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o Hunting With My Clones RAW - Chapter (191)
군주의 자질이라는 것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재능이다.
타인을 끌어당기는 매력, 다양한 사람들을 의도적으로 이끌어가는 카리스마 등이 그런 재능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하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미묘한 재능들이 모두 모여 어우러져야지만, 진정 군주다운 기질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부족하지…’
그리고, 안타깝지만 하르딘 황자에게는 그런 점이 부족했다.
그의 아버지였던 유렌시아 황제 역시 군주의 자질이 부족했던 것처럼.
그래도 분명 그는 주색가무에 빠져 정사에 소홀히했던 유렌시와 황제에 비하면 나은 인재이긴 했다.
보다 나은 성품과 기질을 지녔으니까.
그러나 어디 하나 특출난 점이 있다든지, 사람을 끌어당기는 아우라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만약 그에게 그런 기질이 있었다면 스물을 넘긴 나이인 현재, 자신의 세력을 어느 정도 일궈낼 수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어 연고 하나 없던 레이븐 영지를 찾은 그의 처지는, 그에게 군주의 자질이 부족함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제국 수호검의 제자라…’
상우를 가만히 바라보는 황자.
그는 어느새 고기에 대한 감동과 여운도 잊은 채 복잡한 심경이 되어버린 후였다.
자신을 크게 신경 쓰지 않으며 자유롭게 행동하는 상우.
그는 황족이자 황태자 자리에 가장 가까웠던, 유렌시아 제국을 이끌어갈 권위와 의무, 책임을 가졌던 하르딘 황자 자신과는 다른 인물이었다.
‘부럽구나.’
황자는 상우가 부럽다고 느꼈다.
그 감정은 치졸한 시기심이나 질투 따위가 아니었다.
그저, 부러울 따름이었다.
자신도 상우처럼 황자의 지위와 책무는 저버린 채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마음이 조금은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그일 뿐이다. 나는 나에게 걸맞은 삶이 있으니.’
그리고 그 감정이 황자로 하여금 다시 한번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명확히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 맛있는 고기를 먹으며 즐거워해야 할 때가 아니란 것을 말이다.
‘식사가 끝나고 얘기해야겠구나.’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았기에 식사 후에 레이븐 공작에게 정식으로 도움을 요청할 생각이었다.
반역에 의해 패망해버린 유렌시아 황실을 재건해달라고.
우물우물….
황자는 마음을 다잡으며 조용히 고기를 입에 밀어 넣었다.
이 독특한 요리법의 고기는 역시 달고 부드러웠다.
그의 씁쓸한 마음과는 다르게…
* * *
-…힘이 되어달라는 말씀이시군요.
나이젤이 비장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하르딘 황자를 바라보았다.
-그렇습니다. 제국의 수호검… 레이븐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마나통역기를 단 황자의 부탁이었다.
-흠….
나이젤, 레이븐, 그리고 상우의 안색이 복잡해져 갔다.
그리고 반대로 황자의 안색은 초조해져 갔다.
황자의 뒤에서 보필하듯 서 있는 바레인 역시 표정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초조하긴 매한가지였다.
그리고 그 초조한 마음은 이미 레이븐 공작의 부정적인 반응을 예상 중이었다.
‘…변했군.’
그토록 충성스러웠던 제국의 제일가문 레이븐 공작가.
하나 황실에 버림받고 샤르드방 지역으로 쫓겨난 지 십수 년.
그 혹독한 세월이 수백 년의 충성심을 흐리게 만들었다.
수백 년에 비하면 그토록 짧은 십여 년의 시간이 말이다.
-레이븐… 황자 전하의 부탁에 고민하는 걸 보니 자네도 변했군, 그래.
바레인이 마나의 힘으로 대기 중에 목소리를 실어 레이븐에게 직접 말을 걸었다.
그러자 바레인을 바라보는 레이븐.
-바레인 경….
그가 이미 많이 늙어버린 옛 전우를 보며 안색을 굳혔다.
하르딘 황자를 보좌하기 위해 꼿꼿이 선 바레인의 모습.
