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39
유명은 전생에서 윤한성이 자신에게 말을 걸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윤한성은 슬픔에 지극히 공감하는 사람.
그것이 노력하는데도 빛을 보지 못하는 수많은 엑스트라 중 한 명일지라도.
‘좋은 사람이고 좋은 배우야. 그렇지만…’
하고싶은 말이 떠올랐지만, 유명은 말을 아꼈다.
*
오늘의 워크샵은 6시간을 훌쩍 넘겼다.
9시가 다 되어가는 저녁, 모두가 과제를 마치고 유명 한 명만 남겨두고 있을 때, 윤한성이 뜻밖의 말을 했다.
“오늘 성심껏 힘든 과제에 참여해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리며, 한 가지 양해를 구할 일이 있습니다.”
지친 멤버들이 고개를 들어 의문의 눈빛을 보냈다.
“신유명.”
“네?”
“내가 저 친구 워크샵 참가시켜달라고 추천했단 얘기 들었을 거에요. 사실 얼굴은 오늘 처음 봅니다. 이재필 교수가 수업에서 연기한 동영상을 보여줬어요.”
멤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감정극대화는 감정의 한계를 부수기 위해서 하는 연습법인데, 저 친구에겐 별로 의미가 없을 거 같아요.”
오오-
현역 스타배우의 인정에 모두가 탄성을 터뜨렸다.
“연기 시작한 지 얼마 안되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그만한 감정이 나오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나이보다 훨씬 인생의 풍파가 많았던 건지.
어쨌든 감정의 외연을 넓히는 건 저한테 도움받을 단계는 이미 지난 거 같고, 배리에이션이 궁금해서 저 친구는 다른 과제를 주고 싶네요.”
모두가 호기심을 빛냈고,
“모노드라마 전 막 연기를 보고싶어요.”
떨어진 무시무시한 과제에, 유명에게로 놀란 시선을 모았다.
모노드라마. 1인극.
일부 발췌가 아니라 전 막을 연기하려면 최소 90분 이상이 걸린다. 통상적인 연극 공연과 같은 길이를 혼자 끌고가야 하는 것이다.
고도로 집중하지 않으면 단번에 관객의 몰입이 깨어지는 극이며, 정신적 육체적 부담도 상당하다.
“가능할까? 혹시 1인극 대본 외우는 게 있으면 좋고, 없으면 대본 보고 읽어도 좋아.”
유명은 고민했다.
고민하고 있는 것은 이 과제를 받아들일지도, 대본을 외울지 보고읽을지도 아니었다.
외고 있는 1인극 대본 중에 어떤 것을 고를지였다.
“네.”
“극 제목이 뭐지?”
“그건 내일…말씀드리겠습니다.”
유명은, 극명의 공개를 당일로 미루었다.
그 흥미진진한 대치에, 지친 배우들의 몸에 아드레날린이 돌았다.
*
유명의 과제일이자, 오디우스 여름워크샵의 마지막 날.
모여있는 멤버들은 여느 때보다 퀭한 얼굴이었다.
전일 감정극대화의 여파가 컸다. 소리지르고 욕하고 울음을 터뜨리는 소음에, 건물 수위 아저씨가 놀라 달려왔을 정도였으니까.
전날 감정을 탈탈 소진하고 집에 가자마자 뻗은 사람들도 있었고, 수면위로 떠오른 트라우마에 밤새 한잠도 이루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오늘 빠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90분짜리 모노드라마라니, 2달 정도 연습해도 하기 힘들 것 같은데···”
“결국 대본보고 하지 않을까?”
“암기도 문제지만, 중간에 지쳐 쓰러지지 않으려나? 10분만 혼자 등장해있어도 입이 바짝 마르고 힘들어 죽을 것 같던데.”
“보는 우리도 문제다. 혼자 나와서 90분간 연기하는 걸 집중해서 볼 수 있으려나.”
“그러게. 감정 끌고가기가 엄청 어려울 듯.”
“대본 뭔지 정말 궁금하다.”
모두들 오늘의 이벤트에 반신반의하는 듯 했다.
“그런데 모노드라마면 막간 장간 분리를 어떻게 하지?”
누군가 그런 의문을 던졌을 때, 유명이 강당에 들어왔고 사람들은 조용해졌다.
그는 “안녕하세요.”라고 가볍게 인사한 후, 단상 위 한쪽으로 밀어져 있는 강연대를 찾았다. 강연대 위의 리모콘을 찾아 프로젝터를 켜니 우웅- 소리가 나면서 파란색 화면이 앞을 비췄다. 유명의 몸이 그 빛의 일부를 가리어 화이트보드에 그림자를 만들었다.
‘뭐 하는 거지···’
모두의 의문이 무색하게도 유명은 바로 프로젝터를 꺼버렸다. 리모콘을 주머니에 챙겼을 뿐이었다.
“잘 잤어요?”
3시가 되었고, 윤한성이 강당 문을 열었다. 모두들 바스스 흩어져 자리에 앉았다.
“긴 말 할 거 없이, 시작해볼까요?”
유명이 앞으로 나왔고, 커튼을 치고 불을 꺼주길 요구했다. 깜깜해지자 프로젝터의 전원을 켰다.
