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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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이! 좋아요!]리딩 때도 느꼈지만, 제니브 스콧은 잔디렉션이 별로 없는 타입이었다.
그녀는 ‘이런 표정, 이런 제스처를 지으라’는 디렉션 대신, ‘어떤 분위기, 어떤 느낌’을 주로 이야기했다. 느낌만 뽝 오면, 나머지 자잘한 디테일을 살리는 것은 자신의 일이라며.
[PD님, 한 테이크만 더 찍으면 좀 더 잘 나올 것 같은데-] [아뇨아뇨. 지금 엄청 완벽했어요. 바로 이동할게요!]유명은 제니브의 판단에 수긍했다.
조금 더 완벽했으면 하는 아쉬움에서 해본 소리였지, 연기가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은 아니니까.
유명은 첫 신을 찍은 후 스튜디오로 이동하며, 잠시 제니브 스콧에 대해 생각했다.
새로운 직장에 취업하면 직장 분위기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리듯이, 새로운 감독이나 피디를 만나면 그 스타일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
직전의 감독인 카일러 언쇼는 색깔이 선명하고 디테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장인 타입이라면, 제니브 스콧은 아마도…
‘감각적이고 빠르게 치고 나가는 타입.’
유명은 그녀가 만들어왔던 드라마를 하나하나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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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스피디하게, 보는 사람의 정신을 쏙 빼놓을 정도로 전개가 빠른 드라마들.
여태 만난 연출들 중에 생각해보면 방학 피디가 그녀의 스타일을 가장 닮은 것 같다. 영화와 드라마의 차이인걸까.
그렇다면 자신도 드라마에 좀 더 적합한 형태의 연기를 하는 것이 좋겠지.
‘완급.’
드라마 연기는 영화 연기보다 완급의 특성이 두드러진다.
물론 웰메이드의 드라마는 ‘영화같다’라는 칭찬을 듣기도 하지만, 총 22주, 22개의 에피라는 특성을 생각하면 강-강-강만으로 연기하는 것은 시청자도 배우도 숨이 찰 것이다.
‘더구나 이번에는 주연이니까…’
유명이 여태 출연한 드라마는 하나 뿐이다.
그 때까지만 해도 유명의 배역은 비중조연이었다. 후반에 가서는 서브남주로 바뀌기는 했지만.
유명은 이동버스의 옆자리에 앉은 데렉에게 한 번 물어보았다.
[데렉.] [왜요?] [드라마에서의 완급 조절은 어떻게 하나요? 뭔가 특별한 노하우가 있어요?]데렉은, 신유명이 자신에게 연기에 대한 질문을 하자 신이 났다.
아까 촬영 전까지만 해도, 자신 이상으로 뛰어난 배우와 함께 연기하게 된 것에 들떴었지만, 그 배우가 자신을 인정하는 듯 연기에 대한 견해를 물어오자 더 기분이 좋아진 것이다.
[그럼요, 있죠. 연애라고 생각을 해 봐요.] [연애…?] [영화는 말하자면, 맘에 드는 상대를 단번에 꼬시기 위해 작전을 짜서 노빠꾸로 밀어붙이는 거죠. 하지만 드라마는…밀당이야.] [밀당요?] [일단 뭐라도 되려면, 만나야 할 거 잖아요?] [그쵸.] [다음에도 또 만나고 싶어질 정도로, 자기 전에 얼핏 내 생각이 날 정도로만 매력을 살살 흘리면서 꼬드기는 거죠. 가끔은 들이대고, 가끔은 한 발 물러서기도 하면서.]과연 헐리웃 최고의 스캔들메이커. 유명은 와…하며 그의 강의를 경청했다.
그런데 갑자기 데렉이 인상을 쓴다.
[근데 생각해보니, 그거 잘 하잖아요?] […?] [캐스팅보트 때, 클래스 나눌 때 보니까 밀당하는 실력이 보통이 아니던데? 그대로만 해요. 그 기술을 드라마 보는 관객들한테 써먹는다고 생각하면 돼요.]보형이.
여기서도 답은 보형이인가…
유명은 만류귀보형설을 체득하며, 역시 회장님은 훌륭하신 분이라고 생각했다.
드라마의 원리까지 보형이라니.
