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311
영화 촬영 중에 많이 볼 수 있는 세트들이었지만, 즉각적으로 호응하는 관객들과, 몸을 아끼지 않고 연기하는 배우들로 인한 열띤 분위기는 그들조차 감탄하게 했다.
공연이 끝난 후, 유명은 흠뻑 젖은 모자를 잠시 벗었다. 물기를 짜내고 다시 모자를 쓰려는 순간이었다.
[어?! 혹시 신유명?] [뭐? 에이 설마.] [맞는 거 같은데? 저 혹시 신유명배우 아니세요?]유명은 살짝 당황했다. 신난 나머지 존재감을 제어하는 것을 깜빡 잊었던 모양이었다. 게다가 모자까지 벗어버렸으니…
그는 얼른 모자를 다시 쓰고, 검지를 입술에 올렸다.
그리고 그들앞에 다가서니, 라틴계통으로 보이는 까무잡잡한 소녀 세 명이 서로 끌어안고 팔짝팔짝 뛴다.
[진짜에요? 맙소사…] [안녕하세요, 하하.] [우악! 저…아르헨티나 갓네임드 운영진이에요!]그들은 아르헨티나 사람으로, LA에 놀러왔다가 유니버셜을 방문했다고 했다.
그나저나, 아르헨티나에 갓네임드가 있다고…? 유명은 팬들을 만난 김에 차라도 한 잔 대접하기로 했다. 아르헨티나에 갓네임드가 있는 연유가 궁금하기도 했고.
[진짜 갓네임드가 아르헨티나에도 있어요?] [넵! 저희가 미국보다도 먼저 생겼다구요.]운영진이라고 자랑스럽게 얘기하던 록사나라는 소녀가 연유를 밝힌다.
[예술영화 전용극장에서 해외 걸작 영화선 중 하나로 발레리나 하이를 상영한 적이 있었거든요. 그 때 회장이 신유명 팬클럽을 만들었고, 저도 초창기 멤버에요, 헤헷.] [그럼 갓네임드라는 이름은 어떻게…?] [한국 공식 팬클럽 쪽에서 저희 쪽을 어떻게 알았는지, ‘갓네임드’ 이름을 달고 함께 활동하자고 제의해 왔었어요. 그 뒤에 이름이 바뀌었죠.]역시 회장님…
유명은 정소진의 추진력을 떠올리며, 비로소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배우님이 미국에 오셔서 캐스팅보트로 엄청난 스타가 되셨잖아요. 덕분에 저희팬클럽도 규모가 무척 커졌어요.] [팬클럽 회원 수가 만 명이 넘었다니까요~] [여기서 배우님 만난 얘기 올리면 다들 자지러질거에요. 허엉…]소녀들이 떠들썩하게 자랑을 한다.
가보지도 않은 먼 나라에서 자신을 응원하고 있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니, 괜스레 마음이 촉촉해진다. 유명은 그녀들과 기꺼이 사진을 찍고 싸인을 해 주었다. 그들은 영원한 충성을 맹세하며 울먹였다.
[요즘 이상한 찌라시들이 난리던데 상처받지 마세요. 팬들은 아무도 그런 거 안 믿어요.] [힘내세요, 배우님!!]그녀들은 유명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즐거운 하루였어, 그치?’
{크항. 월드배우 등극이냥?}
‘흠흠…’
늘 연기에만 전념해왔지만, 가끔씩 나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유명은 미호를 붙잡아 귀를 간지럽히며, 앞으로도 즐거운 시간을 많이 가져야겠다고 다짐했다.
*
다시 촬영이 재개되었다.
2화에서는 여주인공이 처음 등장한다. 마일리 필론이 맡은 셀리 티셔.
[안녕하세요!] [헤이, 마일리.] [잭, 잘 있었어요?]유명은 스탭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촬영장으로 들어오는 마일리를 신기한 듯이 바라보았다.
20대의 청량함일까, 혹은 그녀의 독특한 성격일까.
자신은 스탭들에게 아무리 친절히 대해도, 저렇게 스스럼없이 굴진 않던데, 그녀는 모든 사람들과 친해보였다.
‘성격이 정말 좋나봐.’
{너는 나쁘냥.}
‘그래도 나한테는 저렇게 안 대해주던데.’
