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by Tyrant RAW novel - Chapter 343
9화. 쌍둥이 황자의 탄생!
잠깐 고민하던 에스테반은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방해만 되는 에이단이 없다니, 오히려 좋았다.
“그런 무심한 놈은 됐고, 오랜만에 이 아빠와 산책이나 하자꾸나.”
“그래!”
그렇지 않아도 에이단의 도가 지나친 과보호 탓에 땅바닥에 발 디디기가 쉽지 않았던 메이블은 얼른 침대에서 내려왔다.
두 사람은 사이좋게 손을 잡고 황성의 밤 정원을 거닐었다.
4살의, 9살의, 혹은 언제나의 특별하지 않은 날의 산책처럼.
아무도 없는 정원은 한가롭고 조용했다.
그 가운데 부녀의 대화 소리만이 조곤조곤 들려왔다.
“아까 찍찍이들한테 들었는데, 아빠 오늘 신하들 괴롭혔다며?”
“어떤 쥐 자식이 그런 헛소문을 퍼뜨리는 것이냐? 툭하면 찾아오는 그 돼지 같은 먹보 쥐로군.”
“걔 말고 다른 애야.”
“내 눈엔 그 쥐가 그 쥐던데.”
“쥐들 눈에도 아빠는 그냥 흰 대가리 남자 인간일걸.”
“…….”
흰 대가리 남자 인간.
에스테반은 적나라한 단어 선정에 턱 하고 말문이 막혔다.
아무래도 딸의 동물 친구들의 질이 너무 나쁜 것 같다.
“그런 나쁜 쥐들이랑 놀지 말거라, 메이블.”
“삥 뜯는 것만 빼면 착한데.”
“그걸 나쁘다고 하는 거다.”
“아빠도 구스타프 노동력 삥 뜯었잖아. 우와, 나쁜 아빠다!”
“…….”
이번에도 에스테반은 메이블의 빈틈없는 논리에 할 말을 잃었다.
그러고 보면 언제나 그랬다. 메이블은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할 아기일 적부터 번번이 에스테반의 말문을 턱턱 막히게 했다.
‘나의 천재 아기 같으니라고.’
그는 옅은 한숨을 내쉬며 메이블을 내려다보았다.
사실 아직도 딸이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았다.
그의 눈에 메이블은 영락없이 어리고 사랑스럽고 귀엽기만 한 막내딸이었으니까.
하지만 언제까지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메이블이 태어난 이후, 그가 과거의 한 자락을 붙들고 있는 동안, 그의 딸은 저만치 먼저 걸어가 있곤 했다.
그는 매번 앞서가는 딸의 뒤를 쫓았다.
너무 빨리 자라 버리는 딸이 야속할 때도 있지만, 이제는 알았다.
성큼성큼 걷다가도 메이블은 잠깐씩 멈춰 서서 그가 따라오기를 기다린다는 것을.
“아빠. 아빠가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아.”
……지금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메이블은 그가 무슨 걱정을 하고 있는지 꿰뚫어 보았다.
물론 아직 아이 같은 메이블이 아이를 가졌다는 것이 충격적이지만, 그것 말고도 에스테반을 겁먹게 만드는 이유가 존재했다.
에스테반은 두려웠다.
속절없는 이별과 맞닥뜨리게 될까 봐.
“……메이블.”
“응.”
“누님도, 시아나도, 허망하게 내 곁을 떠나갔다. 한데 너마저 그렇게 떠난다면, 나는…….”
에스테반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는 두 손으로 여전히 작기만 한 딸의 손을 꽉 붙잡고 이마에 가져다 댔다.
이토록 간절히 붙잡았지만, 결국 허망하게 놓쳤던 누군가의 손이 있었다.
세상에는 그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 존재했다. 에스테반은 그게 너무 무서웠다.
메이블은 떨고 있는 에스테반의 손을 붙잡히지 않은 손으로 감쌌다. 시선을 내리자 말간 눈으로 메이블이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약속할게, 아빠. 나는 안 떠나. 절대로.”
달빛 아래에서도 햇살 같은 내 아이.
“또 나는 운이 좋잖아. 이렇게 아빠도 만났고.”
자신을 만나 운이 좋다고 말하는 사랑하는 내 아이.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를 들으니, 정말로 다 잘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의 불안으로 더 이상 딸을 불안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 메이블.”
너는 세계를 구한 아이니까, 이번 일도 역경이 아닐 테지.
에스테반은 자신의 염려가 그저 사소한 걱정에 지나지 않기를 바라며 미소 지었다.
“하지만 그건 알아 두거라. 내 행운이 너라는 걸.”
달빛이 유독 밝은 어느 날의 밤이었다.
***
여전히 에이단은 주방장과 밀회를 즐기고 있었다.
도대체 뭐 하는지 궁금해서 조리실에 내려갔다가 내가 온 것도 모를 정도로 집중한 채 요리하는 에이단을 보고서 특별히 모른 척하는 중이었다.
