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37
선하의 말을 쉽게 반박한 그는,
그걸로 끝내지 않고 ‘질문’을 이었다.
‘와…이 녀석, ‘과제’가 아니라 ‘연기’를 하네.’
선하는 놀란 마음을 추스리고, 그의 질문을 받아 쳤다.
똑같은 [반박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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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는 독백도 방백도 없다
“너는 누구니?”
“글쎄, 내가 누굴까. 너는 혹시 알고 있니?”
선하의 말을 쉽게 반박한 그는,
그걸로 끝내지 않고 질문을 이었다.
“너도 모르는 걸 내가 어떻게 알겠니. 어디에서 왔어?”
“글쎄, 기억이 잘 나지 않네. 아주 깜깜한 곳이었던 것 같아.”
유명의 눈빛이 허공을 응시한다. 말투는 나즉히 울리고 있다. 선하는 이 녀석이 단순히 대사를 받아 치는 것이 아니라 ‘연기’를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가장 앞의 한 마디를 주고 받는 것으로, 이미 캐릭터가 구상되었다는 것인가. 심지어 그는 [반박하기]라는 과제의 포맷을 충실히 지키고 있는 중이었다.
“이 주변에는 깜깜한 곳이 없는 걸? 깜깜한 건 무서워.”
“무섭지 않아. 깜깜함 속에서 나는 힘을 길러왔는걸.”
“힘? 너는 아주 연약해보여. 힘이 있을 거 같지 않아.”
“힘이란 폭력만 있는게 아니니까. 나는 날아오를 힘이 있어.”
“날아오를 힘?”
아차.
선하는, 먼저 [반박하기]를 잊고 말았다. 즉흥으로 만들어낸 대사이며 캐릭터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그 대사에는 가슴벅참과 뿌듯함이 배어있었다. 그 감정을 귀기울여 듣던 선하는 이것이 과제라는 것을 잊고, 그대로 되묻고 말았던 것이다.
선하가 먼저 손을 들자, 유명 또한 반박하기를 끝내고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응. 덕분에 기억이 났어. 이제 알겠다. 나는 나비야.”
짧은 시간에 완성된 하나의 즉흥극이었다.
오디우스에 처음 얼굴을 비친 또래 배우의 순발력과 창의력을 보고 멤버들은 모두 할 말을 잃었다.
이선하만이, 활짝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후배님, 아주 재밌는 배우구나.”
*
하루 6시간, 한 강사당 1일~3일이 배분된 연기 워크샵은 2주간 지속되었다.
캐릭터라이즈를 주제로 한 개인과제.
신체 밸런스를 최적화하기 위한 바디워크샵.
자연스러운 감정을 이끌어 내기 위해 상호간 극도로 교감하여 완성하는 2인 컴포지션.
이미지와 크리에이티브를 최대한 끌어올려 합작하는 4인 컴포지션.
여러 가지 과제들을 함께해가며 오디우스 멤버들은 유명의 첫인상이 많이 바뀌었다.
“신유명 걔는 진짜 난 놈이더라.”
“어. 그런데 볼수록 애도 괜찮지 않냐? 처음에는 유리한테 큰소리 치는 거 보고 좀 싸가지없는 과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성격도 무던하고.
“어. 나도 좀 헤매고 있을 때 슬쩍 티안나게 도와주더라.”
“가끔 보고있으면, 신이 진짜 편애가 쩔구나 싶어서 짜증날 때는 있어. 어떻게 올해 연기 시작했다는 놈이 못하는 과제가 없냐.”
“대신 진짜 열심히 하던데. 대본도 잘 알길래 어떻게 알고 있냐 물었더니, 예전부터 연기는 하고 싶었는데 할 여건이 안 돼서 대본만 주구장창 읽고 혼자 연습해보고 했다더라.”
“아, 그랬대? 연기를 책으로 배우면 보통 어색하기 마련인데 대단하네.”
유명에게도 오디우스의 인상이 바뀐 것은 마찬가지였다.
“선배, 거긴 템포가 원투-가아니고 원투쓰리- 아니에요?”