{곁을 주면 주는만큼 감당해야 하는 부분들이 있는 거당. 너무 친밀해져서 연기 연습할 시간을 뺏기고 싶진 않잖냥.}
‘…그건 그렇지.’
{네가 선을 안 넘으니까 남들도 안 넘는거징. 그게 나쁜 건 아니당.}
유명은 미호의 말을 들으며 신기했다.
아스를 연기할 때를 생각해 보면, 미호는 인간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정보축적의 형태로 이해해온 것 같다.
그런데 가끔, 너무나 인간적인 조언을 한다.
축적한 정보량이 많다 해도, 어떻게 이런 조언을 할 수 있는 걸까.
{내가 똑똑한 거 이제 알았냥.}
우쭐거리는 미호가 귀여워 웃고 있는데, 마일리가 쑤욱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마일리 필론이에요!] [네. 미믹크리 때 카메오로 와주셨죠. 잘 부탁드려요.] [그 땐 제대로 인사를 못 해서. 반갑습니다! 에르히는 잘 지내요?] [그럼요.]벌써 에르히와도 친해진 모양이었다. 대단한 친화력.
[같이 연기하는 거, 무척 기대하고 있어요. 잘 부탁드려요!]그녀가 장난꾸러기같이 씨익 웃었다.
[촬영 시작할게요!]2화의 시작은 바로 그 장면이었다.
카이의 오디션에서 연기했던, 데카르도와 릴이 만나는 장면.
[아버지한테 다른 아들이 있다는 것, 알고 있었어?] [아뇨.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기분이 어때?] [그런가보다 싶은데요. 아버지가 저말고 다른 사람에게 선행을 하시는 게 저에게 피해를 끼치는 일은 아니니까요.]피부색도 얼굴 생김새도 성격도 다르지만, 그들은 형제.
너무 다른 두 사람이 보여주는 너무 다른 반응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데카르도가 가져온 자료를 숨기며 일단 한 발 후퇴한다.
[오늘 바로 만날 거라고 생각지는 않아서, 자료를 안 가져왔어.] [네. 그럼 다음에 봐요.]돌아가는 길, 온갖 상념에 잠긴 복잡한 얼굴로, 도로 위의 한 다이너(*diner: 길가에 있는 허름한 밥집)에 주저앉아 싸구려 버거와 맥주 한 잔을 시킨 그의 앞에, 한 여성이 다가왔다.
핫팬츠. 도발적으로 올라간 눈꼬리에 눈물점이 인상적인 여성.
[합석해도 돼요?]유명과 마일리 필론의 첫 호흡이 시작되었다.
307 외전7.입이 있으면 다시 말해봐
[합석해도 돼요?]데카르도는 여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여자는 자신의 매력포인트를 잘 알고있는 것처럼, 허리를 살짝 숙여 테이블에 기대어 그를 올려다본다.
저 외모와 눈빛에 흔들리지 않을 남자는 거의 없겠지만…
[아뇨.] [흐음…내 타입인데.] [그 쪽은 내 타입이 아닙니다. 요즘 따라다니는 거, 그 쪽입니까?]타인을 결코 신뢰하지 않는 남자는, 여자의 몸에서 눈을 떼며 낮게 묻는다.
[우와. 당신 나 본 적 있어요?] [아뇨.] [그런데 어떻게?] [설명할 이유 있습니까?]데카르도의 눈빛. 그녀의 손가락을 향하고 있다.
펜을 쓰다가 굳은 살이 박히는 위치. 펜대를 잡는 사람. 기자?
[이 남자 매력있네. 브레이크 타임즈의 셀리 티셔에요. 기후학자 데카르도 박사님 맞으시죠?] [네.] [엄청 젊으시네요. 흐음…또 잘생겼고. 대학을 도대체 몇 살에 간 거에요? 열다섯?] [용건이 뭡니까?] [에잉. 그렇게 딱딱하게 굴지 말고.]그녀는 애교가 많다. 아름답고 사근사근하며 남자에게 무언가를 기대하게 한다.
그것들은 결코 공짜가 아니다.
데카르도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의 애정과 책임감도…혹시 공짜가 아니었나…’
그런 암울한 생각이 스쳐 지나가자, 데카르도는 입안의 여린 살을 세게 깨물었다.
