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97
다음 씬에서, 보형은 도준과 일대일로 대면한다.
“흐음…배우의 본분은 연기이고, 사람의 본분은요?”
“네?”
보형은 권도준의 자신감을 뿌리부터 쥐어 흔들었다.
“봐요. 껍질만 보자면 나는 ‘너’한테 반말해도 되는 사람인데, 존대말 쓰고 있잖아요?”
보형의 오만한 대사가 뱉어졌을 때,
카메라가 클로즈업한 것은 화자가 아닌 청자 권도준이었다.
자존심이 하늘 꼭대기에 닿은 배우.
늘 떠받들려 온 그가 느끼는 참담한 굴욕감.
그럼에도 덤비면 안 된다는 것을 알기에 반박하지 못하고 입술을 짓씹는 모습.
하아-
보던 지연이 한숨을 내뱉는다.
인과응보라는 걸 알면서도 안타깝게 여겨질 정도로,
자존심을 숭덩 베인 것이 여실하게 느껴지는 탑배우 권도준의 모습.
남자주인공을 초반에 이 정도로 바닥에 짓뭉개는 드라마가 있었을까.
육미영 작가가 이런 무리수를 쓸 수 있었던 건, 이렇게 된통 깨진 권도준이 다시 조각을 맞추고 존재감을 부풀려서 시청자의 사랑을 받을 때까지, 시청률을 견인해줄 캐릭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초반부에 빛을 발하는 한 조연의 존재.
이 장면에서 권도준이 안타까우면서도 보형이 비호감이 되지 않은 것은, 그야말로 연기와 편집의 절묘한 균형이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때부터 권도준이 달라졌다.
“선생님, 방금 어땠습니까.”
“다시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더 하겠습니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배우는, 연기에서 자존심을 찾으려는 듯이 연습에 몰두한다.
원래도 연기파 배우로 이름난 권도준이다. 그런 그가 심혈을 기울여 캐릭터를 깎아나가는 모습은, 상처를 핥아 치료 중인 맹수처럼 안쓰럽고도 절박한 그림으로 비추어졌다.
‘과연, 20대 중 손꼽히는 연기력으로 인정받을만한 배우···’
유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백승효 본인도 언급했던 바지만, 권도준 역은 연기력에 자신이 없으면 쉽게 도전할 수 없는 배역이다.
작중 탑배우라는 설정에 미치지 못하는 연기를 보이면 ‘저게 무슨 탑배우야.’라고 비웃음을 당하기 십상인 배역.
그럼에도, 백승효의 권도준은 충분한 설득력이 있어, 과연 좋은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원인은 모르겠지만 그의 연기는, 유명이 기억하는 원생의 것보다 더 좋아져 있었다.
“권도준배우 로드매니저 김하나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런 배우를 서포트하는 하나의 매력이 2화에서 터진다.
촬영 때문에 하게 된 익숙지 않은 승마로 꼬리뼈가 욱신거리는 도준, 밴에 오르니 자리에 어느새 푹신한 방석이 놓여있다.
김밥은 그가 싫어하는 단무지를 빼고 주문해오고, 커피도 까다로운 그의 취향을 정확히 저격하여 준비해둔다.
촬영장에서도 그녀의 주변은 늘 웃음꽃이 핀다. 도준에 대한 평가마저 좋아질 정도로.
처음에 그는 ‘그녀가 자신을 좋아하나’라는 오해를 하기도 하지만,
김하나의 태도는 탑스타인 자신에게도, 무명의 엑스트라에게도, 길에서 폐지를 줍는 할머니에게도 언제나 같음을, 조금씩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배려심.
타인의 성격과 주변상황을 세심하게 눈에 담고, 불편하지 않게 만들어주는 고운 천성.
그런 그녀를 보면서 그는 필연적으로, 불쾌했던 ‘그 말’을 떠올리게 된다.
‘알맹이의 퀄리티라는 건 저런 걸 말하는 건가···’
그리고, 현장에서 갑자기 펑크난 단역에,
“젊은 여성이면 좋겠는데…아, 딱 저런 느낌의.”
“…네? 저요?”
하나가 지목되면서, 2화가 끝났다.
그리고···
가족들의 시선이 유명에게 모였다.
감탄과 자랑스러움을 가득 담고.
“오빠…”
태풍의 돛
————– 64/74 ————–
“오빠…”
“응?”
“백승효 싸인좀.”
엄마가 바닥에 앉아 쇼파에 등을 기대고 있는 지연의 등을 찰싹 때렸다.
“너는 애가···”
“장난이야. 와, 근데 우리 오빠는 장난 아니네. 나 소름 돋은 거 알아? 태어나서 처음으로 진심 오빠라는 마음이 들었다.”
분위기가 갑자기 훈훈해지면서, 손발이 소멸되고 있는 것 같다.
유명은 입을 꾹 닫고 지연의 시선을 마주보았다.
“아 물론 보형이 말이야. 보형오빠라고 부르고 싶다···”
훈훈한 분위기가 1초만에 다시 돌아갔다.
“유명이가 제일 잘하는구나.”
아버지는 조금 먹먹한 얼굴을 감추고 허허 웃으셨고,
엄마는 소녀처럼 얼굴이 발개지셔서 칭찬을 거듭하셨다.
RRR-
그리고 엄마의 전화기가 요란하게 울렸다.
“이 시간에 누구- 어머 민수 엄마! 응, 봤어? 응…그러게 곧잘 하네.”
엄마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지연이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귓말을 한다.
“엄마 애증의 베프야. 볼때마다 아들 자랑을 어엄청 하시거든. 이제 복수의 때가 도래했도다.”
