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52
유명의 부모는 가장 좋은 자리 중 하나로 안내받았다. 그들의 아들이 기획팀에 특별히 부탁해 빼 놓은 vip 좌석이었다. 무대의 숨소리까지 들릴 것 같은 4열 중앙의 자리, 그 곳에 부부는 옷을 살짝 털어내고 조심스럽게 앉았다.
관객은 끝없이 들어왔다.
서류신은 아니었지만, 지난 학기부터 연영과에 널리 퍼진 신유명의 이름과, 명망있는 오디우스의 본공연이라는 점, 기획팀의 알찬 홍보 덕에 객석은 곧 가득 메워졌다.
부부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는 무대에 그들의 아들이 주인공으로 선다는 사실을 아직 믿기 힘들어, 팜플렛에 인쇄된 아들의 얼굴을 여러 번 뒤적거렸다.
객석에 흐르던 입장 bgm이 서서히 잦아들고,
불이 꺼졌다.
정적 속에, 음산한 음악이 서서히 소리를 키우고 마침내 불이 켜졌을 때,
부부는 무대 위에서 낯선 아들을 발견했다.
*
“여러분. 인간이 근본적으로 선한지 악한지에 대한 논쟁은 종교사에서도 철학사에서도 오랜 논쟁거리였습니다. 저는 오랜 탐구 끝에 이 두 성질이 물리적으로 분리가능한 성질이며, 인간의 몸에는 두 성질이 결합되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1막 1장,
지킬 박사의 학술 발표회.
작가팀은 논의 끝에, 부연설명없이 지킬이 바로 등장했던 준호의 장면구성을 활용하고, 민주란이 썼던 스무스한 대사를 가져와 첫 장면에 꽂아넣었다.
덕분에 전면에 등장한 주인공이 초반부터 관객들의 시선을 강렬하게 사로잡았다.
연단 위에 손을 올렸던 지킬 박사는 슬쩍 연단을 내려다보더니, 포켓에서 행커치프를 꺼내서 손을 닦았다. 그 동작 하나만으로도 이 인물의 성격이 잘 드러났다.
고도로 결벽을 추구하는 성격.
장면은 1막 2장으로 이어졌다.
어터슨 변호사와 리처드의 대화.
“자네도 지킬 박사의 학술회에 참여했었군, 리차드.”
“네. 놀라운 고견이긴 한데, 믿기 어려웠습니다. 후속 연구 발표가 무척 기다려집니다.”
“나도 그렇다네.”
“그런데 변호사님, 요즘 그 소문 들으셨습니까?”
“무슨 소문?”
“요즘 런던의 뒷골목이 흉흉하다는 소문요. 무척 기분나쁜 괴인이 출몰한답니다.”
“소문은 모두 믿을 건 못되지.”
“하지만, 제가 직접 보았습니다. 정말, 정말로…기분 나쁜 놈이었습니다.”
무대 왼쪽을 차지하던 두 사람을 비추는 조도가 낮아지면서, 무대 오른쪽에 푸른 조명이 떨어진다. 암전없이 바로 1막3장으로 넘어가는 대담한 구성. 그 곳에는 두 사람이 얼음처럼 서 있다.
리처드는 역시 정지된 어터슨을 내버려두고, 그 푸른 빛 속으로 걸어들어간다. 마치 악몽 속으로 진입하듯이 느릿하게.
리처드의 형체가 완전히 푸른빛에 잠기자, 플레이 버튼을 누르기라도 한 듯, 두 명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시작은 구타였다.
퍼억-
온몸이 기형적으로 뒤틀린 사내가 행인 노파를 발로 찬다. 노파가 아고고- 소리를 내며 뒹구는데도 그의 폭력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보는 사람들이 표정을 찌푸릴 정도로 지속된 구타를 리처드가 제지하자,
드디어 돌아서 정면을 보이는 괴인의 얼굴.
그 불쾌한 미소에,
술렁-
객석이 반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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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홀
‘저게 정말 내 아들 맞아?’
유명의 엄마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릴 때부터 존재감이 없던 아들.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는, 선생님의 질문에 자신이 가장 먼저 손을 들었는데 또 저는 지목당하지 않았다며, 눈물을 그렁이며 안겨왔었다. 사촌형누나들이 지연이만 예뻐하고 놀아주는 것에 울먹이며 떼를 쓰기도 했다.
그러던 아들은 언젠가부터 남 앞에 굳이 나서려 하지 않았다. 가질 수 없는 것을 포기한 듯이.
그것이 엄마로서 애처롭고 마음쓰였다.
“치료비를 보상해 주면 될 것 아니오! 저런 무지랭이 늙다구니 따위에 관심을 두다니 오지랖도 넓은 선생이시군. 따라오시든가.”
쩌렁한 목소리가 울려퍼졌고,
악의와 기만이 가득한 미소가 슬쩍 비친다.
그 순하던 아이가 어디서 저런 표정을 배웠을까.
유명의 엄마는 괜스레 겁이 나서 주변을 한 번 둘러보았다. 그리고 탄성을 터뜨렸다.
