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54
“내일은 내 차례군요. 잘 보고 있어요.”
각오가 단단히 서린 낯빛의 류신이었다.
────────────────────────────────────
────────────────────────────────────
둘 중에, 내 배우가 있다
와아아아아–
방금, 서류신의 공연이 끝났다.
거대한 박수와 함성이 베티홀을 쩌렁하게 울렸다.
초반부터 관객들은 무대위의 배우에게 애정을 가졌다.
아무도 밟지 않은 첫 눈같이 새하얗고 고귀한 지킬 박사. 보는 사람이 절로 미소를 지을만한 고귀하고 우아한 성품.
마치, 실존하는 천사를 본 것처럼.
그것은 1막 3장에서 단숨에 박살났다.
서류신의 하이드는 어린아이같이 생글생글 웃으며, 행인 노파를 발로 짓밟았다.
더러운 것을 묻히기 싫은지 양 손은 주머니 속에 넣은 채로.
무대 뒤쪽에서 모니터링하던 조연출 지형은 포켓의 가림막 사이로 류신의 모습을 넘어다보며, 연출 유리의 평가를 곱씹었다.
-신유명의 지킬과 하이드는 관객들과 감정선 공유가 잘 되어서 흡입력이 높겠지만, 처음 봤을 때 더 강렬하게 시선을 빼앗기는 건 류신 선배의 지킬과 하이드일 거에요.
그랬다.
무대 뒤에서 객석을 마주보고 있는 지형에게는 앞쪽 관객들의 표정이 어렴풋이 보였다.
그들은 천국과 지옥을 왕복하는 것처럼, 극단적인 캐릭터성에 놀아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텐션은 고스란히 유지되어 클라이막스인 2막 7장까지 유지되었다.
“…진실을 보여다오.”
그 말에 하이드가 꿀꺽- 약병을 단숨에 비운다. 그리고,
괴기하고 발작적이던 어제의 변신과는 달리,
스윽-
물이 흘러가듯 부드럽고 스무스하게,
물결이 치듯 잔잔하게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건 메소드 연기학에서 유명이 했던 표정의 연결방식.
류신은 유명에게 완전히 다른 두 표정의 연결을 어떤 방법으로 구현했는지 물었고, 유명은 미호가 건넸던 조언을 류신에게 그대로 알려 주었다.
그리고 한 달간의 혹독한 연습 끝에, 그는 결국 그것을 성공시켜 왔다.
악마의 표정에서 천사의 표정으로, 기이할정도로 자연스럽게 표정이 연결된다.
관객들이 그 야릇한 변화에 몸서리를 쳤다.
‘샘플도 없었는데, 대단해. 정말 독종이라는 단어가 딱 맞는 배우···’
인정할만하다, 라이벌로.
유명은 처음으로 객석에서 제대로 본 서류신의 연기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
가운대 홈페이지, 학생광장.
오늘따라 [구합니다]라는 말머리를 달고 있는 게시글이 유난히 많았다.
———————————————-
[구합니다] 오디우스 내일 오후 3시공연 티켓 1장 구합니다.못가시는 분 계시면 꼭 좀 부탁드립니다.
정가 이상이라도 너무 비싸지 않으면 구매의사 있습니다.
원하시는 가격 선제시 부탁드립니다.
———————————————-
└ 여기 무슨 일 있나요? 어제부터 이런 글이 자꾸 올라오네. 바이럴 마케팅인가.
└ (원)목요일 공연 봤는데 레전드네요. 한번 더 보려구요.
└ 마케팅 아닙니다. 저희 표 1주 전에 매진됐어요. – 오디우스 기획팀
└ (원)헉. 빼놓은 표 있으시면 한 장만 구할 수 없을까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 저는 금요일 서류신 거 보려고 했는데 매진돼서 못 봤네요. 왜 쓸데없이 더블캐스팅을 해서···
└ 두 명 버전 다 본 사람인데 목요일도 대박이었는데요. 저는 내일 오전, 오후도 보러 갑니다. 이런 건 전 회차 관람해야 하는 공연이에요.
└ 이런 분들 때문에 표를 못 구했구나. 자제 좀 하시죠.
말그대로, 매진이었다.
독특한 구성의 캐스팅과, 강렬한 포스터.
오디우스의 명성, 서류신의 스타덤, 새롭게 떠오른 신유명이라는 신예 등 여러 가지 화제가 맞물려, 이번 오디우스 공연은 어느 때보다도 빨리 매진되었다.
학교 홈페이지 교내행사홍보 코너에 올라와 있는 한 게시물에는 유난히 덧글이 많았다.
———————————————-
[동아리행사] 오디우스 ‘지킬박사와 하이드’ 가을정기공연 (74)———————————————-
본문에는 사진 파일 한 장이 첨부되어 있었다.
기획팀에서 심혈을 기울인 공연 포스터.
