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46
아아-
다행이다.
각색된 대본은 예전보다는 훨씬 자연스러운 대사를 쓰고 있었다. ‘연극적 대사’의 물이 완전히 빠진 것은 아니지만, 이정도면 많이 좋아졌다고 할 수 있다.
“연습 들어갑니다. 지킬과 어터슨이 붙는 씬들부터 갈게요~”
행인1은 연습이 거의 없다.
그제도 없었고, 어제도 없었다. 아마 오늘도 없겠지. 고로 연습 시간은 충분하다.
유명은 새로나온 대본의 지킬/하이드 대사를 외기 시작했다.
*
“지킬/하이드 재오디션 요청하겠습니다.”
본연습이 시작되고 2주만에 유명이 나섰다. 신체 훈련이 끝나고 장면 연습을 들어가기 직전이었다. 생각보다 빠른 등장에 모두 얼- 하며 환호를 보냈다.
물론 한 명만은 웃을 수 없었다.
‘벌써, 새로운 지킬을 완성했다는 말인가.’
광적일 정도로 연습에 온 시간을 투자하고 있는 류신이었지만 새로운 하이드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불안했다. 물론 자신도 많이 발전하긴 했지만, 저 신유명이 허투루 준비해서 도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비슷한 정도라면 기존 배우로 유지되는 것은 알고 있겠죠?”
“물론입니다.”
배우가 바뀌게 되면, 이 때까지 맞춰왔던 동료들과의 합이나, 연출의 디렉팅도 모조리 수정되어야 한다. 당연히 그 수고를 감수할 정도의 우위가 있어야 캐스팅 변경을 감행할 것이다.
“따로 준비한 장면이 있나요?”
“어떤 장면이든 괜찮습니다.”
“그럼, 1막 2장으로 해보죠.”
1막 2장. 지킬이 자신의 학문적 주장을 학회 단상에서 펼치는 장면이다.
이 때의 그는 씻은 듯이 귀족적이고 고상하면서도, 새로운 이론에 매료된 학자적인 면모를 함께 표현해 주어야 했다.
잠깐의 준비 시간이 주어지고, 유명은 배우들이 둘러 앉은 둥근 원 안에 섰다.
그들이 모두 학회의 청중들.
“여러분. 인간이 근본적으로 선한지 악한지에 대한 논쟁은 종교사에서도 철학사에서도 오랜 논쟁거리였습니다. 저는 오랜 탐구 끝에 이 두 성질이 물리적으로 분리가능한 성질이며, 인간의 몸에는 두 성질이 결합되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선유리가 움찔했다.
자신이 생각하던 캐릭터가 아니다. 목소리의 톤이 훨씬 깐깐하다.
“분리한다면 어떻게 되냐고요? 물론 아직은 가설입니다만, 철저하게 빛에 가까운 인간과 어둠에 가까운 인간을 분리할 수 있겠죠. 이 것을 휴먼 타입L(Light)과 타입D(dark)라고 개념화하도록 하겠습니다. 두 타입이 분리된다면 기억은? 물론 공유합니다. 기억은 그저 정보로 선악의 개념이 없는 사실 자체니까요. 단, 그 기억에 대한 가치판단과 리액션은 두 타입이 극도로 반대의 성향을 가질 가능성이 높겠죠.”
보통 생각하는 헨리 지킬의 프로토 타입은 이 세상에 있을 것 같지 않은 완벽한 선인에 가까웠다.
밝고 따뜻하며 주변의 시선을 한 몸에 끌어모으는, 싫어할 부분이 존재하지 않는 사람. 마치 지난 서류신의 지킬처럼.
하지만 신유명의 지킬은 뭐랄까, 결벽증이 있는 학자같은 느낌이었다.
“아직 공개하기는 어렵지만, 저는 이 두 성질을 분리할 수 있는 수식과, 그에 근거한 약물을 개발중입니다. 인간의 본성을 별개의 개체에 담을 수 있다면, 우리는 더 이상 아무것도 참을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선한 개체는 선한 일만을 행하고, 악한 개체는 악한 일만을 행하게 될 것이니까요. 그리고 악한 개체들만을 분리해 컨트롤할 수 있다면, 유토피아를 정말 현실에 구현시킬 수도 있겠죠.”
-우리는 더 이상 아무것도 참을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 말에 살짝 힘이 들어갔다.
그는 무엇을 그렇게도 참아왔던 것일까.
그 문장은 결벽하고 정결한 느낌의 캐릭터와 미묘하게 언밸런스해서, 보는 사람들에게 불길한 예감을 가져다 주었다.
‘설득력…있어.’
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의 밝고 따뜻한 성품의 지킬은 그만큼 하이드와 반전되는 대비 효과로 시선을 잡아끌기는 했지만, 설득력이라는 점에서는 의문이 있었다.
‘왜 그렇게 다 가진 것 같은 인물이 저런 약을 개발하고, 직접 마셨을까.’
하지만 지금 신유명의 지킬에서는, 보다 사람냄새가 난다. 철저하게 완벽을 추구하는 도덕적 결벽을 가진 남자. 빛이다. 환하다는 느낌의 빛이 아니라 깨끗하다는 느낌의 빛.
