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78
‘앞으로 더 조심해야겠네···’
그나저나 골때리는 사람이다.
잘 풀려서 오디션 기회를 얻게 되어도, 지정연기 부분의 쪽대본이나 줄 줄 알았지, 1, 2화 시나리오를 통째로 넘길 줄은 몰랐다. 자신을 어떻게 믿고···
하지만 덕분에 보물을 손에 넣은 기분이다. 유명은 기쁜 마음으로 대본을 펼쳤다.
재미있게 봤던 작품이고, 인터넷 발전의 힘으로 재탕까지 했던 터라 머리 속에 아직도 장면들이 선하다.
그것이 대본 속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어떻게 표현되어 있을 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팔락-
대본의 첫 장이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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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타기획사 정문 앞
거대하고 현대적인 건물. 위압적인 건물을 앙각(*카메라가 아래에서 위로 향함)으로 올려다본다. 화면 돌아가면 대조적으로 하이앵글에서 내려다보여 작아보이는 사람. 어색한 정장을 입고 있다.
하나 와…여기가 스타 기획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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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의 눈이 붙박힌 듯 대본에 고정되었다.
가끔 침을 꿀꺽 삼기는 소리와 대본이 팔락팔락 넘어가는 소리만 들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권의 대본을 모두 읽어치운 유명이 그제서야 숨을 돌렸다.
휴우-
이런 대본이었구나…확실히 대본이 재미있다.
육미영 작가. 드라마 배역들의 캐릭터를 잘 부여하기로 유명하며, 이미 전작 3편을 연달아 히트시키고 인기 작가 반열에 오른 사람이다.
특히 보형 역.
유명은 드라마에서 보형 역의 대사와 행동을 보고 재밌는 역일 거라 상상만 했을 뿐이지만, 아직 역이 실체화되지 않은 대본 속의 보형은 더욱 매력적이었다.
유명은 대본에서 ‘캐릭터’에 대한 단서를 세 가지에서 유추할 수 있었다.
-작가가 지문을 통해 캐릭터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
[보형 신기한 얼굴로 의류수거함을 뒤진다.]-다른 등장인물들이 대사를 통해 자신의 캐릭터에 관해 얘기하는 것.
[저 모자, 구C거고, 신발은 돌C거 맞지? 그런데 차림새는 웬 거지같은 게···]-그리고 자신의 캐릭터가 직접 취하는 대사나 행동.
[하나야! 우리 집 망해서 나 쫒겨났어, 엉엉.]이를 취합해보니 작가가 그린 보형의 느낌은 아주 선명하며,
그것이 보형 역의 배우가 그려낸 느낌과는 질감이 확연히 다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붓이 쥐어진다면···
‘보형의 매력을 120% 살려서···’
같은 샘플을 주고 그려보라고 해도, 붓을 쥔 자의 터치에 의해서, 붓을 쥔 자가 가지고 있는 물감의 질에 따라서 나오는 그림은 확연히 다른 법.
슬슬 몸이 달아오른다.
유명은 한 대사마다 공을 들여, 보형의 캐릭터를 키워내기 시작했다.
오디션은···
앞으로 2주 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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빽없고 경력짧은 배우의 최선
미호가 돌아왔다.
{잘 있었냥?}
‘어. 일은 잘 해결됐어?’
{응. 별 일 아니당.}
이불 속에 누워 있던 유명이 일어나 앉았고, 미호가 이불의 틈새로 파고들어온다.
꼼지락꼼지락-
{나 맥주 마실랭.}
‘그럴래?’
다행히 아무렇지도 않다.
미호의 말투는 다급히 떠나던 때의 쨍한 말투도, 한동안 시무룩할 때의 의욕없는 말투도 아닌 평소처럼 돌아와 있었다.
유명이 조심스럽게 미호의 귀를 쓸었다.
{컁. 간지렁! 흐헹헹.}
예전같은 반응이다. 간지러움을 쫒듯이 긴 귀를 나풀나풀 거린다.
차가운 맥주에 귀를 대고 식히는 모습이 어쩔 수 없이 귀엽다.
조금 마음이 놓인다.
생각해보면 대단한 혜택이다.
