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43
“글쓰는 데 관심있었어?”
“아…아니 별로 그런 것까진 아니고…궁금해서….”
준호는 지나치게 쑥스러워하며 답을 피했다.
“…넌? 어떻게 이 수업을 듣고 있어?”
“아, 나 연기하거든.”
“연기? 네가?”
“응. 1학년 때도 창천에서 스탭은 했었는데, 몰랐어?”
준호는 당황스러웠다.
의외의 장소에서 다시 만난 친구는, 기억 속의 모습과 너무 달랐다.
준호는 예전에 그와 함께 다닐 때, 자신과 신유명이 행인 1,2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등장은 했지만 공연이 끝나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존재들.
연기, 배우, 그런 화려한 단어와는 인연이 없어보이던 친구였는데···
밥을 다 먹고, 차를 한 잔 마시고서야 조금 긴장이 잦아든 준호는, 유명에게 속내를 털어놓았다.
“나, 사실 희곡에 관심있었거든··· 예전부터.”
“아, 진짜? 계속 같이 다니면서도 몰랐네. 언제부터?”
“어릴 때부터…나랑 안 어울리지? 정식으로 배운 적은 없는데, 이런 수업도 있길래 용기내서 한 번 와봤어.”
자신없는 그 말투에, 유명은 안타까웠다.
나랑 안 어울린다, 내까짓게 무슨. 유명도 그런 생각을 수천 수만 번은 더 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한 한 발자국은 자신이 떼 놓을 수 밖에 없다. 그걸 못하면 평생 바라만보는 것.
그래도…살짝 등은 밀어줄 수 있으리라.
“뭐 써본 거 없어? 나 대본보는 거 엄청 좋아하는데.”
“그…그래? 그럼 하나 보여줄까? 아, 부끄러운데··· 보고 비웃으면 안된다?”
민망해하면서도, 준호는 엉덩이를 들썩이며 가방을 들췄다. 자식같은 작품을 관객이 봐주길 바라는 마음은 연기쟁이나 글쟁이나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반듯반듯한 글씨가 적힌 A4 용지는 제법 두툼했다.
제목이 적힌 첫 장이 팔랑- 넘어갔다. 준호는 몸에 바짝 힘이 들어가 유명을 응시하고 있었다. 동생 말고는 처음으로 보여주는 대본이다.
이게 무슨 대본이야- 쓰레기지. 이런 평가가 상상이 되면서 피부가 오그라드는 것 같다.
팔랑, 팔랑 넘어가던 종이가 어느 곳에서 뚝- 선다.
‘어어···?’
맞은편에 앉은 친구의 표정이 순식간에 바뀐다.
입이 열린다.
“나 안 보고 싶었어? 아니라고? 지난 번에 현지한테만 선물했다고 서운했나보네. 귀엽게, 후후. 뭐, 아니라고? 부끄러워하기는. 오늘은 너도 갖고 싶은거 사줄게, 화풀어. 어? 야, 어디가?”
준호의 두 눈이 화등잔만해졌다.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거지?’
작중의 인물이 그대로 튀어나왔다.
주인공 오준. 그 오만한 표정과 재수없는 멘트들.
자신이 창조한 세계가 색을 덧입고 실현되는 모습에 준호는 몸을 떨었다.
“대본 재미있다. 너 재능있는데?”
오준이 칭찬을 던졌다.
*
유리는 대본을 앞에 두고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대로는…”
오디우스 가을공연에 올릴 작품이다.
연극화된 대본을 여러가지 구해보았지만, 유리의 마음에는 영 차지 않는다. 영문본까지 모조리 구해보았는데도.
계획에 없이 맡게 된 연출이었지만, 자신의 이름을 걸고 올리는 연극을 최고로 뽑아내고 싶다. 특히, 원래 연출 예정자가 아주 우수했었기에 더 그랬다.
-유리야. 네가 연출해줄래.
-네? 다음 공연은 선배가 연출하는 거 아니었어요?
-미안한데, 다른 욕심이 생겼어. 이렇게 연기하고 싶었던 적이 없다.
-신유명…때문인가요?
-내가 지금 배우 지망을 한다면, 주연을 할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어. 아니 솔직히 밀릴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그래도, 같은 선상에서 연기로 붙어보고 싶다.
-…
-이번 공연, 배우 뿐 아니라 연출도 최고로 가고 싶어. 믿을 수 있는 연출감은 몇 명 안되고, 그 중에서도 꼭 네가 해줬으면 좋겠다.
존경하는 선배가 진지하게 한 부탁, 그것은 인정이기도 했다. 선유리는 거절할 수 없었다. 기대에 부응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기획사의 반대를 무릅쓰고 휴학까지 한 후 대본을 파고 있었다.
그런데 대본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역시…원작을 새로 각색해야겠어.’
유리는 핸드폰을 열었다.
내키지 않지만 눈에 차는 사람은 한 명 뿐이었다.
