄이던 더러운 소리들 녹음한 파일 수백 개는 있으니까, 까불지 마라 이규성 개새끼야. 갈 데까지 한 번 가 보든가. 인간 말종 새끼.
이규성 망언.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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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st) ㅆㅂㅅㄲ ㅈㅇㅂㄹㄷ. ㅈㄱㅌㅅㄲ ㅁㅊㅅㄲ ㅇㄱㅅ ㄴㄴㄲㄴㄷ
└끊김없이 잘 읽히네요. 공감 추천 드립니다.
└(Best) 이규성 팬이었다는 사실이 수치스럽군요. 굿즈 화형식 가겠습니다.
└이거 정말인가? 이건 태원 말도 들어봐야함. 이규성이 쓰레기인 건 맞는데, 이규성이 지어낸 말일 수도 있지않음?
└태원이 인격살인 보이콧한 게 증거인데요?
이미 댓글창은 난리가 나 있었다.
사이트에서 잽싸게 내렸는지, mp3파일의 다운로드 링크는 이미 비활성화되어 있었지만, 하린이 따로 내려받은 mp3를 전송해 왔다.
그걸 들은 후, 유명은 착찹한 기분이 되었다.
‘그러고보니 원생에 이규성의 매니저가 폭탄을 터뜨렸던 게 이즈음이었나···’
시간이 되돌려졌다고 인간의 본질이 변화하는 것은 아닌가 보다.
새로운 생이라 해도 이규성은 이규성이었고, 이규성의 매니저도 원생에 횡포를 참지 못하고 폭로했던 성격이 어디가는 것이 아니었다.
결국, 누군가가 크게 변화하지 않는 한, 역사는 비슷하게 흘러가는 것이다.
지금처럼 조금의 디테일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일어날 일은 결국 일어나고 만다.
‘내가 살아가는대로.’
그 업만큼의 값이 돌아오는 것이다.
차하린: 유명오빠? 말이 없네…너무 충격을 심하게 받았나···
육미영: 저놈 저거 싹수가 그 때부터 노랬지. 지금보니 노란 것도 아니고 시커멓네. 완전 썩었어.
신유명: 괜찮아. 대충 돌아가는 상황은 알고 있었어.
차하린: 이렇게라도 밝혀져서 다행이에요. 내일부터 난리나겠네…
육미영: 그런데 태원이랑은 뭔 일 있었어? 그렇게 커다란 기업에서 착한 유명씨를 왜?
신유명: 좀 사정이 있어요. 제가 잘못한 건 없으니까 괜찮을 거예요.
하린의 말대로, 다음날부터 전국이 발칵 뒤집혔다.
사람들은 태원시네마 불매운동을 벌였고, 이규성의 발언에 대한 해명을 촉구했다.
수라도의 제작사인 윤성 엔터의 주가는 하한가를 찍었다. 아마 태원시네마도 상장사였다면, 주가가 바닥을 찍었을 것이다.
그리고···
RRR-
드디어, 기다리던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수화기 너머의 상대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유석도 함께 침묵으로 대응하자, 한참 후에야 감정을 추스른 나긋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유석아. 오랜만이야, 엄마야.]문유석의 입술이, 참을 수 없는 비소를 머금고 비틀렸다.
아주, 아주 재미있었다.
276 그걸론 셈이 안맞죠
“오랜만입니다, 어머니.”
유석도 아무렇지도 않은 말투로, 그녀를 친근하게 ‘어머니’라고 불렀다. ‘엄마’로서 선처를 바랄 그녀에게, ‘엄마’다웠던 적이 있는지를 반문하는 말.
‘엄마’라는 세상에서 가장 보드라운 말이, 이 곳에선 가시가 되어 여기저기 꽂힌다.
[형이 힘들어 해, 유석아.]“형이요? 이 상황을 만든 게 형인데…하하.”
[…마음이 많이 상했구나. 어릴 때부터 영리한 너한테 컴플렉스가 있다보니, 질투심에 조금 오버한 모양인데, 내가 따끔히 혼낼게. 가족이잖아, 응?]동생인 네가 양보해야지.
형을 굳이 이겨 먹으려고 하니.
엄마는 눈치있는 아이를 사랑한단다.
형보다 두각을 드러낼 때를 빼곤, 어머니는 온화하게 웃어주었다.
어렸던 자신은 파블로프의 개처럼, 엄마의 미소라는 보상을 받기 위해 납작 엎드려 꼬리를 흔들었다.
하지만 조금 머리가 굵어진 후 그는 그 웃음의 온도를 느끼기 시작했고, 그녀가 주는 것이 ‘애정’이 아니라 ‘훈련용 먹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차라리 자신을 집에 들이지 않았다면, 혹은 대놓고 미워했다면.
너를 우리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선을 긋고, 아무것도 주지않는 대신 그를 자유롭게 내버려두었더라면, 조금쯤은 그녀를 이해했을지도 모른다. 어찌보면 그녀도 피해자니까.
하지만 그녀는 자신을 거두어 들였다. 그 어린아이에게 애정을 줬다 뺐었다 하며 길을 들였다.
유석이 시아버지이자 태원 회장의 관심을 끌지 않도록, 자신의 통제 하에 두기 위해.
[여론이 안 좋아…네 쪽에서 해명을 좀 해주면, 오해가 풀릴텐데. 응? 엄마가 부탁할게.]지금도 똑같았다.
사실은 그녀가 원흉일텐데도 문도석의 탓을 하며, 가족이란 미명으로 자신을 통제하려고 한다. 예전에는 알고도 당해주었다. 자신에게 대응할 힘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오해요? 어느 부분이 오해라는 건지.”
유석의 목소리에 비꼼이 섞인다.
“제작사 인수할 때 방해했던 것도 오해였고, 스탭들 모집할 때 밍기뉴로 넘어가면 윤성에 찍힐 거라고 친절히 협박하신 것도 순전히 오해고, 인격살인을 태원시네마에서 받아주지 않은 것도 물론 오해겠죠.”
[…바라는 게 뭐니. 오해였다는 성명을 내 주는 대가.]회유가 먹힐 것 같지 않자, 그녀는 부끄러움도 없이 안면을 싹 바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