‘대놓고 내가 만들었다고 자랑해도 될 텐데 말이야.’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내 남편이 여전히 귀여워서 곤란하다.’
하지만 지금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에이단에게 중요한 임무를 맡긴 지 며칠이 지났지만, 여전히 감감무소식이었다.
그 중요한 임무란 바로 이름을 짓는 것!
“내가 지으면 안 돼? 잘 지을 수 있는데.”
“안 됩니다. 절대.”
“…….”
“절대로 안 됩니다.”
그 정도로 반대해 놓고 막상 이름 후보를 가져오지 않으니 나로선 묘하게 속상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잘! 지을! 수! 있는데!
그때 마침 에밀리가 통신 마도구로 연락을 해 왔다. 종종 그랬던 것처럼 에밀리는 군신 상황극을 시작했다.
[너무 심심해서 연락드렸답니다, 황제 폐하.]“그러고 보니 못 만난 지 제법 되었군, 하비에르 공.”
[직접 찾아뵙지 못하여 송구합니다.]“그렇다면 다음에 짐을 만날 때 맛있는 디저트를 가져오도록.”
[황제 폐하의 명을 받듭니다.]한차례 상황극을 끝내고 까르르 웃고 나서야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잘 지내지?”
[뭐만 하려고 하면 로이스가 펑펑 울어서 그냥 침실에 꼼짝없이 박혀 있지, 뭐.]에밀리의 상황도 나와 별반 다를 바 없는 듯했다.
남편들은 대체 왜 그러는 걸까? 적당히 움직여 주는 게 좋은데 말이야.
에이단이 종류별로 공수해 온 온갖 과일 맛의 사탕 껍질을 만지작거리다가 문득 에밀리에게 물었다.
“있잖아, 언니는 아기 이름 지었어?”
[이름? 음, 당연히 미리 지어 놨지.]“와. 뭐라고 지었어?”
[딸이면 로잘린, 아들이면 젤로스.]“예쁘다! 에밀리 언니가 지은 거야?”
[로이스랑 같이 상의해서. 어때, 사위 혹은 며느리 후보 이름 마음에 들어?]“아직도 사돈의 꿈을 포기하지 않은 거냐고…….”
[당연하지. 이번에야말로 어떻게든 메이블 너와 가족이 되고 말겠어……!]에밀리가 이상한 의욕을 불태웠다.
원대한 꿈을 가지는 건 개인의 자유니 그냥 내버려 뒀다.
[메이블 너는 아직 이름 안 지은 거야?]“응. 에이단이 본인이 꼭 지어야 한다고 해서. 나도 지어 보겠다고 했더니 절대 안 된대.”
[그럴 만도 하지.]“……응?”
[아, 아냐. 하하하. 어, 로이스가 부른다. 안녕, 메이블. 나중에 또 연락할게!]뚝.
에밀리가 어색하게 웃더니 통신을 끊어 버렸다.
뭘까, 한 방 먹은 이 기분은?
“내 작명 센스가 그렇게 별로인가?”
입술을 삐쭉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이단이 하도 내가 침대에서 내려오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없을 때 조금씩 움직여 둬야 했다.
정원에 나가기엔 낮이라 보는 눈이 많아서 오늘 내가 선택한 건 에이단의 침실을 구경하는 것이었다.
나는 내 방과 문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국서의 침실에 들어섰다.
원래 황후 침실인데, 지금은 내가 황제라 에이단이 쓰고 있었다.
사실 에이단은 대부분 내 침실에서 지내기 때문에 여기서 시간을 오래 보내지는 않았다.
툭. 낮이지만 커튼을 다 드리워서 어둑한 침실에 발을 들이자마자 무언가 발치에 걸렸다.
“응?”
뭔가 싶어서 내려다보니 두꺼운 책이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온통 구겨진 종이와 책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집착광공 인테리어를 추구하던 에이단답지 않게 산만한 침실 풍경이었다.
침대에 걸터앉은 나는 옆에 있던 책 하나를 집어 들었다.
“잉?”
책 제목을 본 나는 눈을 의심했다.
“이게 뭐람……?”
주방장과의 밀회에 이어 에이단의 두 번째 비밀을 알아 버렸다!
그렇게 나한테는 이름 못 짓게 하더니 자기도 작명 책 참고할 거였으면서.
“치사해!”
물론 작명 책들만 있는 건 아니었다.
으레 다른 집 자식들 이름을 지을 때 그렇듯 역사서나 신화 책들도 곳곳에 눈에 띄었다.
“신이 신화 책을 보고 있다니, 이 무슨 모순인가.”
구겨진 종이를 주워 펼치자 이름 후보를 썼다가 지운 듯 새까맣게 덧칠해 놓았다.
어떻게든 좋은 이름을 지어 보려는 에이단의 노력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런 노력도 좀 티를 내 주란 말이야.’
나 혼자만 이름에 대해 고민하는 줄 알았는데, 에이단은 배는 더 고심한 모양이었다.
