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o Hunting With My Clones RAW - Chapter (162)
이윽고 대기시간이 모두 지나고 마침내 시작된 시험.
화면에서 비활성화되어 있던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는 버튼이 활성화되자마자, 모든 학생들이 재빠른 터치로 버튼을 눌러 시험 내용을 확인했다.
「1. 다음은 케인즈의 『고용, 이자율, 그리고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The 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에서 인용한 내용이다.
“만일 재무성이 은행권을 낡은 병에 채워서 사용되지 않는 광산에 적절한 깊이로 묻고, 그 위를 도시의 쓰레기로 덮고… 민간 기업이 그 은행권을 다시 파도록 한다면, …실업이 줄어들 것이고, 그 반향(repercussions)으로 인해서 도시의 실질소득은… 훨씬 높아질 것이다.”
이 문장을 기반으로 그동안 배운 거시경제학의 모든 지식을 총동원해 위 문장을 해석하고, 의미, 정책적인 시사점, 비판 등 자유롭게 서술하여라.(위의 반향이란 단어의 의미는 무엇인지, 정부지출이 낭비적일수도 있지 않는지 등)」
시험 문제를 본 학생들.
그들의 뇌리에 한 가지 생각이 공통적으로 피어올랐다.
‘???’
‘시발, 족보 내용이랑 전혀 다르잖아…!’
그렇다.
이번에 새로 거시경제학 강의를 맡게 된 한강철 교수.
그는 학구열에 불타는 인물이었고, 이를 위해 자신이 직접 새로운 문제들을 만들어냈던 것.
결국 소위 족보라 불리는 매번 똑같은 문제들만 상대해오던 학생들은 제대로 뒤통수를 맞고 말았다.
‘좆됐다.’
‘GG쳐야겠는데….’
‘왜 이렇게 어려워.’
그렇게 경제학과 학생들이 경제학 전공을 포기해야하나 심각하게 고민하던 사이.
그래도 문제를 꿋꿋하게 풀어가는 삼인방이 있었다.
‘서술형 문제로 완전히 새롭게 출제되었군. 차라리 이러면 변별력이 생겨서 나에게는 훨씬 유리해. 고맙습니다. 한강철 교수님.’
‘풀만한데? 억지로 암기하지 않고 이론 하나하나를 이해하고 넘어간 게 도움이 되었어. 그리고 이 구절은 유명해. 전에 보았었는데….’
바로 경제학과 에이스들인 강성태와 김미진.
그리고,
타닥- 타다닥-
무표정한 얼굴로 홀로그램 키보드를 두드리는 상우의 분신이었다.
분신은 마치 채팅이라도 하듯이, 그의 손은 쉴 새 없이 홀로그램 키보드 위를 오갔다.
하지만 현재 강의실에 외부서버 이용이 제한되고 있어서 채팅 어플을 이용하는 건 불가능했기에 채팅을 치고 있는 건 아니었다.
즉, 분신은 그만의 해답을 적어 내려가고 있었다.
-케인즈는 경제를 지출의 총량적 흐름이 가져오는 총산출량으로서 사고했던 최초의 경제학자였다….(중략)… 산출과 고용은 공동체의 지출의 양에 달려 있다. 경제라는 구조물을 보는 이런 새로운 시각이야말로 이 남긴 가장 영속적 유산이다.
고용이 지출에 의존한다는 것은, 문제에서 언급된 구절에서 확실히 언급되고 있다.
(중략)
미래는 미지의, 두려움의 세계이기 때문에, 체제가 유발시킨 경제적 과소 성취로 인해 경제활동의 유일한 합리적 목표인 선한 삶은 지연되며…
정해진 답이 있는 것도 아닌, 서술형 문제.
하지만 분신은 이제는 정말로 자신만의 주체적인 사고가 가능한지 의심이 들 정도로, 서술형 문제에 대해서 자신만의 논리를 아낌없이 펼치며 답을 적고 있었다.
‘근데 쟤는 왜 이렇게 열심히 해?’
‘아, 신경 쓰여.’
