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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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명- 신유명- 신유명-
지난 학기 과에서도 동아리에서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이름이 참 많이 들렸다.
유리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노력이 시간을 쌓고, 시간이 평판을 쌓는다.
노력없이 갑자기 등장한 천재라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
선유리는 정도를 벗어나지 않는 성격이었다.
시험에서 모르는 문제가 있으면, 찍지않고 칸을 비워서 제출할 정도로 단정한 성격.
그런 성격이었기에, 예뻐서 탤런트라서 특별 대우를 받는다는 수군거림들은 그녀의 자존심에 상처를 냈다. 그럴수록 유리는 더 이를 악물고 노력했다. 대학을 지원할 때조차 연기자 특별전형을 활용하지 않고 수능 정시를 고집했다.
그런 그녀는 오디우스에 들어왔을 때 무척 기뻤다. 자신을 외모나 타이틀이 아닌, 노력하는 연기자 선유리로 봐주는 첫 집단이었다.
이름있는 아역배우 출신이 드물지 않았다.
그녀만큼 노력하고 땀흘리는 사람들이 흔했다.
그리고, 함께 공연을 만들어가는 것이 자랑스러울 정도로 재능있는 배우들이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서류신이었다.
연습실에 가장 일찍 나와서 제일 늦게 나서는 사람.
누구보다도 진지한 연기자.
성격상 입밖으로 말해본 적은 없지만, 그녀는 서류신 선배를 무척 존경하고 있었다. 특히 지금도 오디우스 최고이지만 결코 만족하지 않고 스스로를 갈고닦는다는 점에서.
그런 그가 올해 조금 변했다.
자꾸 오디우스 외부의 누군가에게 관심을 가진다.
지난 공연 오필리어를 연기했던 유리는, 햄릿의 시선이 자신이 아닌 먼 곳을 향하는 것을 느꼈다. 자존심이 상하긴 했지만 그만한 배우라면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연기를 처음 접하는 타과생이라니.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천재이기에 자신이 보기엔 충분히 천재인 류신도, 그 까다롭다는 이재필 교수도, 오디우스가 낳은 자랑 중 하나인 윤한성 배우도, 그 이름을 노래부르는지.
그럴만 하겠지라고 생각하려 해도, 유리는 그를 사심없이 바라보기가 힘들었다.
그가 쌓아온 시간이 너무 엷음에.
*
pm 2:00
팽팽한 분위기를 끊는 부드러운 바람이 불었다.
배우 이선하.
극단 의 허리를 받치고 있는 40대의 원숙한 배우.
‘곱다’는 느낌을 주는 단발머리의 차분한 여성은, 후배들을 바라보며 녹아내릴듯 따뜻하게 웃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선배님!”
“네, 이 자리에 서는 건 3년만이네요. 작년과 재작년에는 공연과 겹쳐서 후배들과 만날 수 없어서 무척 아쉬웠어요.”
“저희도요!”
오디우스 워크샵이 유명한 이유.
작품활동하기 바쁜 쟁쟁한 선배들임에도, 가능하면 워크샵에는 시간을 빼려 할 정도로 선배들의 애정이 돈독한 데 있었다. 자신들 역시 연기 꿈나무일 적 선배들에게 받았던 귀중한 경험들을 나누는 것이리라.
이선하는 나붓이 웃으며 학생들을 둘러보았다.
다른 사람들과 조금 떨어져 앉아있는 학생이 하나 있다. ‘아- 저 아이가 한성이와 재필이가 추천했다던 그 아인가 보네.’라고 생각하며, 그녀의 시선이 잠시 거기에 머물렀다.
[듣기]“프로그램에 나와있는대로, 오늘의 워크샵은 ‘듣기’입니다.’
그녀가 최고의 극단이라 불리는 혜성에서 오랜시간 주요 라인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건, 성품마따나 ‘잘 듣는’ 능력 때문이었다.
연기란 배역을 잘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본질은 듣기에 있다. 정해진 대사일지라도 상대의 말을 온전히 듣고 진심으로 반응하는 것이 연기의 시작이다.
“자 작은 실험을 해볼 겁니다. 지금부터 이 대사를 ‘달달달’ 외워주세요. 툭 치면 대사가 주르르 나올 정도로.”
[A: 밥먹었어?] [B: 아니, 아직.] [A: 그럼 뭐먹을까?] [B: 김치찌개!]단순한 대사였다. 외우고 말고 할 게 없을 정도로.
그럼에도 멤버들은 선배의 오더에 따라 수십번 대사를 읽으며 머리 속에 새겨넣었다.
“제가 A를 할 거에요, 제가 말을 거는 사람은 B의 대사로 받으시면 됩니다.”
이선하는 단상을 내려와 앞 줄의 학생에게 말을 걸었다.
“밥먹었어?”
“아니, 아직.”
“그럼 뭐먹을까?”
“김치찌개!”
“좋아요. 이렇게 하시면 돼요.”
그녀가 기분좋게 웃으며 다음 사람에게 같은 대사를 읊었다. 그 학생도 쉽게 B의 대사를 뱉었다.