“크큭···”
“오빠 근데···”
지연이 자발적으로 오빠라고 하니 불안불안하다.
“뭐?”
“그래서 3화에 어떻게 돼? 하나 저 배역 따? 그리고 빵 하고 터져서 바로 스타덤에 오르는 거야?”
“나도 몰라.”
“모르긴 뭘 몰라. 5화까지 찍어놨다며!”
“내 입이 찢어져도 말할 수 없다!”
“아 궁금해. 일주일을 어떻게 기다려!”
지연이 이 정도로 궁금함에 몸부림치는 걸 보니 진짜 재미있는 것은 맞나보다.
슬슬 2화 시청률도 기대되기 시작했다.
*
2화가 방영되기 1시간 전인 8시 45분.
인터넷 커뮤니티 [갓네임드]
시샵은 하루만에 가입한 인원수를 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역시 원석을 알아보는 나의 눈이란.’
그녀는 나이는 많지 않았지만 연예인 팬질 이력 10년차의 프로였다.
백승효 때문에 보기 시작한 드라마지만, ‘그’가 나온 순간 시선이 고정되었다.
부드럽고 우아한, 마치 혈통높은 고양이같은 움직임. 노래하듯 공기 중에 번져 나가는 말투. 의류수거함에서 주운 거적때기를 몸에 두르고 있어도 빛이 나는 아름다움.
그녀는 홀린 듯이 커뮤니티 사이트에 [카페만들기]를 클릭했다.
그 때, 방송 중에, 만들지 않았으면 최초 팬카페 타이틀을 빼앗겼겠지.
그녀는 검색창에 ‘신유명’ ‘윤보형’을 검색하고 나오는 몇 개의 다른 신생카페들을 확인하고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회원수: 351명.
무명 연예인의, 만들어진지 만 하루가 채 안 된 팬카페라기에는 상당한 회원수다.
지금도 급속도로 늘고 있고.
게시물 03 [보형아, 누나가 심장이 많이 아ㅍr···]
어제 보형이 해맑은 거 보셨어요?
보형이 할머니한테 애교부리는 거 보셨어요?
보형이 고양이랑 눈 마주치는 거 보셨어요?
살려주세요···
└저도 어제 다친 것 같아요. 후시딘 공동구매 되나요···
└저만 그런 게 아니었군요. 이렇게 샤방샤방하다니 아이돌 연습생 출신 아닐까요?
└보형이 키우고 싶다. 내가 월급 다 털어서 맛있는 거만 먹여줄 수 있는데···
게시물 16 [보형이 1화에서 의상분석]
안녕하세요. 패션전공자입니다.
어제 드라마를 보면서 제가 의문을 감출 수 없었던 것은! 도대체 얘의 정체가 뭐냐는 겁니다.
첫 등장에서 다 찢어진 옷 입고 나타났을 때, 신고 있던 신발이 무려 G사의 신상으로 60만원대! 손에 아무렇게나 묶어놓은 저 매듭은 C사의 미니스카프로 30만원 전후. 집나왔다며 끌고오는 캐리어는 또 R사의 70만원대!
이거 그냥 협찬인가요? 아님 심각한 복선이 있는 걸까요?
물론 중요한 것은, 그 비싼 아이들이 미친듯이 잘 어울린다는 거지만요.
└전공자입니까 쇼핑광입니까?
└설마 그 찢어진 남루한 옷들도···?
└아뇨 그건 아니에요. 그건 진짜 주운 옷인 듯.
└와 궁금하네요. 예고편에서 개같은 게 할 때 표정보셨어요? 얘 뭔가 반전이 있는 듯···
시샵은 카페를 대충 다 훑어본 후, TV를 켰다.
9시 45분. 본방사수다.
2화에서도 보형은 그녀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와…이 배우 진짜···’
시샵은 드라마가 끝나자마자 다시 팬카페로 눈을 돌렸다.
진정한 애완남이 나타난 것인가 들끓던 카페의 분위기는, 2화가 방영된 후 반전되었다.
밀려들어오는 신규 회원들과 함께.
게시물 74 [기르고 싶다는 말 취소···]
길러지고 싶다···
내가 보형이 애완동물 하고 싶다···
사료만 줘도 기쁘게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님 저임? 잃어버린 내 영혼의 반쪽?
└오늘 보형이 반전매력…하아. 오늘은 제 나이를 망각하고 오빠라고 불러보고 싶네요.
└이런 배우가 왜 이때까지 안 알려졌을까요?
└사료를 달라니 이런 사치스런 요구를! 저는 사료 제가 지참하겠습니다.
게시물 92 [하나야 정신차려라]
바로 옆에 저런 완벽남이 있는데 왜 성격파탄 도준이임?
정신차려라. 언니도 어릴 때 나쁜남자한테 많이 빠져봤는데…하아.
인생 쉽게가자 쉽게.
└음…근데 솔직히 도준이도 좀 멋있긴 하지 않아요? 백승효 어깨며…연기몰입하는 거 하며.
└노선을 분명히 하시죠. 연기입니까 어깨입니까.
└근데 보형이는 아예 천상계 같아서 인간이랑 안 엮일 듯···.물론 사심입니다.
└재벌 회장 손주가 왜 저러고 있을까요. 무슨 사연이 있겠죠?
└겨이같은놈. 이거 유행어될 듯요. 계 발음 어려우니까 겨이같은!
쏟아지는 글들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던 카페시샵은 공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게시물 107 [[공지]팬카페 운영진 모집합니다]
저희 [갓네임드]는 인터넷 커뮤니티로 만족하지 않고, 열심히 활동하여 배우 신유명님의 정식 팬클럽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예정입니다.
그 초석을 마련하기 위해 운영진을 마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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