“어? 그러네. 미안 다시.”
창천과 달리 선후배간의 꼰대질이 없었다. 자유롭게 의견을 제시하고 토론했다. 그건 연극계의 고질적인 위계질서에 익숙해져 있던 유명에게는 신선한 느낌이었다.
“나 어제 워크샵에서 바디밸런스할 때 턴이 잘 안되더라. 시간되면 좀 봐줄래?”
“네. 그럼요.”
정말 열심히 하는 배우들이 많았고, 스스럼없이 마음을 열고 도움을 구할 줄 알았다. 그것은 상대에게도 도움을 줄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의미였다.
왜 오디우스의 선배들이 바쁜 시간을 쪼개어 워크샵에 참여할 정도로 애착을 가지고 있는지, 서류신이 오디우스의 매력을 운운했는지, 유명도 서서히 깨닫고 있었다.
게다가 마지막 한 명에게도,
“어, 일찍 왔네요.”
“네.”
여전히 자신에게 냉랭한 선유리였지만 유명은 점점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워크샵 진행을 맡은 그녀는 가장 먼저 나오고 가장 늦게 들어가며 부지런히 일한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일은 드물다. 그렇게 안 생겨서는, 제 맡은 바는 웬만하면 제 손으로 처리하는 성격인 모양이었다.
배우들이 뒹구는 바닥은 늘 얼룩없이 깔끔했고, 선배들이 마실 음료는 시간마다 새 것으로 교체되었다.
거기에는 홀로 조용하고 빠르게 움직이는 선유리의 배려가 있었다.
요령없고 입에 발린 말을 못하는 성격의, 노력하는 배우.
그런 배우라면 유명도 싫어하기 어렵다.
“복식 발성이 무조건 답은 아니에요. 발성할 때 두성을 한 번 써보시죠. 그 쪽이 대사 전달도 잘 되고 보이스컬러도 잘 나올 거 같은데.”
그래서 유명은 먼저 화해의 제스처를 내밀었다.
선유리를 볼 때마다 해 주고 싶었던 말이기도 했다. 00년 초반이라면 아직까지 무대 발성은 무조건 복식이라는 고정관념이 만연하던 시기다. 이후 연기론은 많이 발전했고, 사람에 따라 다른 방법이 맞을 수도 있다는 관점도 나오게 된다.
그런데, 그 말에 돌아온 반응이 사뭇 격렬했다.
“뭐든 그렇게 쉽게 답이 나와서 좋으시겠어요?”
*
오디우스 입단 후 선유리에게 큰 고민이 생겼다.
발성.
유리는 대학 입학 전, 를 위시하여,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했었다. 사운드 소스를 따로 따는 방송에서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던 발성이, 연극을 시작하자 걸림돌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연극 발성의 기본은 복식 발성.
‘안 되는 건 연습으로 극복한다.’는 성격답게 유리는 노력했다. 그래서 복식 발성을 구현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문제는 소리였다.
맑고 예리한 편인, 외모와 사뭇 어울리는 유리의 목소리는, 복식 호흡을 입으면 매력이 퇴색되었다. 대사의 전달도 그냥 말할 때보다 무뎌졌다.
“아- 에- 이- 오- 우-”
항상 남먼저 연습장에 나와 목소리의 톤을 높이고, 낮추고, 부드럽게, 예리하게, 온갖 시도를 반복했다. 한결 나아졌다지만, 그래도 발성은여전히 유리의 약점으로 남아있었다.
지난 가을 오디우스 공연 의 주연을 혜선에게 빼앗긴 것도 그 때문이었다.
연기 경험, 주목도, 연기력 어느 것 하나 유리가 딸리는 바가 없었지만, 가을 공연은 대극장에서 하기 때문에 ‘소리’의 매력과 전달력도 중요했다. 그리고 당시 연출은 발성을 실은 유리의 목소리는 줄리엣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진단을 내렸다.
