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324
원석을 깎아 나가는 보람과 쾌감을 느끼게 해 준, 이제는 반짝반짝 빛나는 제자이자 동생, 카이.
그리고 경쾌하고 영리하게 촬영을 이끌어 나가는 PD 제니브와, 친절하고 실력있는 스탭들.
그 어느 때보다도 근심걱정 없이, 매력적인 캐릭터를 최대한 싱크로해내는 것에 집중할 수 있었던 나날이었다.
하지만, 살아간다는 것은 신나는 일로만 모두 채울 수만은 없는 법이다.
‘마지막으로 꼭 해야 할 작품.’
그 작품 또한, 힘들지만 즐거우리라.
연기가 유명에게 즐겁지 않은 적은 없었으니까.
미호가 단단한 유명의 표정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
RRR-
[형.] [카이,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그…그게 사실이에요?] [응?] [형 한국에 돌아간다고. 그리고 미싱차일드 시즌2의 주인공을 저…저보고 하라고…]패닉에 빠진 듯한 목소리.
그럴만도 하다. 시즌2의 주인공이 릴 딜런이 될 것이라는 것을 유명은 알고 있었지만 카이는 전혀 몰랐으니까.
[형, 제가 어떻게 벌써 티비 시리즈의 주인공을…그것도 형이 나간 다음을 맡아서. 못 해요.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왜 못해.]평소보다 가라앉은 그의 목소리에, 카이는 언뜻 정신이 들었다.
유명에게서 저런 톤의 목소리는 처음 들어본다. 화가 난 것일까. 왜?
[저는 아직 그 정도 능력이-] [카이. 시즌1에서 릴은 연기하기 쉬웠어? 조연이라고 대충 연기한 거야?] [네? 아니요. 그건 절대 아니죠…]카이의 목소리가 살짝 주눅이 들자, 유명이 다시 톤을 조금 누그러뜨린다.
[그래. 네가 대충 연기하지 않은 건 내가 잘 알지. 그럼 주연이 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까. 너는 릴의 삶을 살아가는 거야. 그 삶이 조금 더 많이 비추어지느냐, 적게 비추어지느냐의 차이일 뿐이잖아.] […네.] [나는 네가 릴을 잘 연기할 것은 믿어 의심치 않아. 그건 네 배역이니까. 하지만 걱정되는 부분은 따로 있어.]카이는 유명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조심히 물었다.
[어떤 부분인데요…?]323 외전23.깊고 무서운 진실을 말하라
유명은 카이와 함께 해 온 나날들을 떠올렸다.
그와 알게된 지 2년. 그 중 상당 시간을 유명과 카이는 함께 보냈다.
캐스팅보트에서의 3개월, 미싱차일드에서의 7개월은 거의 붙어 지냈고, 나머지 기간에도 카이는 자주 찾아와 연기에 대한 질문을 던지곤 했다. 그리고 유명은 감탄했다.
‘역시 대형배우가 될 싹은 다르구나.’
집중력, 감각, 열정.
물을 붓는대로 흡수해서 쑥쑥 자라는 새싹은 어느 새 한 그루의 나무가 되었다.
너무 급속히 성장했기에 카이가 지금 느낄 혼란과 두려움을 모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지금 몰아세울 필요가 있었던 이유는.
[카이. 주연에게는 주연의 의무가 있어.] [주연의 의무…]원생에서보다 이르게 거머쥔 커다란 기회.
그는 지금 그 기회 앞에서,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하기 때문에.
[연기를 잘 해야 한다는 말을 하는 게 아니야. 그건 기본이지. 그리고 네가 지금처럼 릴의 삶을 제대로 살아간다면 이미 충분한 부분이고. 하지만 좋은 촬영장이라는 건 주연배우의 좋은 연기만으로 만들어지지만은 않아.]‘좋은 촬영장은 좋은 연기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카이는 유명의 말을 귀기울여 들었다.
단역이나 조연으로 여러 촬영장을 경험해 보았지만, 미싱차일드 때만큼 배우와 스탭 모두의 집중력이 높고 화기애애한 촬영장은 없었다. 그는 지금 그 원동력을 이야기한다.