아-
객석 여기에서 저기까지, 눈 닿는 곳에 위치하는 모든 관객의 시선이 무대 위에 못박힌 듯 달라붙어 있다.
블랙홀.
아들은 23년간 받지 못한 관심을 모두 가져가기라도 할 듯이 야차처럼 시선을 흡입하고 있었다.
강렬했던 하이드의 첫 등장이 끝나고 다음 장이 이어진다.
리처드는 어터슨에게 수표를 보여준다.
치료비 보상을 위해 하이드가 건네줬다는 어음의 하단에 휘갈겨져 있는 서명, ‘헨리 지킬’. 어터슨은 걱정되는 마음에 친구 지킬을 찾아간다.
“글쎄, 그 어음의 출처? 나도 궁금하군. 누군가 물건값을 어음으로 치른 모양이지.”
“그랬군. 내 친구인 자네가 그런 불한당과 엮였을까 염려되어서 말일세.”
“하하, 고맙군.”
탕-
애써 평정을 가장했던 지킬 박사는, 어터슨이 돌아간 후 문을 꼭 닫고 괴로워하며 독백을 읊는다.
“처음···”
잘 나오지 않는 말을 겨우겨우 짜내듯이.
“처음 내가 변한 모습으로 추구하고자 했던 쾌락은, 평소 내가 끔찍하게 기피해 온 품위없는 처신 정도였다. 한 번쯤은 단추를 끝까지 채우지 않고, 넥타이를 빡빡하게 조이지 않은 채로 바람을 느끼며 산책을 해 보고 싶었다.”
정결한 일상, 결벽한 성격, 품위있는 닥터. 헨리 지킬.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의 어둠이라는 것은 고작 그 정도일 것이라 오산했던 것이다.”
둥- 둥-
고동치는 듯한 북소리가 얕게 깔려온다.
“하지만, 내 안에 살고있던 것은 나도 모르던 괴물이었다. 사람을 폭행하는 것에서 쾌감을 느끼고, 지저분한 창부의 침대 속에서 살아있다는 희열을 느끼는 괴물. 나는 다시는 그를 불러내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하지만…”
지킬 박사가 책상을 힐끗 본다.
그 곳에 놓여있는 자주색 액체.
“하지만…왜 이렇게 목이 조여오는 것일까···”
수분을 온통 상실한 바짝 마른 목소리로, 지킬은 한걸음 한걸음 책상 앞으로 다가간다. 몇 번이나 외면하려고 하지만, 그 손에 결국 약이 쥐어지고야 만다.
“수…숨을···!”
그는 목을 죄어오는 드레스 셔츠의 끝 단추를 풀려고 하지만, 결국 손 끝이 멈췄다. 닥터 지킬은 침대 위에서가 아니면 단추 하나 풀고 있을 수가 없는 인간인 것이다.
그 절박한 호흡의 갈구에, 지켜보는 관객들 모두가 숨이 막혔다.
결국 그는 손에 든 플라스크를 입에 댄다.
불이 탁- 꺼지고
북소리가 격렬하게 피치를 높인다.
둥둥둥둥둥둥-
으아아아아–
머리 끝이 쭈뼛 서는 괴성이 퍼져나간다.
그리고 다시 불이 켜졌을 때,
이미 타이와 셔츠를 모두 열어젖히고, 머리를 헝클어뜨린 채,
만끽하듯이 숨을 들이키는 하이드가 서 있었다.
*
1막이 끝났다.
숨도 쉴 수 없는 몰입감.
소설을 읽었던 관객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던 지킬과 하이드와는 뭔가 다르다.’라고 생각했다.
정신병에 가까워보이는 저 결벽함, 그에 비례해 커지는 자아파괴의 충동.
하지만 그렇기에 인간적이고, 마치 그 사람이 여기에 있기라도 한 듯, 현장감이 생생한 것이다.
다시 시작된 2막.
바로 ‘그 사건’으로 막이 열린다.
긴장을 늦출 사이를 주지 않는 자비없는 장면 구성이었다.
“흐흐으하아하와하하하-”
쾌락에 절은 웃음이 울려퍼진다.
“댄버스 커루 경? 죽었어? 그렇게 쉽게?”
연습 때와는 달리, 다리 밑에는 한 사람이 고꾸라져 있다. 물론 모형이겠지만, 팔다리가 불가능한 방향으로 제각기 꺾여있는 것이 오싹하다.
하지만 하이드는 그 끔찍한 광경을 보고서,
아름다운 미술품을 감상하기라도 하는 양 부드럽게 눈을 휘고 웃고 있었다.
“아, 또 누구 부술거 없나? 사람이 아니라면 고양이라도.”
섬찟한 혼잣말을 한 하이드, 여상하게 기지개를 편다.
그 때 스윽, 몸이 늘어난다.
꿈틀-
소리가 들릴 것 같이 과격하게, 압착되어 있던 하이드의 신체가 주욱 펴진다.
키가 커지고 몸집도 조금 더 부풀어오르는 착시 현상.
배우의 훌륭한 신체 표현을 조명이 보조한다. 조명기의 각도가 누우면서 빛이 조도를 올린다.
커진 키보다 훨씬 더 길고 짙어진 그림자의 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