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299
그 때 아덴의 표정보다는, 잠자리의 날개를 한 장 한 장 뜯어내던 살로메의 표정이 차라리 온건했으리라.
“그게, 사람 미치는 거거든.”
아덴이 입을 주욱 찢어 웃었다.
293 살로메(2)
그 때부터였다.
살로메가 등장할 때의 긴장이 둘의 맺어짐으로 살짝 누그러들어갔던 1막의 긴장 곡선은, 2막 2장부터 쭈욱 우상향하기 시작했다.
아덴이 왕의 앞에 서 부르짖는다.
“다들 어찌 그리 전하의 혜안을 모르는가! 전왕비님은 카타니아 공국을 방문 중 사망하셨다. 왕비를 죽음에 이르게 한 적국을 단죄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왕비님이 돌아가신 것은 피치못했던 사고의 결과로, 카타니아 공국에선 이미 충분한 사과를 해왔지 않습니까.
“사고라는 것은 그들의 핑계. 설사 정말 사고라고 해도, 카타니아에서 레플란의 왕비님이 돌아가신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전쟁을 반대하는 신하들 앞에서 강경하게 왕의 입장을 대변하는 아덴.
그 모습을 보면서, 왕의 신뢰는 더욱 단단해진다.
‘역시 제대로 생각이 박힌 것은 아덴 뿐이야.’
착각이다.
‘내 마음에 드는 말’을 ‘옳은 말’이라고 생각하는 권력자들의 전형적인 착각.
하지만 몸에 해로운 말이 입에는 어찌 그리 달콤한가.
전쟁준비가 차곡차곡 진행되어 가는 동안, 점점 낮의 왕의 곁에는 아덴이, 밤의 왕의 곁에는 살로메만이 남아, 듣고싶은 말만을 속삭인다.
-전하, 지금 전하는 간신 아덴과 요부 살로메의 농간에 속고 계십니다!
결국 신하들 사이에서 아덴과 살로메를 특정한 간언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레오도는 이미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없었다.
그들을 욕하는 것이 가족을 욕하는 것과 같이 느껴졌기에.
“저 자를 옥에 가두라. 반역과 무고의 죄로 내일 사형에 처할 것이다!”
버럭, 소리를 내지른 그의 앞에 살로메가 나타나, 울며 그의 무릎에 머리를 묻는다.
“…찢어 죽여 주시옵소서.”
“뭐?”
“거짓된 말을 한 혓바닥을 자르고, 그 몸을 갈기갈기 찢어, 죽을 때조차 평안에 들지 못하게 하소서.”
그 때 살로메의 말투와,
왕에게는 보이지 않는 각도지만 관객에는 훤히 드러난 그녀의 시선.
오싹-
그녀는 애절하기 그지 없는 목소리로 간구하며, 얼굴은 웃고 있었다.
순수한 기대로 가득한 웃음.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왕은 정말 몰랐을까?
그녀의 바르르 떨리는 목소리가 억울함이 아닌 환희를 담고 있다는 것을.
왕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속삭였다.
“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살로메.”
*
지이익–
으아아악–
이미 관객들은, 이 공간이 현실인지 무대인지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었다.
모두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어떤 소리에 몸을 부르르 떨었고, 리듬을 맞추듯 뒤섞이는 처절한 비명소리에 후드득 머리를 털었다.
la– la–
그럼에도 눈은 질끈 감지 못한다.
살로메가 황홀한 표정으로 추는 춤은, 눈꺼풀의 자유의지를 모조리 앗아갈 정도로 관능적이었으니까.
유명 또한 그 춤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이 춤만으로 살로메의 모순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펄쩍-
그녀의 타고난 결핍.
도구로서 키워져 온 성장과정.
비틀린 욕망을 주시하며 망설이던 어린 살로메와, 그 욕망을 이루고 도취한 현재의 살로메.
어떻게 그녀는 춤 하나만으로, 제 존재의 근원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일까.
저것은 춤일까, 연기일까.
‘그의 눈빛.’
그리고, 그런 왕을 향해 시선을 흘리는 연귀도, 감탄을 금치 못한다.
