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by Tyrant RAW novel - Chapter 342
8화. 에이단의 새로운 재능
건국제의 손님들이 모두 돌아간 평화로운 에르마노.
일견 고요해 보이는 에르마노의 황실은 사실 초비상 상태 진행 중이었다.
위대하고 소중하신 우리의 황제 폐하께서 드디어 후계자를 회임하셨다는 아주 중대한 소식과 더불어 절체절명의 상황에 맞닥뜨렸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바로…….
“우욱!”
끔찍한 입덧이었다.
메이블은 입덧이 아주 심해서 음식을 입에 대지도 못했다.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헛구역질을 해서 함부로 가져올 수도 없었다.
그나마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쿠키나 사탕 같은 가볍고 상큼한 것들이 고작이었다.
유모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해쓱해진 메이블의 뺨을 쓸었다.
“우리 폐하, 이렇게 못 드셔서 어떡해요…….”
“괜찮아, 유모. 아니, 사실 안 괜찮아…….”
메이블이 다 죽어 가는 얼굴로 침대 위에 축 늘어졌다.
그렇게 좋아하는 식사를 하지 못하자 메이블의 기분은 나날이 나락을 찍었다.
허어엉. 메이블은 우는 소리를 내며 침대에 우울하게 엎드렸다.
“얼큰한 돼지국밥에 깍두기 얹어서 먹고 싶어…….”
하필이면 생각나는 음식이 전생 세계의 음식이라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몇몇 전생 음식은 메이블이 현지화로 대박을 터트렸다지만, 상대적으로 만들기 쉽지 않은 돼지국밥은 해당 사항이 없었다.
그 후로도 메이블은 이 세계에 없는 음식들을 줄줄이 나열했다.
“순대볶음 너무 땡긴다…….”
메이블과 함께 먹었던 기억을 떠올린 에이단은 곤란해졌다.
“그건 너무 어렵습니다.”
“유통기한 지난 편의점 폐기 삼각김밥. 계속 생각나…….”
“왜 유통기한이 지난 걸.”
“난 그것만 먹었단 말이야…….”
메이블은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식비를 아낀다고 편의점 폐기 음식만 먹었던 전생을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했다.
그런 메이블의 곁을 지키던 에이단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내 에이단이 메이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다녀오겠습니다.”
“허어엉.”
“…….”
기운 없이 축 늘어진 메이블을 가만히 바라보던 에이단이 향한 곳은 본성의 주방이었다.
황실 수석 주방장은 황제의 입덧이 심해 아무것도 먹지 못한다는 사실에 잔뜩 상심한 채 주방 구석에 앉아 있었다.
“……내 세상이 무너졌어.”
자신이 만든 음식을 누군가 잘 먹는 것만큼 요리사로서 보람찬 일은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수석 주방장의 직업 만족도는 가히 최상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다 옛말.
황제의 식사가 조금도 줄지 않고 그대로 돌아온 그 날부터 수석 주방장은 실의에 잠기고 말았다.
“주방장.”
에이단의 나지막한 부름에 수석 주방장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대, 대공 각하?!”
“해 줘야 할 일이 있다.”
“제가 말입니까?”
에이단은 짧게 고개를 끄덕인 후 메이블이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의 요리법을 천천히 읊었다.
그가 말을 하면 할수록 주방장은 식은땀을 뻘뻘 흘릴 수밖에 없었다.
‘뭐, 뭐라는 거야.’
듣도 보도 못한 요리를 만들라니요.
하지만 그에게는 거부권이 없었다.
“하, 한번 해 보겠습니다.”
주방장은 자신의 요리 경력과 실력을 믿고 소중한 황제 폐하의 한 끼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언제나 황제 폐하께서는 내 요리를 드시고 행복해하셨지. 이번에도 그러리라!’
편식도 하지 않던 멋지고 착하신 우리 황제 폐하!
아장아장 걸어 다닐 때부터 그의 요리에 엄지를 들어 주던 황제 폐하를 떠올리며 그는 생전 처음 들어 보는 요리법을 소화해 냈다.
“어떻습니까?”
에이단은 심란한 심정으로 주방장이 선보인 회심의 역작을 내려다보았다.
‘이게 아니야.’
맛을 모르는 사람이 만들었기 때문에 결과물은 그가 원한 것과 딴판이었다.
역시 설명만으로는 메이블이 원하는 음식을 만들어 내는 게 힘들었다.