그리고 분신의 뜬금없는 선전(?)에 자극받았는지 경쟁이라도 하듯 성태와 미진의 손도 분주히 키보드를 두드렸다.
‘흠, 좋군.’
그런 그들을 바라보는 한강철 교수.
그는 만족스러운 지 흐뭇한 표정으로 학생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의 새로운 시험 문제가 만족스러운 건지, 아니면 어려운 문제로 학생들을 골탕 먹이는 게 만족스러운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어느새 시험 시간인 40분이 훌쩍 지났다.
화면에 떠오른 시험 페이지가 비활성화 되면서 건드릴 수 없게 변해버렸다.
“아… 망했어.”
“나 한 문제도 제대로 못 적었다. 하….”
“나도… 하….”
곳곳에서 탄식이 들려오는 가운데.
“시험 결과는 오늘 저녁에 각자 경제학과 포탈 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게 처리하겠습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말을 마친 교수가 강의실을 나갔다.
그러자 조잘대면서 자리에서 일어서는 학생들.
“야, 이왕 조진 거 피시방이나 가자.”
“기분도 엿 같은데 술 빨러 갈 사람?”
“나!”
“니가 쏘냐?”
이왕 망한 거 놀자는 무리들과,
“아, 시험 너무 어려웠어요. 성태 오빠, 어때요? 시험 잘 본 거 같아요?”
“아… 나 망했어. 다 서술형 문제들이라 전혀 예상을 못했거든.”
시험의 결과가 궁금한 경쟁자들이었다.
“그래요? 키보드 엄청 열심히 두드리시던데(거짓말 하지마, 이 여우 같은 놈아).”
“아, 그거? 문제는 이해는 안 되는데 마냥 포기할 수는 없으니까 아는 거 아무거나 다 적어넣었지. 근데 미진이 너도 엄청 열심히 썼잖아(그래 잘 본 거 같다. 근데 독한 년아. 넌 공부를 얼마나 한 거야).”
속내는 숨긴 채 서로 탐색하고 견제하는 이들.
그때 대화하는 그들의 사이를 분신이 가로질러갔다.
그들의 시선이 분신에게 쏠렸다.
‘맞다. 상우 오빠 분신.’
‘쟤도 있었지.’
시험 내내 그들 못지않게 엄청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던 분신이었다.
“근데 상우 쟤도 공부 열심히 했던 거 같더라. 아까 보니까 장난 아니던데.”
“그러게요. 근데 예전 소문 들어보면 공부 그렇게 잘한 거 같지는 않던데요.”
“시험이라고 본인이 직접 왔나. 사냥한다고 바쁘다고 들었는데 아닌가.”
“분신 아니었어요?”
“그야 모르지.”
얘기를 하다 보니 슬쩍 불안한 마음이 드는 그들.
“에이 분신이겠지. 잘 나가는 헌터가 사냥 가는 게 훨씬 이득인데 그 기회비용을 차버리고 오겠어?”
“그렇겠죠? 호호.”
애써 합리화한 그들은 어느새 여자애들에게 둘러싸여 강의실을 빠져나가지 못하는 분신을 그저 바라만 보았다.
“오늘은 분신이에요? 본체에요?”
“분신입니다.”
“에이 거짓말. 상우 오빠 본인 아니에요?”
“맞아요. 오빠, 시험도 끝났는데 맛난 거 먹으러 가요~”
“안됩니다. 다음 강의로 가야 합니다.”
“그때 술 사주신다고 하셨잖아요. 언제 사주실 거예요?”
“안됩니다.”
상우가 미리 내려놓은 철벽(?) 명령에 의해 분신은 그녀들의 대시를 모두 거절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조잘조잘 떠들어대는 여학생들.
그녀들의 눈에는 상우에 대한 호감이 한가득했다.
왜냐하면, 잘 생겼으니까.
그리고 그런 그들 무리를 보는 성태와 미진.
‘흥, 천박하게.’
‘시험이 끝났다고 바로 저렇게 풀어지다니, 쯧쯧.’
그들은 상우와 그녀들을 속으로 욕했다.
왠지 모르게 알 수 없는 패배감이 들었으니까.