*
오후에는 스튜디오 촬영이 있었다.
스튜디오의 콘셉트는 ‘데카르도의 방’.
철로 된 침대. 살림살이는 거의 없는 황량한 방 안에는 책들이 가득 쌓여있고, 개인이 소장하기에는 지나치게 커보이는 컴퓨터 본체와 모니터가 즐비하다.
시점은 영감이 떠오르고부터 며칠 후.
데카르도는 컴퓨터로 복잡한 프로그램을 쉴 새 없이 만지고 있다가, 갑자기 머리를 감싸쥐고 뒹굴었다.
그는 방바닥을 기어, 한 쪽 구석에 놓인 약병을 겨우 열고, 손에 잡히는대로 약을 몇 알 쥐어 삼킨다.
꿀꺽-
그는 질환이 있다.
아니, 혼자 질환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피검사도 해보고, MRI도 찍어보았지만 의사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했으니까.
하지만 머리를 과도하게 쓴 날이면, 한 번씩 찌르는 듯한 통증이 관자놀이를 꿰뚫고, 그는 기억의 편린에 시달린다.
-아버지는…
-바쁘시단다.
-데카르도는 정말 똑똑하구나.
-그 분의 아들이라고?
-데카르도는 엄마아빠가 없대요…!
허어억-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몸을 한껏 말고 철제침대의 한 켠에 처박혀서, 그는 고통스럽게 심호흡을 한다.
RRR-
그 때 전화가 울렸고, 그는 구세주라도 되듯이 전화기의 스위치를 눌렀다. 유일하게 그를 진정시켜 주는 이름.
아버지.
[데카르도?] [아버…지…후욱. 네…저예요.] [또 발작한 거야? 아프면 언제든지 바로 전화하라니까.] [하아…괜찮아요. 별 거 아니었어요.]낮고 울림이 좋은 목소리가, 자박한 애정을 담고 귓가에 부스러진다.
홀로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 찾아올 때, 아버지의 목소리는 언제나 자신을 진정시켜 주었다. 데카르도가 유일하게 신뢰하는 인간이 그이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는 먼저 아버지에게 전화해본 적이 없다. 아버지는 늘 바쁜 사람이기 때문에.
하지만 그는 가끔, 정말로 견디기 힘든 시간에 마치 마음이 통하기라도 한 것처럼 전화를 걸어 주었다.
그래, 바로 지금처럼.
[잘 계시죠?] [그럼. 네가 걱정이구나. 요즘 너무 무리한 거 아니니?]안정감.
데카르도는 염도가 높은 물 위에 부유하듯이 둥둥 뜬 기분으로, 아버지에게 응석을 부렸다.
[아버지, 사실은…엊그제 한 가지 발상이 떠올랐는데요.] [무슨 발상?] [기후 연구에 획기적인 진척이 있을지도 몰라요.] […그래? 네가 무척 애를 쓰던 프로젝트인데, 드디어 성과가 나는구나. 축하한다.] [아직은 성과가 난 건 아니구요. 사실 막힌 부분이 있는데, 이게 영 안 풀려서 며칠 잠을 못 잤어요.] [음…그러다 건강을 해치면 큰일인데. 내가 뭔가 도와줄 건 없을까?]자신의 일에 관심을 보여주는 자상한 아버지.
그 마음이 기뻐진 데카르도는,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부탁을 하고 만다.
[뛰어난 수학자가 있으면 도움이 될 것 같긴 한데…] [수학자라…] [저희 연구소의 길리안 씨도 굉장히 명망있는 수학자지만, 제가 풀고 있는 수식을 보고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드시더라구요.] [그 사람한테 네 연구를 말했니?]갑자기 조금 추궁하는 듯한 목소리.
그는 괜히 변명하듯이 톤을 살짝 올려 말했다.
[아니요. 전체를 보여준 건 아니고, 필요한 수식 부분만요. 그런데 아예 손도 못대더라구요.] […그거라면 딱 적절한 사람이 하나 있구나.] [누군가요?] [주말에 집으로 오겠니? 소개시켜주마.] […네. 오랜만에 뵙겠네요.]데카르도와 양부.
