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65
컷마다 수십 번씩 반복되는 재촬영에서도 묵묵히 다시 임하는 세련이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컷- 오케. 수고하셨습니다. 오후에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첫날이라 그런지, 촬영이 턱턱 막혀서 그런지, 점심시간이 정상적으로 주어졌다. 기감독은 한숨을 내쉬며 조감독과 대화를 나눴다.
“속도가 너무 안 나는데? 예닐곱 개는 찍었어야 하는 컷들인데 겨우 세 개 찍었네.”
“점점 나아지겠죠. 아직 다들 카메라와 안 친해서 그렇지 않을까요.”
그 걱정을 귀에 담으며 유명이 세련에게 다가가 물병을 내밀었다. 그녀는 자리에 주저앉아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할 만 해요?”
“괜찮아. 힘들긴 해도 아프진 않은걸 뭐.”
마지막 1년간 발레 연습을 할 때는, 힘든 것 보다도 발가락이 깨질 듯한 통증이 무서웠다고 했다. 그 통증조차도 극도로 집중했을 때는 잊고 춤을 췄다고.
“컷이 짧으니까 감정 잡기가 힘들죠?”
“응. 아무래도 발레는 무대에 올라가서 몇 분~몇십 분 감정이 지속되는데, 영화는 몇 초-몇 분 단위로 컷이 끊어지네. 카메라 의식하기도 힘들고.”
“점점 적응될 거예요. 감정이란게 결국 카메라에 잡혔을 때 윤세련이 얼마나 윤화란다워 보이냐의 문젠데, 화란은 누나의 에고를 대변하는 배역이라서 그냥 누나답게만 해도 괜찮아요.”
어차피 기감독이 세련에게 기대하는 것은 ‘연기’가 아니었다.
윤세련답게 자연스러운 감정만 나와도 충분하다. 이 작품은 그녀를 본질을 그대로 쏟아넣은, 한 번만으로 충분한 작품이었으니까.
“나답게···”
“네, 누나답게요. 그리고 카메라를 의식하는 건…음…카메라를 코르드(*군무)라고 생각해볼래요?”
“카메라가…코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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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텀의 시선
“카메라가…코르드?”
특이한 발언에 주변의 무용수들도 귀를 세웠다.
“발레 무용수들 보면 서로 보고 있지 않으면서도 팔과 다리 들어올리는 각도, 회전하는 속도같은 게 딱딱 들어맞던데 어떻게 맞추는 거에요?”
“그야…집중하면 느껴지니까···”
“안봐도요?”
“응. 연습 초반에는 보고 맞추는 거지만, 나중에는 감각으로 주변의 기운이 느껴진달까···”
듣고 있던 발레리나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수십명의 군무의 동선을 기억하고, 에너지를 느끼는 분들이, 마킹이나 카메라 위치 의식하는 정도가 어려우실 리는 없을 거에요. 그냥 아직 적응이 안 돼서 그래요.
긴장되시면 저 카메라가 관객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카메라까지 이 장면을 만들어가는 코르드의 일원이라고 생각하시면 긴장이 좀 풀리지 않을까요?”
유명의 차분한 설명이 담고 있는 발레에 대한 이해와 존경.
낯선 환경에서 긴장 중이던 발레리나들은 그의 따뜻한 조언에 이 곳에 ‘받아들여지는’ 기분을 느꼈다.
“저도 이번에 공부해보기 전까지는 잘 몰랐는데, 발레가 정말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예술이더라구요. 팬층이 한정돼 있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다들 긴장푸시고 힘 내셔서 발레의 아름다움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세요.”
그의 말에 훈훈하게 긴장이 풀려가는 것을 보며, 조감독이 감독에게 말했다.
“저 친구 스물네살 맞아요? 저 나이에 연기를 저렇게 하는 것만도 신기한데, 어떻게 주변을 저렇게 잘 장악하죠?”
“영화판 들어와서 난다긴다 하는 천재들 많이 봤지만, 저런 친구는 처음이야. 번뜩이기만 하는 게 아니라 깊이가 묻어나온달까. 나도 볼 때마다 신기해.”
“그러게요. 저 친구 장면 찍을 때가 기대됩니다.”
“보고 입만 벌리고 있지는 마. 배우 역량이 충분할 수록 그 이상을 기대해서 더 높은 퀄리티를 뽑아내는 게 연출부 역할이니까.”
“그 정도입니까···”
이어진 오후 촬영은 훨씬 더 스무스하게 진행되었다.
다들 오전보다는 긴장이 풀린 것이 확연한 얼굴.
특히 세련의 표정이 많이 자연스러워져 있었다. 화란을 연기하려고 하지 말고, 세련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기만 하라는 유명의 조언이 큰 도움이 된 덕이다.
그렇게 컷과 컷들이 하나씩 완성되어 가고,
드디어 ‘무대 뒤’를 촬영하는 날이 왔다.
*
“와…세트가 이렇게 나왔군요.”
“멋지다···”
대극장의 무대 뒤가 조형된 세트였다.
침침한 조명. 여기 저기 쌓인 무대 도구들과 아무렇게나 걸려있는 의상들과 으스스한 느낌을 자아내는 소품들.
‘달빛’이 새어들어오는 풍경을 연출하기 위해 높은 실링과 작은 창문이 만들어져 있었다.
현실성과 비현실성이 교차하는 공간답게, 피를 연상케 하는 붉은 물이 든 토슈즈나 자주색 튜튜 등이 공간의 부분마다 포인트를 주고 있다.
