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o Hunting With My Clones RAW - Chapter (111)
‘내 팬들이라고?’
상우는 당황스러웠다.
연예인도 아닌 자신이 팬이 있다는 사실이 말이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사람들은 엄연한 현실이었다.
‘아는 척은 해줘야겠지.’
원래는 분신 20호를 바로 아공간에 집어넣어 훈련소를 떠날 계획이었다.
그런데 눈앞에 팬들이 있는 상황에서 외면할 수도 없는 노릇.
상우는 팬들이 있는 곳을 향해 다가갔다.
그러자,
“와- 미친 존나 잘생겼어!”
“꺄아아아악! 오빠아아아!!!”
“악수 한 번만 해주세요! 형!”
“정상우 씨, 오늘 퇴소하셨는데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순식간에 상우를 둘러싼 팬들, 그리고 그 사이에 끼어 있던 기자들까지.
수십 명의 사람들이 상우를 두고 이말 저말 떠들기 시작했다.
혼란스러운 틈을 타 상우의 몸을 더듬는 팬들까지 있을 정도였다.
“하하, 여러분, 잠시만요. 진정하시고….”
하지만 팬들은 말을 잘 듣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혼란스러움만 가중될 뿐이었다.
그래서 상우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배리어]
상우의 몸 주변으로 구형의 방어막이 생성되며 사람들을 밀어냈다.
“어?”
“스킬이다.”
“이거 딱딱해. 완전 신기.”
갑작스레 밀려났지만 기분은 안 나쁜지, 오히려 배리어가 신기한지 만져보는 여고생 팬들이었다.
대부분의 팬들은 갑작스러운 배리어에 드디어 좀 진정을 한 눈치였지만.
상우는 팬들과 기자들을 향해 말했다.
“여러분 잠시 주목해주세요!”
그러자 웅성거리던 잡음들이 줄어들고 모두 상우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상우는 짧은 헛기침을 하고 말을 이어나갔다.
“모두 저를 보기 위해 여기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너무 당황스러운데요. 그래도 제가 좋다고 이렇게 와주셔서 너무 감사한 마음입니다. 저 같은 게 뭐라고 이렇게 좋아해 주시다니… 하하.”
“아니에요. 형이 진짜 최고에요!”
“오빠 멋있어요!”
상우의 겸손한 감사 인사에 응원하는 팬들.
그리고 그 모습을 기자들이 카메라로 담아냈다.
찰칵- 찰칵-
“그럼 제 소감은 여기까지였습니다. 앞으로 저를 좋아해주시는 여러분들 실망시켜드리지 않도록, 더욱 훈련 열심히해서 A급을 넘어 S급 헌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와-!!!”
“S급 가즈아~!”
팬들과의 미팅은 처음이었기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그렇게 소감을 끝으로 대충 마무리 하려는 상우.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오빠 사인해주세요!”
한 소녀팬이 다가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사인북과 마커를 들이밀었다.
상우의 동공이 흔들렸다.
‘사인? 나 사인 없는데.’
입소할 때도 훈련병 동기들이 사인해달라고 해서 그냥 이름을 정자로 적어준 게 전부였다.
정식 사인이라고 할 만 한 건 아직 없었다.
“어, 사인?”
“네, 사인이요.”
환하게 웃는 소녀팬의 얼굴을 보자 겨우 이름 정자를 적어주기에는 왠지 자존심이 허락지 않는 상우.
그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좋아. 사인을 하나 만든다.’
그것도 제대로 말이다.
사인을 만드는 시간 동안 시간을 끌어야 했다.
상우는 기지를 발휘하여 입을 열었다.
“아, 사인은 잠깐만요. 혹시 여러분 식사하셨어요?”
“아니요~”
“안 먹었어요.”
“배고파요!”
밥 먹었냐는 물음에 왠지 기대감을 품고 큰 소리로 대답하는 팬들.
마침 때는 막 12시가 되는 점심시간이었기에 당연한 귀결일 터였다.