[말하자면, 주연 배우는 커다란 모임의 호스트와도 같은 거야. 모임에 참석하는 것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분위기가 어떤지, 문제없이 잘 돌아가고 있는지도 신경을 써야 하지. 세세하게 배우들, 스탭들을 챙기라는 게 아니야. 너라는 배우에 대한 신뢰를 주고, 항상 귀를 열어두고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대부분은 문제없이 돌아가니까.]카이는 그 말을 들으며 촬영장에서 유명의 모습을 떠올린다.
어떤 요구를 하더라도 반드시 그림을 만드는 연기력, 항상 콜타임보다 이르게 도착해 준비된 연기를 다시 한 번 점검하는 성실함, 기분의 고저를 드러내지 않고 온화한 무드를 유지하는 평정심, 그리고…멘탈이 나간 자신을 위해, 한 번 더 촬영을 부탁드린다고 고개를 숙이던 배려심.
신유명이라면 믿을 수 있다.
형이라면 어떻게든 해줄 거야.
우리는 저런 배우를 위해 일하고 있어.
그 신뢰가, 자부심이, 미싱차일드같은 작품을 만들어 냈다.
‘그걸 내가 할 수 있을까…’
그 때, 수화기 너머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본 듯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저는 못해요, 이건 틀린 말이야.] [……] [어떻게 해야 해요, 라고 물었어야지.]약간의 책망, 그리고 걱정이 서린 목소리에 카이는 떨리는 목소리로 한 번 더 묻는다.
또 혼날지도 모르지만.
[제가 할 수…있을까요?]작은 웃음소리가 들리더니, 유명이 못말린다는 듯이 대답했다.
[당연하지. 내가 가르쳤는데 그걸 모를까.] […어떻게 해야 하나요?] [좋아. 첫 번째는 주변에 스스럼없이 조언을 구하되, 과하게 스스로를 낮추지 않는 거야. 중심이 흔들리는 주연만큼 불안한 건 없거든.]시즌1의 주연이 시즌2의 주연에게.
또다른 레슨이 시작되었다.
*
2009년 2월 12일.
그 날 저녁은 유난히도 길거리에 사람이 적었다. 미싱차일드의 마지막 에피 방영일이었기 때문이다.
-와, 진짜 이거 결론이 어떻게 나려나…
-아직 양부에게 제대로 한 방 못 먹였는데…시즌 2로 이어지겠죠?
-그놈의 비밀파일은 오늘 밝혀지겠죠?
-OOOOOOO OOOOO OO, 이거 MISSING CHILD 20아님?
-삑! 틀렸음. 데카르도가 그거 입력했는데 에러났었음.
유명도 바로 전날 의 촬영이 끝난 참이었다.
9시가 가까워져 오자, 얼마전부터 같은 집에 머물고 있는 반순호 PD와 박영선 카메라 감독이, 미싱차일드가 곧 시작한다며 문을 두드렸다.
‘너랑 맥주 마시면서 보는 게 재밌는데, 어쩔 수 없네.’
{맥주는 먼저 마셨으니, 그냥 옆에서 같아 보면 되징.}
‘그래.’
유명은 미호와 함께 마시던 맥주를 치워두고 거실로 나왔다.
“앉으세요, 유명씨. 와…진짜 오늘만을 목이 빠지게 기다렸네. 어떻게 같은 집에 지내면서도 스포는 죽어도 안하냐…”
“막상 하면 귀 막으실 거면서.”
“흠흠. 오오~~ 시작한다!”
셀리를 조수석에 싣고, 데카르도는 황량한 국도를 달리고 있다.
목적지는 마지막 후보지.
기시감이 들게 하는 자줏빛 구름을 배경으로 국도를 달리다, 다시 한 번 그에게 떠오른 영감.
끼이익-
[왜 그래요, 데카르도.] [잠시…잠시만.]그는 길가에 차를 세우고, 황급히 노트북을 열어, 잠겨있는 파일을 클릭한다.
타닥-
[뭔가 떠올랐어요?]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데카르도는 입술을 꼭 문 채 빠르게 타자를 두드린다.