팬텀은 환한 연습실이나 사람들의 시선이 닿는 무대 위에선 등장하지 않는다.
극장의 사각지대들이 그의 주요한 활동 장소.
달빛이 떨어지는 밤, 무대 뒤의 그늘진 곳에서만 그가 나타난다. 재능이 있고, 욕심이 드글드글하다 못해 좌절에 이른 발레리나의 앞에.
“일단 롱테이크로 먼저 가겠습니다. 슬레이트 쳐 주세요.”
“팔에 삼에 일-”
철컥-
# scene 8 cut 3 take 1
화란과 팬텀의 조우.
밤의 연습실에 갇힌 화란, 공포에 질려 나갈 길을 찾아 헤메다 연습실과 이어진 무대 뒤편까지 오게 된다. 밤의 무대 뒤편의 을씨년스러움에 패닉에 빠진 그녀는 비명을 지르고, 한 줄기 달빛이 그녀의 발 밑에 떨어진다. 그리고 나타나는 팬텀.
“레디- 액션!”
얼굴의 절반을 가면으로 가린 팬텀이, 달빛같이 새하얀 튜닉을 입고 주저앉은 화란에게 손을 내민다.
“아, 너 백조 군무를 하는 아이 중 하나구나. 이름이 뭐였더라?”
“윤…화란이요.”
노래하듯이 다정한 말투.
달빛을 등지고 있지만, 얼굴에 그늘하나 없는 것은 물론 앞쪽에서 밝히는 조명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신비스러운 분위기와 어울려 얼굴 자체가 빛을 내는 느낌을 준다.
“백조의 호수가 끝나고 다음 공연, 지젤일 거야.”
친절한 말의 끄트머리에 달랑거리는 선뜩한 예감을 보는 사람들이 인지하기도 전에,
댕-
12시의 종이 치고, 아주 작은 볼륨의 음악이 조금씩 소리를 높인다.
동시녹음을 위해 숨소리까지 죽인 스텝들의 시선이 모두 쏟아지는 가운데, 유명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아···’
구경하던 발레리나들이 탄성을 입안으로 삼킨다.
지젤의 알브레히트다.
물론 발레리노들처럼 탄성 넘치는 점프나, 화려한 파*(스텝)는 하지 못한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기술보다는 표현이 중요한 상체의 움직임만은…놀랍도록 아름다웠다. 전공자가 아니라는 걸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Ra- Raa-
음악이 점점 소리를 키우고, 이어지는 피루에트(*제자리 회전).
그것을 보고 유명의 안무대역을 맡은 남자 무용수는 눈을 의심했다.
처음 반 바퀴를 돌 동안 카메라를 향하던 눈이, 몸이 완전히 뒤를 돌기 전 한순간에 고개를 반바퀴돌려 다시 카메라를 바라본다.
여러 바퀴 회전을 할 때 균형을 유지하는 데 탁월한 시선 처리를 완벽히 익히고 있다.
그것이 한 바퀴가 아닌 둘, 셋…
신체가 피루에트가 끝날때까지 놀랍도록 안정적으로 밸런스를 유지한다.
발레를 배운지 3개월 되었다는 초보가 어떻게···
턴이 끝나면서 팬텀의 첫 댄스가 마무리되고, 그는 여전히 눈부시게 환한 얼굴로 화란을 내려다보며 웃음짓고 있다.
화란이 말을 더듬으며 묻는다.
“당신…발레의 천사님인가요?”
“음···? 보는 사람이 그렇게 믿는다면 그럴지도. 같이 춤출래?”
그가 내민 손을, 홀린 듯한 얼굴으로 맞잡는 화란, 그 손의 클로즈업이 편집점이었다.
“컷- 오케이!!”
촬영 4일차,
기감독이 부르짖은 최초의 원롤 오케이 사인이었다.
그리고 모든 시선들이 정적을 깨고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
“VFX팀 일감이 많이 줄어들겠는데요?”
“그렇지?”
조감독이 모니터링을 하면서 혀를 내둘렀다.
비쥬얼 이펙트 기법 중 하나인 head replacement(*배우의 얼굴을 대역배우의 몸에 합성시키는 방법)를 위해서는 얼굴의 각도가 중요하다.
특히 춤을 춘다는 역동적인 상황에서는, 연기를 하고 있는 배우의 얼굴과 춤을 추고 있는 대역의 몸을 어색함 없이 조합하는 것이 쉽지 않다.
하지만 배우가 춤을 추면서 연기가 가능하다면?
상반신만이라지만, 이 정도로 발레 동작이 정확하게 구현된다면 웨이스트컷 이상은 그대로 살릴 수 있다. 풀샷에서도 합성의 난이도가 현저하게 줄어든다.
“진짜 원래 발레하던 친구가 아니라구요?”
“전혀. 캐스팅 때도 처음이라는 걸 믿기 힘들 정도로 발레 동작을 해냈기는 한데, 그 때는 턴은 못했어. 세련씨도 정성들여 가르치긴 했지만, 3개월짜리 초보자가 이렇게 따라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라고 하더라고. 신체 감각이 정말 좋다면서.”
“춤도 춤인데, 앞뒤의 연기도···”
“그러니까. 어떻게 연극하던 배우가 카메라 앞에 처음 서는데 이렇게 자연스럽게 연기를 해내는지.”
연극 연기와 영화 연기는 다르다.
영화 연기에서 배우는 ‘피사체’이기 때문이다.
연극 연기는, 배우가 관객에게 온 몸으로 ‘표현’한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인물의 삶을 카메라를 통해 관객이 ‘관찰’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