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5
이재필 교수는 칠판에 커다랗게 주제를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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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 나왔어요
이재필 교수는 칠판에 커다랗게 주제를 적었다.
그리고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설명했다.
“여자가 남자 연기? 오케이. 사람이 무생물 연기? 오케이. 인공지능 로봇? 오케이. 백인이나 흑인 연기? 오케이.”
그러자 사방에서 아우성이 터져나왔다.
안그래도 어려운 메소드 연기학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해온 이재필이었다.
“즉, 단순히 캐릭터만 이해하는 것으로는 내면을 표현할 때 한계가 있는 ‘본인에게 낯선 것’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cross-over’가 극의 주제와 관련이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흑인을 연기한다면 인종적 갈등이 들어가지 않은, 단순히 흑인이 주인공은 안 된다는 말입니다.”
하아-
강의실 안에 한숨소리가 가득 찼다.
“대본은 가져와도 되고, 창작해도 됩니다. 한팀은 6명. 팀당 연기자는 3명 이상. 주인공은 반드시 연기자와 ‘다르게 태어난 것’이어야 합니다.
스탭은 팀 내에서 알아서 구성하십시오. 연출은 있어야 할거고 음향, 소품 사용해도 되지만 조명은 필요없습니다. 공연은 이것보다 조금 큰 강의실 리저브해서 할 겁니다.”
“조는 어떻게 짜나요?”
“하고싶은 극을 제안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걸 같이 해보고 싶은 사람이 조인하는 방식으로 하겠습니다. 제안자 있나요?”
재필은 학생들을 내려다보았다.
지금 당장 나올 거라고 생각하고 한 얘기는 아니었다.
예년대로라면 두 번째 시간쯤 적극적인 녀석들 위주로 몇 개의 제안이 나올 것이고, 제안자와의 친분에 따라 조가 결정될 것이었다.
그런데,
“교수님, 질문하나 하겠습니다. 이성애자가 동성애자를 연기하는 것은 ‘다르게 태어난 것’으로 인정됩니까?”
구석에 앉아있던 아직 복학생 티가 나는 남학생이 꽤나 당돌한 질문을 했다.
무슨 생각이 있는건지, 그냥 튀고싶은 건지···
재필은 후자라고 판단하고 건조하게 응답했다.
“성적 취향이 선천적이냐 후천적이냐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지만, 선택할 수 없는 선천적 취향’으로 분류하는 사람들이 많기는 하죠. 극의 주제가 ‘성적 정체성’에 대한 내용을 포함한다면 인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자 남학생이 다시 말했다.
“그럼 저는 퀸의 메인 보컬 프레디머큐리를 주제로 극을 구성해보고 싶습니다.”
*
웅성웅성-
강의실이 소란스러워졌다.
“프레디 머큐리라, 흥미롭네요. 대본이 있나요?”
“창작 대본으로 하겠습니다. 대략적인 구상은 나왔습니다.”
재필은 복학생의 자신만만한 대답에 혀를 찼다.
연영과 후배인가? 학기마다 관종은 한 명씩 있기 마련이다.
“그럼 나와서 구상을 설명해봅시다. 당장 대본이 없으니 함께할 조원을 구하려면 본인이 프레젠테이션하는 수밖에 없겠네요.”
재필의 예상을 깨고, 복학생은 망설임없이 앞으로 나왔다.
교단위에 올라와 꾸벅- 인사를 하더니 하는 자기 소개에 모두에게 어이없는 표정이 떠올랐다.
“안녕하세요. 경영학과 2학년 신유명입니다.”
타과 전공과목을 교양삼아 수강하는 것이 없는 일은 아니었지만, 이 과목은 연기로 먹고살기를 꿈꾸는 학생들에게도 어려운 강의였다.
심지어 연기와 관련이 전혀 없는 학과의 저학년. 하지만,
“중앙연극회 에 가입해 있고, 연기에 진지하게 관심이 있어서 연영과 전공과목을 수강하게 되었습니다. 전공자들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예의 바르지만 비굴하지는 않은 인사에 분위기가 조금 풀렸다.
연영과 학생들은 중앙연극동아리를 무시하는 편이었지만, 아무 경험없이 흥미만으로 수강하는 초짜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유명은 칠판에 마커펜으로 퀸의 메인보컬의 이름을 쓰고 침을 꿀꺽 삼켰다.
유명은 그의 팬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야간자율학습을 하며 퀸의 노래를 반복적으로 듣던 소년은,
연극을 하게 된 후엔 프레디 머큐리에 관한 다큐멘터리, 에세이, 영화 등을 찾아보며 이 매력적인 인물을 언젠가는 연기해보고 싶다는 꿈을 꾸었었다.
그런 생각을 한 것은 그 뿐만은 아니었나 보다.
유명이 회귀한 시점인 2018년도 가을, 프레디 머큐리의 일생을 담은 영화가 나왔고, 그 해 최고의 화제작이 되었다. 주연 배우의 혼신의 연기를 보고 두 주먹을 불끈 쥐며 가슴을 불태웠던 기억이 떠오른다.