자신은 참 엉망으로 나약하다.
10년 이상 좋은 아버지였던 사람. 그에게 자신이 몰랐던 부분이 있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그를 매도하다니.
후우-
그는 나직한 한숨을 쉬며, 셀리를 밀치고 테이블을 빠져나왔다.
[귀찮은 사람은 질색입니다. 따라오지 마시죠.] [내가 왜 따라다니는지는, 안 궁금해요?]데카르도는 돌아보지도 않고 걸어나가며 대답했다.
[안 궁금합니다.]하지만 그녀는 끈덕졌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데카르도에게 따라붙었다.
그녀의 화려한 외모 덕에 데카르도는 더욱 귀찮아졌다. 연구실의 동료들까지 그녀가 누구냐고 관심을 보일 지경이었으니까.
마음의 빈틈이 생긴 것은 귀찮아서였다.
결코 양부의 양아들, 즉 자신의 형제의 존재를 알게 된 것에 마음이 흔들려서는 아니었다.
꼴꼴꼴-
집 근처의 바에서 데카르도는 싸구려 브랜디를 따랐다. 그의 옆에는 당연하다는 듯이 셀리가 앉아 있었다. 아무 말 하지 않고 한 잔, 두 잔…브랜디 반 병을 비우자 조금 용기가 생긴다.
외면하고 외면했지만, 이미 찰랑거리는 의심이 턱 아래까지 찼다.
건드려선 안 될 것을 건드리는 기분으로…데카르도는 입술을 달싹거렸다.
[…가 보냈습니까.] [뭐라구요?] […아버지가…보냈습니까.]셀리가 그 말을 듣고 어이없다는 듯이 피식 웃는다.
[그걸 의심해서 여태 나와 말도 안 섞으려고 했던 거에요?] [아니…] [그럼요?] [의심하고…싶지 않아서.]다시 소년이다.
동생이 생겼다는 것을 믿고 싶지 않은 소년.
정처없이 흔들리는 눈동자가 스스로의 나쁜 생각에 놀란 어린아이처럼, 두려움과 죄책감에 젖어 바닥으로 기어든다.
덜컹-
흔들린 것은 셀리의 가슴이었을까, 마일리의 가슴이었을까.
이 불안하고 침체된 남자의 외로움을 달래주고 싶다는 모성애 혹은 애정.
어쩌면 소년을 어른으로 만들어주고 싶은 누나의 짓궂은 마음으로, 그녀는 그의 팔을 천천히 쓸어올린다.
사아악-
풀린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남자에게, 그녀가 제안한다.
[머리가 복잡할 때, 제일 좋은 게 뭐게~요.] [……] [섹스.]그 날 그들은, 긴 밤을 함께 보냈다.
*
‘와…’
마일리 필론은 카메라가 녹화를 멈추고 난 후에도 한참동안 입을 벌리고 유명을 보고 있었다.
속이 울렁거린다.
그와 함께하는 반경 1미터의 공기가, 그의 색깔로 물들어 자신의 숨을 통해 흡수되더니, 혈액을 타고 손발 끝까지 흘렀다. 그리고 자신은 진짜 셀리 티셔가 되었다. 그 기묘한 감각에 사로잡혀, 마일리는 잠시 현기증이 났다.
배우 대기실에 비틀비틀 들어간 마일리는, 유명을 다시 마주친 순간, 자신도 모르게 그의 옷자락 끝을 잡으며 말을 걸었다.
[어떻게 그렇게 연기해요?] [어…네?] [뭐지? 이 겪어보지 못한 경지는 도대체 뭐인 거지?]그의 옷자락을 꼬옥 쥔 채로 그녀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데렉이 대기실 저편에 앉아있다가, 그들 사이로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그녀의 앞에서 박수를 짝- 친다.
[얘 또 이러네. 정신차려.] [어어…데렉. 나 방금 이상한 체험을 했어요.] [그 때 촬영장에 간 보러 와서 아스 연기도 봤잖아. 새삼스레 왜 또 이래.] [보는 거랑 같이 같이 합 맞추는 거랑 완전 다른데? 120이 아니고 1200인데?]유명은 평소의 나른한 눈매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동그랗게 눈을 뜨고 있는 마일리가 귀여워 쿡쿡 웃었다. 한국에 있는 동생 이상으로 사차원이다.