그렇기에, 더럽혀지지 않으려 발버둥쳐온 노력들이 보다 선명하게 부각되고, 더럽고 악한 것에 대한 충동이 더욱 설득력있게 다가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 ‘하이드’와 어울려.’
지난 번 유명이 연기했던 악을 형상화한 듯한 새까만 하이드.
그 하이드와 이제 위화감이 없다. 창백하게 깨끗한 빛과 새까만 어둠의 우울한 대비, 연출 선유리의 머리 속에 그 장면이 떠오르고,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그럼 잠시 연출부 회의 후-”
“잠시만요.”
유리의 말을 유명이 잘랐다.
“하이드 역도 다시 보여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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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반댄데?
“하이드 역도 다시 보여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연습장 내의 공기가 술렁했다.
‘그’ 하이드에서 만족하지 않고 다른 하이드를 또 만들어왔단 말인가.
유리 또한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해보세요. 2막 5장 댄버스경의 사망 이후 하이드의 독백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언뜻 류신과 시선이 마주쳤다.
잡아먹을 듯한 표정으로 자신을 주시하고 있다. 무릎을 붙잡은, 핏줄이 도드라진 주먹.
유명이 호흡을 가다듬었다.
5분 전까지 연기하던 지킬을 떨쳐내고,
빠른 몰입.
‘음?’
지켜보던 유리는 의아함을 느꼈다.
지난 번의 하이드에 비해, 등이 좀더 반듯하고 몸집이 커보인다. 강제로 우그린 몸의 형태가 하이드의 기괴함을 매우 잘 표현했었는데, 그걸 버린 이유가 뭘까.
쭈욱-
사람들 한가운데 선 배우는 한 발을 까치발을 하고 몸을 늘려 시선을 아래로 떨군다.
바닥에서도 한참 아래의 깊이에 뭔가 있다.
그 무엇은,
아마도 시체일 것이다.
“흐흐으하아하와하하하-”
불쾌한 웃음이 터진다. 기분나쁜 쾌락이 덕지덕지 밴 웃음.
다들 그 웃음에 화들짝 놀라 무릎을 감싸안았다.
“죽었어? 진짜? 그렇게 쉽게? 하아···”
시선을 들고 숨을 스읍 들이쉰다. 정면을 향해 선명하게 드러난 얼굴은 참을 수 없는 희열을 담고 있다. 그에 비해 손은 아직도 떨리고 있는 것이 기괴한 대조를 이룬다.
“그러게 늙은이 쓸데없는 잔소리는 하지 말았어야지. 댄버스 커루 경, 그 재재대던 입술이 이제 다시 벌어지지 못하게 되었군. 그나저나 사람은…참 쉽게 죽는 거였구나. 팔다리가 모두 똑-똑- 분질러졌어.”
똑-똑-
말소리가 아닌, 혀를 튕기는 발음.
그 소리가 혀천장에서 울려나와 귀에 틀어박힌다.
“인간이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것은 참으로 재미있구나. 헛똑똑이 헨리 지킬. 이런 쾌락을 참고 또 참으며 여태까지 살아왔다니.”
참을 의지가 조금도 보이지 않는 욕망이 발산한다.
그것은 유명이 처음 연기했던 그저 새까만 악보다 지저분하고 더럽혀져 있는, 보다 강렬한 타락에 대한 욕구.
그런 것을 조금도 용납하지 않을 것 같이 결벽적이던 지킬 박사와 선명히 대비된다.
완벽히 반대편에 있되, 그 뿌리가 같다.
더러움, 잔인함, 쾌락에 대한 지킬의 극도의 회피,
그리고 대비되는 하이드의 극도의 갈구.
‘아아…그래서.’
예전의 하이드와 지금의 지킬, ‘잘어울리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의 하이드와 지금의 지킬은 잘어울리는 정도가 아니라, ‘딱이다’.
‘대단해..!’
유리는 그 하이드를 보고 나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캐스팅 변경을 결정했다.
다만 그 전에 하나 물을 것이 있었다.
“굉장히 인상적인 지킬과 하이드네요. 프로토 타입과는 다르지만 훨씬 더 설득력이 있어요.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어요. 지난 번의 하이드는 인간같지 않게 뒤틀리고 축소된 몸의 구조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 이번의 하이드는 왜···?”
여전히 지킬의 쉐입shape보다는 작았지만, 하이드의 몸이 예전보다 훨씬 많이 커져 있었다.
다른 멤버들도 유리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유명이 대답했다.
“그 때는 1막의 하이드였고, 지금은 2막의 하이드니까요.”
“…그런데요?”
“원저에 보면 지킬박사의 악한 자아가 선한 자아보다 훨씬 작았기에, 초반의 하이드는 기괴하게 작고 굽은 모습이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소설 후반으로 가서 악한 자아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하이드의 몸집까지 커졌다고 묘사하고 있죠.”
“그…그렇긴 하지만···”
“그대로 하려고 합니다. 초반에는 우그러져 있던 몸이 점점 펴지면서 마지막엔 형체까지 지킬을 압도하는 것으로.”
오싹-
모두의 등에 전류가 흘렀다.
말도 안 되게 어려운 연기를, 그는 너무 당연하게 얘기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