오래전 자신에게 비견될 정도로 강자였던 그의 위풍당당한 풍채는 온데간데없이 이제는 초라한 노인의 모습만 그에게 남아 있었다.
그래서 레이븐은 바레인의 날카로운 질책에 대답을 하려다 말고 잠시 말을 아낄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분명 오래 못 가겠군….’
레이븐은 느끼고 있었다.
바레인의 몸에서 점차 풀려나와 대기 중으로 사라져가고 있는 미세한 마나의 흐름을.
그는 이러한 증상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크라니드의 대침공 당시 수많은 영웅들이 마지막에 보여주었던 장렬한 전사의 직전의 모습과 같았으니까.
‘마나코어 에센스를 건드린 것인가….’
마나를 다루는 기사, 그리고 마법사들의 최후의 보루 마나코어.
이 마나코어를 중심으로 휘도는 마나의 일부를 사용하면 회복이 되지만, 그중에서도 진원으로 해석되는 마나코어 에센스를 건드리면 회복이 불가능했다.
그리고 바레인의 몸에서 새어 나오는 저 미세한 마나 흐름은 바로 마나코어 에센스가 망가진 자들의 전형적인 증상이었다.
때문에 레이븐은 그를 보며 차마 매몰차게 말을 잇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침묵하는 사이.
머뭇거리던 나이젤이 결심이 섰는지 입을 열었다.
-황자 전하… 송구합니다….
송구하다는 한마디의 대답.
짧은 한마디였지만, 거절을 뜻하는 그 한 마디에 황자의 얼굴이 급속도로 어두워졌다.
-…역시 안 되는군요….
황자는 예상했던 대답을 듣고는 실망하고 말았다.
-송구합니다….
나이젤 역시 안 좋은 이야기를 전하게 되어 기분이 좋지 못한 듯했다.
그러나, 황자 하나만을 바라보며 여기까지 달려온 바레인은 감정이 격앙된 듯한 모습이었다.
-레이븐 공작…! 자네 그렇게 안 봤는데 정말이지… 실망일세! 수백 년을 이어온 제국에 대한 충성심이 겨우 이 정도였는가!
바레인의 목소리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하지만, 악센트를 딱딱 끊어서 으르렁거리는 그의 말투는 그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짐작하게끔 했다.
그랜드 소드마스터의 분노.
하지만, 여기 있는 이들 모두 한 가락 하는 인물들이기에 화가 난 바레인을 보고서 그렇게 크게 당황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여태껏 잠자코 있던 레이븐이 바레인의 말을 듣고는 자극을 받았는지 감추고 있던 속내를 불쑥 말하고야 말았다.
-…그 수백 년의 충성을 저버린 건 황실이 먼저였소….
-음….
-크흠….
레이븐의 말을 들은 바레인, 하르딘 황자.
그 둘은 모두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말이 사실이니까.
‘역시 정해진 수순이었던가….’
황실이 레이븐 영지를 변방으로 쫓아냈을 때부터, 황자가 레이븐 영지의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가능성은 사라진 셈이었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헛된 희망을 품은 채 달려왔던 머나먼 길.
황자는 이미 예정된 귀결을 맞이하고는 허탈한 듯 한숨을 쉬었다.
“하….”
땅이 꺼질 듯한 한숨.
그런 황자의 한숨을 들은 바레인은 안쓰럽다는 듯 황자를 바라보았다.
“전하….”
하나 그가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레이븐과 동료였다고 해서, 그에게 빚을 지워놓았다든지 하지 않았기에 부탁을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황자의 앞이기에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고는 있지만, 그는 자신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잘 알고 있었다.
‘황자 전하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는 걸 반드시 보고 싶었거늘….’
그러나 그에게 허락된 시간은 많지 않았다.
점차 마모되는 마나 코어가 지금도 빠르게 소모되고 있었기에.
그렇게 각자 모두가 불편하고 복잡한 감정을 안은 채 홀에는 적막만이 맴도는 가운데.
나이젤이 입을 열었다.
-…새로운 황실에서 신병을 요구하더라도 지켜드리겠습니다. 다만, 전쟁에 위험이 생길 경우에는 지켜드리지 못할 거 같습니다….