그들은 이미, 관련이 있을만한 영단어와 숫자의 조합을 수도 없이 입력해 보았다. 천재 아이들을 ‘납치’해 온 것을 알게 된 후에는 ’20명의 사라진 아이들’을 의미하는 missing child 20으로도 이미 여러 번 시도해 봤었고.
그런데 그가 같은 글자를 다시 두드린다.
7자. 5자. 그리고 2자.
/missing child 20/
그 때, 권순호의 뇌리에, 지난 주 21화 코멘터리 방송에서 유명의 말이 스쳐 지나갔다.
-그건 정말, 끔찍한 영감이었죠.
타닥타닥-
데카르도의 손놀림이 타이트하게 잡힌다.
암호를 입력하고 엔터, 에러가 뜨는 것이 반복된다.
/missing child 21/
/missing child 22/
/missing child 23/
.
.
.
[데카르도. 설마…]무언가를 짐작한 듯, 셀리의 시선이 마구 흔들리기 시작한다.
/missing child 37/
/missing child 38/
/missing child 39/
권순호와 박영선의 얼굴에도 의아함이 스친다.
처음엔 ‘도대체 왜?’라고 생각하는 듯한 표정은, 어떤 생각을 떠올리고 설마…하는 두려움으로 바뀐다.
/missing child 64/
/missing child 65/
/missing child 66/
/missing child 67/
띠릭-
거기서 파일의 락이 풀렸다.
셀리는 물론이고, 시청자들까지 숨을 헉- 하고 들이쉰다.
그리고 데카르도는…절망적인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파일이 열리자, 스크롤이 주욱 내려가는 명단. 그 곳의 첫 번째에 데카르도의 이름과,
[나도…있군요.]초반과 중반 즈음에 보이는 릴과 셀리의 이름.
이제는 외울 지경이 된 나머지 18명의 입양아들의 이름과…
나머지 46개의 모르는 이름.
벌컥-
숨이 막히는 듯 듯 그가 차 문을 열고 나가고, 셀리가 황급히 그 뒤를 따른다.
[설마…데카르도 설마.]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과연 세뇌가 다 성공했을까.] […!] [그렇다면 나머지 아이들은…어떻게 했을까…]데카르도의 말끝이 지진처럼 흔들리고, 그의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진다.
그리고 빗방울이 뚝.
후둑- 후두둑-
소나기라기에도 너무 갑작스런, 장대같이 무거운 비가, 하늘에서 마구 쏟아진다.
셀리가 눈을 질끈 감았다.
파일에서 봤던 46개의 이름 중, 분명 그런 이름들이 있었다.
[어떻게…이런…이런 사람을 아버지라고 15년을 생각해 왔다니. 평생동안 그의 사랑을 구걸해 왔다니!!] [데카르도! 데카르도…정신차려요. 진정…진정해요. 응?]이를 악물다 못해 바스라진 것인지, 그의 입에서 피가 주륵 흘러내린다.
비와 구별되지 않던 눈물은 피눈물이 되었고, 그것은 비와 섞여 붉은 색으로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빗속에 데카르도는 고개를 하늘로 쳐들고 눈을 감았고, 셀리는 다리에 힘이 풀려 풀썩 주저앉았다.
[이건…이건 아니잖아요…]절망한 데카르도의 목소리를 담으며, 장면이 끝났다.
*
명단 속 46명의 인물은 실종자로 확인되었다.
그 중엔 실종 후 사망이 밝혀진 사람도 있었고 미해결로 남은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공통적인 것은…
[8세 이전에 실종된 아이들이군요.] [분명…하네요. 증거물이 생겼으니 한 번 기사화 해볼까요?]셀리의 제안에 데카르도가 고개를 젓는다.
[이걸론 안 돼요. 실종된 아이들의 명단이라는 것 말고 이게 뭘 증명할 수 있죠?] [그래도 그 사람 회사의 컴퓨터에서 나왔으니까-] [빠져나갈 방법은 많죠. ‘우리 회사는 고아를 입양하는 일과 함께, 실종된 아이들을 찾는 일에도 관심을 두고 있었다. 아이들은 행복하게 자라나야만 하니까.’ 이런 식으로 대응한다면요?] [……] [더 정확한 증거가 필요해요. 판도를 뒤집을만한 확실한 증거.]데카르도는 흠뻑 젖은채로 다시 운전을 시작했다.