를 이끌고 나가는 최고 중요 인물들의 첫 신은, 데렉은 목소리만 등장했음에도 박진감이 넘쳤다.
[컷- 오케이!]애정과 경계가 묘하게 섞여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신이 끝나자, 모두는 숨을 후- 몰아쉬었다.
시끄러운 여론때문에 신유명이라는 배우를 긴가민가하던 몇몇 스탭들이, 깨끗이 의심이 풀린 얼굴로 속삭였다.
(신유명 스폰서론이 도대체 왜 나온거야?)
(저 정도 연기면 스폰서가 있든 없든 떴을 것 같은데.)
(저 투샷 굉장해. 카일러 언쇼 영화에도 데렉과 신유명이 같이 나온다며? 꼭 보러 가야겠네.)
그리고, 누군가가 폭풍처럼 달려왔다.
[유명씨이이이!!]“유명씨이이이!!”
미국어와 한국어가 동시에 겹쳐 들린다.
첫 촬영에 구경을 나온 작가님들이었다.
그녀들이 유명에게 달려들기 전에, 긴 다리 한 짝이 유명의 앞을 가로막았다.
[오호. 에바 작가님은 이제 나는 본 체 만 체고 신유명씨만 눈에 보인다 이겁니까?] [으아아아! 아니에요, 데렉. 데렉 맥커디 최고! 만세!!]데렉이 에바를 마크하는동안, 육작가는 그를 뱅글 돌아서 유명의 손을 덥석 쥐었다.
“캬…이거에요. 나의 데카르도…”
[‘나의’? 그거 ‘my’ 말하는 거 맞지? 데카르도가 왜 언니 거야, 우리 거지!] [맞아요. 데카르도는 우리 ‘모두’의 것이죠. 작가님들 좀 진정해 보시겠어요?]그 때 제니브 스콧이 나섰다.
인간관계란 물고 물리는 천적이 있는 모양.
비글미 넘치는 두 작가는, 왠지 제니브에게 꼼짝 못하고 순순히 물러섰다. 그녀에게는 남모를 카리스마가 있는 모양이었다.
[여기까지 할게요! 첫 촬영 모두 수고하셨습니다!!]그 날,
촬영장의 스탭들 중 몇몇은 자신의 SNS에 멘션을 남겼다.
-드라마 촬영 시작! 직접 본 신유명 연기는 굉장했다!
– 대박 예감! 스토리 쩔고 배우들 연기력은 미쳤음.
-신유명 vs 데렉 맥커디. 첫 날부터 심상치 않았다.
하지만 다음 날,
관련된 기사들의 논조가 수상했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 선의로 올린 글들은 의도를 의심당했고, 유명에 대한 논란은 더욱 부채질이 되어 있었다.
그것을 보고 문유석은 피식 웃었다.
‘어쩜 이렇게 예상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지…’
좋은 무대가 만들어져 가고 있었다.
305 외전5. 친구는 함께 놀아야지
딩동-
피비의 사무실. 밀리는 벨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피비는 방금 취재지에서 출발했다는 메세지를 남겼고, 그 밖에는 찾아올 사람이 없었다.
‘누구지? 우체부는 우체함에 넣어두고 가는데…’
문의 유리를 통해 빼꼼히 밖을 내다보고, 밀리는 자신도 모르게 혀를 깨물었다.
‘아얏! 뭐야, 저 사람이 어떻게 여길…’
한 손에 화분을 들고 있는 남자는 그림과 같이 멋있었다.
큰 키에 넓은 어깨. 선글라스도 자체 발광하는 외모를 가리지는 못했다. 밀리는 손을 달달 떨며 겨우 잠금장치를 풀고 문을 열었다.
[여기가 피비 테일러의 사무소, 맞죠?] [넵!] [주인은?] [오는 중이에요.] [그 쪽은?] [친구이자 직원입니다!]아아-
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화분을 건넸다.
[나도 피비의 친구에요. 이건 개업 선물.] [피비의…친구요?]피비한테 저런 대단한 친구가 있었단 말인가.
웬만한 스타들은 피비 테일러라고 하면 다들 이를 갈텐데…
알고 보면 피비를 한 대 패러 온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밀리는 서랍 속에 있던 가스총을 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피비는 밀리의 친구이니까, 지켜야 해!’ 라고 생각하면서.