보는 순간 버석버석함이 느껴질 것 같이 위태로운 왕의 정신세계. 그 메마른 땅이 두 명의 인간에 의해 점령되어 가는 과정을, 그는 어떻게 저렇게 손에 잡힐 듯이 표현할 수 있는 것일까.
어느 인간이 자신과 함께 무대에 서서, 이렇게 팽팽한 연기를 펼칠 수 있을 것인가.
‘변하지 않는 마음.’
보기에만 아름답지, 사실 미쳐 날뛰고 있는 살로메.
그런 그녀를 보면서도 왕의 애정어린 시선은 변하지 않는다.
‘잘 알지. 이해받을 수 없으리라 생각한 것을 이해받았을 때, 느끼는 감동이라면.’
처음 자신은 유명을 점령할 계획이었다. 그것을 고백했을 때도, 그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었다.
여전히 자신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봐주었다.
그러므로, 지금 살로메의 감동을 혜호는 깊이 이해한다.
그 감동이,
뒤틀린 자신을 받아주는 뒤틀린 남자에 대한 만족감이 사랑으로 피어난다.
지이이이익–
으아아악–
그녀의 춤이 어떤 환영을 불러일으킨다.
저 너머에서 네 팔다리를 매단 네 마리의 말이 사방으로 달려, 인간을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소름끼치는 광경이.
그 잔혹한 순간이 우습게도, 왕과 살로메의 마음이 처음으로 통한 순간이었다.
“사랑해요, 레오도.”
“사랑한다, 살로메.”
살로메가 나풀나풀 걸어와, 레오도의 입에 진하게 키스했다.
이후 왕은 더욱더 망설임이 사라졌다.
전시체제는 더욱 강화되었고, 이를 반대하는 신하들은 차례차례 사지가 찢겨죽어 갔다. 왕과 살로메가 함께 지켜보는 앞에서.
그 폭정에 더이상 간언하는 자가 나오지 않고, 전쟁준비가 거의 끝나가던 어느 날,
왕은 기가 막힌 소식을 듣는다.
“저…전하. 군수 창고가 모조리 탔습니다. 방화범의 소행이라고···’
“범인이 누구냐!! 찾아내면 사지를 찢어죽일 것이다.”
시뻘건 눈으로 책임자를 추궁하는 왕의 앞에, 잡혀서 대령된 방화범은,
“…아…덴?”
전쟁을 가장 적극적으로 찬성해 왔던, 재상 아덴이었다.
*
혜전당 앞.
티켓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 중 다수는, 아직도 극장 앞을 떠나지 못하고 서성이고 있었다.
5월 말답게 훈훈한 날씨에, 보름달이 환하게 뜬 밤이었다.
삼삼오오 몰려서 안에서 어떤 공연을 하고 있을지 이야기하던 사람들은, 갑자기 주변이 어두워지는 느낌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커다란 구름이 몰려와, 환한 달을 끄트머리부터 가리고 있었다.
그 가장자리가 이상하게도 선명하여, 구름이 달을 덮어가는 모습이 마치 달이 빠르게 기울어 가는 것처럼 보였다.
“오늘 흐릴 거라는 말은 없었는데, 그치?”
“그러게…비 오면 어쩌지?”
이윽고 짙은 구름이 그믐밤처럼 완전히 달을 가렸을 때, 공연장 안에서는 3막이 시작되고 있었다.
“하하…말도…안 돼.”
왕의 얼굴 표면이 파삭파삭 갈라지는 것 같다. 금세 깨져버릴 도자기처럼.
“모함이다! 누명이다! 무엇이 잘못된 게 틀림없다. 아덴, 그렇지?”
“제가 불을 지른 게 맞습니다.”
“…뭐…라고 했느냐.”
“불을 지른 것이 제가 맞다고 했습니다.”
“내 유일한 벗인 네가…왜?”
왕은 거대한 혼란에 빠져 있었다.
“나는 평민이던 너를 아껴 내 곁에 두었다. 시동인 네게 왕자가 먹을 음식도 나누어주었고, 평민인 네게 재상의 길을 열어주었지. 그리고 네 동생을 누구보다도 아끼고 사랑했다. 그런 내게…도대체 왜…”
“벗? 하…”
아덴의 입에서 실소가 튀어나온다.
