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o Hunting With My Clones RAW - Chapter (190)
그 천진난만한 미소에 레이븐, 나이젤, 카이린, 바레인 모두가 당황했다.
‘…음, 제자야….’
‘아니, 상우 군. 지금 말실수를 한 거 같은데…?’
‘사부님…?’
황족의 앞에서 고기나 먹자는 말을 하다니.
사실 이는 굉장히 무례한 행동이었다.
절대왕정을 유지하던 황제의 권위가 지켜졌다면, 당장 목이 달아나도 할 말이 없는 경솔한 발언이었다.
때문에 싱글벙글한 기색이었던 바레인이 상우의 말을 듣고는 이마에 힘줄이 빠직 돋아났다.
“이 무슨 경솔한….”
그가 한 마디 하려고 나서려던 그때.
“하하하, 맞습니다. 고기가 식으면 맛이 없지요.”
하르딘 황자는 허허 웃으며 모두에게 식사를 권유했다.
그는 겉으로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보였다.
속은 씁쓸함으로 가득했지만.
‘황족의 지위를 잃었다는 것이… 벌써 이렇게 표가 나는 것인가.’
애초부터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라온 상우다.
그렇기에 그가 왕족에 대한 예우나 예절을 모르는 건 당연지사.
게다가 상우의 머릿속에는 어차피 반란 때문에 도망쳐온 황자이기에 이제는 그냥 일반인이나 다름없지 않나라는 인식이 머릿속에 박혀 있었다.
그래서 대수롭지 않게 발언했던 것.
결국 그 발언으로 인해 황자는 권위를 잃었다는 걸 저리게 실감할 수 있었다.
상우가 일부러 황자를 팩트로 때리려 했던 건 아니었지만.
그런 상우의 무례가 아니었더라도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다 알았다.
아직 유렌시아 제국이 사라진 건 아니지만, 유렌시아 황조는 이미 끝났다는 사실을.
‘황자….’
살짝 어깨가 처진 하르딘 황자를 보며 나이젤의 심경이 복잡해졌다.
황자가 이곳에 온 이유는 분명 자신의 원조를 바라는 것일 터.
그렇다는 의미는 황실을 장악하여 새로운 황조를 세우려는 비스마르크 공작가와 반드시 대립하게 된다는 의미였다.
‘내전이라….’
쓰러져가는 영지에 그의 형인 레이븐이 돌아와서 도움을 준 게 불과 한 달도 안 되었다.
그럼에도 그 조력은 막강했고, 덕분에 이제 막 죽어가던 레이븐 영지에 활력이 돌고 있는데, 전쟁?
나이젤은 그 꼴을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심 이미 결정을 내려둔 상태였다.
황자의 부탁을 거절하기로.
다만, 그 얘기를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 나이젤의 오랜 연륜으로도 생각이 쉬이 떠오르질 않았다.
그렇게 같은 공간에 자리한 모두가 제각기 상념에 빠진 사이.
눈앞에서 익어가는 생소한 형태의 고기구이를 보며 황자가 입을 열었다.
“그럼 먹어봅시다. 근데 바로 앞에서 구워서 먹는 고기라니. 생소하군요. 바로 먹으면 되는 겁니까?”
황자의 물음에 안색이 굳어 있던 바레인이 나서서 입을 열었다.
“예. 전하. 이 음식은 사므기요브사르라는 것으로, 여기 이 정.상.우라는 남자가 이계에서 가져온 독특한 요리법입니다.”
상우로부터 설명을 한 번 들었음에도 용케 기억해내고 삼겹살을 힘겹게 발음하는 바레인.
다만 상우의 경솔한 반응 때문이었는지 유독 그의 이름을 힘주어 말하는 게, 어지간히 상우가 못마땅한 듯 보였다.
“아아… 한데 그렇다는 얘기는 정상우 님은 이계에서 왔다는 소리요? 그, 지구 맞습니까?”
하나 바레인의 말에 실린 감정 대신, 정보를 듣고 놀라는 황자.
다행히 그도 지구에 대한 정보는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듯 보였다.
“예. 그 지구의 요리 문화입니다. 비록 겉보기에는 직접 구워서 바로 먹는다는 풍습이 원시적이고 야만스러워 보이실 수도 있지만, 맛은 기가 막힙니다. 한번 드셔보시지요.”