푸른 빛이 기괴하게 떨어지며, 유명의 얼굴을 푸르게 밝혔다.
“궁금해서 잠도 못 잤네요. 극 제목이 뭔가요?”
“입니다. 시작하겠습니다.”
그 제목을 듣고, 윤한성이 움찔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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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도의 감정극대화
90분짜리 모노드라마.
2001년에 대학로에서 상연. 배우 김상태, 곽문혁이 더블캐스팅된 화제작.
파격적인 스토리로 동아연극상 작품상을 수상했다.
특히 사람들이 흥미로워했던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곽문혁의 출연일엔 전석매진에 프리미엄까지 붙었고 김상태의 출연일엔 객석이 절반밖에 차지 않았던 것.
그만큼 배우의 역량이 중요한 대본이었던 것이다.
윤한성 또한 그 연극을 본 적이 있었다. 보면서 과연 자신은 저 극을 얼마나 소화할 수 있을지 자문해본 바 있다.
그런 어려운 극을 하루만에 어느 정도로 소화해낼 수 있었을까.
주먹이 절로 꽉 쥐어졌다.
푸른 빛을 얼굴의 정면에 받으며, 살인자가 처참한 목소리로 첫 마디를 외쳤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본 살인마에게 법정 최고형을 언도해주시길 간청합니다.”
그 쨍-한 쇳소리에 모두의 가슴이 덜컹했다.
“사건번호 2000고합0124살인, 이 건의 범인은 의심할 바 없이 피해자의 아들인 본인, 김영도가 확실합니다. 그 증거는 첫째, 증거품 13번 식칼에 남은 본인의 지문. 둘째, 해당 시간 저 김영도의 알리바이가 없다는 점. 셋째, 사건 직전까지 악화를 거듭했던 두 사람의 관계가 있습니다. 세 번째의 증거 자료로 아랫 집에서 경찰서에 여러 번 넣은 소음 민원 기록을 제출합니다.”
죄책감이 미어지는 목소리. 너무나 고통스러운 얼굴을 한 청년이 자신의 죄를 빌고 있다. 용서하지 말아달라 간청하고 있다.
새하얀 옷에 프로젝터의 푸른 빛이 죄수복처럼 서슬퍼런 잔상을 남긴다.
“다 제 잘못입니다. 왜 그랬냐구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실수로 낳아 애비 인생을 망친 호로새끼라서일까요? 아니면 돈도 못버는게 자제심은 쥐꼬리만큼도 없어서 밥만 축내는 식충이라서?”
웅성웅성-
준비해 온 유일한 bgm이 송출된다. 참관객들의 웅성이는 소리.
그 소리가 3초쯤 지속되었을 때, 소리를 먹으며 죄수가 어리숙하게 질문을 던진다.
“그런 말을 다 누가 했냐구요? 어…저희 아부지가···”
프로젝터의 빛이 탁- 꺼졌다.
*
윤한성은 목이 말랐다.
청년의 갈라진 탁성에 자신까지 목이 타는 것 같아, 옆에 놓인 물병을 급히 들어 물을 한모금 꿀꺽 삼켰다.
시작부터 굉장한 텐션, 그리고 눈을 뗄 수 없는 연출력.
지잉- 하며 켜고 꺼지는 프로젝터의 소리와 파란 네모가 마치 티비를 시청하고 있는 것 같다.
어머, 제 아비를 죽인 살인자래-
수군수군거리며 다들 티비를 켠다. 어떤 악마인지 얼굴을 확인하려고.
그런데 의외로 무해해 보이는 얼굴에 최고형을 간청하는 절절한 목소리. 어? 이게 뭐지 하고 시선을 못박았다가,
뭐? 애비가 자식한테 그런 말을 했다고? 살인의 원인이 아동학대였나?
라는 의구심을 갖게되는 심리를 기가 막히게 살린 연출.
그리고 그 연출을 두 배로 살리는 연기.
‘뭐지, 저 배우는.’
1막은 법정 상황이 계속 연출되었다.
죄수는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하며 참회의 눈물을 흘렸고,
아버지의 욕설과 폭력을 재현하며, 몸을 웅크리고 바들바들 떨었다.
가장 하이라이트는 범죄 재현을 했던 1막 마지막 장이었다.
양 손을 묶인 듯이 모으고 비틀비틀 걸어간 청년은 손에 무언가를 쥐는 시늉을 하고 양 손을 뒤로 뺐다가, 결국 찌르지 못하고 털썩 주저앉았다.
“모…못하겠어요. 아…아버지.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때리지 마세요!”
커다란 청년이 손을 싹싹 빌면서 아이같이 운다.
지켜보는 것이 숨이 막힐 정도로 감정의 밀도가 높다.
‘혹시…정말로 어릴 때 학대받은 경험이···’
윤한성이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그 인물이 정말 거기에 존재하는 듯이 현실성있게 다가오는 것이다.
2막이 열렸다.
“어, 네, 변호사님?”
배우가 한 걸음 빗겨선다. 프로젝터의 빛이 정면이 아닌 사선으로 제 몸을 맞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