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50
유리의 대응은 고까웠지만, 주란은 노련하게 유리의 옆자리를 꿰차며 앉았다.
“유리야~ 나한테 너무한 거 아니니? 이런 게 어딨어.”
“뭐라고?”
“서류신 신유명, 더블캐스팅했다며? 그 조건이면 나도 보이콧 안했지. 그런 합의안이라도 내줬으면 내가 신중하게 고민해보고 수락했을텐데.”
‘…뭐 이런 애가 다 있지?’
유리는 생글생글 웃는 주란의 얼굴을 기가 차서 쳐다보았다.
“지금이라도 내 대본 써. 아마추어 대본 고치면서 쓰느라 수고 많았지?”
“돌아가 민주란. 우리 이미 대본 바꿨어. 다 외고 연습까지 들어간 상태야.”
“그럼 나는 어떡해?”
“뭐?”
“네가 의뢰해서 내 시간 몽땅 쏟아부어서 대본썼잖아. 그 수고는 어떡하라고.”
“걷어찬 건 너잖아. 그게 무슨 억지야.”
“아니지. 류신 선배도 출연한다고 했으면 대본 안 뺐지. 다시 출연하는 이상 내 대본 쓰는 게 맞는 거 아냐?”
기가 찬다.
“내가 곱게 보이지 않는 건 알겠어. 정식으로 사과할게. 그런데 대본만 생각해봐. 오디우스 본공연에 대본이 허접하면 어떡하니?”
“대본도 네 것보다 지금 게 나은데?.”
“하아?”
주란이 콧방귀를 꼈다.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마. 나도 구해서 읽어봤는데 대사 허접하고 효과며 장치며 다 아마추어 수준이던데?”
“장면들이 참신해. 대사는 같이 정리하면 돼.”
“이거 엄청 불공정한 거야. 실력위주의 오디우스 아니었어? 객원이지만 나도 오디우스 멤버에 이름을 올렸어. 연출로서 공정한 평가 부탁해.”
아예 유리의 말을 믿을 생각이 없는 주란의 주장.
유리는 어이없는 표정을 짓고 준호는 안절부절해 하던 와중에,
유명이 한 마디를 던졌다.
“그쪽이 인정할 수 있을만한 배우가, 준호 대본이 더 낫다고 한다면요?”
*
[선배님 안녕하세요.] [우와 유명아! 공연준비 잘하고 있어? 어쩐 일이야.]문자에서 그 밝은 음성이 들릴 것 같은 이 사람은, 배우 이선하다.
오디우스 워크샵에서 유명의 재능에 흠뻑 빠진 그녀는, 혹시 조언이 필요할 땐 언제든지 연락하라며 개인 폰번호를 알려주었다.
[바쁘실텐데 죄송합니다! 공연준비 중에 대본버전이 2가지가 나왔는데, 프로 연극배우의 조언을 들어볼 수 있을까 해서요.] [그럼그럼, 정기공연 끝나서 나 한가해. 메일로 보내줄래? [email protected]]“쓴 사람은 블라인드로. 딱 작품만 보고 판단하도록, 알죠?”
“당연하죠. 메일 내용도 확인시켜 드리죠.”
삽시간에 번진 내기에, 준호는 얼굴이 희게 질렸고, 주란은 자신만만하게 팔짱을 끼고 다리를 꼬았다.
‘어딜 저딴 아마추어의 대본에···’
메일을 보낸지 1시간만에 이선하의 답메일이 왔다. 공정을 위해 다들 지켜보는 가운데 유리가 그 메일을 열고, 낭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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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선배님 대본 첨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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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 잘 봤어. 지킬박사와 하이드구나. 너랑 류신이 중에 누가 캐스팅됐어? 꼭 보러갈게!대본 A는 엄청 뒤죽박죽이네. 보고 한참 웃었어. 대사가 하나도 입에 안 붙는 부분과, 좀더 잘 붙는 부분이 있는 걸 보니 아마추어가 쓴 대본을 한참 수정 중인가 보지?]
예리한 지적에 모두 ‘역시···’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대본 B는 좀 쓰던 애가 쓴 건가봐. 장면 정리도 잘 되어있고, 대사도 매끄럽게 입에 붙네. 아직 서툰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당장 공연을 올리래도 손색없는 대본이야.]제 대본에 대한 호평에 민주란은 거보란 듯이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런데, 나는 A가 더 마음에 들어. 대사가 거칠긴 하지만 지킬과 하이드의 내면 묘사가 탁월해. 작가가 아직 경험은 적지만 직관력이 뛰어난 모양이야. 특히 하이드에서 지킬로 변할 때, 그 변화하는 장면을 극중에 넣겠다는 발상에 깜짝 놀랐어. 보통은 소화하기 힘들텐데, 너와 류신이가 한다고 나선 모양이지? 안 봐도 알겠다.]이어지는 문장에 점점 표정이 사라져 갔다.