흑과 백, 백과 흑이 교차된 4분할의 화면에는, 서류신의 지킬. 서류신의 하이드. 신유명의 하이드. 신유명의 지킬이 선명하게 대비되어 있었다.
└ 공연 너무 기대됩니다. 오디우스 화이팅.
└ 믿고보는 서류신!
└ 서류신 표 못구했네요. 어쩔 수 없이 목요일 표 구했는데 괜찮겠죠?
처음엔 공연 전의 기대와 응원, 의심이 주축이던 댓글들은,
└ 와…이번 오디우스 공연…장난 아니네요
└ 연극 팬인데 최근 본 대학로 프로무대들보다 오디우스 공연이 나았다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 신유명. 이름도 모르던 배우인데, 탈탈 털리고 왔습니다. 앞으로 이분 나오는 공연은 무조건 보러갑니다.
└ 벼룩시장에서 도저히 안 구해져서 그러는데 혹시…여기 표 파실 분 안계신가요?
격한 찬사로 빠르게 뒤덮이고 있었다.
00:00
홈페이지 하단에 위치한 시계가 하루를 깨끗이 삭제하고, 다시 새로운 카운팅을 시작한다.
오늘은, ‘지킬박사와 하이드’의 마지막 공연일이다.
*
더벅한 곱슬머리에 뿔테 안경을 낀 한 남자가 두리번거리며 가운대 캠퍼스를 가로질렀다.
‘이번에는 제발···!’
남자는 주머니에서 수첩 하나를 꺼냈다. 거기에는 많은 대학 극단들, 아마추어 극단들의 이름과 공연 스케줄이 빼곡히 적혀 있었고, 대부분은 볼펜으로 까맣게 줄이 그어져 있었다.
끝에 딱 두 개 남은 이름.
– 가운대 연영과 공연. 031129 15:00 19:30
– 연학대 연극팀 공연. 031129 19:00
남자의 주머니 안에는 총 세 장의 티켓이 있었다.
가운대 공연은 더블캐스팅이란 말에 두 타임 모두 예매했지만, 첫 타임을 보고 싹수가 노랗다면 미련없이 연학대로 넘어갈 계획이었다.
‘이쪽인가?’
베티홀에 가까워질수록, 캠퍼스 안내도를 찾을 필요가 없었다. 토요일인데도 상당수의 사람들이 부지런히 한 곳으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공연관람객들이었다.
그는 베티홀 앞에 도착해 입장권을 제시하고, 자리를 안내받았다. 중간 정도의 좌석에 앉아, 500석에 달하는 중극장의 객석이 빠짐없이 들어차는 것을 신기하게 구경했다.
‘대학극단치고 관객동원 능력만큼은 대단하네···’
그리고 곧, 공연이 시작되었다.
1막 1장.
학술 발표회 연단에 선 지킬이 모습을 드러낸다.
“여러분. 인간이 근본적으로 선한지 악한지에 대한 논쟁은 종교사에서도 철학사에서도 오랜 논쟁거리였습니다.”
처음부터 훅- 사람을 빨아들이는 목소리.
자애와 선량함으로 가득한 그 음성에 흠칫한 남자는 손에 든 수첩을 떨어뜨렸다.
배우는 연단 위에서 내려와, 포용하는 듯이 양 손을 넓게 벌렸다.
반듯한 이마가 굳은 신념으로 빛나고 있다.
악한 의지라고는 존재하지 않을듯이 새하얗게 빛나는 선의.
‘저…배우는 이름이 뭐였더라···?’
수첩이 객석 아래로 들어간 것 같았다. 발로 잡아당기려 했는데 더 안쪽으로 밀려간다.
수첩에는 예매해둔 공연의 주역 배우 이름이 기입되어 있다. 빨리 확인하고 싶었지만, 도리가 없어 그는 발만 꼼지락거렸다.
공연이 지속되었다.
1막 2장, 이번에는 다른 배우가 나왔다. 지킬 역과 하이드 역을 나누어 캐스팅하다니 과감한 구성이다.
그는 서류신을 알아보았다. 어린 나이에도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다가 어느 순간 사라졌던 아역배우. 그가 가운대 공연에 상당히 기대하고 있었던 이유기도 하다.
서류신의 하이드 연기 또한 대단했다.
곤충을 분리하며 즐거워하는 어린아이와도 같은, 섬뜩한 잔인함.
그 연기는 1장의 지킬과 매우 상반되면서도, 신기할 정도로 바탕의 색깔이 같았다. 마치 같은 사람이 연기하는 것처럼.
그는 짙은 호기심을 느끼며, 안경을 벗어 닦고 다시 집중했다.
이어진 장면, 장면들.
지켜보는 남자의 얼굴이 점점 더 심각해져 간다.
그리고 2막 7장, 래니언 박사 앞에 선 하이드.
“래니언 박사님.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지킬 박사의 발견?”
느긋한 말투, 래니언의 당황을 조롱하기라도 하듯이 그는 천천히 선택지를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