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66
그 관찰은 땀구멍 하나, 눈썹의 일그러진 모양까지 세밀하게 그려내기 때문에, 연극적 연기를 그대로 옮겨올 경우 관객들은 과장되었다고 느끼기 십상이다.
하지만 저 배우는 그런 차이가 무엇이냐는 듯이, 카메라 앞에 서자 거기에 착 달라붙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최촬감이 모니터쪽으로 걸어왔다.
“와, 진짜 쟤는 뭐냐?”
촬영장에서는 경어를 쓰며 감독님이라는 호칭을 꼬박꼬박 고수하던 그도, 순간 경어를 잊고 어이없는 표정으로 감독에게 말을 붙였다.
기감독은 두 사람을 돌아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거 보시라니까요.”
*
4월 중순. 촬영’은’ 잘 되어가고 있었다.
여주와 남조가 만날 때마다 결론이 나지 않는 토론중인 것을 빼고.
“누나, 팬텀도 화란에게 집착하고 있는 거라니까요.”
“그는 발레의 신이야. 완전한 존재에게 무슨 집착이 있어.”
“화란이 신으로 여길 뿐이죠. 팬텀이 화란을 두고 다른 발레리나를 지도하기 시작하는 데는 분명히 화란을 의식하는 감정이 있어요.”
“다음 제자를 찾은 거지. 화란이 그를 실망시켰으니까.”
“실망이라는 감정조차도 불쾌함의 발로 아닌가요?”
기감독이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어…이 영화 자체가 화란의 시점인 건 맞습니다만, 팬텀의 인간적인 부분이 들어가면 스토리가 더 풍부해질 것 같긴 합니다.”
“하아···알았어.”
세련이 자세를 고쳐앉았다.
“편견을 내려놓고 들어볼테니까, 설득해봐. 이번에 설득 못하면 원시나리오대로 가는 걸로, 오케이?”
그녀의 말에 유명이 씨익 웃었다.
“콜. 자 누나 봐요.”
유명이 일어나 그녀의 앞에 섰다.
“씬 87, 팬텀이 다른 발레리나를 지도하는 것을 화란이 목격한 직후의 레슨 신이에요. 원래 여기서 팬텀은 덤덤하고, 화란은 질투로 안절부절못하다가 결국 얘기를 꺼내잖아요?”
“응.”
“레슨 중에 화란은 모르지만, 팬텀이 미묘하게 눈치를 보는 부분을 넣어요.”
유명이 시연을 한다. 기감독을 화란의 위치에 두고.
무표정하게 레슨을 하다가, 상대의 몸이 돌아갈 때만 슬쩍 내려앉는 눈빛들. 긴장감이 서서히 조성된다.
“그리고 화란과 다툴 때는 원래와 같아요. 그녀가 분하고 억울할 정도로 냉정하고 단단한, 절대자의 모습.”
화란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 뒤, 팬텀이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라고 일축하고, 화란과 파드되를 연습하죠. 감독님 한 번 찍어주실래요?”
그 때, 점심을 다 먹고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던 최촬감이 슬쩍 끼어든다. ‘내가 찍어줄게-’ 그가 서브카메라를 가지고 신나게 돌아왔다.
두 사람의 파드되.
이미 두 달을 매일같이 연습하여 몸에 배어버린 춤이 부드럽게 흐름을 탄다.
잠시 후 춤이 끝나고, 그들은 옹기종기 모여앉아 녹화파일을 즉석에서 재생해보았다.
‘아…팬텀의 시선.’
사교 댄스와 달리, 공연 댄스인 발레는 시선이 주로 객석에 있다. 세련도 역시 파트너와는 필요할 때만 눈을 마주칠 뿐, 대부분의 시선은 카메라 방향을 보고 있었다.
그 때 팬텀의 시선은···
그녀를 애절하게 내려다본다.
뱅글- 턴이 돌아 들어오면서 그녀와 팬텀의 눈이 마주했을 때는, 다시 표정이 냉담해진다. 하지만, 다시 턴이 돌아나가면, 바로 붙어오는 팬텀의 집요한 눈길.
그 표정에는 수많은 드라마가 있었고…
세련까지도 팬텀의 남은 이야기가 궁금해져 버렸다.
“어때요? 화란은 지금까지처럼 팬텀이 완벽한 존재라 믿고 연기해도 상관없어요. 팬텀의 서브스토리가 하나 더 생길 뿐이죠.”
설득당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는데…
그녀는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
“연습 끝!!”
유명은 지쳐 마루바닥에 드러눕고, 세련은 씻겠다며 연습실에 딸린 샤워실로 들어갔다.
촬영이 시작된 후에도 두 사람은 짬만 나면 연습실에 들러 발레와 연기를 연습하고 있었다.
유명이 지친 나머지 잠이 들 뻔 했을 때,
드르르륵-
진동으로 바꿔놓은 전화기가 바닥에서 요란하게 떨렸다.
촬영감독의 문자였다.
[연습 끝났으면 넘어와. 감독이랑 그 앞에 삼송통닭에서 한잔하는중.]격이 과도한 기감독과 격 없는 최촬감은 안어울릴듯 어울리는 콤비였다. 유명은 피식 웃으며 머리를 털며 나오는 세련에게 물었다.