다른 종이 뭉치를 펼쳐서 새까만 덧칠 속 글자를 어떻게든 읽어 보려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있을 때였다.
내 손에서 종이가 쑥 빠져나갔다.
“메이블.”
어쩐지 부끄러운 듯한 에이단이 종이를 도로 구기고 있었다.
“왔어?”
“여긴 더러우니 옆방으로 건너가는 게 좋겠습니다.”
“별로 안 더러운데? 난 괜찮아!”
“내가 안 괜찮습니다.”
기어코 에이단은 나를 안아 들어 옆방으로 옮겨 갔다.
에이단의 꼭두각시가 된 나는 또다시 침대에 올라가 이불까지 꼼꼼하게 덮는 신세로 전락했다.
꼼질꼼질 이불을 내리며 에이단에게 물었다.
“그래서 아기들 이름은 언제 말해 줄 건데?”
“싫다고 했잖습니까. 메이블이.”
“내가? 언제?”
“……분명 윈터는 싫다고 그랬습니다.”
“으응?”
갑자기 윈터가 왜 나와?
그러다 문득 에이단이 왜 저런 말을 하는지 깨달았다.
윈터는 과거에서 나를 만났던 아데스가 미래를 안배하며 전생의 이름을 따서 내게 내려 주었던 신명이었다.
그 신명을 거부했던 걸 싫다는 의미로 받아들인 거야?
“그건 아벨라르도에서 나를 계속 데려가려고 했으니까 그랬던 거지. 윈터라는 이름에는 딱히 유감이 없어.”
“정말입니까?”
“내가 거짓말을 왜 하겠어? 지금은 공식 문서에도 쓰고 있잖아. 메이블 가데니아 윈터 에르마노.”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던 건지 언뜻 굳어 있던 에이단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나는 옆으로 턱을 괴고 누워 에이단을 올려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우리, 서로에게 이름 하나씩을 지어 준 셈이네.”
나는 에이단에게 아세라드라는 성을.
에이단은 나에게 윈터라는 신명을.
“소중히 여기고 있습니다.”
“천사라도 상관없어?”
“네.”
그 말만큼은 진심인지 에이단이 단호하게 대답하며 내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간지러운 감촉에 킥킥 웃으며 에이단을 다시 재촉했다.
“그래서 우리 애들 이름은 언제쯤 지어 줄 건데?”
“지었습니다.”
“정말?”
“네.”
미하엘이 쌍둥이라고 미리 언질을 준 만큼 에이단이 지어야 할 아이의 이름은 두 개였다.
나는 두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에이단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하지만 에이단은 말 대신 주머니에서 곱게 접힌 종이 한 장을 꺼내 건넸다.
그 위로 유려한 글씨로 아이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페르난도.
아르덴.
이름을 빤히 쳐다보고 있자, 에이단이 머뭇거리다 질문했다.
“어떻습니까?”
“어떠냐고?”
나는 번쩍 고개를 들어 에이단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외쳤다.
“진짜 마음에 들어!”
내심 내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까 봐 걱정했었던 건지 에이단의 얼굴에 안도감이 언뜻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그런데 에이단, 여자아이면 어떡하지?”
나의 기습 질문에 당연히 에이단이 당황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알리샤.”
준비성 철저한 에이단은 여자아이 이름까지 생각해 두었던 것이다.
“쳇.”
그 와중에 또 잘 지었잖아. 어쩔 수 없이 나는 나 홀로 개최한 에이단과의 작명 대결의 패배를 선언했다.
“페르난도. 아르덴. 알리샤.”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 보던 나는 멀거니 서 있는 에이단에게 요구했다.
“에이단도 우리 아이들한테 이름 불러 줘.”
“이름을 어떻게 불러 줍니까?”
“이렇게.”
나는 에이단의 손을 끌어다가 내 배 위로 올렸다. 별다른 동작도 아닌데 에이단이 몸을 굳히며 긴장하는 게 느껴졌다.
나는 뚝딱거리는 에이단을 무시하고 말을 계속했다.
“자. 이렇게 엄마 아빠가 이름을 불러 주는 거지. 페르난도, 아이덴, 알리샤, 키키, 피피, 엄마 아빠가 기다리고 있단-.”
“은근슬쩍 이상한 이름 끼워 넣지 마십시오.”
“쳇.”
들켰네.
하지만 에이단은 내 말을 허투루 듣지 않고 진지하게 아이들의 이름을 불렀다.
“페르난도, 아이덴, 알리샤.”
잠깐 말을 멈춘 에이단이 다소 무뚝뚝하게 뒷말을 이었다.
“……기다리고 있겠다.”
나는 하마터면 터질 뻔한 웃음을 참았다.
이렇게 어색할 수가.
하여간, 정말 에이단다운 인사였다.
***
에르마노 제국 전역을 들썩이게 하는 큰 경사가 생겼다. 그것은 바로-.
“황자 전하께서 탄생하시다니. 그것도 쌍둥이!”
쌍둥이 황자의 탄생이었다.
특별외전2