20년 이상 함께하며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표정이다.
언제나 현명하고 다정하며, 단 한 번도 자신에게 화를 내지 않았던 친구. 평민인데도 마치 귀족처럼 천성이 우아하다고 생각하고 곁에 두었던, 아덴의 얼굴이 아니다.
‘이런 표정이…네게 있었다고?’
아덴이 비소를 지으며 말을 잇는다.
“전하는 비가 있지. 정략으로 맺어진 애정없는 사이라고 해도, 본부인이 있어. 벗의 여동생을, 자신의 첩으로 달라고 그리 스스럼 없이 말하는 벗도 있단 말인가.”
“네가…나를 위한 선물이었다고 했다.”
“인간이 인간을 선물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전하의 오만함이지.”
들어본 적이 없는 막말이,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던 벗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심지어 언제나 자신을 부르던 친근한 말투로.
왕은 하얗게 굳어, 그 자리에 못 박혔다.
“전하가 베푸는 친절은 자비였고, 말을 놓아도 된다 한 허락은 위선이었어. 그거 알아? 전하는 한 번도 나를 벗으로 본 적이 없어.”
“그게 무슨 말이냐! 나는 언제나 너를!!”
“기억해? 전하가 나에게 첫 보직을 주며 했던 말. 너는 평민이지만 꽤 뛰어나. 계속 그렇게 내 맘에 들면 언젠가 귀족이 될 수도 있을 거다.”
“그게 왜···”
“사람들은 벗을 그렇게 대하지 않아. 자신의 기대치를 충족하면 고기 한 점을 던져주며, 우수한 개를 기르듯이.”
꽤나 난폭하고 제멋대로인 왕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 독설가의 앞에서,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말을 더듬고 있다.
그가 너무 말을 잘 해서?
아니, 마음에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진심이 그렇게 오해받고 있었다는 것에.
문제는, 재상의 말이 아예 틀린 것도 아니라는 부분에 있었다. 왕은 언제나 위에 선 자였고, 재상에게 베푼 호의도 ‘이 정도면 친구라고 할 수 있지’라고 스스로 판단한 것이었기 때문에.
“아니다!! 나는 정말 진심으로···!”
“하하, 나를 대할 때의 전하의 오만한 표정을 안다면 그렇게 억울해 하지 못 할 걸.”
텅-
재상의 그 말과 함께 조명의 색깔이 바뀌었다.
모든 것을 기괴하게 표현하는 초록빛의 조명이 쏘아지며, 무대는 과거의 장면들로 전환되었다.
*
“아덴.”
“네, 전하.”
1막 2장의 장면이다.
레오도와 아덴의 선 위치와 자세까지, 조금의 차이도 없이 똑같은 장면.
하지만 레오도가 짓고 있는 표정만이 미묘하게 달랐다.
“둘만 있을 땐, 이름을 부르라니까.”
대사를 치는 방식은 같다.
억양, 강조를 두는 단어, 쉬어가는 포인트까지.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듣는 사람을 기분나쁘게 하는 느낌. 동등한 상대가 아니라, 아랫사람에게 아량을 베푸는 듯한 오만함이 분명히 섞여 있다.
“살로메가…네 동생이라지?”
이 말 또한 분명 친구의 동생을 보고 반한 순진한 남자의 물음은 아니다.
명백히 상대에게 흑심을 품고 있고, 그것을 숨길 생각도 없는.
자신이 손을 뻗으면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 것을 알면서, 상대를 한 번 떠보는 어투.
‘…너는 정말로.’
이 장면은 유명이 제안했던 장면이다.
혜호는 표정 하나 말투 하나 바꾸지 않으면서도, 미세하게 다른 느낌을 주어 상대를 불쾌하게 만드는 유명의 정교한 연기에 감탄했다.
‘분명 마지막 리허설에도 이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그는 무대 위에서 지금도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후에도 왕과 재상이 함께 등장했던 장면장면들이 다른 분위기로 재현되었다.
관객들은 혼란에 빠졌다.
분명 이제까지 그들의 사이는 의심할 나위없이 좋아보였다. 왕은 지위를 내려놓고 친구를 친근하게 대했으며, 아덴도 그런 왕을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다.