상우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아직 식사 안 하신 분들 저랑 점심이나 드실래요? 제가 쏩니다.”
“진짜요?”
“와-! 갈래요!”
“저도요!”
밥을 쏜다는 소리에 신난 팬들.
“요 앞에 괜찮은 식당 있으려나. 자, 모두 따라오세요.”
상우는 그들을 데리고 육군훈련소를 빠져나와 근처에 보이는 고깃집으로 향했다.
잠깐 사이에 검색을 마쳐 그나마 이 식당이 괜찮다는 걸 파악한 뒤였다.
‘좋았어. 밥 먹는 걸로 시간 끌었고.’
그와 동시에 상우는 인터넷을 통해 서명 제작 사이트를 찾아 서명을 의뢰한 상태였다.
‘이런 이거 좀 딜레이가 걸리겠는데. 지금 당장 필요한데.’
하지만 의뢰를 넣는다고 바로 뚝딱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이럴 땐 오히려 인터넷보다는 직접 방문하는 게 빠를 터.
상우는 분신을 움직여 서명 제작 업체의 주소지로 보냈다.
서울에서 레이븐과 훈련하던 분신이 훈련을 하다말고 뛰쳐나와 바람처럼 쏘아졌다.
파아아앙-
포탄이 날아가는 것처럼 쏘아진 분신.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서명 제작 업체에 도착하였다.
업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그들도 점심시간이었는지 배달음식을 시켜서 먹고 있는 직원들이 보였다.
“저기, 서명 제작 얼마나 걸리죠? 급해서 그런데.”
분신, 아니 상우가 다급히 얘기했다.
그러자, 입에 밥풀을 묻힌 대표로 보이는 사람이 몸을 일으켰다.
“네, 고객님 결제만 되면 금방 해드립니다. 언제까지 해드리면 될까요?”
“지금 당장요.”
상우가 급한 기색 그대로 얘기했다.
“아, 지금 당장은 어렵습니다. 의뢰가 좀 밀려 있어서….”
“그 의뢰 비용이 얼마인데요?”
“그게 도형이나 컨셉에 따라 다릅니다. 일반 결제 서명의 경우 5만 원 정도고, 연예인 서명 같이 복잡하고 화려한 건 15만 원 정도 받습니다.”
“그럼 전 100만 원 드릴게요. 지금 바로 해주세요.”
두 배도 아니고 거의 5배라니.
상우가 부른 금액에 사장의 입이 떡 벌어졌다.
“배, 백만 원이요?”
“예. 지금 가능하죠?”
“아, 예예. 당연하죠. 잠시만 기다려주십쇼!”
사장은 상우의 한글 이름과 영문 이름을 받아 적더니, 밥 먹는 직원들을 뒤로하고 후다닥 작업실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후.
“고객님 시안 완성되었습니다. 여
습니다. 확인해보시죠.”
상우는 사장이 건네준 서명 시안을 확인하였다.
너무 화려하지도 않고, 절제되어 있지만 무언가 있어 보이는 서명.
딱 상우가 원하던 모습 그대로였다.
상우는 흡족해했다.
“이야, 진짜 맘에 듭니다. 이걸로 진행해주세요.”
“네. 그럼 결제 도와드리겠습니다.”
상우가 스마트고글과 연동된 신분팔찌로 간단하게 결제를 마친 후.
사장은 시안과 사인 연습장, 사인 그리는 순서 영상을 상우에게 전달하였다.
“감사합니다. 여기서 연습해 봐도 되죠?”
“네, 얼마든지요. 하하.”
상우는 사인을 받자마자 사무실 한 자리를 빌려서 바로 연습을 시작했다.
‘생각보다 어렵네.’
초인적인 운동신경을 지닌 상우였지만, 단 한 번에 서명을 따라하기는 어려웠다.
요새 원체 펜을 잘 안 잡기도 했고, 서명을 할 때 펜의 움직이는 속도와 들이는 힘의 분배 등도 상당히 중요했으니까.
몇 번 연습하던 상우는 생각보다 잘 안 되자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모두 사인 연습해.’
