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34
그의 정체는 그 후로도 오래도록 드러나지 않았다.
*
[형, 고맙습니다. 어쩌다 보니 참견을 좀 했는데 시끄러워지는 게 싫어서요.] [뭘 어쨌길래 다들 난리야? 연극 관계자들한테 주목 받으면 좋은 거 아니야?] [지금은 말고 나중에요. 오늘 감사했어요!]유명이 폴더를 탁- 덮고는 인상을 썼다.
“이게 무슨 짓이야!”
{뭐강?}
“빙의를 써도 된다고는 했지만, 갑자기 그런 상황에 쓰는 게 어딨어?!”
{그 땐 설명할 시간이 없었당. 그리고 나름 배려한거당. 프레디나 남사장할 때 빙의한 거도 아니잖냥.}
“그럼 천재니 어쩌니 이상한 말이라도 하지 말든가. 나인 걸 안들켰으니 망정이지 어떡할 뻔 했어!”
{10분만에 대본외는걸 그럼 뭐라고 설명하냥.}
“전에 본 대본이라든지.”
{그거 창작대본이잖냥.}
“…”
틀린말은 아니었기에 그저 째려보는 유명에게, 미호는 귀를 축늘어뜨리고 가엾게 얘기했다.
{늘 연기를 보기만 하니까 해보고 싶었당.}
움찔-
스트라이크다.
연기를 해보고 싶었다는 말에 유명이 반응했다.
무대에 서고싶은 간절한 마음이야 누구보다 잘 아는 유명이 아닌가.
“연기를…그렇게 하고싶었어?”
{엉. 연기에 끌려서 귀업으로 연귀를 택했으니깡.}
“연기해본 게 이번이 처음이야?”
{아닝. 후원하던 배우들이랑 거래로 몇 번쯤은 해봤엉. 이번엔 한 100년 만인캉···}
“…너 연기…굉장하던데.”
{큭큭. 여우과가 원래 사람을 잘 홀린당. 천 년 내내 연기만 봐 오기도 했공.}
“그렇겠네. 그럼…빙의해서 연기 더 하고 싶지는…않아?”
슬쩍 건네는 유명의 물음.
의도가 빤한 질문이었다. 다시 몸의 주도권을 뺏기는 경험을 하고 싶지 않겠지.
미호는 유명을 안심시킬만한 진실을 조심스럽게 골랐다.
{전에도 말했지만, 선계의 계약은 엄정하당. 거래된 빙의는 1번이었고, 지금은 소멸됐당. 네가 빙의당하기 싫다면, 다음엔 그 거래를 하지 않으면 된당.}
“…그래, 알았어.”
이 날, 처음으로 유명에게 ‘연귀’와 ‘계약’에 관한 경계심이 싹텄다.
그래도 유명이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던 것은, ‘도움이 되리라’던 미호의 말은 옳았기 때문이다.
전력으로 에베레스트를 목표로 하던 그의 앞에,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올림푸스가 등장했다.
연기자에게는 한없이 이상에 가까운, 연기의 원형原形.
차라리 못본 것이 나았으리라 생각하기엔, 유명은 연기에 욕심이 대단한 배우였다. 그만한 연기를 접했다는 것은, 그의 연기자로서의 성장에 큰 밑거름이 되리라.
오늘 유명에겐, 다다를 가능성이 한없이 희박한 목표가 생겼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언젠가는···’
유명은 두 주먹을 꽈악 쥐었다.
“이거 일부러 연습한 거 맞죠?”
“누구냐 이놈.”
“모차르트는 5살 때 첫 작곡을 했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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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게 아마추어라면
지잉-
어두운 강의실, 프로젝터의 빛이 강의실을 가르고 직선으로 뻗는다.
재필은 영상으로만 보아도 그 때의 기억에 섬뜻섬뜻해지는 1조의 녹화본을 이미 여러 번 돌려보았다.
오늘의 분석 대상은 1조이다.
짝짝짝짝-
강의실의 불이 켜지자, 다시 한 번 우렁찬 박수가 터진다.
함께 공부하는 학우의 연기가 아니라, 프레디 머큐리라는 역사적인 인물에 대한 서사를 관람한 느낌. 그들은 다시 한 번 감탄을 뱉는다.
“오늘 분석할 1조의 연기는, 사실 연기론으로 분해하기에는 아까운 예술적인 한 편이었지만, 여러분들의 발전을 위해서 즐겁게 씹고뜯어 봅시다.”
하하하-
교수의 가벼운 농담에, 높아졌던 교실의 밀도가 조금 나긋해진다.
“직접적인 분석에 앞서, 연기 메소드의 하나인 뷰포인트 메소드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뷰포인트 메소드]크게 판서를 한 교수가 유려하게 강의를 시작했다.
“뷰포인트 메소드란 1970년대 뉴욕대 연극과 교수 메리 오벌리에 의해 만들어진 예술가들의 훈련 프로그램으로, 이후 앤 보가트에 의해 연극 장르를 위한 메소드로 발전되었습니다.
연기를 할 때 공간, 모양, 시간, 감정, 움직임, 이야기라는 여섯 가지 뷰포인트를 예술적으로 지각하고, 이를 자연스럽게 표현하기 위한 훈련법인데-”
교수의 시선이 한쪽 구석에 앉아있는 유명에게 잠시 머무른다.