마지막 목적지를 향해, 속도를 높이고 또 높인다.
그의 몸이 벌벌 떨리는 것을 보면서도, 셀리는 차마 돌아가지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가 곧 죽어버릴 것 같은 텅빈 눈을 하고 있어서. 어떻게든 해야한다는 생각마저도 그에게서 빼앗으면, 그의 영혼이 증발해 버릴 것만 같아서.
[…여기야.]절벽 아래, 도무지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은 황무지에 지어진 조그마한 민가.
벼랑의 위에서 그 곳을 내려다보며, 데카르도는 깨달았다. 그가 납치되어 갔던 곳이 바로 이 곳이었다는 걸.
[돌아가요.] [네?! 당신은-] [한 명은 들어가서 증거를 찾아와야 해. 어렴풋이 기억이 나요. 저 집이 전부가 아니야. 절벽 내부에 시설이 있어.] [그럼 돌아가서 경찰을 데리고-] [안 돼! 수상한 움직임이 보이면 더 꽁꽁 숨어버릴 겁니다. 그리고 경찰이 와 준다고? 우리의 ‘심증’을 진실이라고 믿고? 심지어 경찰도 한통속일지도 모르는데?]날카로운 그의 음색.
거기에는 이미 죽음을 각오한 사람의 의지가 배어 있었다.
그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하지만…
[나는요. 당신을 사랑하는 나는.] [사랑…하하. 이 텅빈 껍데기를 뭘 보고.] [당신도 날 사랑하잖아! 그냥…그 때 말한대로 우리 둘이 도망가서 살면…] [셀리, 당신은 기자예요. 그렇죠?]그 말에 그녀는 울먹임을 멈추었다.
기자? 자신이 과연 기자일까? 기자는, 언론사에 들어간 것은 전 양부의 음모를 파헤치기 위해 선택한 일이었고, 사주가 된 것은 아버지 버크셔 의원이 지시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자신에게 사명감이란 게 있었을까. 하지만.
[깊고 무서운 진실을 말하라. 카를 힐티.]그 말을 듣는 순간, 뱃속 어딘가가 뜨끈해져 왔다.
아아- 그래. 내가 그를 학자로서 소명을 다하라는 말로 일으켜 세웠었지. 하하, 그걸 이렇게 돌려받을 줄이야.
[세상 누구도 도와주지 않아. 지금 이 일을 할 수 있는, 아니 해야하는 건 우리 뿐이야. 기자인 당신과 학자인 나.] […데카르도.] [당신을 믿어요, 셀리 티셔.]믿음.
이렇게 많은 고비를 넘겨서야, 자신은 그에게 겨우 신뢰라는 것을 얻었다.
그것을 어떻게 배신할 수 있겠는가.
[내가 뭘 하면 돼죠?] [여기서 한 시간을 기다리다, 내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조용히 돌아가요. 그리고 릴에게 이걸 전해줘요. 여태까지 모은 모든 자료들이야. 릴이라면 내가 실패하더라도, 이 일을 계속해 줄거야.] [릴은…믿나요?] [그라는 인간을 믿는게 아니라, 그의 기준을 믿어요. 이 일은 그의 기준으로 결코 용납하지 않을 일이니까. 그리고 당신은…릴의 브레이크가 되어줘요.] [브레이크…] [그는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한 무기로서, 내 연구를 성공시키려고 할 지도 몰라. 그라면 그걸 해낼지도 모른다는 게, 지금 내가 가장 걱정되는 일이에요.] […알겠어요.]몸을 돌리는 데카르도의 등을 셀리가 껴안았다.
[사랑해요.] […나도 사랑해, 셀리.]그는 절벽 사이길을 위태롭게 걸어가 사라졌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았다.
*
그 해, 9월 말. 카이는 국제전화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