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40
그림자가 비껴서 진다. 그리고 그 그림자를 바라보며 배우가 대사를 친다.
이제 화면안에 두 사람.
간단한 도구로 연출해낸 대립 구도에 모두가 혀를 내둘렀다.
“네. 여론이 많이 바뀌었다구요? 지속적인 아동학대로 인한 우발적인 살해는 정상참작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불처럼 번지고 있다는 거죠? 프리챌에 제 팬카페가 만들어졌다구요? 하하. 다음 공판 때는 스타일도 좀 신경써야겠네요.”
분위기가 싹 바뀌었다.
1막의 어리숙하고 겁에 질린 청년이 거짓말이었기라도 한 듯, 안면을 싹 바꾼 김영도.
그는 그림자 쪽으로 가까이 가서 손을 들어 그림자에 얹었다.
“잘 해주시고 계십니다. 계속 수고 부탁드립니다. 네? 물어볼 게 있다구요? 물론 범인은 제가 아닙니다. 처음부터 얘기했잖아요. 집에 들어와보니 아버지가…아버지가 쓰러져 있었다고.”
작위적인 목소리의 떨림. 코맹맹이 소리를 낸다.
“누가 모함한 건지 모르겠지만 상황이 너무 안 좋으니, 차라리 죄를 인정하고 심신상실을 주장하자고 변호사님이 제의하셨잖아요. 변호사님은 저를 믿으신다고 했잖아요. 네. 정말 아니에요. 잘 부탁드립니다. 저는 변호사님밖에 없어요.”
소름끼치는 감정의 전환. 연기를 아주 잘하는 사이코패스를 보는 듯한 아찔한 느낌.
관객들이 마음에 불안함이 번져갔다.
1막까지 그들은 십수년간 부친에게 학대당해서 순간 정신이 나가 칼을 휘두른, 죄책감 가득한 어린 청년에게 감정이입해서 극을 보고있었다.
그런데, 이 속은 듯한 기분은 뭘까.
배신감은 2막이 진행되면서 점점 살이 붙었고, 지속적인 폭력행위 노출로 인한 심신상실로 무죄 선고를 받은 후,
“하하하하하하하-”
김영도의 티끌 한점없이 밝은 웃음에 최고조를 쳤다.
앞에 있는 저 사람이, 그들이 아는 신유명으로 보이지 않았다.
무서웠다.
*
3막.
결국 검사는 상고를 하고, 상고심에서 김영도의 검은 속내가 드러난다. 그는 철저히 계획적으로 부친을 살해했다.
단, 아동학대에 시달린 것 만큼은 사실이었다.
‘이 새끼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어.’ 피해자는 제 자식을 벌레보듯 징그러워했다.
감정이 상당히 결여되어 있었던 김영도는 유일한 피붙이의 증오와 학대로 더욱 망가져갔다.
너무 쉽고 낭창했던 살인.
뒷 벽으로 가까이, 가까이 붙을수록 청년과 그림자는 가까워졌고,
거의 벽에 붙게 되자, 한뼘정도의 거리가 남았다.
청년은 등뒤에 쥐고있던 식칼을 가볍게 휘둘렀다.
식칼이 그림자에 틀어박혔다.
그림자가 발버둥치는 환상이 보이는 것 같았다.
“피고인에게 무기징역을 언도한다.”
관객을 등지고 돌아선 청년에게 형이 언도되었다.
고개가 툭 떨어졌다.
극은 교도소에서 밥을 먹는 김영도의 평온한 한 마디로 끝이 난다.
“따뜻한 밥은 맛있는 거군요.”
제 애비에게 평생 찬밥만 얻어먹은 인생을 함축하는 마무리였다.
탁-
프로젝터의 전원을 끈 유명이 휴대폰 불빛에 의존해 걸어가 강당의 불을 켜자,
흐아아아-
들이마쉬었던 숨을 겨우 몰아쉬며, 관객들이 늘어졌다.
윤한성도 축축한 손을 비벼 닦았다.
어떻게 전막의 대본을 외고 있는지, 실제 인물이 살아 숨쉬는 듯한 현실성의 원천은 무엇인지, 도대체 어떤 인생을 살아온 것인지, 수많은 의문이 목구멍을 비집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솟아나는 욕망.
‘저 배우의 더 많은 작품을 보고 싶다.’는 관객으로서의 욕망과,
‘함께 연기해 보고 싶다.’는 배우로서의 욕망이 끓어오른다.
그는 그 많은 말들을 눌러담은 채, 겨우 단상으로 나아갔다.
“신유명 배우.”
그가 형형한 눈빛으로 유명을 응시한다.
“내가 실수했네요. 사석에서 말고 공석에선 앞으로 존칭하도록 하겠습니다. 후배라고 생각했는데 학생이 아니라 이미 대단한 배우였군요.”
정신을 차린 학생들이, 그제서야 손이 아플 정도로 박수를 쳤다.
짝짝짝짝짝짝-
“그런데, 제 예상이 맞네요. 한 가지 문제점이 보입니다. 단막극 정도는 괜찮은데 전막공연에 들어가니 역시 너무 하이텐션이에요.”
“…?”