“의도했는지 모르겠지만, 1조의 단막극에서 시간의 뷰포인트가 활용되었더군요. 시간에는 템포/지속길이/운동감각적 반응/반복이라는 네 가지 요소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템포와 지속길이라는 부분을 자주 사용했습니다.”
교수는 앞의 한 학생을 지목하여 일으켰다.
“돌아서서 한 번 웃어보세요.”
학생은 어색하게 히죽 웃었다.
“자 이번에는 같은 표정을 천천히 지어봅니다.”
천천히 입꼬리가 올라간다.
“같은 표정 맞아?”
하하하하-
“뭐 어쨌든, 내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는 알겠지요. 같은 표정, 같은 대사라고 해도 템포에 따라 극 중에서의 분위기나 의미가 미묘하게 달라집니다. 1조의 공연에서는 예를들어 프레디와 메리의 교차신.”
교수는 특정 장면을 재생했다. 프레디의 앞으로 메리가 여유롭게 걸어간다.
“성격이 급하고 소년기의 열정이 가득한 프레디의 무브먼트 템포는 상당히 빨라요. 이게 메리의 느긋한 무브먼트와 상당히 대비됩니다. 그쵸?”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식으로 뷰포인트를 의식하면 좀더 캐릭터와 장면을 다채롭게 구성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 군데 더. 보고도 믿기지 않는 파트인데,”
재생된 다음 장면은 터닝 전환 장면이었다.
교수는 이 부분의 재생속도를 0.5배속으로 늦추었다.
스으으으윽-
학생들은 슬로모션 장면을 더 느리게 본 후, 뭔가 이상한 걸 발견한 듯 미간을 좁혔다.
“첫 번째로 놀라운 건 전환 전과 후의 표정을 보면 완전히 다릅니다. 야심차고 자아도취적인 소년의 얼굴과 사랑에 빠진 열렬한 청년. 그 표정 자체의 리얼함도 물론 대단하지만, 두 표정이 슬로모션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는 게 굉장해요.”
아아- 학생들이 탄성을 터뜨렸다.
“흔히 메소드 연기라면 ‘진실한 감정 몰입’ 하나에만 초점을 두기 쉽지만, 감정을 잡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감정을 얼마나 잘 표현하는지입니다. 자유자재의 표현을 위해선 근육이 잘 훈련되어 있어야 해요. 그런데 가장 많이 쓴다는 표정근조차도, 수축, 이완, 유지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연기 전공자인 여러분들이 더 잘 알겠지요.”
끄덕끄덕-
“뿐만이 아닙니다. 터닝할 때 보면, 0.5초 간격으로 조금씩 끊어지는 느낌이 있어요. 바로 여기. 처음에 보고 내 눈이 잘못된 줄 알았어요. 신유명 학생?”
“네 교수님.”
“이거 일부러 연습한 거 맞죠?”
“네.”
믿기지 않는 듯 웅성거리는 소리.
“의도가 뭐였나요?”
“자아가 급변한다고 하더라도, 사실 내적으로는 단계를 거치니까요. 프레디의 내적 시간이 흘러가는 걸 영화에서처럼 컷컷으로 넘어가는 느낌으로 구현해보고 싶었습니다.”
재필이 예상했으면서도 듣고 또 놀라운 듯 고개를 휘휘 저었다.
“이게 뷰포인트 관점에서는 템포에 지속길이를 의도적으로 조합한 거에요. 슬로우모션으로 시간의 흐름을, 표정의 단계마다 잠시간 포즈pause를 취함으로써 내적 변화를 나타낸 건데, 이런 분절된 표정들을 자연스럽게 잇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연습이 필요한지 알겠어요?”
학생들의 낯빛이 질렸다.
“프레디의 연기는 감정적으로도 스위치 온 된, 최상의 메소드 연기였어요.
하지만 감정적 몰입만큼이나 중요한 메소드는 내가 내 몸을 완벽히 통제할 수 있게 훈련하는 것이라는 걸 강조하고 싶습니다.”
“…”
“하이퀄의 대본이나, 프레디의 몰입도를 깨뜨리지 않고 더해준 ‘여성’ 메리의 연기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았는데, 얘기하다보니 심취해서 주인공 얘기만 길어졌네요. 어쨌든 최상의 교재를 제공해 준 1조에게 다시 한 번 박수를 보냅시다.”
짝짝짝짝짝짝-
우렁찬 박수 속에, 유명은 조금 붉어진 고개를 숙였다.
*
“윤 배우. 이거 좀 봐바.”
어두운 사무실에서 재필은 윤한성과 대작을 하고 있었다. 그는 친구의 요청에 깔깔한 눈을 슥슥 비비고 얼굴을 들이밀었다. 노트북에 영상 하나가 걸려 있다.
“이게 뭔데?”
“가운대 출강 나가서 학생 과제 찍어온 거야.”
“괜찮은 놈이라도 있어?”
“직접봐.”
15분의 동영상이 재생되는 동안, 재필은 술을 한 잔 더 마셨다. 친구이자 그가 인정하는 배우의 표정이 점점 변해가는 것을 안주삼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