중요한 업무 중인 분신들을 제외한 모든 분신들에게 사인 연습을 시킨 거였다.
그러자,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아 상우는 어느새 능숙하게 서명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이야, 벌써 잘하시네요. 대단하십니다.”
“뭘요. 사장님 연습 공간 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예. 또 오십쇼!”
그렇게 서울에 있는 분신으로 자기 자신만의 고유한 서명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 상우.
그 모든 일은 이제 막 고깃집에서는 고기가 나오고 있는 중이었는데 마무리 지었다.
마음이 좀 편해진 상우.
“팬 여러분, 제가 쏘는 거 아시죠? 자, 모두 맛있게 드세요!”
“잘 먹겠습니다!”
“오빠 잘 먹을게요~”
그렇게 시작된 고기 파티.
처음에는 조신하게 먹던 소녀팬들도, 그리고 눈치를 보던 남자팬들도 고기가 입에 들어가자 점점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와, 진짜 맛있다!”
“오빠, 엄청 맛있어요!”
“하하, 많이 드세요.”
“예. 아싸~ 뽕 뽑아야지.”
그렇게 모두 즐겁게 식사를 한 뒤.
상우는 계산을 마치고 근처 카페로 이동하여 음료를 하나씩 더 사주었다.
그리고 카페 테이블을 빌려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었다.
스슥- 스스스슥-
현란한 손놀림으로 능숙하게 펼쳐진 사인.
마치 수년간 팬사인회를 돌아다닌 연예인 같은 솜씨였다.
“이름이 뭐에요?”
“…저, 정다운이요.”
“다운이구나. 이름이 예쁘네요. 정, 다, 운, 앞으로, 행복만, 가득하시길. 자, 여
어요.”
“감사합니다!”
나중엔 여유가 생겨서 소녀팬이 얼굴을 붉히며 이름을 대답하면, 사인 옆에 이름과 함께 응원문구도 적어주는 센스도 발휘했다.
중간중간 사진도 같이 찍어주었고.
특히 상우가 웃어줄 때마다 여성팬들이 무척 좋아했다.
“웃는 거 봐. 만화에서 튀어나온 거 같애.”
“응. 상우 오빠 진짜 멋있다. 사인도 멋지네.”
“맞아. 못하는 게 없는 거 같아.”
“이거 가보로 보관해야겠다. 한 백 년 뒤에 팔면 엄청 비싸겠지?”
그렇게 마지막 단체사진까지 찍은 후 모두가 만족한 팬 사인회가 끝이 났다.
“여러분 늦은 시간까지 함께 해주셔서 고마워요.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이런 자리 마련하면 좋을 거 같습니다. 여러분 덕분에 가슴이 따듯해지고 더욱 힘이 나네요. 여러분들도 저처럼 얻어 가시는 게 있길 바라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팬들을 앞에 두고 말을 마친 상우, 아니 분신 20호.
[아공간]
그는 아공간으로 뛰어들어 서울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아공간 안가에 20호의 군복을 벗어두고 전투슈트로 환복시킨 후 다시 사냥터로 보낸 상우.
그제야 20호와의 접속을 해제할 수 있었다.
“후아, 끝났네.”
별 거 아닌 거 같은 팬사인회.
하지만 의외로 심력 소모가 상당했고, 시간도 몇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나한테 팬클럽이 생겼다라….’
긴장이 풀린 상우는 침대에 푹 몸을 뉘었다.
돈은 몇 백 썼지만, 그 정도야 몬스터 몇 마리 잡으면 충당되기에 전혀 아깝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다는 것만으로도 크게 힐링이 되고 가슴이 충만해지는 경험이었다.
‘내가 누군가의 우상이 될 수도 있구나.’
언제나 남들만 우러러보고 바라만 봐왔던 상우.
그런 그가 언제 성장한 건지, 이제는 남들의 아이돌이자 우상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누군가의 영웅이 된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겠어.’
국내 최초의 S급 헌터, 그리고 더 나아가 세계 최강자가 되어 모두의 기대를 배반하지 않으리라고 상우는 다짐했다.