“……일단 가져가 보도록 하지.”
메이블이 몇 끼 째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에 별수 없었다.
계속 굶을 수는 없으니 뭐라도 먹여야 했다.
시종이 트레이를 끌고 에이단의 뒤를 따랐다. 내심 기대감이 생긴 수석 주방장도 함께였다.
“메이블.”
에이단이 이름을 부르며 들어가자 레몬 사탕을 우물거리던 메이블이 웃으며 반겼다.
“잠깐 다녀온다더니, 너무 늦었잖아.”
“기다렸습니까?”
“당연하지.”
아무렇지 않게 웃고 있지만 여전히 기운이 없는 메이블을 한 팔로 끌어안은 에이단이 뒤쪽을 보며 눈짓했다.
누군가 들어오는 인기척이 들리자 메이블이 고개를 들어 에이단을 올려다보았다.
“뭐야?”
“식사를 준비했습니다.”
“으음. 소용없을 것 같은데…….”
“이렇게 아무것도 안 먹을 수는 없으니까.”
음식 생각을 하니 절로 속이 울렁거렸지만, 에이단의 걱정을 이해 못 하는 바도 아니니 메이블은 고개를 끄덕였다.
머지않아 그녀의 앞에 주방장의 특제 주문 요리가 차려졌다.
“이게 뭐지? 태어나서 처음 보는데?”
“…….”
차마 그 음식을 먹고 싶다던 국밥이라고 할 수는 없던 에이단은 말을 아꼈다.
“냄새가 뭔가 익숙한 것 같기도 하고.”
메이블의 반응이 긍정적이자 그 광경을 지켜보는 수석 주방장의 표정이 밝아졌다.
‘이번에는 드디어 드시는 건가?’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숟가락을 드는 메이블을 바라보았지만, 역시는 역시였다.
“우욱!”
장렬한 실패.
“따흐흑…….”
수석 주방장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터덜터덜 밖으로 나갔다.
어떻게든 밥을 먹여 보려는 에이단의 노력에도, 메이블이 먹을 수 있는 건 쿠키, 사탕 정도가 전부였다.
계속 이렇게 둘 수는 없다.
보다 못한 에이단이 직접 나섰다. 균열에서 메이블과 짧은 여행을 다니며 먹어 본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에이단은 아공간 주머니에 있던 요리책이란 요리책은 다 섭렵한 후에 조리실로 들어갔다.
한참 후에 조리실에 들어간 주방장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조리실의 상태가……?”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조리실을 초토화하고 난 후에 그럴싸한 국밥 한 그릇과 깍두기가 나왔다.
‘맛은 비슷한 것 같은데.’
이 결과물을 내기 위해 몇 번이고 다시 만들기를 반복했으니 당연했다.
에이단이 음식을 가져가자 침대에 늘어져 있던 메이블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와, 국밥이다!”
저번 주방장 때처럼 혹시 못 알아볼까 봐 내심 걱정했던 에이단은 한시름 놓았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저번처럼 냄새는 통과해도 막상 먹지는 못할 수 있었다.
그런 에이단의 걱정이 무색하게, 메이블은 행복한 표정으로 야무지게 밥을 말아 국밥을 한 입 먹었다.
“크으. 바로 이거거든.”
마치 맥주를 원샷한 아저씨 같은 소리를 낸 메이블은 싱글벙글 웃으며 밥을 먹었다.
“맛은 괜찮습니까?”
“응. 주방장 요리 진짜 잘한다니까. 마치 먹어 본 것 같아.”
주방장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만들었지만 에이단은 메이블의 오해를 굳이 정정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입덧 없는 식사를 만끽하던 메이블이 자신을 바라보는 에이단에게 권했다.
“에이단도 한 입 먹어 볼래?”
“아니요, 괜찮습니다. ……이미 많이 먹었습니다.”
최대한 비슷한 맛을 구현하기 위해 이미 질릴 정도로 맛을 보았다.
국밥이라면 치가 떨릴 정도로 꼴 보기 싫은 상태였지만 그 사정을 모르는 메이블은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오랜만에 배부르게 먹었더니 진짜 살 것 같다…….”
숟가락을 내려놓은 메이블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행복해 보이는 메이블의 모습에 에이단도 만족했다.
그렇게 식사가 끝나고 몇 시간이 지났을까. 책을 읽던 메이블이 무심코 중얼거렸다.