“감독님이랑 촬영감독님 치킨에 맥주 중이라고 오라고 하시는데요?”
“으아~ 맥주!! 지금 마시면 죽음이겠다. 고고!”
그녀는 단박에 쌍수를 들어 환영했고, 그들은 연습실을 빠져나왔다.
4월하고도 중순.
만개한 벚꽃이 바람에 살랑살랑 손을 흔드는 맑은 봄밤.
그들은 금세 골목 몇 개를 가로질러 치킨집 앞에 도달했다.
“여기-”
안쪽의 파티션 위로 손이 하나 번쩍 올라왔다.
반갑게 맞은 손과는 달리, 자리에 도착했을 땐 그들은 촬영 얘기에 빠져 눈길도 주지 않았다.
“오백 두 잔요”
유명과 세련도 맥주를 주문한 후 그들의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팬텀의 감정선이 서브 스토리라인이 되었는데, 그 감정의 발단이 안보인단 말이야.”
“유명씨가 얘기했듯이, 그렇게 극장의 구석에 기생하며 발레만을 생각하는 팬텀이 화란에게 집착하는 건 굳이 설명이 없어도 납득될 것 같은데요.”
“그건 스토리를 다 알고 있는 우리 생각이지. 보는 관객 입장에선 직관적으로 와닿지 않을 거라고. 영상으로 힌트가 있어야 해.”
“글쎄요···”
“그리고 팬텀이 가르쳐온 발레리나가 한둘이 아니었을 텐데 하필 윤화란에게 집착하게 되는 이유도 보여줘야지.”
“흠…그건 그렇습니다. ‘특별함’이라… 설득이 될만한 씬이 하나는 있어야겠군요.”
그 말을 듣고, 유명은 오던 길에 만개했던 밤벚꽃이 떠올랐다.
“바깥은 어떨까요?”
“바깥요?”
“팬텀을 제한하는 게 어둠, 밤, 달빛도 있지만, 극장’내부’라는 것도 있잖아요. 화란이 이끌어 처음으로 ‘바깥’에 나가게 된다면요?”
아-
기감독이 번뜩-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옆에 있던 콘티의 뒷장에 악필을 마구 휘갈겼다.
“씬, 보자…38과 39 사이가 좋겠군. 38.5로 하고···
레슨이 끝나고 사라지려는 팬텀의 손을 덥석 잡는 화란. ‘안에만 있으면 갑갑하지 않아요? 같이 산책가요!’ 다른 제자들은 자신을 두렵고 어려운 상대로만 여겼었는데…화란의 발랄함에 당황한 팬텀. 망설이다 처음 바깥 흙을 밟는다. 꽃망울처럼 터지는 화란의 웃음소리와, 익숙치 않은 깨끗한 공기.”
펜이 빈 종이를 달리는 기세에, 유명이 박차를 가했다.
“밤의 벚꽃 배경이면 더 분위기가 살지 않을까요? 전체적으로 연습실과 극장 모두 다 사각의 딱딱한 배경들이니까, 한 장면만 덧없는 꿈같이 몽환적인 분위기로.”
“오오- 좋습니다. 벚꽃 아래서의 파드되!”
신난 기감독의 펜을 딱- 멈추게 한 것은,
“지금 찍으러가자! 오늘이 벚꽃 피크야!”
맥주 여러 잔에 볼이 불그레해진 최촬감의 더욱 신난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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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감이 과해요
“정말…지금 찍자구요?”
“삘 받을 때 찍어야지!”
“의상은요? 카메라는요? 조명은요?”
“연습실에 흰색 연습복 있잖아. 기본 메이크업만 세련이가 해주고, 카메라는 내가 핸드헬드(*손으로 카메라를 들고 촬영하는 방법.)로 찍고, 텅스텐 라이트 한두개 가져가면 돼. 반사판은 감독이 들고, 하하.”
세련의 질문에 최촬감이 쉽게 쉽게 답을 냈다.
처음엔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했는데…분위기가 점점 무르익는다.
“오오. 재미는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영상퀄이 쓸만한 정도로 나올까요?”
“야간이라 환하게 잡을 건 아니니까. 그리고 어차피 몽환적인 장면이잖아. 편집할 때 효과 먹여서 보정 좀 하든가.”
“음…부족하면 다시 따더라도, 한 번 찍어볼 가치는 있는 것 같습니다.”
기감독도 동의했다.
이번엔 유명이 물었다.
“장소는요?”
“밤벚꽃이라면 봐둔 장소가 하나 있지. 딱 올해 지나면 땡인 로케이션이야.”
“왜요?”
“그 동네 재개발 들어가거든. 한 번쯤 찍고 싶었던 장소인데 잘 됐어.”
이야기가 급속도로 전개되었다.
유명과 세련은 연습실로 돌아가 의상과 분장을 준비하기로 했고, 감독과 촬감은 서브카메라와 간이조명을 공수해오기로 했다.
둘 다 술을 먹었기에, 잠들었던 조감독까지 졸지에 합류시켜 운전을 맡겼다.
1시간 후 그들이 도착한 곳은, 철거가 완료되어 인적 하나 없는 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