‘나도 그런 연기, 하고싶었지.’
유명은 마커펜을 또각 소리나게 놓고 뒤로 돌아섰다.
“알려진 바와 같이 프레디 머큐리는 게이였다고 합니다.
그는 무명 밴드 시절, 한때의 연인이자 평생의 소울메이트였던 메리 오스틴을 만납니다.”
나즉하게,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재능을 바탕으로 엄청난 인기와 부를 얻지만, 항상 공허를 느끼고 우울증과 알콜중독에 시달립니다. 그는 메리 오스틴이 너무나 소중하지만, 자신은 게이이며 여성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말죠.”
프레젠테이션임에도 불구하고,
유명의 듣기좋은 음색은 고저를 넘나들며 빠르게 그리고 느리게 이어졌다.
“메리 오스틴과 헤어지고 수많은 남자들과의 섹스파티, 마약파티로 세월을 보내지만 그의 정신은 더욱 피폐해지기만 합니다. 그 때 등장하는 것이,”
학생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짐 허튼. 프레디의 마지막까지 지켜준 반려였지요.”
유명은 한 템포 쉬었다 이었다.
“그렇지만 메리 오스틴은 프레디가 에이즈로 죽는 그날까지 그의 가족이었고 뮤즈였습니다. 실제로도 프레디 머큐리의 유산은 메리 오스틴에게 가장 많이 상속되었다고 합니다.
저는 프레디 머큐리라는 한 인간의 성 정체성과 내적 충동, 갈등과 화합의 과정을 15분짜리 단막극에 녹여내보고 싶습니다.”
유명의 발표가 끝났고, 강의실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그리고 재필은 비죽 웃었다.
‘이새끼봐라···’
“퀸의 음악적인 부분은 안다루나요?”
“그건 욕심나지만 과제 주제와는 무관하니 빼겠습니다. 실제로 구현하는 것도 어렵구요.”
“그럼 등장인물은 프레디머큐리, 메리오스틴, 짐허튼인가요?”
“대본을 써봐야 확실해지겠지만 주요 인물은 그렇습니다.”
재필이 학생들 쪽으로 몸을 돌렸다.
“흥미롭네요. 신유명 학생 조에 조인하고 싶은 사람?”
좌중은 조용했다.
하지만 그 조용함에는 갈등이 묻어있었다.
타과 애송이를 인정하고 싶지않은 자존심과 재미있어보이는 극에 참여하고 싶은 연기전공자의 본능이 내적 갈등을 일으키도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가장 먼저 손을 든 것은, 호리호리하고 예쁘장하게 생긴 남학생이었다.
“교수님. 그 조에 꼭 참여하고 싶습니다.”
그 얼굴은, 유명의 기억에 있었다.
서류신.
유약해 보이는 외양과 달리, ‘연기에 미쳤다’ ‘타고난 승부사다’라는 평을 듣던 유명극단 의 간판배우.
역할에 따라 같은 인간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달라진다고 하여 별명이 팔색조.
영화판의 숱한 러브콜에도 대학로를 지키던 대형 연극배우가 여기에 있었다.
‘지난 생에도 같이 들었을텐데 기억이 없네. 하긴 서류신도 유명해지기 전이니.’
그의 친구들이 웅성거렸다.
“류신이가?”
“나도 저 조 지원할까?”
“류신이가 캐리하면 절반은 먹고들어가는 거 아냐?”
학생일 때부터 난 놈이었던 모양이다. 그의 지원으로 분위기가 달라졌다.
“저도 그 조에 지원하고 싶습니다.”
“저도 지원하겠습니다.”
순식간에 6명이 다 찼다.
그러자 다른 학생들도 지기 싫다는 듯 ‘저는 이 작품을 해보고 싶습니다.’라고 의견을 쏟아냈고, 그 날로 조 구성은 마무리되어 버렸다.
재필은 그가 바랬지만 예전 수업들에선 볼 수 없었던 장면을 흥미롭게 감상했다.
‘재밌는 놈이군. 과대포장인지 진짜 물건인지 지켜봐야겠어.’
*
메소드 연기학 시간을 마치고 경영학과 건물로 돌아온 유명은 이후의 수업을 모두 마쳤다.
개강일이라 그런지 대부분의 수업은 교재 및 시험에 관한 브리핑만으로 짧게 끝났다.
띵동~
[경영과개강총회]경영학과개강총회
가당일오후7시정
문앞(셋셋치킨)에
서열리오니많은참
오랜만에 보는 8*5텍스트문자가 날아왔다. 같은 단어를 두 번 쓰고 결국 전체문장 전달에 실패하다니 과대가 꽤나 어리버리한 모양이다.
유명은 피식 웃으며 갈까말까 고민했다.
커다란 모임에선 늘 꿔다논 보릿자루 취급을 받던 유명은 4인 이상의 술자리를 기피했었다.
하지만 지금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