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85
공기가 음악같이 둥실둥실 말소리의 주변에서 맴도는 것 같다. 거기에 감싸인 자신의 대사도 절로 느긋해진다.
“나 할머니랑 둘이 사는데…어디 아르바이트 해서 방 구할 돈이라도 벌때까지, 우리 집에 잠시 있을래?”
“저…정말? 하나야 고마워. 내가 이 은혜 꼭 갚을게. 고마워!!”
다음 씬은, 낡은 다세대 주택인 하나의 집.
“할머니! 나 왔어- 오늘 안 아팠어? 혼자 있으면서 밥은 꼬박꼬박 챙겨먹었어?”
“우리 하나 왔누. 할미 걱정은 말어. 그런데 이 놈은 누구여?”
하나 할머니 역의 노배우 이옥형이 낯선 인물에 경계하는 말투로 묻는다.
그 때,
“할머니이이이- 나 하나 친구! 할머니 얘기 많이 들었는데. 보고 싶었어!”
슈크림같이 사르르 녹는 애교넘치는 목소리.
이 놈, 남자 맞아?
깐깐하기로 소문난 원로배우 이옥형의 표정이 흐물흐물 녹았다.
*
‘너무 튀지 않나?’
주피디는 1화의 리딩이 끝나고 나서 보형역의 배우에게 지적을 하려고 했다. 뭔가 모르게 다른 배우들과 비해 톤이 돌출되는 느낌이었기 때문.
그런데, 육작가가 먼저 입을 열었다. 흥분된 기세로.
“보형이! 내 머리 속에서 생각하던 보형이가 그대로 튀어나왔어요!”
그녀가 과격한 칭찬을 토해낸다.
“그거, 그거 어떻게 한 거에요? 목소리 톤이 울렁울렁 그거.”
그녀는 운율을 그렇게 표현했다.
“지문에 ‘보형이 노래하듯 말한다’라는 표현이 여러 번 있어서요. ‘말’이라는 느낌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리드미컬하게 표현해 봤습니다.”
“제가 왜 그렇게 표현했는지 이해했어요? 보형이 캐릭터를 알겠어요?”
“제 생각에는, 하나의 ‘수호천사’같은 느낌이랄까요···”
“맞아, 그거에요!”
육미영이 무릎을 탁 쳤다.
주인공만 조명하는 드라마가 왕도이던 시대에서, 서서히 트렌드가 옮겨가고 있었다.
그녀는 주연은 아니지만, 서사의 한 축을 담당하는 매력적인 조연 캐릭터를 시도해보고 싶었고, 그것이 보형이었다.
‘연기 지망생’ ‘서민’ 김하나에게는, 두 개의 낯선 세계가 있다.
화려한 연예인의 세계와, 화려한 부유층의 세계.
그녀가 낯선 연예계에 진입하게 되는 시점에, 절대적인 부유층의 일원인 보형이 그녀의 삶에 끼어든다.
그는 헤매는 하나의 정신적 조언자이다.
연예계는 보형이 원래 속한 재벌계의 다른 버전 카피본이기에, 자신의 경험을 살려 하나에게 핵심을 찌르는 조언을 한다.
그는 무시당하는 하나의 물질적 지원자이기도 하다.
부족한 그녀의 경제적 사정을 몰래몰래 도와주며, 꿀리지 않는 차림새를 할 수 있도록 그녀를 챙겨주기도 한다.
즉 그의 역할은, 현실의 인물이지만 비현실적인 역할.
만능 집사. 혹은,
신데렐라에게 호박 마차를 마련해주는 할머니 요정같은 존재.
그래서 육미영은 보형을 설명하는 지문에 ‘노래하듯이’이라는 표현을 여러 번 넣었다. 하나와 보형이 마주앉은 순간엔 조금쯤은 비현실적인 그림이 나오기를 바라면서.
그렇게 쓰긴 썼지만, 그렇게 나오길 기대하진 않았는데···
“오디션 때도 좋았는데, 그 새 훌쩍 더 좋아졌네요.”
꿈꾸는 듯이 변해가는 작가의 표정과는 반비례하여, 리딩실의 공기는 바짝 날이 섰다.
그 자리에 앉은 모든 배우들과 스텝들,
특히 주연급 네 명에게,
유명의 첫인상이 선명하게 각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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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기
“배우가 되려는 남자의 첫 번째 난관이 미용실에 세 시간 이상 앉아있는 거예요. 오빠 화이팅!”
리딩이 끝나고 4일 후이자, 크랭크인 3일 전. 유명은 청담동의 미용실에 와 있었다.
코디 은수가 화이팅을 외친다. 오늘의 대작업을 잘 견디기를 응원하며.
리딩날 의상팀장과 회의를 마친 은수 왈, 염색과 펌을 하고, 붙임머리까지 붙여야 한다고 한다.
의류수거함에서 주운 옷을 입어도 귀티가 흘러야 하는 보형의 캐릭터상 세련된 스타일링은 필수.