* * *
한편 그 시각.
퇴소식에 찾아온 팬들과 기자들을 적당히 상대해준 강준영은 서울에 도착해 있었다.
그가 곧장 찾은 곳은 자주 들르는 고급 룸살롱.
회원 제도인 그곳에 대낮부터 들렀지만, 강준영은 VIP라 별도의 회원증을 제시하지 않았음에도 바로 입장되었다.
“오셨습니까. 오랜만이시네요.”
그가 들어서자, 깔끔한 인상의 직원이 그를 맞았다.
“진짜 오랜만입니다. 석현 씨, 룸 하나 잡아줘요.”
“네, 항상 이용하시는 방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안내된 고급 룸에서 강준영은 양주를 시켰다.
이윽고 준비된 술들.
강준영은 술잔에 따르지 않고 병째로 술을 들이키기 시작했다.
꿀꺽- 꿀꺽- 꿀꺽…
마치 음료수 마시듯이 순식간에 한 병을 원샷해버린 강준영.
그래도 부족한지 옆에 있는 양주를 하나 더 오픈했다.
하나 같이 50도가 넘어가는 독한 술들이었지만, B급 헌터인 강준영에게 있어서 이 정도 알코올은 전혀 문제가 되질 않았다.
오히려 이 정도는 마셔줘야 좀 취하는 느낌이 났으니까.
그렇게 강준영은 몇 병을 연거푸 마신 뒤에야 폭주를 멈췄다.
얼굴 표면의 피부 감각이 예민하게 느껴지는 게 슬슬 좀 취하는 듯했다.
“하… 좆같구만.”
강준영은 한숨을 푹 쉬었다.
정상우, 그 고까운 얼굴을 보는 4주가 너무 곤욕스러웠다.
자신의 심성이 비틀어진 걸까.
질투가 너무 심한 걸까.
‘하지만, 나 정도면 질투할 만하잖아. 내가 거의 칠년 동안 얼마나 노력했는데. 그런데 고작 1년도 활동 안한 애한테 밀리다니.’
이십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강준영은 보기와는 다르게 이십대 후반이었다.
스무 살 어린 나이에 아이돌로 데뷔한 뒤, 각성하여 힘을 얻고 그 뒤로 한시도 쉬지 않고 달려왔다.
그런데도 고작 1년짜리한테 져버렸다.
아니, 애초에 붙어볼 마음이 생기기도 전에 굴복하고 들어갈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
정상우의 피지컬은 너무 넘사벽이었기에.
‘앞으로 정상우의 시대가 열린댔지.’
자신의 절친한 형님, 혜성길드 공략1팀장 신진욱이 자신의 아버지가 해준 말이라면서 강준영에게도 말해준 얘기였다.
만약 그의 말대로 정상우의 시대가 온다면?
한국의 헌터라면 모두 그에게 고개를 숙여야 하는 시대가 온다면?
강준영은 견딜 수가 없을 거 같았다.
소위 ‘뱀심’이라 불리는 ‘질투심’이 가슴 깊은 곳에서 들끓었다.
그때 그의 머릿속을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다.
아니, 훈련소에 있을 때부터 끊임없이 갈등하고 고뇌하던 한 가지 유혹이었다.
‘그래, 만약 형님이 말했던 그거라면….’
트론사에서 개발한 신제품.
각성자가 아니더라도 인간의 한계를 강제로 넘어서게 해준다는 그것.
‘내가 만약 그 힘을 얻는다면, 정상우를 넘어설 수 있을까.’
그 힘을 얻는다고 해서 정상우를 넘어설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른다.
그저, 영원히 정상우의 밑에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절망에서 단 한줄기 희망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그 희망에 기대고 싶었다.
그렇게 스마트 고글을 활성화한 채로 부탁할 누군가에게 전화를 할지 말지 갈등하던 강준영.
그는 결국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르-
그의 스마트고글 홀로그램 화면에는 ‘신진욱’이라는 이름이 떠올라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