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69
1이 늘어났다면, 3을 받음으로써 동률.
동률일 때 신체의 사용권이 누구에게 갈 지는 그야말로 ‘의지’에 따른다.
나름 연귀는 유명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려고 한 것이었다.
그런데…어째서···?
1년간 존재감이 1을 초과하여 늘어났다고? 그게 인간의 힘으로 가능한 일인가···?
연귀의 목소리가 쨍-하니 날카로워졌다.
{…방금 알림창에 ‘네’ 존재감 몇이었냥?}
“어? 글쎄…기억이···네가 확인하면 되지 않아?”
유명이 급변한 미호의 분위기를 보고 말을 사렸다.
왜인지 모르지만, 미호는 자신의 존재감 수치를 직접 확인할 수는 없는 모양이다.
그리고, 그 정보를 지키는 것,
그것이 중요할 것이란 예감이 언뜻 유명의 무의식을 스쳤다.
그의 표정에 경계가 어리는 것을 보고, 미호가 다시 언성을 죽였다.
{그러넹. 컁. 거래 끝났으니 연기 연습이나 해랑.}
연귀는 더 이상 자신의 표정이 들키지 않도록, 방을 휙 빠져나갔다.
*
“컷! 수고하셨습니다!!”
와아아아–
기감독의 얼굴에 놀라움과 감격이 넘쳐흘렀다.
2주 간의 말미를 받아간 그의 배우는, 기대를 훌쩍 뛰어넘은 결과물을 가지고 왔다.
“이 장면…전체를 웨이스트컷 이상으로 다시 따야겠는데요, 감독님?”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감독과 촬감이 다시 콘티를 붙잡고 논의했다.
원래는 풀샷과 웨이스트컷, 클로즈업을 섞어쓰려던 씬이었다.
그런데, 대역배우의 몸과 붙이면 이 분위기가 살지 않을 것 같다.
차라리 이 부분은 발레의 기술적인 부분은 덜 보여지더라도, 유명의 상반신만 찍는 게 낫다.
“화란이 어깨 걸고 찍는 것도 하지 말아야겠어요.”
“네, 여주에게 시선이 가죠?”
꺼질 것 같은 존재감의 ‘유령 지젤’을 춤추는 팬텀.
화란이 팬텀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어깨를 걸고 찍는 컷이 촬영계획에 있었었다. 그리고 지금 그 컷이 삭제되었다.
중앙에서 춤추는 팬텀보다도, 걸린 어깨에 시선이 갈 것 같아서.
그 정도로 보는 사람의 눈초점이 자기도 모르게 흐릿해지는, ‘유령같다’는 표현이 적합한 연기.
하지만 그렇기에, 사라질 듯이 아름답다.
“34에 7에 2-”
“레디- 액션!”
다시 걸리는 것 없이 온전히 팬텀을 중앙에 두고 춤만을 담자, 홀릴 것 같이 어스름하게 춤추는 팬텀의 모습만이 화면에 나부낀다.
춤이 끝나고,
“이렇게 지젤의 2막은 움직이는 소리마저 들리지 않을 것 같은 스산함을 표현해줘야 해.”
화란에게 다시 가르침을 내리면서, 부활하듯이 가득 공간을 메우는 팬텀의 존재감.
그 갭은 그야말로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오가는 팬텀다워서, 다들 시선이 박제된 듯 모니터 화면에서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기감독님, 이거 진짜…사고 한 번 칠 각인데요?”
최촬감이 꿈을 꾸듯이 부푼 목소리로 말했고,
“그러게…말입니다.”
기감독의 목소리 또한 떨렸다.
그리고 세련은, ‘비전문가의 지젤’에 크게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저런…지젤이라니…’
*
붉은 립스틱을 지웠다.
화려한 외출복을 밋밋한 레오타드로 갈아입는다.
긴머리를 둘둘 말아 머리 꼭대기에 둥글게 얹고 망을 씌워 고정한다.
‘결국···’
거울 속에 있는 것은 익숙한 맨 얼굴.
발레를 할 때는 추운 날에 미니스커트는 절대 입지 않았다. 근육을 항상 따뜻하고 부드럽게 유지해야 연습 중에 부상당하지 않았으니까.