그렇게 네 명과 대사가 반복되고 나서, 다섯 번째 학생의 차례였다.
“밥안먹었어?”
“아니, 아직···..어?”
기계적으로 대답한 학생이 잠시 후에야 질문이 바뀐 걸 눈치챘다.
이선하가 미소를 지으며 옆으로 갔다. 옆 학생은 다시 대사가 다르게 날아올까 바짝 긴장해 임했지만, 이번에는 같은 대사였다.
그렇게 몇 명을 이어가다 다시 예고없이 대사가 바뀌었다.
“밥먹었어?”
“아니, 아직.”
“그럼 피자 먹을까?”
“김···”
학생이 말 끝을 흐렸다.
다시 단상으로 돌아온 이선하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대사라는 것은 약속된 언어이기 때문에, 대사에 익숙해진 배우는 자칫 상대역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기계적으로 반응하게 될 수 있어요. 심한 경우엔 상대가 대사를 할 때 ‘다음 대사가 뭔지’를 암기하고 있는 배우도 있지요.”
몇몇이 찔끔한 듯이 고개를 숙였다.
“이런 걸 ‘회색지대’라고 합니다. 모든 게 안전하고 편안하고 중도적인 곳. 내가 할 행동과 상대의 행동이 꽉 짜여져 있어 예상이 가는 상태. 이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연기란 ‘생동감’이 없어요. 말그대로 짜고치는 고스톱이죠.”
강당 안이 조용해졌다.
“좋은 배우는 제대로 들을 줄 알아요. 정해진 대사지만 상대의 말을 온전히 듣고 마음에서 우러나와 다음 대사를 칠 때, ‘극적 긴장감’이 조성되지요. 제 자랑 같아서 뭐하지만, 동료 배우들이 저와 파트너가 되면 연기하기 쉽다는 얘기를 하곤 해요. 제가 귀기울여 듣기 때문에 자신도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대사를 칠 수 있다는 거죠.”
이선하가 으쓱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40대에 어울리지 않게 귀여운 모습에 웃음을 터뜨리면서도, 다들 속으로는 몹시 감탄하고 있었다.
‘함께 연기하고 싶은 배우’라는 것은 배우에겐 최고의 극찬 중 하나이지 않은가.
“자, 그래서 오늘은 듣는 연습을 해 볼 거예요. 귀기울이는 것은 말하는 것 만큼이나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이랍니다.”
짝- 짝-
이선하가 박수로 주의를 환기시켰다.
“그래서 지금부터 진행할 워크샵은 이름하여, [반박하기]입니다.”
*
“제가 말하는 것에 어떻게든 반박해서 대답하시면 됩니다.
사과 좋아해? 하고 하면 사과 싫어해, 사과 안 좋아해, 참외를 더 좋아해 등으로, 완전 부정이 아니더라도 제 대사와 조금이라도 의미가 다른 대사로 받으면 돼요.
이걸로 상대의 말을 제대로 듣는 연습과 순발력 연습을 함께 할 수 있어요. 여유가 되면 단순 부정어보다는 조금 더 발전된 문장을 구사하면 좋겠죠.”
아아- 하고 학생들이 머리를 끄덕였다.
이선하가 앞의 학생 한 명을 지목했고, 그는 단상으로 올라가 긴장된 표정으로 그녀와 마주했다. 선하가 싱긋 웃으며 바로 질문을 던졌다.
“우리 친구지?”
“아니…선배님이죠.”
깔깔- 웃음이 터졌다. 선하가 잘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다음 질문을 이었다.
“고향이 어디야?”
“청주···.어.”
한 명이 쉽게 탈락했다.
“이런 경우에는 네가 내 고향을 알아서 뭐하게- 혹은 고향같은 거 없는데? 이런 식으로 받으면 됩니다. 상대의 말에 순순히 수긍하지만 않으면 돼요.”
“네-”
“옆 사람 나오세요-”
그렇게 [반박하기] 워크샵이 이어졌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세 번에서 다섯 번 사이에 나가떨어졌다.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데다, 적응할만하면 반박하기 당황스럽게 만드는 이선하의 예리한 질문 때문이었다.
개중 잘해낸 것은 선유리였다. 그녀는 이선하의 질문을 차분하게, 그리고 다른 친구들보다 발전된 형태로 반박해 냈다.
“안녕?”
“오늘은 안녕한 기분이 아니네.”
“이름이 뭐야?”
“너에게 알려줄 이름은 없어.”
“예쁘다는 말 많이 듣지?”
“껍질은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알맹이지.”
오올–
유리의 선전에 멤버들이 감탄의 환호성을 질렀고, 이선하도 그녀에게 방긋 웃어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구석에 앉아있던 ‘뉴페이스’가 나왔다.
모두의 시선이 흥미로 동했다.
선하 또한 호기심을 가지고 첫 질문을 던졌다.
“너는 누구니?”
“글쎄, 내가 누굴까. 너는 혹시 알고 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