38년간 시달려왔던 생기부족을 단 번에 해결해주고도, 15년의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보내주었다. 그냥 선심쓰는 수준으로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뭔가 대가가 있어도 어쩔 수 없겠지.
단, 지금 당장 옛다 하고 모든 것을 내주기에는, 유명도 욕심이 많을 뿐이다.
다른 것은 아니고, 연기에 대한 욕심.
한 번씩 언급하는 ‘선계의 법칙’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공정해보여서 다행이다. 그리고 이 녀석은 보기보다 대단해보인다.
정체가 뭘까? 어쨌든 유명에게는 ‘은인’이기는 하다.
그렇기에 존재감이 몇인지 묻는 미호의 질문에 대답을 감춘 것이 조금은 미안했다.
{그 관심있다는 드라마, 어떻게 됐냥?}
다행히 다시 기분은 풀어진 모양이다.
‘캐스팅디렉터한테 프로필 보냈는데 연락와서 미팅했어.’
{오, 적극적인 태도 좋으당. 그랬더닝?}
‘그 쪽도 뭔가 사정이 복잡한지, 다른 역으로 캐스팅 보면 어떠냐고 하더라고. 그런데 그냥 그 역으로 보겠다고 했어.’
{왱?}
‘그 역의 연기가 달라지면, 드라마 자체가 더 뜰 수도 있을 것 같은 역이거든. 그런데 다른 역은 그 정도 캐릭터는 안 돼서.’
연귀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 녀석, 의외로 욕심이 있다.
{오디션은 언젠뎅?}
‘이제 딱 일주일 남았네.’
{이게 대본이냥?}
‘응’
한 줄기 바람이 불면서 유명의 손에 잡힌 대본의 책장이 파드득 넘어갔다.
{흠…이런 캐릭터구낭.}
그새 다 읽은 모양.
향수 공연 때 10분에 걸쳐 대본을 암기하는 걸 보고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사실은 인간인 척 ‘보여주기’였던 모양이다.
{너, 주변에 명품 좋아하는 친구 있냥?}
‘명품···?’
*
“어머 저 사람봐.”
“큭큭큭. 예능 찍나?”
“근데 저 시계는…X렉스 아냐?”
“에이 설마···”
KBK 드라마국.
복도를 지나가던 직원들이 한 남자를 보고 피식거렸다.
유명은 그 웃음에 아랑곳않고 대세미나실의 문을 열었다.
벌컥-
그의 모습에 다시 푸흡- 하고 몇몇이 웃음을 터뜨린다.
유명은 아까 앉아있던 자리로 돌아가서 가방을 내려놓았다. 준비해 온 의상을 갈아입었으니 입고왔던 옷이 거기에 들어있다.
넓은 세미나실에는 많은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배우들과 매니저들.
각 팀이 앉아있는 모습에 따라 관계가 보이는 것이 재미있다.
어느정도 인지도 있는 배우의 앞에는 로드로 보이는 어린 매니저가 대본을 휘저으며 부채질을 하고 있다.
저쪽 구석의 팀은 매니저의 나이대가 꽤 되고 옷이 번드르르하다. 급이 좀 되는 모양. 그 옆에 앉아있는 배우는 신인인지 그의 눈치를 흘끔흘끔 본다.
앗 저 사람은…전생에서 보형 역을 연기했던 배우이다.
“어- 신유명씨 왔네.”
한쪽 구석에서 참여자들을 체크하고 있던 이민정 디렉터가 유명에게 다가왔다.
“풉- 그게 뭐에요. 아…보형이 의상 구현해온 거?”
“넵.”
“이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깨네? 우리 과야. 흐흐.”
오디션에 임하는 배우는 배역의 컨셉과 맞춘 의상을 입고 가기도 한다.
그런데 유명이 준비해 입은 의상이 묘했다. 낡은 옷은 한쪽 팔이 떨어져나가 있다. 바지는 사이즈가 말도 안 되게 큰 것을 벨트가 엉거주춤하게 잡아주고 있는 모양새.
그런데 한쪽 팔이 떨어진 손목에 번쩍이는 시계는 X렉스다. 신발은 새것같은 돌C 신발을 번듯하게 신고 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컨셉일까.
“빽도 없고 경력도 미진해서요. 가능성을 높이려고 최선을 다해봤습니다.”
“육작가님 좋아하시겠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