“지킬박사와 하이드?”
“어. 대본을 새로 만들고 싶어.”
“그게 나한테 어떤 이득이 있는데?”
민주란. 선유리의 동기이다.
고등학교 때 전국 창작희곡 공모전에서 신인상을 수상하고, 가운대 연영과에 특기자로 입학했다. 2학년 때는 신화 시나리오 공모대전에서 입상하기도 했다. 그 이름값인지 성격은 그다지 편안하지 않다.
“오디우스 본공연에 대본작가로 이름이 정식으로 올라갈 거야. 포트폴리오로 나쁘지 않잖아.”
“나쁘진 않지만 좋지도 않네. 너 이번에 뭔데? 조연출?”
“아니, 연출.”
“왜? 이번에 류신선배 아니었어?”
“연기하고 싶대.”
“호오···”
주란이 눈을 빛냈다.
“서류신이 주연이면 할게.”
“배역은 캐스팅에서 결정돼. 내가 약속해줄 순 없어.”
“왜? 어차피 서류신일 거잖아. 서류신이 하겠다는데, 그걸 꺾을 사람이 누가 있어. 조민석? 신수호?”
유리는 그보다 훨씬 유력한 한 명을 떠올렸다. 이번에는 누가 주연이 될 지 정말로 알 수가 없다.
“누구든 잘 하면 주연은 될 수 있어.”
“아…혹시 지난 학기에 소문이 파다했던 그 ‘타과생’?”
민주란이 예리하게 일침을 놓았다.
“걔는 안돼. 내 커리어에 딸린다고. 오디우스 본공연에 서류신 주연쯤은 되야 펜이 움직일 거 같은데?”
“…캐스팅 보장은 안돼. 잘 생각해보고 연락줘.”
유리가 참을 인을 새기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
“왔군요.”
덤덤해 보이는 눈빛과 다르게, 서류신은 마주잡은 손을 저릴 정도로 꽉 쥐어왔다. 어떤 각오가 서린 악력.
“네, 덕분에 워크샵 잘 들었습니다. 오디우스의 매력도 느꼈구요.”
“마지막 워크샵 때, 대단했다고 들었어요. 못봐서 아쉽네요.”
류신은 진심으로 아쉬웠다.
방학 이후로 만날 때마다 워크샵 멤버들은 그 얘기 뿐이었다. 워크샵은 보통 촬영을 해 자료로 남겨두는데, 윤한성의 워크샵은 워낙 내밀한 개인사정들이 노출되는 탓에 촬영 제외가 되었고, 이어졌던 신유명의 연기도 자료로 남지 않았다고 했다.
‘앞으로 공연 준비를 함께 하게 될 테니까…연기는 충분히 볼 수 있겠지.’
모두가 모여앉은 앞에, 선유리가 나섰다.
“안녕하세요. 03년 오디우스 가을 본공연 연출을 맡게 된 선유리입니다.”
짝짝짝짝짝-
“아시다시피, 가을 공연 작품은 로 결정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좀 생겼어요. 원작은 물론 뛰어난 작품이지만, 연극 대본화 된 것 중에 제 마음에 차는 게 없어요. 버전별로 모조리 구해보았는데도 그렇습니다.”
숨을 한 번 들이쉰 유리는 폭탄같은 발언을 내뱉었다.
“그래서, 새로 각색을 하고 있습니다만, 각색가가 여러분들의 실력을 확인해야 작품을 주겠다고 합니다.”
모두의 눈빛이 순식간에 날카로워졌다.
“캐스팅은 일단 원대본으로 진행합니다. 그리고 각색가가 캐스팅 과정을 지켜보고 싶다고 요청했습니다. 민주란 작가입니다.”
강의실 문 밖에 서 있던 여자가 드라마틱하게 문을 열고 등장했다. 자신에게 몰리는 시선을 즐기며.
“안녕하세요, 선후배님들. 민주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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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의 진
“안녕하세요, 선후배님들. 민주란입니다.”
싸한 분위기에도 아랑곳않고 생글생글 웃으며 인사한 주란이 한쪽 의자에 앉았다.
그녀는 참석한 사람들의 면면을 눈에 넣었다.
‘역시 이름값 있는 사람은 서류신과 선유리 정도인가. 아예 잘나가는 애들은 프로활동 중이니까.’
서류신의 뒷자리에 낯선 얼굴도 보인다.
‘쟤가 신유명인가보네. 스타일은 흠, 나쁘지는 않지만 그래봐야 아마추어지…역시 주연감은 서류신 하나야.’
그녀는 마음을 굳혔다.
자신의 포트폴리오는 최고로 도배되어야 한다. 어차피 서류신이겠지만, 만에 하나 아니라면 자신이 나설 것이다.
그녀는 동기인 선유리의 성격을 잘 알았다. 완벽주의자.
기존 대본이 마음에 들었다면 자신에게 연락을 했을 리 없다. 이미 연락한 이상 칼자루는 자신에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