당분간만 보호해준다는 의미였다.
-…알겠습니다.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황자.
하지만, 그의 심정은 까맣게 타들어 갔다.
이제야 겨우 정착할 곳을 찾았나 싶었는데 다시 몸을 의탁할 곳을 찾아야만 했으니 말이다.
-전하, 여기가 아니면 어디로 가신단 말씀이십니까… 다른 영지로 이동하기 전에 분명히 잡히고 말 것입니다.
바레인이 절대 안 된다는 듯이 말했다.
사실 레이븐 영지에서 쫓겨나는 순간, 사로잡혀 죽는 건 시간문제였기에 그가 이렇게 대놓고 ’빌붙자’는 식으로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하나, 바레인의 만류에도 황자는 고개를 저었다.
-바레인 경… 이미 대세는 기울었습니다. 천년의 세월을 영위했던 찬란했던 유렌시아 제국은 여기서 막을 내린 것이지요….
담담하고 씁쓸한 황자의 자조.
-이렇게 끝난 마당에, 저는 더 이상 폐를 끼치고 싶지가 않습니다.
황자가 처연하게 웃으며 바레인, 그리고 레이븐과 나이젤을 한번 바라보았다.
이미 삶의 모든 것이 끝났다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의 선택이 가장 최선이라는 걸 이 방에 있는 모두가 알았다.
황자로 인해 전쟁이 벌어진다면 굳이 흘리지 않아도 될 피를 흘리게 될 게 저명하니까.
그래서 안타까웠지만, 레이븐과 나이젤 안색을 굳힌 채 말을 아꼈다.
빈말로라도 도와준다고 약속을 할 수 없었다.
지금의 이 자리가 마치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불편할지라도.
나이젤에게는 레이븐 영지민들의 목숨이 달린 문제였기에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옆에서 가만히 들으며 골똘히 고민에 잠겨 있던 상우가 입을 열었다.
-어… 음… 하르딘 황자님? 그럼 갈 데가 없는 거죠? 도움을 청할 곳도요.
아픈 사람의 아픈 곳을 후벼 파는 듯, 확인사살을 시전하는 상우.
그럼에도 넋이 나간 황자는 화낼 기운도 없는 듯 가만히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음… 그리고 레이븐 영지에서 쫓겨나면 사실상 사로잡힌다고 보면 되겠고….
황자의 고갯짓을 보고 상우는 상황을 정리하는 듯 중얼거렸다.
그러다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황실이랑 전쟁은 못 하지만, 그래도 황자님 몸 숨겨드리는 거라면 저에게 해결책이 있긴 한데… 한 번 들어보실래요?
상우의 말을 들은 모두가 궁금하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질문의 당사자인 하르딘 황자는 넋이 나가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있었다.
그 대신 성질 급한 바레인이 대신 물었다.
-황자 전하를 도울 수 있다는 방법이 있는 건가? 그게 무엇인가?
황급히 묻는 그의 물음에 상우가 답했다.
-뭐, 간단해요. 여기 유렌시아 제국, 아니, 타이베른 행성을 뜨면 되거든요.
-엥? 그게 무슨… 아!
그의 말에 뒤통수를 맞은 듯 놀라는 바레인.
레이븐과 나이젤 역시 그런 생각을 떠올리지 못했는지 놀라는 반응이었다.
-…그렇군. 상우 군에게는 지구로 건너갈 방법이 있었지.
-맞다. 그리고 어차피 황실에서 지구까지 쫓아오진 못할 테니… 좋은 생각이구나. 제자야.
별거 아니었지만 칭찬해주는 그 두 사람 때문에 상우가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뭘요. 하하. 근데 그것도 본인이 원해야죠. 자, 하르딘 황자님. 어쩌실래요?
다소 불량스러운 상우의 말.
하지만 방 안의 모두는 그의 말투는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건 하르딘 황자의 결정이었으니까.
모두가 하르딘 황자를 바라보는 가운데.
잠시 생각에 잠겼는지 넋이 나가 있던 하르딘 황자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