30분 후, 밀리의 불안함이 극도에 달할 때쯤, 사무실의 문이 열렸다.
[밀리~ 너가 좋아하는 빵-] [피비, 손님이 오셨어.] [아, 데렉 왔어요? 주소는 알려줬지만 진짜 올 줄이야. 요즘 한가하나 보네요?] [그럴리가. 촬영 들어갔잖아.] [아참 그랬지. SNS에서 봤어요. 유명씨 어땠어요? 이번에도 끝내줬다던데?]데렉의 이마에 굵은 주름이 잡혔다.
[끝내준다는 말은 나도 들었는데…나는 안 궁금해?] [아…그것도 봤어요. 데렉은 원래 굉장하니까, 하하. 궁금하죠 궁금해. 우와, 궁금하다. 첫 촬영 어땠어요?]밀리는 갸웃했다.
생각보다 사이가 좋아보이는 건 다행인데…데렉의 저 말은 무슨 의미지?
그리고 꽤나 친해 보이는데, 피비가 여태 자신에게 데렉의 이야기를 한 번도 하지 않은 이유는 뭘까.
[나와 신유명의 공방전이 아주 볼 만 했지.] [아 네… 참, 그 때 얘기해 줬던 파블 파보고 있는데 심상치 않던데요. 미싱차일드 첫 촬영 관련해서도 별의별 허위 기사들이 다 뜨던데, 그 쪽의 사주일까요?] [그렇겠지. 뭐, 대세에 지장없잖아?] [문대표가 신났더라구요. 몰아가려고 했는데, 그러기도 전에 몰려가고 있다고. 그 사람 성격 참 나빠.]데렉이 대뜸 묻는다.
[문대표랑 나 중에서 누가 더 성격이 좋아?] […그야 데렉이죠. 어딜 속이 시커먼 문대표와 비교를 해요.] [그치?]데렉이 기분이 좋아진 듯 빙글빙글 웃더니 말한다.
[사실 방금 나탈리와 화보를 찍고 왔거든.] [아…니아크 광고 나탈리와 같이 섭외됐었죠. 그러고보니 나탈리는 실물을 본 적이 없네요. 평소에 파파라치 붙을 일 없이 깨끗한 사람이고, 미믹크리 땐 초반에 촬영분이 끝나버려서 못 봤고. 실제로 봐도 그렇게 예뻐요?] [그게 이상하단 말야…] [뭐가요?] [방금 나탈리와 화보 찍고 왔거든? 그런데 왜 네가 더 예쁜 거 같지?]끄악…!
밀리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피비의 얼굴이 새빨개졌고, 데렉은 여전히 고개를 갸웃갸웃하고 있었다.
역시나…자신이 잘못 느꼈던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런 건 둘이 있을 때 하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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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도는 양부와 통화한 날 이후로, 주변의 수상한 느낌을 감지한다.
어디선가 느껴지는 시선. 연구실의 자리에 물건 배치가 미묘하게 흐트러져 있는 느낌.
그리고…그가 사는 황량한 집의 몇 안 되는 물건도, 평소의 위치와 조금 다른 곳에 놓여져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요즘 내가 예민한가…’
기후학 연구 진척에 대해서 양부를 제외한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다. 그리고 아버지는 누군가에게 말을 전할 사람이 아니라고 그는 철썩같이 믿었다.
그럼에도 등이 따가운 느낌.
그는 결국, 연구실의 동료들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같은 연구실을 쓰는 세 명의 동료. 모두 같은 기상학자들이기에 동기는 충분하다. 저 중 누군가가 자신의 연구 실적을 훔쳐내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면?
우우우웅-
자동차를 가속한다.
쫓아오는 것 같다가 반대편으로 빠지는 다른 차량.
역시 자신이 과민했던 건가 자책하지만, 바로 이어져서 나타나는 또다른 의심의 단초.
스케치하듯 빠른 사건들의 전개에 보는 이들의 숨이 가빠질 무렵,
데카르도는 양부를 만난다.
[데카르도.] [아버지…] [잘 있었니? 얼굴이 핼쓱하구나. 너를 그렇게 혼자 놔두는 게 아닌데.]유명은 감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