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29
“계속 연기를 할 거라면 창천은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네 연기의 좋은 점들, 창천에 있으면 계속 평준화당할 거다.”
유명이 그 솔직한 말에 이신을 다시 보았다.
눈이 좋은 사람이구나.
그리고 이 조언은 창천 OB에서 드문 반골인 이신에게도 상당한 부담이었을 것이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창천 활동은 이번이 마지막일 예정입니다.”
“이미 알고 있나보군. 괜한 걱정을 했네.”
이신은 피식 웃었다.
창천의 허용범위 이상으로 튀는 배우. 이미 숱하게 담금질을 당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본무대에서 저런 연기를 펼치다니 보통 깡다구가 아니다.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남사장 표정은 어떻게 연습한거야?”
“이거요?”
유명이 표정을 만들어 보인다. 비열한 인상을 만드는 소협골근이 수축되며, 이신이 본 바로 그 표정이 된다.
비열한 웃는 표정. 비열한 분노한 표정.
그리고, 비열한 무표정.
이신은 바로 앞에서 그 자유자재의 표정변화를 보며 침을 꼴깍 삼켰다.
“무표정의 표정을 만들었어요. 다른 표정은 그 위에 얹었구요.”
“무대 위에 올라와 있는 시간 내내 안정적으로 베이스 표정을 유지했다고? 그게 말이 돼?”
“글쎄요. 되더라고요.”
본의 아니게 얄미운 대답을 한 유명이 난처하게 웃었다.
*
토요일 막공 전.
드디어 철주의 인내심이 폭발했다.
“신유명. 너는 연출 말이 개똥으로 들려?”
어제그제 유난히 예민해져 있던 철주였다. 이신이 거대한 어퍼컷을 먹이고 간 후에도, 지인들이 공연 잘 봤다는 인사 뒤에 꼭 붙이는 말들이 잽을 툭툭 먹였다.
-눈에 띄는 애가 있던데-
-남사장 하던 애가 잘하더라.
-주인공이 너무 평범하던데…평범한 서민 캐릭터라 그런가?
이후 한번 더 경고했음에도, 2회차 공연에서도 변함없는 유명을 보고 결국 큰 소리가 터진 것이었다.
유명은 시선을 바닥에 두고 철주의 잔소리를 받아내었을 뿐 대답은 하지 않았다.
제 생각에 저는 잘못한 게 없다. 자신의 연기는 ‘남사장’이라는 인물이 딱 적절하게 드러난 정도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거기서 타협할 마음은 없었다.
프로 성악가가 어느 아마추어 합창단에 섞였다.
딱히 기교를 부린 것도 아니건만,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는 울림이, 피치가, 곡에 싣는 감정이 남다르다.
지휘자가 난처한 듯이 불러서 부탁한다. 주변 수준에 좀 맞춰달라고.
기교를 더하지 않을수는 있어도, 타고난 성량을 줄이거나 일부러 음정박자를 틀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결국 조연출이 말려서 철주를 데리고 나갔고,
싸해진 분위기 속에 선호만 안타까운 표정으로 발을 동동거렸다.
잠시 후 돌아온 준한이 유명에게 따로 보기를 청했다.
“괜찮아? 철주가 요즘 좀 예민해서.”
“괜찮습니다.”
“미안하다. 내가 미리 달래놨어야 하는데.”
“괜찮습니다.
“…원래 연출부 의견은 미리 통일해서 전달해야 하는데 이렇게 말하면 뭐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네 남사장 연기 좋다고 생각한다. 기죽지 말고.”
준한의 위로에 유명이 씩 웃었다.
“공연 중엔 무대 위에 연출이 못 올라와요.”
“…?”
“그러니까 정말 괜찮습니다.
돌아나가는 유명의 등을, 준한이 어이없이 쳐다보았다.
‘연출부가 저런 말에 납득하면 안 되지만…맞는 소리네. 대단한 멘탈이야.’
*
철주는 씩씩거리며 무대 밖으로 빠져나갔다.
‘저 건방진 새끼! 창천에서 제명해버릴까보다.’
철주는 항상 주목받는 삶을 살아왔다.
그는 자신이 우월한 것이 확실한 관계에서는 얼마든지 너그러워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 실제로 선후배들에게 최철주는 우수하면서도 겸손한 성격이라는 평판이 자자했고, 그는 그런 평판을 탐하는 취향이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이 주목받지 못하는 상황에는 면역이 없었다.
