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95
아니나다를까, 그 질문을 했던 기자가 꼬리를 만다.
“그럼, 동시간대 작품 중에 경쟁작으로 보시는 작품은 뭡니까?”
조금 가시가 줄어든 질문.
“변호의 품격은 특정 직업의 내부세계를 보여줄거란 점에서 저희와 공통점이 있고, 소울메이트는 진득한 사랑이야기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죠. 다들 좋은 작품들이어서 엎치락뒤치락 했음 좋겠군요. 제가 경쟁을 좋아합니다.”
경쟁을 좋아하되, 압도적으로 이기는 걸 좋아하겠지. 그의 호전적인 말투에 그와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난 유명이 슬쩍 웃었다.
방학피디는 그렇게 몇 가지 기사감을 남기고 풀려났다.
*
그리고 배우들에게 질문이 돌아왔다.
“백승효씨, 영화 에서 연기력을 인정받은 후 차기작에 대해 팬들의 관심이 지대했는데요, 이번 작품에 참가하신 특별한 연유가 있을까요?”
“일단 육미영 작가님의 지난 작품들을 재미있게 봤던 이유가 컸습니다. 대본을 받아본 후에는 제 배역의 아이덴티티가 ‘연기를 잘하는 배우’인 것을 보고 마음이 혹했구요. 저는 ‘권도준’을 연기하면서 ‘권도준의 배역’도 연기해야 하는데, 어느 하나라도 잘 연기하지 못하면 무척 우스워질 상황입니다. 그만큼, 도전욕구를 자극했고요.”
연기와의 승부에 당당히 출사표를 내던지는 모습이 꽤나 멋져서, 플래시가 와르르 터졌다.
“차하린씨, ‘‘김하나’는 실제 나의 모습과 닮아서 마음에 들었다.’ 라는 인터뷰를 하셨었는데 무슨 의미인가요?”
유명이 차하린을 넘어다보았다.
다행히 인터뷰도 카메라 모드에 포함되는지, 평소의 나무늘보같은 모습은 아니다.
“국민여동생이라는 과분한 호칭까지 받으면서 귀엽고 착한 역할을 주로 해왔습니다. 그런데 실망하실지도 모르지만, 제 실제 모습은 그렇지 않거든요. 욕심이 많고, 목표에 대한 악바리 근성도 있고, 억척스러운 면도 있는 보통 여자애, 그게 접니다. 하나가 그런 ‘현실캐릭터’이고 본인의 오롯한 힘으로 노력해서 꿈에 다가간다는 점이 무척 마음에 듭니다. 물론 하나에게도 ‘키다리 아저씨’는 있지만요.”
키다리 아저씨라는 표현에, 이번엔 유명에게 질문이 떨어졌다.
“육미영 작가님이 서면 인터뷰에서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이번 작품을 기획하며 주연들만큼 공들인 게 ‘보형’이라는 조연인데, 그걸 120% 소화해주는 배우를 만나서 무척 기쁘다고. 보형은 어떤 캐릭터이며, 어떻게 연기하고 계신가요?”
파바밧 터지는 눈부신 플래시에 눈을 감지 않으려고 애쓰며, 유명이 대답했다.
“방금 차하린씨가 ‘키다리아저씨’라는 표현을 했는데요. 뒤에서 하나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현대판 요정할머니같은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에게는 한없이 다정다감한 지지자의 모습을, 하나 이외의 세계에는 냉정한 심판자의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두 가지 모습이 제대로 분리되면서도 일관성을 잃지 않는 것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신유명씨는 최근 PIFF에서 수상한 라는 작품에서 우수한 연기력을 선보이며 세간의 관심을 받았는데요. 이 영화도 개봉이 얼마 남지 않았죠. 두 캐릭터가 비슷하거나, 혹은 너무 달라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지는 않을까요?”
기대했던 질문에, 유명이 미소를 띤다.
“발레리나 하이의 팬텀역과 보형역은 공통점이 많습니다. 여주인공의 조력자이자 스승으로, 그녀들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지요. 단, 그 접근 방식이 완전히 달라서, 헷갈릴 여지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한 명의 인간을 서포트하는 두 가지의 다른 방식을 비교해서 보시는 것도 재미있으실 것 같습니다.”
그 뒤로도 30분 가까이 많은 질문과 대답이 쏟아졌다.
그리고, 마지막 공통질문.
“본인이 맡은 배역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요?”
“도전. 처음에는 연기에 나중에는 여주인공의 마음에 지치지 않고 도전하는 남자. 도전이라서 도준이 아닐까 싶습니다.”
“보통사람. 특별히 예쁘고 멋진 여주인공이 아니라 그냥 보통사람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될 수 있고, 응원할 수 있는 그런 배역으로 남고 싶어요.”
“휴식. 늘 도전해서 피곤한 도준에게서 도망치고 싶을 때, 하나의 휴식이 되어주는 남자가 바로 규민 아닐까요.”
“유혹. 모든 것을 다 가졌지만 권도준을 못가져서 슬픈 여자. 권도준을 최선을 다해서 유혹할 건데 시청자분들까지 유혹당하지 않게 조심하세요~”
그리고 유명에게도 마이크가 돌아왔다.