황자가 오기 전까지 바비큐 파티를 즐기던 바레인이 설명했다.
“어쩐지 이곳 유렌시아 제국에서 흔히 볼 법한 외모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얼핏 엘프가 생각날 정도로요. 물론, 그렇게 근육질의 엘프는 없는 걸로 알아서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지구인일 줄이야….”
신기하다는 듯 상우를 바라보는 황자.
하나 상우의 안색은 못마땅해 보였다.
‘아니, 말은 좀 그만하고 언제 고기 먹냐고.’
고기가 탈 지경인데 답답할 노릇이었다.
그러나 상우가 누구인가.
그는 고기가 타는 걸 마냥 지켜보고 있지는 않았다.
이미 그의 몸에서 풀어져 나온 마나가 보이지 않게 미세하게 고기들을 감싼 채 열기를 차단하고 있었으니까.
때문에 고기는 적당하게 익은 상태로 가만히 레스팅 중이었다.
‘거 빨리 고기 좀 먹어라, 좀. 다들 니 눈치만 보잖아.’
그렇게 상우가 속으로 욕하는 사이.
황자가 그런 상우의 내심을 눈치챈 건지 드디어 포크를 들었다.
“아무튼 고기가 맛있게 익은 것 같군요. 요리는 원래 제때 들어야지요. 모두 드십시다.”
그 말과 함께 황자는 자신에 앞에 자리한 바비큐 구이기 철판 위에 놓인 삼겹살 한 조각을 포크로 푹 찍었다.
그러곤 조심스럽게 입에 가져가는 황자.
아암- 우물우물…
고기를 입에 넣은 황자는 처음에는 별 반응이 없었다.
그저 고기를 씹는가 보다 하는 듯한 모습.
하나, 고기를 씹으면서 그의 눈동자가 점차 커져갔다.
‘뭐, 뭐지? 이게 무슨….’
이미 조리 과정에서 알맞게 녹아든 삼겹살의 비계부위.
그 기름이 씹을수록 퍼져 나와 황자의 혀 전체를 감쌌다.
그러자 입안 가득 느껴지는 고소함과 느끼함의 향연.
하나, 황자는 몇 날 며칠을 제대로 식사도 하지 못하며 도주한 상태다.
즉, 이제야 제대로 된 식사를 접하게 된 잔뜩 허기진 황자에게는 느끼함이란 맛이 먹혀들지 않았다.
그저 깊은 풍미로 다가올 뿐이었다.
거기에 비계부위나 다름없는 마블링 가득한 삼겹살의 살코기 부분까지 살살 녹아들며 황자의 입에 황홀함을 선사했다.
꿀꺽-
그 맛을 느끼는 사이, 황자는 어느새 고기를 다 먹은 자신을 발견했다.
‘…녹았어. 고기가 녹다니.’
황자는 황홀함이 사라져버렸다는 게 아쉬웠다.
하지만 아쉬워할 필요가 없었다.
그의 앞에는 많은 고기들이 잘 구워진 채 포크의 간택을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그는 다시 눈앞에 놓인 고기 한 점을 포크로 찍었다.
냠-
고기가 입안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황자의 혀가 마중을 나오듯 살짝 입 밖으로 나와 고기를 먼저 접했다.
마치 사랑에 빠진 연인을 맞이하듯이.
그리고 혀는 고기와 함께 어두운 입안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시작된 혀와 고기의 은밀한 만남.
황자는 저도 모르게 눈을 감은 채 그 깊은 쾌락을 음미했다.
“으음….”
그는 어느새 주변도 잊어버린 듯했다.
저도 모르게 감탄의 침음성을 삼키며 고기를 씹는 황자.
‘맛있다’라는 말 한마디 없었지만 그의 표정과 지그시 감은 두 눈을 보며 주변 모두의 머릿속에 비슷한 생각이 스쳐 갔다.
‘입에 맞으신가 보군. 하긴, 이게 맛있긴 하지.’
레이븐은 지구의 삼겹살 맛, 특히 상우가 사다 주는 특A+ 등급의 자이언트 허니비 피그의 맛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저 덤덤한 반응이었다.
그저, 황자가 포크를 들며 다시 시작된 식사에 열심히 포크를 놀리며 고기를 흡입할 뿐.