‘그래도 거시경제학, 아니 경제학과 과탑은 나야.’
물론 애써 그런 생각은 떠올리지 않은 채 이번 시험의 결과, 그리고 앞으로 볼 시험과 성적들을 떠올리는 두 사람.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그날 저녁 경제학과 포탈 페이지에 갱신된 시험 성적.
정상우, A+
상우가 이번 쪽지시험에서 유일하게 A+를 받았다는 걸 말이다.
* * *
상우는 잠시 결계 앞에서 대기하던 사이, 시험을 보고 있던 분신에게 접속했었다.
왜냐하면 곧 쪽지시험을 본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분신이 잘 하려나.’
대리출석에 시험 공부를 시켜놓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첫 시험이다 보니 상우는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분신이 오작동(?)이라도 일으키면 말짱 도로묵이니까.
그래서 감시할 겸, 시간도 때울 겸 분신의 시험 과정을 모두 지켜봤다.
허나 웬걸?
‘이야… 분신이 나보다 낫네.’
오히려 분신은 상우의 능력의 80%, 아니 100%, 200% 이상을 발휘했다.
사실 시험 문제를 본 상우는 처음엔 ‘경제학이 이런 거야?’ 싶을 정도로 외계언어로 가득해서 당황했다.
‘이게 뭔 말이야.’
그러나 쳐다보고 있자, 자신이 공부하지도 않았던 새로운 지식들이 속속들이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는 바로 분신이 암기한 지식과 기억이 상우에게 공유되었기 때문.
‘이게 진짜 되는구나.’
게다가 분신은 한술 더 떠서 마치 직접 사고하듯이 해당 문제의 요점을 파악해내고, 자신의 논리대로 서술해나가기 시작했다.
‘대박이네.’
그렇게 순식간에 자신만의 논리대로 서술을 마친 분신.
상우는 자신이 속으로만 생각하던 이상이 실현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바로 ‘대리 공부’를 말이다.
‘이제 단순히 몸으로 쓰는 기술 같은 걸 떠나서, 이론이나 지식 습득도 가능해졌어.’
대학교 졸업장은 따고 싶어서 다니긴 했지만, 사실 공부에는 큰 관심이 없었던 상우.
하지만 대신 공부가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되자 욕심이 생겼다.
‘도서관의 모든 책, 아니 세상 모든 책들을 암기시켜볼까. 후후.’
세상 그 누구가 똑똑해지는 걸 싫어하랴.
상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비범함을 넘어, 천재가 되고 싶었다.
‘분신아, 앞으로 대학교 전공 공부만 하지 말고, 도서관에서 책 한 권씩이라도 암기해. 알았지?’
그래서 상우는 분신에게 새로운 명령을 내려놨다.
도서관의 책을 암기하라는 명령을 말이다.
물론 거기에 약간의 회의감이 있긴 했다.
‘가능할까? 하루 1권을 통째로 암기하는 게.’
불가능해보였다.
하지만 명령을 반드시 수행해내는 분신의 능력이라면 가능할 터.
‘1년이면 365권이네.’
생각보다 얼마 안되는 분량.
그래도 일반인이 읽는 평균적인 독서량이 일 년에 10권도 채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비춰봤을 때, 어마어마한 분량이었다.
‘나중에 분신 늘어나면 다른 분신들도 시키면 되겠지. 그리고 분신의 암기 효율도 늘어날 거고.’
그때가 되면 하루에 2권, 3권, 10권, 그 이상도 가능할지도 몰랐다.
상우는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암기한 남자.
모르는 게 없는 사나이.
‘멋진걸.’
지금도 사는 데 지장은커녕 문제가 전혀 없었지만, 왠지 더 인생이 풍요로워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상상하는 사이.
시간이 꽤 흘렀고, 결계 앞에 대기시켜둔 분신으로부터 보고가 들어왔다.
‘오, 드디어?’
상우는 부랴부랴 해당 분신에게 접속했다.
그러자 심상에 떠오르는 새로운 시야.
거기에는 이전에 자신과 대화를 나누었던 홀로그램이 결계에 떠올라 있었다.
