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3
여우가 긴 주둥이를 끄덕끄덕했다.
유명은 그게 무슨 말이냐는 표정을 지었다.
“이름은 존재에게 부과되는 거거든.
그 이름을 심지어 ‘이름이 있다’고 했으니, 나 여기있다고 강조, 또 강조한 이름인거지. 유년시절은 이름이 지켜줬겠네.”
유명은 이해가 갈듯 말듯 헷갈리는 말을 들으며 맥주캔을 기울였다.
할아버지가 유명한 관상가에 성명학자였다는 말은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래도 이해가 안가네.
유년시절은 넘어간다 쳐도, 약관 이후로는 어떻게 살아남았지?
심지어 배우라니. 무대 위에 있어도 다른 놈들 생기에 짓눌려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할텐데.”
여우의 중얼거림에 유명은 몸을 휙 돌려 유리구슬같이 새까만 두 눈을 직시했다.
“네가 말한 생기가 약하다는 게, 연기에 영향을 미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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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귀演鬼와의 계약
“네가 말한 생기가 약하다는 게, 연기에 영향을 미친다고?”
여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무슨 뜻이야?!”
“그러니까, 생기는 존재감으로 표출된다는 뜻이야.
존재감이 높으면 가만히 있어도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고, 낮으면 무슨 짓을 해도 눈에 잘 안들어와. 아주 높으면 소위 ‘아우라’라는 게 생기는 거고.
100을 기준으로 보통 인간의 존재감이 50 전후라면 배우들은 보통 60~70은 가거든? 탑 배우라면 80~90까지 가기도 하는데···”
“나는?”
“너는 음…30? 미만인가? 나도 천년 넘게 살아왔지만 이런 인간은 또 첨보네.”
유명의 턱이 아래로 떨어졌다.
자신의 존재감이 약한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정도였다니.
“연기를 잘 하면 커버되지 않을까?”
“되지. 연기를 잘 하면 존재감이 커버되기도 하고, 존재감 자체가 조금씩 늘어나기도 해. 근데 그것도 사람들이 봐줄 때나 해당되는 거지.
아무리 연기를 잘 해도 유령은 눈에 안보이잖아? 넌 그 정도로 존재감이 없달까.”
“…”
“연기도 잘 안될텐데? 다른 사람 생기에 짓눌려서 몸이 자유롭지 않은 기분 안느껴? 아까 내가 잠시 풀어줬는데.”
“아까?”
“어. 오전에 드라마 촬영장에서.”
유명의 얼굴에 경악이 서렸다.
처음으로 연기가 ‘제대로 되었다’고 느낀 순간이 저 녀석에 의한 거였다니.
그래서 극단 오디션 때는 재현이 안 되었던건가.
“그럼, 일반적인 배우들은 다 그렇게 편하게 연기하는 거라고?”
“그렇겠지? 평균만 넘어도 상대의 생기에 짓눌려 몸을 움직이는 게 불편할 일은 드무니까.”
“네 말대로면 난 앞으로도 가망이 없네? 노력하고 또 노력하다보면 포텐이 한 번은 터질 줄 알았더니···”
“…”
“아참 나 암 걸렸지. 어차피 망했네…”
원래도 침울했던 유명의 표정은 구제불능의 침울한 표정으로 변했고,
맥주 한 캔을 다시 따더니 원샷으로 넘겨버렸다.
여우는 남자를 짠하게 바라보았다.
저 정도 생기로 평생을 살아온 인간.
그럼에도 배우라는 직업을 택한 과거를 후회하기보단, 배우로 살 수 없는 미래를 아쉬워하고 있다니…
“방법이 있긴해.”
“방법?”
“너한테 내 생기를 나누어 줄 수 있긴 한데.”
“뭐? 진짜? 왜?”
“난 연귀니까. 연기를 좋아하거든. 네가 좋은 연기를 보여줄 수 있다면 말이지만.”
“…태어나서 들은 것 중에 가장 혹하는 소리네. 암에 걸리지만 않았어도 진심으로 달려들었을 지도 모르겠어.”
유명이 씁쓸히 웃었다.
“스무 살로 돌려줄까?”
“뭐?”