‘삼겹살… 정말 맛있지. 황자도 반하셨구나.’
‘정말 맛있으신가 보네. 귀여우셔라.’
그리고 상우 덕분에 삼겹살을 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이젤과 카이린.
그 두 사람 역시 삼겹살과 바비큐 구이의 맛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역시나라는 반응이었다.
물론 그 두 사람의 포크도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었다.
‘저렇게 맛있게 드시다니. 황실 요리사의 음식도 입맛이 없다고 적게 드시던 분인데.’
오직 늙은 바레인 혼자만이 포크도 들지 않은 채 황자의 모습을 보며 도망자 신세라는 안타까움과, 맛있는 걸 대접해드려 기쁘다는 희비가 교차하는 표정을 지으며 궁상맞게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상우.
-하하하. 황자님, 삼겹살 맛 죽이죠? 그쵸?
그는 맛있는 요리를 주변 사람들에게 대접하는 게 신났는지 의기양양하게 물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요리를 해본 사람이든 아닌 사람이든, 사람에게는 의외로 맛있는 음식을 주변인에게 권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이기적인 현대인의 특성상 혼자 독차지해서 먹을 것 같은데도 말이다.
이는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기에 좋은 것이나 더 나은 지식, 발전된 정보 등을 발견하면 공유하려는 본성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요리사에게는 그런 심리가 강한데, 상우도 여유가 생긴 뒤로는 최근 들어 그런 기분 만끽하는 걸 즐기곤 했다.
물론 그가 직접 요리하기보다는 맛집을 찾아다니며 우현이나 가족들에게 대접하는 형태였지만.
그렇게 주변 사람들이 맛있게 먹어주고 감탄할 때마다 자신이 인정받는 듯한 충족감과 뿌듯함, 만족감이 차올랐다.
그리고 타이베른 행성으로 넘어와 레이븐 영지에 넘어온 뒤로 그런 취미 생활이 더욱 활발해졌다.
그 이유는 단 하나.
문화가 다른 이계였으니까.
그래서 지구의 요리가 더욱 잘 먹혀들었기 때문이다.
‘치킨이 시발점이었지.’
레이븐의 귀환이 알려져서 영지민들의 큰 환호를 받았던 그 날.
상우가 한국과 국제적으로 치킨집과 치킨 공장을 쓸어담다시피 하여 뿌렸던 치킨 이벤트(?).
메뉴 선택도 별 고민 없이 맨날 먹던 치킨을 뿌렸던 거였는데, 이게 웬걸?
영지민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도 그럴 게, 그들도 튀김이란 요리 기법이 있기는 했지만, 다채로운 양념 기법이 크게 발달하지는 않았으니까.
게다가 치킨에 양념을 하여 튀기거나, 튀긴 치킨에 양념을 입히는 한국식 치킨의 맛.
그것은 MSG에 대한 면역이 없었던 레이븐 영지민들의 미각에 대한 폭격이나 다름없었다.
덕분에 상우와 레이븐 공작가에 대한 지지는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했다.
물론 아직까지는 이전에 명성을 떨칠 때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기세라면 예전의 영광을 되찾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점차 영지민들의 가슴에 자리 잡는 게 보였다.
그리고 그 모든 걸 옆에서 지켜본 상우.
거기서 나오는 뿌듯함과 성취감은 대단했기에, 치킨 이벤트 당시 꽤 돈은 썼지만 상우는 그 소비가 전혀 아깝지 않았다.
오히려 그 뒤로도 모든 영지민들을 대상으로 하지는 못하지만, 레이븐 공작가 사람들에게만이라도 음식을 대접하고 있는 상태였다.
오늘의 바비큐 파티도 그 일환에서 시작된 거였고 말이다.
“…정말 맛있습니다.”
상우의 물음에 눈을 뜬 황자가 답했다.
하나 그의 시선은 상우를 향하지 않았다.
그저 눈앞에 고기를 향할 뿐.
그러고는 다시 고기를 찍어 올려 입에 가져갔다.
조용히 오물오물 먹는 황자.
확실히 황족이라 그런지 그 모습에도 기품이 흘렀다.