-정상우 님?
약간 의아한 기색의 홀로그램.
상우의 눈치상 아마도 분신이 대답이 없어서 의아해하고 있을 것 같았다.
“예? 아, 예.”
그래서 그가 재빨리 대답하자, 상대방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대답이 없으셔서 당황했습니다.
“아, 뭐 좀 생각하느라….”
-괜찮습니다. 정상우 님의 신상에 대해서 조사하느라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생각보다 유명한 분이시더군요.
유렌시아 제국에서도 지구나 상우에 대해 조사할 방법이나 루트가 있는 모양.
상우는 어떻게 알아냈는지 궁금하긴 했지만, 그보다는 출입이 더욱 궁금했다.
“예. 어떻게 되었나요? 들어갈 수 있나요?”
-유렌시아 제국으로 입국을 희망하시는 것이지요?
“예. 맞아요.”
-네. 가능하십니다.
“오, 감사합니다. 그럼 어떻게 들어가면 되나요?”
-곧 바로 앞에 결계에 입구가 열릴 것입니다. 그곳을 통해 입장해주시지요.
“옙.”
그리고 사라진 홀로그램 영상.
그렇게 1분가량 시간이 지나자, 결계의 한쪽 부분이 조그맣게 결계가 사라지며 구멍이 뚫렸다.
-들어오세요!
성벽 쪽에서 알 수 없는 언어가 큰 음성으로 들려왔다.
전혀 처음 듣는 언어지만 왠지 모르게 해석되는 신기한 상황.
하지만 거기에 의문을 느낄 새도 없이 상우는 재빨리 입구를 통해 결계 안으로 들어갔다.
“읏차.”
상우가 조종 중인 분신과 옆에 대기 중이던 세 기의 특수분신들까지 착착착 결계 안으로 들어오자, 결계는 순식간에 닫혀버렸다.
스으으윽-
‘결계에 몸이 끼이면 어떻게 되지? 잘려나가려나….’
쓸데없는 상상을 하는 상우.
그 사이 위쪽의 성벽에서 예의 그 신기한 언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올라오십시오!
“예, 갑니다.”
상우는 중얼거리며 슬로스의 팔을 잡은 채 곧장 몸을 날렸다.
그 뒤를 따르는 글러트니와 엔비.
탓!
10층 건물 높이는 될법한 성벽을 단숨에 뛰어오른 상우는 살포시 성벽 위에 내려앉았다.
점프 한 번에 올라온 것.
그리고 거기에는 수많은 병력들이 몰려있었다.
예의 그 총기와 비슷하지만 뭔가 다르게 생긴 매끈한 무기를 상우를 향해 겨누고 있는 병력들.
“워워… 저는 적 아니에요.”
상우가 공격의사가 없다는 걸 보이기 위해 두 손의 손바닥을 활짝 펼친 채 들어보이며 휘휘 저었다.
그러자 그 모습에 놀랐는지 뒤로 물러서며 더욱 삼엄한 경계를 하는 병력들.
-그만.
거의 발포하기 직전이었는데 무리의 인솔자로 보이는 제복의 장군(?)이 손을 들어 만류했다.
그 모습에 안도한 상우.
안도한 이유에 자신이 다칠 거라는 두려움은 전혀 없었다.
그저, 상황이 악화될까 두려웠을 뿐.
“감사합니다. 그쪽이 책임자신가요?”
-그렇소. 브레만 팔란토스라 하오.
“아, 이름이 멋지시네요. 반갑습니다, 팔란토스 씨.”
원래 칭찬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법.
허나 팔란토스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귀하가 정상우요? 특이한 이름이군.
오히려 상우의 이름이 특이하다며 무례를 보였다.
‘뭐지. 싸우자는 건가.’
상우는 슬쩍 기분이 나쁘려던 걸 참았다.
괜히 일을 벌이면 안 되었으니까.
대신 결계 안으로 들어오면 가장 먼저 하려던 일을 하려고 마음먹었다.
“저, 팔란토스 씨, 제가 일행이 있는데 더 데려와도 되나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