그 때는 화려한 화장이, 멋을 부린 옷들이, 토슈즈를 신어야 하기 때문에 절대 할 수 없는 페디큐어가, 그렇게 예뻐보였다.
-발레를 안 하니까 이건 할 수 있네.
그렇게라도 위안하려고, 세련은 최대한 화려한 치장을 하고 다녔다. 그러면 그녀가 기운을 차린 줄 알고 아빠가 좋아하시기도 했다.
막상 해보니 별로 즐겁지도 않았지만.
연습복을 입은 세련이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2년 전 은퇴한 사람같지 않게 다리가 유연하게 주욱 찢어진다. 끝에서부터 하나하나 분절된 척추가 한계까지 길이를 늘려 바닥에 달라붙는다.
-연습을 쉬지 못했다.
은퇴했다는 걸 받아들이자고 생각하면서도, 하루도 연습을 거르지는 못했다.
상실감에 잠이 들지 못하는 긴밤 내내 자신의 몸을 괴롭혔다.
만들어온 몸이 사라지는 게 아까워서.
-아니아니, 핑계다.
만에 하나, 결심이 섰을 때…몸이 망가져 있으면 다시 시작조차 할 수 없을까봐.
그를 처음 만난 날도,
그렇게 한숨 자지 못하고 밤을 새워 몸을 혹사했었다.
세련은 다 풀린 몸을 가누어 바닥에 정좌하고, 오늘 낮에 본 지젤을 떠올렸다.
턴을 돌 때 공기를 스치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듯이, 공기처럼 가벼운 지젤.
아무리 그것이 ‘연기’라지만, 분하다.
지젤은 발레리나의 것.
수백 수천번이나 지젤을 연습해온 그녀로서는 역시···
‘내가 더 잘 표현할 수 있어···!’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세련은 오른발을 조심스레 들어 발끝을 굽혔다 폈다.
발바닥을 주욱 늘렸다가 오므린다.
갑갑할 정도로 천천히.
이미 닳아서 끊어진 인대는 재생불가 진단을 받았다. 보조적인 근육과 인대를 단련해서 대체하는 수 밖에 없다.
열심히 달리면 결승점이 있다는 보장조차 없는, 느리고 지루한 마라톤.
그녀는 그 여정에 첫 발을 딛기 시작했다.
샤아아-
밤바람에 사과향이 실려온다.
캐모마일.
흔히 심신을 안정시키는 차로 애용되는 이 풀의 꽃은 사과향이 나며, 여린 생김새와는 달리 추위에 강해 잡초처럼 잘 자란다.
그래서 이 작은 풀꽃의 꽃말은
‘역경에 굴하지 않는 강인함’
새하얗고 한없이 여려보이지만 사실은 강인한 캐모마일이,
새 움을 틔우기 위해 발버둥치기 시작했다.
*
“큰일났습니다!”
기감독이 뛰어 들어왔다.
“왜요?”
“감독님, 무슨 일 있어요?”
그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혜…혜···”
“혜?”
“혜전당 섭외됐습니다!!”
“네??”
“혜전당에서 기획하는 청년예술가지원사업에 저희 콘티를 넣었는데, 발레극장 공연 찍을 로케이션, 혜전당에서 빌려준다고 합니다.”
“우와아!!”
함성이 쏟아졌다.
벌써 6월. 촬영도 2개월이 넘어갔고, 내부세트에서 찍는 씬들은 얼추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다.
남은 것은 오로라 발레단을 섭외하여 찍는 극장공연 씬들이었다.
영화 내에선 ‘국립오페라극장’으로 표현되는, 실존하지 않는 장소.
그 로케이션 섭외가 잘 되지 않아, 조금 좁은 것이 아쉽지만 오로라 발레극장에서 촬영하기로 했었는데, 기쁜 소식이 들려온 것이다.
“혜전당이 공연들 심사도 까다롭지만, 영화 로케이션 허가도 쉽게 안 내주는 걸로 유명합니다. 나름 예술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작품들에 한해서 일년에 한두편 내줄까 말까한데, 시나리오가 마음에 든 모양입니다.”
기도한이 세련을 쳐다보었고, 세련이 쑥쓰럽지만 기쁜 웃음을 지었다.
“혹시 수전당인가요!”
유명의 질문에 기도한이 아쉽게 고개를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