“기회. 보형은 누구나 삶에 한번쯤은 올 수 있는 기회같은 존재입니다. 그걸 거머쥘 수 있는지는 그 때까지 살아온 삶에 달렸겠지요.”
기회.
그 기회를 잡고 선 한 사람으로서, 유명이 담담히 서술했다.
*
첫방날만큼은, 촬영을 일찍 접고 한 자리에 모였다.
“자 오늘은 팍팍 먹어요, 팍팍.”
고기가 자글자글 익어간다.
“지난 주 변호의 품격은 몇 프로 나왔다고 했지?”
피디가 조연출한테 슬며시 묻는다. 분명 소숫점 한자리까지 외고 있을텐데 모르는 척하는 게 분명하다.
“1화 15.6%, 2화 17.4%요.”
“괜찮았네. 우리는 20%만 넘자.”
“가볍게 그 정도만 되면 좋겠네요.”
유명이 그들의 허세를 보고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원생에서 어땠더라.
소울메이트는 잘 기억이 안나는 걸 보니 망했던 모양이고, 변호의 품격이 서서히 시청률이 올라가 주욱 1위를 차지했던 것 같다.
연예학개론은 딱 중박 드라마였다. 평균시청률 20%에 조금 못미치는, 괜찮았지만 대박이라고는 할 수 없었던 드라마.
이번엔 과연 어떻게 될까.
RRR-
전화기가 울렸다.
유명은 전화를 받기 위해 잠시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엄마]집이다.
“유명아~ 엄마야. 이제 드라마 시작 얼마 안 남았네. 보고 있어?”
“네. 피디님이랑 관계자들 다 모여서 밥 먹으면서 보고 있어요.”
“아빠 청심환 드셨다? 호호호.”
유명이 푸흡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청심환을 먹는다면 엄마였을 것 같았는데, 늘 무뚝뚝하고 조용하신 아버지라니.
입으로는 웃음이 터지는데, 가슴 속에는 뜨거운 것이 터진 것 같다.
이렇게 좋아하실 걸, 15년간 못해드렸다니.
“지연이는요?”
“인하네 집 갔어. 우리가 다 같은 티비 보고있으면 시청률이 안 올라간다고, 하나라도 더 많은 티비채널을 KBK로 맞춰야 된다나?”
시청률 집계방식은 따로 있는데…
그래도 고맙다. 다음에 만나면 너 때문에 시청률 앞자리 수가 달라졌다고 고오맙다고 말해줘야지.
“오늘은 집에 가서 잘게요.”
“올 수 있어??”
“첫방이라 촬영 일찍 접었거든요. 회식 끝나고 늦더라도 집에 가서 잘게요. 내일 오랜만에 제 촬영 없으니까 2화는 같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머, 뭐해놓지. 드라마 끝나자마자 음식해 놔야겠다.”
“된장찌개면 돼요.”
유명이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가족과 통화하니, 청심환을 삼킨 것처럼 두근거림이 가라앉는다.
‘꼭 성공하지 못해도 괜찮아. 즐겁게, 최선을 다한 연기를 하고 있고, 원생에 잃었던 가장 소중한 것까지 되찾았으니까.’
유명은 그런 홀가분한 마음을 가지고 자리로 돌아왔다.
“보형아 얼른와~ 시작한다!”
-연예학개론-
-1화-
타이틀이 뜨고,
그들이 지난 두달간 찍어온 장면들이 완성본이 되어 화면에 떠오른다.
하나의 입사.
도준과의 만남.
도준과 기획사 사장의 싸움.
싸움에서 패배해 하나를 로드매니저로 받아들인 도준.
못견디고 스스로 나가게 만들겠다고 다짐하고 하나를 괴롭히는 도준.
하루종일 시달리고 너덜너덜해져서 귀가 중에 혼잣말로 도준을 욕하는 하나.
그리고,
“하나야.”
꿈결같이, 노래같이,
보형이 등장했다.
*
“와 보형이 카메라 잘받는데.”
누가 한 마디 감상을 툭- 흘렸다가 눈총을 받고 입을 닫았다.
고기 익는 소리가 잡음으로 들릴 정도로 다들 집중해서 티비만을 노려보고 있다.
보형의 등장과 함께 조명되는 하나의 가정사정.
다음날도 다다음날도 하나를 괴롭히는 도준.
힘들어보이는 하나에게 연민을 느끼는 규민.
그리고, 점점 심해지는 도준의 갑질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하나가 외친다.
“권도준씨, 제가 볼품없고 가진 것도 없고 당신 음료수 심부름이나 하고 있지만, 나도 사람이야! 사람이라고!”
하나의 절규를 클로즈업하며 화면이 멈추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다.
그리고 예고편.
“개 같은 게···”
“선생님, 다시…다시 하겠습니다.”
“하나씨…얼굴이 왜…무슨 일 있어요?”
초반부터 갈등관계가 빠르게 전개되는 육작가의 스타일대로, 2화 예고편부터 파란만장하다.
그렇게 예고편까지 끝나고 나서야 모두는 숨을 몰아쉬었다.
하아아–
“저희 거라서 재밌는 거…아니죠?”
조연출이 슬쩍 운을 떼었고,
“저도 재밌는데요.”
“저도요.”
“편집 제대로 들어가니까 장난 아니네요. 긴박감…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