그래서 상우는 차마 그가 뭐라고 했는지 다시 묻지 못하고 조용히 옆에 있던 카이린의 팔을 톡톡 쳤다.
-카이린, 황자가 방금 말한 게 맛있다는 거지?
-예. 사부님. 정말 맛있으시다고 하셨습니다.
상우의 물음에 카이린이 조용히 답했다.
-역시… 삼겹살이 짱이지. 그치?
-맞아요. 정말 맛있어요.
-따봉?
-네. 따봉.
카이린이 용케도 상우가 알려준 제스쳐를 떠올리며 어설프게 엄지를 치켜올렸다.
그 모습에 씨익 웃는 상우.
그는 대견하다는 듯 카이린의 등을 톡톡 두드려주었다.
-이욜. 따봉도 할 줄 아네.
-헤헤.
-잘했으니까 고기 많이 먹어. 먹고 힘내서 훈련해야지.
-옙!
다시 열심히 고기를 먹는 카이린과 상우.
그리고 고기를 먹던 황자는 문득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묘하게 바라보았다.
‘연인인가….’
통역기를 통해 진행된 조용한 두 사람의 대화는 황자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마치 연인들끼리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는 것처럼 보였다.
‘…….’
왠지 가슴이 답답해지는 황자.
그가 복잡한 심정으로 카이린과 상우를 바라보자, 상우가 문득 시선을 느끼고는 씨익 웃었다.
-고기 많이 있어요. 많이 드세요.
그러면서 상우는 아공간을 열었다.
왜냐하면 구워진 고기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었으니까.
그러자 그곳에서 미리 쟁여놓은 고기들이 포장된 상태로 정원에 후드득 쏟아졌다.
턱, 턱, 턱-
거의 돼지 두세 마리 분량은 합쳐놓은 듯한 어마어마한 양.
웬만한 마을 전체가 포식을 할 정도로 많은 양이었다.
하나, 여기에 있는 건 대부분 초인들과 기사들.
혼자 5인분씩 할 정도로 먹성 좋은 그들이었기에 이 정도 고기는 충분히 소화 가능했다.
그리고 고기를 꺼내놓은 상우는 염동력으로 옆에 다른 바비큐 구이기에 모여 있는 기사들에게 고기를 나눠주었다.
-여러분, 고기 많으니까 많이 드세요. 오늘 배 터지게 먹어봅시다!
“와아아아아아아-!”
고기들을 보자 입이 헤 벌어져 있던 기사들 모두가 환호성을 질렀다.
거친 수컷들이라 그런지 그 울림통도 남달라서, 레이븐 공작가 저택이 쩌렁쩌렁 울렸다.
마치 자신들의 무리를 이끄는 대장 사자를 따르는 수컷 사자들처럼, 고기라는 식량을 보는 기사들의 반응은 단순했다.
그저 그들도 모르게 상우에 대해 호감을 갖고 따르고 있었다.
상우는 그들을 전혀 이끌려는 생각이 없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런 상우와 기사들의 모습을 보며 레이븐, 나이젤, 바레인 모두가 감탄했다.
‘강자는 강자를 알아보는 법. 역시 제자에겐 재능이 있군.’
‘…상우군은 인심을 얻는 법을 알고 있다. 정말 형님이 제자 하나는 잘 뒀구나.’
‘황자 전하보단 못하지만… 대단한 자질이로다.’
그리고 황자.
그는 상우를 보며 자신에게서는 느끼지 못했던 무언가를 느끼고 있었다.
‘저건….’
하르딘 황자는 그게 무엇인지 그는 알았지만, 애써 머릿속에 떠올리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그때였다.
“정상우!”
“정상우!”
“정상우!”
“정상우!”
환호하다가 점차 신이 났는지 이제는 상우의 이름을 연호하는 기사들.
“정상우!”
“정상우.”
“정상우….”
“정상….”
그러다 문득 황자가 있음을 깨달은 그들의 환호가 잦아들었다.
황족 앞에서 다른 귀족이나 사람의 이름을 높여 부르는 건 굉장한 무례였으니까.
하나, 그런 기사들의 행위가 황자가 애써 부정하려던 무언가를 정확하게 떠올릴 수 있게 만들었다.
‘…군주의 자질.’
상우에게는 황자 본인은 잘 느끼지 못하던 군주의 자질이 엿보였던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