“나무랄 데 없는 연기입니다. 실제로 다들 집중이 안 끊기고 봤을테니 괜한 지적일지도 모릅니다만, 보기가 좀 힘들어요.
설명하기 좀 어려운데, 이동하지 않을 때도 제자리뛰기를 하는 느낌이랄까. 마치 육지에 올라왔는데도 가라앉을까봐 물장구치던 습관을 버리지 못하는 것 같은···?”
‘아아···’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충분히 주목되는 배우에요. 애쓰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다른 학생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가운데, 유명만이 알아듣고 감사의 목례를 했다.
“마지막 날이니 일찍 마치고, 남은 얘기는 뒷풀이가서 합시다.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오디우스 여름 워크샵이 끝났다.
하지만 아직 다 끝난 것은 아니었다.
“따로 얘기 좀 할까요?”
뒷풀이 자리에서, 한성이 유명에게 독대를 청했다.
*
“아까 연기, 경험담이 조금이라도 섞여 있었어?”
“…1남 1녀 중 첫째. 부모님 화목하시고 동생이랑도 사이 좋은 편입니다.”
“…그렇군.”
한성이 소주잔을 꺾어 잔을 비웠다. 유명은 술병을 들어 그의 잔을 채웠다.
오디우스 단원들은 커다란 단체석을 차지하고 있었고, 그들은 조금 떨어진 테이블에 따로 앉아 있었다. 유명은 단체석 쪽을 한 번 힐긋 의식하더니 한성에게 말했다.
“선배님. 제 소견을 말씀드려도 될까요?”
“얼마든지.”
“저는, 감정의 외연이 경험으로 결정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흠···
한성은 침음성을 울리며 한 잔을 더 원샷했다. 그가 묻고싶었던 바였다.
겨우 스물셋. 말도 안되는 인생의 굴곡을 겪은 것도 아니라면, 그 절절한 감정 표현은 다 어디서 온 것인지.
“배역에 마음을 열고 몰입할 때 저는 그들의 감정을 정말로 느껴요. 저의 다른 경험에 비추어 이해한 것이 아니라, 내가 이 사람이었다면 어떻게 느꼈을지의 진짜 감정을요.”
“…”
“그래서 저는 감정극대화 워크샵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어요. 배우는 자신에게 솔직해야 한다는 점에서, 감정을 깨우는 데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사실 트라우마를 파고드는 건 위험할 수 있으니까요..”
“그럼 신배우는, 어떻게 감정을 깨우지?”
한성의 말투가, 반존대가 되었다.
“비워요. 신유명을 내려놓고, 편견을 가지지 않고, 제가 김영도라면 어떤 기분일지를 마음을 열고 느껴봅니다. 비슷한 인물을 관찰하거나, 자료를 찾아서 감정을 수집하기도 하고요.
이후 대본을 보며 장면마다 떠오르는 여러가지 감정의 파편들 중 김영도와 적합한 것을 하나하나 찾아서 인물을 구성해나가요. 자연스럽게 그 인물이 될 수 있을 때까지.”
“무척 교과서적인 방법이군.”
“원론적인 건 어렵죠. 하지만 그래서 신유명베이스의 김영도가 아닌, 좀더 김영도스러운 김영도를 만들 수 있었어요.”
“…윤한성베이스의 배역들…”
한성의 고민이었다.
감정의 표현력이 확연히 비극쪽으로 쏠려 있고, 감정의 베이스가 정해져있기에 캐릭터가 늘 비슷하게 표현되는 것.
그럼에도 관객에게 슬픔을 공감시키는 능력이 워낙 뛰어났기에 찾는 곳이 많기는 했지만, 배우로서의 자아는 슬슬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내가 행복을 느껴본 일이 별로 없어서 재현을 못하는 줄 알았는데, 재현이라는 방법 자체의 문제란 말인가···’
“어제 저는 감정극대화 워크샵을 하지 않았지만, 오늘의 연극도 제겐 감정극대화와 다르지 않았어요. 어느 대본이든 그 배역의 인생에서는 가장 감정이 극대화된 파트를 보여주잖아요. 오늘은 김영도의 감정극대화였달까요.”
스물 셋 애송이가 하는 조언들이 이상하게도 고깝지 않았다.
오랫동안 연기에 대해 고민해 온 동료 배우와 이야기를 나누는 기분.
비제 윤한성에게는 오늘 숙제가 생겼다.
그가 내주었던 숙제들보다 장기간의, 힘든 숙제가.
*
“저…저기!”
윤한성과의 독대를 마치고, 오디우스 멤버들과 어울리고 있던 유명의 옆에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앉아 말을 붙였다.
선유리다.
“네?”
“아···”
유리가 어쩔 줄 몰라 하더니, 급하게 한 마디를 던지고 고개를 푹 숙인다.
“미안해요!”
“네?”
“그…제가 무례했어요. 사람을 제대로 알지도 않고 편견으로 말을 막 했어요. 그 뒤로도 불편하게 했고…정말 미안합니다.”
귀가 빨개져서, 결코 익숙치 않을 사과를 또박또박 전달하는 유리는 귀여웠다.
“풉…저 뭐 하나 물어봐도 돼요?”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