“뿌리색 보이면 안 돼서 일주일에 한 번씩은 다시 염색하고 스타일 잡으러 와야 한대요.”
유명이 그 말에 괜찮다고 웃음을 보였다. 그에게 이런 번거로움은 아직까지는 기꺼이 감수할만한 일이다. 아마 한참 후까지도.
끝없는 세정, 세정, 세정.
장장 4시간에 걸친 작업 끝에 드디어 머리가 나오고,
“와, 쌤 진짜 최고다. 완전 상상하던 이미지 그대로!”
은수가 펄쩍펄쩍 뛰었다.
부드러운 밤색 머리에 자연스러운 컬이 귓가까지 웨이브진다. 눈썹까지 색을 맞춰 염색한 자신의 얼굴이 낯설어, 유명이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그 후엔,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붙었다.
“이 분처럼 특별히 튀는 부분 없이 깔끔하고 단정한 이목구비는, 메이크업하면 인상이 확확 달라져요. 배우로서 축복받은 얼굴이죠.”
10년 경력의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렇게 한줄 평을 남긴 후, 붓으로 얼굴을 터치하기 시작했다.
뭔가 촉촉한 것이 톡톡 퍼지며 스며들고,
커다랗고 간질간질한 붓이 얼굴 전체를 휘감으며 달린다.
삐죽삐죽한 작은 붓이 섬세하게 한 붓 한 붓 그리듯이 선을 긋고,
그렇게 수천번의 터치가 얼굴을 정교하게 다듬고 나면,
“우와…미쳤다. 오빠 눈 떠봐요.”
한참동안 감겨 있던 눈꺼풀을 느리게 들어올리고
눈부심에 어찔거리던 시야가 가라앉고 나자,
거울 속에 보형이 앉아 있었다.
*
회사에 들렀다.
“스타일 잘 빠졌네요.”
팀원 배정을 받은 날 이후로 유석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는 짧게 감상평을 남긴 후, 근황을 물었다.
“호철씨, 은수씨와는 합이 잘 맞아요?”
“네. 성격도 좋고, 일도 잘하시는 분들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리딩할 때, 한 방 날렸다면서요?”
그의 표현에 유명이 피식 웃었다. 출처는 누구일까, 백승효려나.
“그냥 열심히 했습니다. 그거밖에 할 줄 몰라서요.”
“궁금한 게 있는데-”
“네.”
“보형이 캐릭터 어떻게 생각해요?”
문실장도 그 배역을 주목하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니 오디션 장소까지 와 있었겠지. 그날 그가 데려왔던, 전생에 보형 역이었던 배우는 회사에서 유명과 마주칠 때마다 눈을 흘기고 지나가곤 했다.
“기존에 보기 힘들던 재미있는 배역이라고 생각합니다.”
“맞아요. 잘하면 주인공 이상의 신드롬도 일으킬 수 있는.”
“네. 그렇게 만들어야죠.”
그럴 생각으로 이 배역에 지원했다. 목적이 인기는 아니지만, 제대로 연기한다면 인기를 얻을 수 밖에 없는 캐릭터. 그런 역이 배우를 잘못만나 고꾸라진 걸 알고 있으니 욕심이 나서.
유명의 시원스런 대답에 유석이 감탄했다.
“신중한 성격 같은데, 연기에 한해서는 다른 사람 같단 말이야.”
혼잣말 같기도 한 그의 말을 유명은 못들은 척 했다.
“좀 재미있어졌는데, 내기 하나 할래요?”
“무슨 내기요?”
“시청률은 유명씨 역량으로만 결정되는 게 아니니 좀 그렇고, 기사에 ‘윤보형 신드롬’이라는 말이 등장하나 안하나로, 어때요?”
장난스럽게 얘기했지만, 조연이 신드롬이란 수식어를 얻을 정도로 화제가 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
하지만 승부욕을 자극받은 유명도 사양않고 대꾸했다.
“뭘 걸고요?”
“음, 유명씨가 이기면…면허 땄다고 들었는데, 차 어때요?”
캐스팅 건으로 이민정 디렉터와 통화했을 때, 유명은 면허를 따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후 문유석과 계약을 하게 되면서 로드매니저가 붙게 되었지만, 여전히 면허의 필요성은 유효했다. 촬영 중 운전을 해야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속성으로 면허과정을 밟았고, 바로 어제 따끈따끈한 면허증을 손에 넣었다.
‘차? 생각보다 규모가 크긴 한데, 워낙 어려운 게 걸려 있으니, 그 정도는 걸릴만도 하지.’
유명이 호기롭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질 경우 제가 걸 것은 뭔가요?”
“따라오세요.”
유명이 내기에 동의하자 유석이 사무실을 나섰고, 유명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지하주차장이었다.
삑-
경쾌한 신호음과 함께 번쩍번쩍 들어오는 것은, 휘황찬란한 은색 페라리.
“타고 다녀요.”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