데렉이 거만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알려준다.
[그러니까 내가 따라다니는 거지.] [아아. 그렇구나. 나도 껴줘요, 기차놀이.] [놀이가 아니거든?] [연기(play)가 놀이(play)지 뭐. 기관사 뒤에 바로 붙는 건 안되겠지?] [어딜 감히. 저기 가서 꼬리에나 붙어라.]유명은 잘 놀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마일리가 정말 독특하다고 생각했다.
데렉이 자신에겐 잘 해주지만, 워낙 호불호가 분명하고 연기에는 타협이 없는 성격이라, 대부분의 배우들은 그를 어려워한다. 그런데 마일리가 데렉을 대하는 태도는 마치 막내동생이 큰 오빠를 대하는 것처럼 스스럼이 없었다. 데렉도 그녀를 귀여워하는 것이 눈에 보였고.
그 이유는 알 것 같다.
‘좋은 배우야.’
유명은 마일리와 첫 합을 맞추어 본 후, 당시 19살의 마일리 필론이 전미를 휩쓸었던 이유를 깨달았다.
‘얼굴에 드라마가 있어. 시선을 사로잡는다.’
천성적으로 타고난 매력이 도저히 감추어지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녀가 맡은 셀리 티셔는, 몸도 머리도 관능적인 여성.
유명은 셀리 티셔라는 배역에 마일리 필론이 매우 적절한 캐스팅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기대되네. 그녀의 비밀이 드러나는 순간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마일리가 자신을 툭툭 친다.
[와…엄청 좋았어요.] [네, 저도 좋았어요. 함께 좋은 작품 만들어 봐요.] [혹시 저 예뻐요?] [어…당연히 예쁘죠.] [객관적으로 예쁜 건 저도 알아요. 하지만 오빠 취향이 아닐 수도 있잖아요.]…대화의 흐름이 뜬금없다.
하지만 마일리 필론이 예쁘냐를 묻는다면, 당연히 예쁘다. 저 정도면 취향을 넘어서는 아름다움 아닌가?
유명의 넋이 나갔다.
*
{캬캬캬컁. 너 얼굴 진짜 볼만했당.}
‘……’
유명은 아직도 얼굴이 살짝 붉어진 채, 미호의 놀림을 감당하고 있었다.
마일리 필론은 정말 예측이 안 되는 캐릭터였다.
오늘 낮, 배우 대기실.
-좋아하는 사이도 아닌데…그건 좀.
-저 오빠 좋아하는데요? 오빠도 저 좋아하잖아요?
-네??
-같이 연기할 때 재밌었고, 저 예쁘다면서요?
-그거랑 그건…
-젊은 남녀가 서로 괜찮다고 생각하면 만나볼 수 있는거지, 뭐 꼭 세상이 무너질만큼 사랑해야 만날 수 있나.
그녀의 할아버지같은 멘트에, 데렉이 비죽비죽 웃으며 끼어들었었다.
-그건 마일리 말이 맞죠. 괜찮아서, 예뻐서, 어떤 사람인가 궁금해서 만나보다가 정들고 사랑하게 될 수도 있는거지, 뭐. 신유명씨는 너무 삶이 진지해. 설마 연애 한 번도 안 해본 거 아니에요?
-그건 아닌데요…!
-그럼 한 번 만나보지? 마일리 정도면 꽤 괜찮지 않나?
-꽤라뇨. 저 정도면 완전 괜찮죠.
-너는 시끄럽고.
이것이 자유분방한 헐리우드인가…
유명은 멍하게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휙휙 내저었다. 이건 아니야.
‘기다리는 사람도 있고…그게 아니라고 해도, 적당히 괜찮다고 사귀는 건 내 스타일도 아니야. 하지만…’
유명이 마일리를 힐끗 바라보았다.
사귀는 게 별 거냐는 듯이 말을 던졌지만, 그녀의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어 있다.
아무리 정신세계가 남다르다고 해도, 타인에게 자신의 호감을 드러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유명은 마일리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만, 가볍게 만났다가 나중에 실례를 범하게 될까봐서요. 마일리는 굉장히 좋은 배우고, 동료로 잘 지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