“스무살로 돌려놔주고 생기도 보태준다면?”
“그…그게 가능해?”
“후우…나로서도 엄청난 투자이긴 해···”
여우는 아홉 가닥의 은빛 꼬리 안에 숨겨져있던 금빛 꼬리 하나를 꺼내어 소중히 쓰다듬었다.
그는 구미호가 아닌 십미호였고, 단 하나뿐인 열 번째 꼬리를 사용하려 하고 있었다.
“정말? 대가는 뭐야? 내 영혼?”
“워워- 그런 짓은 안해. 넌 이미 ‘내 생기를 받고’ ‘과거로 돌아가기로’ 했잖아? 멋진 연기를 할 수 있다면 난 그걸로 만족해.”
“어떻게 그렇게 나만 좋은 얘기가 있지? 너 혹시 천사야?”
여우는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려 씨익 미소를 지었다.
“아니야. 나에게도 좋은 일이야.”
“고마워!”
“그럼 계약한 거다. 바로 스무살로 돌아가 볼까?”
“자…잠깐!”
마지막 순간에 유명이 스톱 사인을 보냈다.
여우는 조바심나는 표정을 꾸욱 누르고 부드럽게 물었다.
“왜? 뭐 문제라도 있어?”
“스무살 안돼! 군대!!”
21~22세에 군대를 다녀온 유명이었다. 그는 십년감수한 마음으로 정정했다.
“스물셋. 봄도 가능해?”
“그럼그럼. 자 이제 내 손을 잡아.”
여우는 보드라운 은색 털로 덮인 앞발을 내밀었다. 맞잡은 손바닥에 젤리가 말캉거렸다. 한없이 무해해보이는 손이었다.
유명은 그 손을 덥석 잡았다.
*
뒤척-
뒤척-
딱딱한 바닥이다. 이불 아래가 매트리스가 아닌 것 같다.
‘자다 바닥으로 떨어졌나···’
유명은 벌떡 일어나 물을 찾았다. 어제 술을 너무 마셔서 그런지 입이 바짝바짝 마른다.
부엌이 있을 방향으로 눈을 감고 가다가 문에 쿵- 부딪혔다.
“아오, 머리, 아오.”
이 방향이면 부엌이 있어야 하는데, 원룸과 구조가 다르다.
유명이 어리둥절 하고 있을때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안냥? 젊은 몸 컨디션은 어떤컁?”
유명은 쿠광쾅- 다시 뒤로 넘어졌다.
이불 안에 몸을 파묻은 손바닥만한 은빛여우가 꼬리를 핥으며 말하고 있었다.
*
“그게…꿈이 아니었다고?”
“앙. 우리 계약했잖앙. 15년 전으로 돌아왔다컁.”
보슬보슬한 아기여우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는지 캥캥거리며 말하고 있었다.
예전에 인터넷에서 본 북극여우같이 생겼다. 엉덩이에는 폼폼같은 조그만 꼬리 아홉개가 앙증맞게 달려있다. 귀신 나부랭이인 걸 알면서도 귀엽다.
자신도 모르게 등을 쓰다듬었다. 보오얀 솜털같은 털이 손길에 차르르 누웠다 다시 일어난다.
“넌 왜 이렇게 쬐끄매졌니.”
“쬐끄맣다니 크앙. 나로서도 엄청난 투자였다고 했잖앙. 이 모습도 겨우 유지하고 있는 거라공.”
“그래그래 고맙다. 와 진짜 돌아왔구나. 투자자님의 선택이 헛되지 않도록 나 열심히 살게!”
“그랭. 아고고···”
그 때 유명의 시야에 뭔가가 떠올랐다.
[연귀와의 계약이 성립되었습니다.] [계약에 따라 연귀의 존재감을 받으셔야 합니다.] [존재감 29/100]“이상한 게 보이는데? 존재감을 받으라네?”
“옹. 우리 계약이당. 지금 존재감 몇이컁?”
“29인데.”
여우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혀를 쯧쯧 찼다.
“진짜 30이 안되는구낭… 인생 진짜 힘들게 살았컁..”
“그런거냐···”
“지금 존재감을 줄건데 20-50중에 얼마나 줄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