‘역시 배우 체질인가봐, 연출은 안 맞아.’
자신을 훌쩍 넘는 거대한 재능이 나타난 것을 애써 부정하기 위해, 철주는 핑계를 댔다. ‘연출’은 ‘배우’와 달리 무대 아래에 존재하기 때문에 주목받지 못한다는 핑계.
저 놈과 연기로 겨뤄도 졌으리라는 불안감은 무의식 아래에 애써 꾹꾹 눌러놓은 채.
‘줄라이는 원래 좀 그랬어. 만년 2위 극단인데 뭐. 역시 엘리트 코스는 혜성이지.’
그는 지난 이틀간 최대의 자기보호기전을 동원해서 합리화를 마쳤다.
줄라이는 원래 차선책이었다고 깎아내리며 으로 지망을 갈아엎었다. 쟁쟁한 배우들이 포진해 있다기에 조금 쫄려서 외면해왔던, 확고부동한 1위 극단.
그런 그의 자기합리화를 가능하게 했던 데에는 저 풍경도 있었다.
서류신.
그가 또 맨 앞줄에서 대기하고 있다.
마지막 공연이라 그런지 한 손엔 꽃다발을 들고.
‘새끼…남자끼리 남사스럽게 무슨 꽃이야. 이쁘장해서 어울리긴 하네.’
서류신은 어제도 저 자리에 있었다. 즉, 철주가 연출한 공연을 전회차 관람한 셈이다.
자신도 류신을 라이벌로 의식하고는 있지만, 저 정도까진 아닌데…라고 생각하며 철주는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관객수도 오디우스와 비슷할 것 같고…역시 역대급 작품이 되겠어.’
저 멀리서 학생들 한 무리가 우르르 몰려왔다. 철주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신유명만 막공에 조금 컨트롤 된다면, 그다지 나쁘지 않은 기분으로 공연을 마무리 할 수 있을 것 같다.
.
.
.
그 학생 무리는 유명의 경영학과 후배들이었다.
“나 목요일날 첫공 봤는데 유명 선배님 포스 완전 지림!”
“맞아. 평소랑 너무 달라서, 다른 사람인 줄 알고 프로그램을 몇 번이나 확인했다니까.”
선두의 두 여학생이 스포아닌 스포를 늘어놓는다.
어림잡아 40명은 되는 학생들이 순식간에 극장 앞을 가득 메운다. 미리 예약해 둔 단체석이다.
“오, 이게 극장이란 거구나. 태어나서 처음 와봄.”
“조용히 해. 불 꺼졌잖아.”
도란도란하던 대화들이 암전 속에 파묻히고, 마지막 공연이 시작되었다.
1막.
2막.
3막.
바스락-
몇 명이나 나눠준 프로그램을 뒤적였다.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막간마다 그들은 고개를 돌려 휘둥그레진 눈을 서로 마주했다.
짝짝짝짝짝짝–
마지막 공연이 끝난 베티홀은 기립 박수로 쩌렁쩌렁 울렸다.
배우들의 무대인사와, 막공연이라 이어진 스탭 및 연출 인사까지 관객들은 아낌없이 박수를 보냈다.
오늘은 커튼이 닫히지 않는다. 관객들이 무대로 올라가 창천 단원들과 직접 인사를 나누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날이기 때문.
여기저기서 축하의 인사와 꽃다발이, 플래시가 난무한다.
그 사이를 류신이 천천히 걸어왔다. 한 손에 꽃다발을 들고.
여기저기서 터지는 인사를 받으면서도, 최철주는 그의 움직임을 의식하고 있었다.
드디어 서류신이 그의 앞에 다가왔다.
“어? 고맙-”
그리고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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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려다보는 협경, 내려다보는 광경
드디어 서류신이 그 앞에 다가왔다.
“어? 고맙-”
그리고 스쳐 지나갔다.
철주는 멍하게 류신의 잔상을 좇았다.
류신은 그의 등 뒤에 있던 누군가에게 다가갔다.
“어, 형 보셨어요? 감사합니다.”
“전회차 다 봤는데요.”
“헉, 정말요? 오디우스 회장님이라 창천공연 분석같은 건가…”
철주의 귀가 쫑긋 섰다.
“아니. 창천공연보러 온 게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