[우리팀 작가랑 밥먹던 중이었는데 대본 보여줬더니, 나와 생각이 같더라고. 공연 끝나고 정리된 대본이랑 각색한 친구 연락처 좀 알려줄래? 좀 다듬어서 내년 봄 혜성 특별공연에 대본 후보로 올려보자고 그러네. 답변이 됐어? 또 궁금한 거 있으면 연락줘.]메일이 끝났다.
준호는 얼떨떨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프로 배우와 프로 작가의 칭찬도 모자라서, 혜성 특별공연 후보 대본으로 거론되다니.
선유리는 턱 끝을 들고, 민주란을 응시했다. 어떠냐는 듯이.
“…”
잠시 아랫입술을 깨문 주란은 빠르게 태세를 전환했다.
“좋은 대본인데, 대사가 좀 거칠다고 하시네? 그럼 역시 대사를 다듬어줄 경력있는 작가가 함께하면 좋지 않을까?”
대단한 뻔뻔함이었다.
*
“나 걔 무서운데···”
준호가 울상을 지었다.
결국 민주란이 각색 작업에 참여하기로 결정됐다.
이미 각색 대본하나를 통으로 써냈던 시간투자를 무시할 수는 없다는 이유가 하나 있었고, 공연준비기간이 빠듯하여, 경험있는 작가가 붙는 것이 대본 수정 작업에 도움이 될 거라는 이유도 있었다.
단 우준호가 메인, 민주란이 서브작가.
잡음이 심할 시에는 민주란을 제외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주란은 그 조건마저 승낙했다. 혜성 특별공연 작품이 될 수도 있다는 메리트가 어지간히 크게 느껴진 모양이었다.
“준호야.”
“응?”
“너 각색하면서 지킬박사와 하이드 엄청 읽었지?”
“응. 족히 수십 번은 읽었을 걸?”
“그럼 나랑 연습 하나만 하자.”
준호가 알 수 없는 유명의 요구에 당황스럽게 되물었다.
“무슨 연습?”
“하이드 연기.”
“어? 내가 왜?”
“살면서, 어느 정도 하이드의 면모는 필요한 법이야. 특히 네가 지킬이라면 만만하게 볼 게 뻔한 기 센 상대들에게는.”
“…”
“민주란과 작업하면서 걔가 뭔가 불만을 말하고 분위기를 휘두르려는 순간이 있을 거야. 아마 그 성격이라면 첫 세 마디 이내로. 그러면,”
“…그러면?”
“그럼. 넌. 빠질래?”
준호는 흠칫 몸을 뒤로 뺐다.
그 말을 하는 유명의 분위기.
이빨 하나 안들어갈 것 같은 얼음장같은 그 말이 순간 자신에게 하는 것인 줄 알았다.
“어어? 그…그런 말을 어떻게 해.”
“해야 돼. 이걸 해내는 순간 민주란과 너는 매우 사이가 좋아질 거야.”
“나빠지는 게 아니고?”
“나 믿지? 자 어서 연습해보자.”
유명은 준호를 달래어 그 말 한 마디를 엄청나게 연습시켰다. 이맛살을 찡그리는 각도와 목소리의 차가운 톤, 귀찮은 듯한 제스처까지.
원래 호구과인 준호의 말투를 개조하는 데엔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다.
준호가 대본을 쓰면서 하이드의 말투를 그렇게 많이 상상해보지 않았다면 실패했을지도 모른다.
다음 날,
연습장에 참여한 주란이 오자마자 던진 첫 마디.
“대본 작업은 따로 메일로 주고받으면서 해도 되잖아. 왜 굳이 연습장에 나오라는 건지.”
예상대로 첫마디부터 불평이었다.
유명이 눈썹을 까딱했고, 준호는 떨리는 심장을 내리누르고 수백 번 연습한 단 한 마디의 대사를 쳤다.
“그럼. 넌. 빠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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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추면 되잖앙
“그럼. 넌. 빠질래?”
그 냉담한 말투에 연습장에 물이 끼얹어진 듯 조용해졌다.
“어…어···?”
민주란이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준호는 같은 말을 한 번 더 반복했다.
“그럼 넌 빠질 거냐고.”
“아니…그런 뜻은 아니었고… 나는 그냥 요즘 좀 바빠서···”
준호는 그 말에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이것도 유명이 시킨 일이었다. 민주란이 약한 모습을 보이며 사과하더라도, 받아주지 말고 일 얘기로 넘어가라고.
“2막 7장, 하이드에서 지킬로 변신. 제일 중요한 장면이야. 연습 확인하고 이따 대본 수정가자.”
원래대로의 차분한 말투. 준호가 평소 말투로 돌아왔음에도 주란은 바짝 쫄아 눈치를 보았다.
사실 지금 상황에서는 자신이 절대 을이다. 준호와 갈등이 생기면 자신이 아웃된다고 약정하고 들어온 각본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