그 이후로도 연습을 거듭한 결과, 이번 봄 공연 의 오필리어 역을 따내기는 했다. 하지만 그녀도 알고 있었다. 봄공연은 소극장 공연이라 풀로 복식발성을 하지 않아도 목소리가 객석 끝까지 전달되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대학기간동안 활동휴식기를 합의해 둔 매니지먼트에서는, 자꾸 연락이 와서 이렇게 꼬드겼다.
“뭐가 문제야. 스크린으로 돌아가면 그런 건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아.”
“문제죠. 그걸 못하는 걸 제가 알고 있다는 게.”
“어차피 마이너한 장르인데 졸업하고 계속 할 거도 아니잖아. 그냥 안 맞는거야. 빨리 복귀작이나 하자. 제안 들어온 시나리오 보내줄까?”
“아니요.”
하지만 유리는 거절했다.
못하는 것과 안하는 것은 다르다.
연극 발성이 안 되어서 영화드라마만 하는 배우라니, 유리의 자존심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길 것이다. 그건 배우로서의 자아의 존탈과 직결된 문제였다.
그래서 매일매일 이를 악물고 연습중인 것에 대해, 저렇게 쉽게 조언하다니.
“과제든 연기든, 보면 답이 딱 나와요? 그 답으로 연습하면 뚝딱 해결이 되고? 천재는 인생이 참 쉬워서 좋겠네요.”
날이 선 유리의 막말에도 받아치지 않고 물끄러미 바라보던 유명은, 한 마디를 더 남기고 조용히 몸을 돌렸다.
“남의 속사정은 아무도 모르는 법이에요. 현실에는 독백도 방백도 없으니까요.”
*
돌아선 그의 모습에 유리의 마음이 뜨끔했다.
잠시, 그를 불러세워 사과하고 싶은 무의식이 솟아오르는 것을 잠재웠다. 친하지도 않은데 연습 몇 번 보고서 뭘 안다고 참견이야-라고 속으로 애써 중얼거렸다.
“아- 에- 이- 오- 우-”
“아- 에- 이- 오- 우-”
오늘도 한참이나 복식발성을 연습하던 유리는, 일정 시간의 연습을 마치고 강당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빗자루를 가지고 마루바닥의 결을 따라 쓸어내다 보니 아까 그 말이 생각이 난다.
-현실에는 독백도 방백도 없다.
그 말이 가슴을 콕콕 찔러오는 것은, 유리에게 무척 와닿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에 캐스팅되기 위해서 어린 나이에도 밤잠 없이 연습해가서 배역을 따낸 유리가 처음 들은 반응은,
-쟤는 예뻐서 인생 살기 참 편하겠다~
연기를 하면서도 공부를 놓지 않고, 남들과 같이 수능을 보고 정시를 쳐서 가운대 연영과에 당당히 합격했을 때도 그랬다.
-연기자 특례입학이구나. 누구는 하루 16시간씩 죽어라 공부해서 입학했는데.
분했다. 그렇다고 그런 오해를 받을 때마다 달려가서, 아니라고 내 실력으로 따낸 거라고 멱살잡고 반박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현실에도 독백이나 방백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세상에 오해라는 것은 없을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빗자루질을 하던 유리는, 어느 순간 강당의 한가운데에 못박혀 섰다.
‘그런 오해, 내가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자신은 저 사람을 모른다. 다만 저 사람이 초보 배우라는 것은 알고 있기에, 지금 아무리 노력 중이라 해도 절대적인 연습시간은 자신과 비교가 안 될 거라고 속단했다.
하지만 자신은 저 사람의 사정을 정말로 알고 있는가.
자신의 노력을 ‘예쁜 외모’, ‘탤런트라는 타이틀’로 폄하했던 사람들과 지금의 자신은 과연 다른가.
그녀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예상치 못한 자신의 못난 점을 발견하게 된 그녀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잠시 후 그녀는 조심스레 목소리를 내 보았다.
발성법에 관해 외우다시피 한 책의 ‘두성발성’ 파트를 떠올리며, 목을 열었다 연구개를 점차 닫으며 호흡을 공명시키면서 소리를 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