“수고했다, 아덴. 네가 좋아할 만한 상을 내리지.”
하지만 아덴의 시선에서 바라본 왕의 태도를 보니, 왕이 평생 그를 이렇게 대해왔다면 재상의 삐딱함도 이해가 될 것같은 기분이 든다.
위하는 척 하면서 상대를 기만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질이 나쁜 친절이니까.
다시 조명이 원래대로 돌아오고, 레오도는 발끈한다.
“아니다!! 나는···”
무엇이 진실이든 지금에 와서 무슨 상관이랴.
왕이 진짜 그런 태도였을 수도 있고, 혹은 그런 태도를 습관적으로 취했지만 의도는 순수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전혀 그러지 않았는데 재상의 자격지심으로 그의 표정이 왜곡되어 보인 걸지도.
어찌됐든, 그들은 이미 건널 수 없는 골짜기의 양쪽 벼랑에 서 있었다.
왕의 억울함도 분노로 치환되기 시작한다.
“그렇군. 너는 그렇게 웃으면서 언제나 속으로는 비수를 감추고 있었구나. 내가 하는 모든 일을 악의적으로 해석하면서, 나를 무너뜨릴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는 거지?”
“정확해.”
“내가…너를 어떤 마음으로 대했는데···”
“하찮은 것에게 내리는 하해같은 성은?”
“어떻게 네가···”
챙강-
왕의 얼굴이 깨어지며, 고통과 배신감, 분노를 담고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아데에에엔!! 도대체 어떻게 네가!!”
수전당 전체가 고요히 숨을 죽였다.
아덴은 한 점 동요없이 눈을 감고, 레오도는 핏발이 성성한 눈으로 명령했다.
“죽여라, 그를.”
잠시 후, 명령 하나가 추가되었다.
“아, 찢어 죽이도록 해라. 살로메가 좋아하겠군.”
294 살로메(3)
‘하아···’
혜호의 몸에서, 또 한 번 주르르 힘이 빠졌다.
갈수록 빠른 속도로 생기가 소모되고 있다.
조명 아래 희미하게 드러난 관객들의 표정은 거의 반쯤 정신이 나가 있었다.
관객들과, 유명과, 자신의 집중도가 극으로 몰려감에 따라, 역리는 점점 더 강해지고, 생기는 점점 심하게 빨려나간다.
‘얼마 남지 않았는데···’
남은 꼬리는 이제 셋.
포켓에서 잠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유명을 바라보며, 혜호는 없는 힘을 짜내 아홉 개의 푸른 꼬리를 가짜로 만들어내 보인다. 자신이 여유가 없는 것을, 절대 유명이 알아서는 안 된다.
다음 장면은 살로메가 처형 전의 아덴을 찾아오는 장면.
자신이 혼자 등장하는 장면이다.
“미호, 화이팅.”
“그래.”
“평생 해 온 어떤 무대보다도 미칠 것 같이 즐거워. 너는 정말 최고야.”
“…너도 최고다.”
처음으로 틱틱대지 않고 마음 속의 말을 해 주자, 유명이 깜짝 놀란 듯 환하게 웃었다.
“끝까지 좋은 무대 만들자. 같이.”
“그래, 같이.”
그리고 끝까지.
혜호는 다시 한 번 기운을 추스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무대 위로 걸어 나간다.
사선으로 한 개의 조명이 떨어지고,
“오빠, 어쩌자고 이런 짓을···”
그것이 팟- 하고 나가더니, 이번에는 반대편 사선의 조명이 떨어졌다.
“처음부터 이럴 계획이었다.”
조명의 각도가 변하는 순간마다, 아덴과 살로메로 모습을 바꾸는 미지의 배우는,
“일부러 왕을 부추겨서 군수물자를 모으게 한 후, 불을 질러서 전쟁을 무산시킬 계획이었다는 거야?”
말이 나오지 않는 연기로, 관객의 시선을 모조리 빨아들인다.
“…아니, 왕의 정신을 망가뜨릴 계획.”
이제 아덴인지 살로메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얼굴이, 싸늘한 미소를 짓는다.
관객들은 그 미소에 함몰된 듯, 자신도 모르게 몸을 주욱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