“감자탕…….”
“…….”
에이단은 조용히 조리실로 향했다.
그의 신께서 까라면 까야지.
***
대회의장의 분위기가 싸하게 가라앉았다.
신하들은 잔뜩 우울한 얼굴로 자리를 지켰다.
불가피한 사정으로 황제가 장기 휴가를 보내게 되었다. 임시로 그 공석을 채운 건 다름 아닌…….
“표정이 다들 왜 그러지?”
전 황제, 현 에르마노의 백수.
상황제 에스테반이었다.
황좌에 다리를 꼬고 앉은 에스테반이 나른하게 턱을 괴었다.
“누가 보면 나라가 망하기라도 한 줄 알겠군.”
“하하.”
“하하하하…….”
“그럴 리가요.”
“절대 아닙니다.”
다들 어색한 미소를 지었지만 속내는 달랐다.
‘쳇, 또 오셨군.’
신하들은 황제가 자리를 비울 때면 어김없이 국정 회의에 참석하는 에스테반을, 고까운 눈으로 보았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에스테반은 그런 불충한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한 신하를 발견해 버렸다.
“불만이 있는 것 같은데.”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뭐? 그럼 메이블이 돌아오지 않기라도 바란단 말인가?”
“그게 왜 그런 뜻이 되는 겁니까…….”
“그렇게 들리던데?”
“그런 의도로 드린 말씀은 아니었습니다.”
“황제에 대한 충성심이 아주 바닥을 기는군.”
“억울합니다…….”
“어쨌든 회의를 시작하지. 할 일은 해야 하니까.”
에스테반은 기분 나쁜 티를 팍팍 내며 회의를 시작했다.
잠자코 자리를 지키던 에밀리가 오스카에게 물었다.
“상황 폐하 왜 저러세요?”
“메이블이…….”
“아아.”
에밀리 또한 상황제가 한동안 ‘아기가 아기를 어떻게 낳냐’라며 충격에 빠져 지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다.
아직도 그 충격에 벗어나지 못한 듯했다.
“그런데 에밀리 넌 이렇게 나와도 되는 거야?”
에밀리도 몇 달 전에 아이를 가졌다는 이야기를 전해 온 바 있었다.
“일할 수 있을 때까지는 일하려고요. 제 남편이 아세라드 대공 각하처럼 유난은 아니라 다행이죠?”
“에이단이 좀 유난이긴 하지…….”
오스카가 메이블을 만나러 갔을 때, 바닥에 발이 닿는 꼴을 못 볼 정도였다.
“오늘 메이블 만나러 가려고 했는데, 오라버니도 같이 가실 거죠?”
“그래.”
두 사람이 정답게 수다를 떠는 동안에도, 신하들은 에스테반에게 탈탈 털리고 있었다.
‘살려 줘.’
‘상냥한 황제 폐하를 돌려줘요.’
오늘도 에르마노의 국정 회의는 평화로웠다.
***
늦은 밤.
“저는 이만 퇴근하겠습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으어어.
얼굴이 피로에 찌든 구스타프가 괴상한 소리를 내며 물러나고, 에스테반도 집무실을 나섰다.
바로 제 침실로 향하려던 그는 방향을 바꾸었다.
지금쯤이면 메이블도 잠들었을 테니 잠든 얼굴만 잠깐 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메이블은 깨어 있었다.
에스테반은 침대에 기대 무언가를 보고 있던 메이블과 눈이 마주쳤다.
“안 자고 뭐 하느냐, 메이블.”
“아빠 기다리고 있었지?”
“내가 언제 올 줄 알고.”
당연히 메이블의 입에 발린 앙큼한 말이었지만, 에스테반은 기분 좋게 속아 넘어갔다.
그는 메이블의 말이라면 해가 서쪽으로 뜬다고 해도, 방위의 명칭을 바꿔서 진리로 바꿀 정도의 딸 등신이었으니까.
“그런데 에이단 아세라드는 어디 가고 혼자 있느냐?”
“글쎄……? 요즘 주방장이랑 자주 다니는 것 같던데.”
예전에는 자비에와 같이 다니더니, 이제는 수석 주방장과 어울렸다.
메이블로서도 에이단의 사회생활 기준을 알 수가 없었다.
“주방장……?”
에스테반도 의아하긴 마찬가지였다.
특별외전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